인식범위 넓고, 아이템단위 인식 가능한 RFID, 그럼에도 잘 안 되는 이유는
RFID 활성화 위해 '비싼 가격', '인식률' 문제 해결해야
글. 임예리 기자
RFID란 무엇인가
무선인식이라고도 불리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이는 무선 주파수(RF)를 이용해 물건이나 사람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RFID는 최근에 등장한 기술은 아니다. 기술의 탄생을 보려면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정도이고, 한국에서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물류·유통분야에서 RFID를 주목해왔다. 그렇다면 현시점에 RFID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그 이유를 살피기 전에 우선 RFID 기술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RFID를 구성하는 하드웨어 장치에는 ‘태그’, ‘리더기’, ‘안테나’가 있다. 태그는 다시 정보가 저장된 IC칩과 안테나로 이루어져 있다. 리더기는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안테나가 보낸 태그 정보를 확인한다. 리더기는 받은 정보를 서버로 전송한다.
▲ RFID 기본 구성
주파수를 이용하는 RFID는, 이용하는 주파수에 따라 저주파(LF), 고주파(HF), 극초단파(UHF), 마이크로파로 나뉜다. 주파수 대역에 따라 특징도 다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교통카드는 고주파 RFID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교통카드는 아이템 단위로 선택되는 것으로서, 사실상 바코드와 큰 차이가 없다. 고주파 RFID와 달리 바코드는 사람이 직접 리더기를 들고 제품 상단의 바코드를 찾아 찍어야 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이와 달리 물류 및 유통 분야에서 각광받았던 RFID는 UHF 대역 주파수다. 이는 동시에 여러 개의 제품을 인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리더기에 가까이 대야만 인식 가능한 교통카드(HF)와 달리 UHF 대역의 인식 범위는 최대 100m에 이른다.
RFID 기반 솔루션 개발 업체 포에스텍 이승원 대표는 “UHF 주파수 대역은 수백, 수천 개의 태그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며 “현재 포에스텍은 RFID를 국가 기관 기록물 관리와 서고 관리에 활용하고 있는데, 이전까지 2주 걸렸던 전수검사 소요시간이 현재는 1~2일로 줄었다”고 밝혔다.
또한 RFID는 바코드와 달리 아이템 단위의 위치추적(Tracking)이 가능하다. 바코드는 품목 단위로 상품을 파악한다는 한계가 있다. 가령 A와 B 두 개의 커피가 하나의 품목으로 정해져서 바코드 번호를 부여받았다고 하자. 그러면 리더기로 A를 찍든 B를 찍든, 이 둘은 같은 정보로 인식된다. 아이템 단위로 상품을 파악하기 위해서 바코드를 아이템별로 일일이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새로운 체계가 필요했고, RFID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 리더기와 태그
RFID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RFID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검찰청 등의 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RFID 활용 관리체계가 보급된 비율은 아직 10%가 채 되지 않는다. 업계 평가에 따르면 RFID의 보급 저해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태그의 가격’과 ‘인식률’이 바로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현재까지는 ‘가격’이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다. 과거 방송통신위원회(구 정보통신부)의 ‘RFID 태그 현황’ 자료에 따르면, RFID 태그 가격은 2004년 2,000원 대, 2005년 500원대, 2006년에는 200원대로 감소했다.(900MHz대역, 시범사업 및 본사업 기준) 현재에는 중국 업체가 태그 제조를 주로 맡아 하고 있어, 가격은 처음의 10분의 1 수준까지 낮아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 운송장 가격이 몇십 원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하면 현재 태그 가격은 상용화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여기에 하드웨어 시설 구축비용까지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물론 태그 가격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이 한편에서 존재하긴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그는 주로 고가 제품군이나 높은 업무 효율성이 강조되는 공공기관에서 주로 활용돼 왔다. 이에 반해 민간분야에서의 RFID 활용은 더뎠다.
‘인식률’도 RFID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정태수 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인식률 문제는 RFID 기술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 그에 따르면 RFID 기술은 과거부터 있었던 아날로그 기술로서, 아날로그 기술이 가진 태생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RFID가 주위 환경에 민감하다든가, 태그가 부착되는 제품의 성질에 따라 인식률에서 차이를 보인다든가 하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다.
실제로 10년 전만 해도 안테나가 주파수를 쏘면 두 안테나 간 충돌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테나의 위치를 고려해 태그를 붙여야만 했다. 또한 태그는 기본적으로 철과 물(습기)에 약해, 태그가 철제 제품에 부착되면 인식률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메탈태그(금속태그), 강한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태그, 고온에 버틸 수 있는 태그 등이 만들어졌으나, 이는 다시 단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특수 태그는 플랜트나 발전소, 건설현장 등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요컨대 RFID는 인식률과 단가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RFID가 막 떠오르던 때, 많은 사람들은 매장에서 쇼핑카트에 물건을 싣고 리더기가 설치된 곳을 지나기만 하면, 상품을 바코드에 찍을 필요 없이 그 리더기가 아이템을 인식해 자동으로 계산이 이뤄지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마존의 ‘아마존고’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현실화되려면 RFID의 인식률이 100%라는 게 전제돼야만 한다. 100%의 인식률을 보장하지 못하면 소매상은 RFID 사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RFID는 인식률이 100%가 아니더라도 도입할 수 있는 의류나 책 등의 제품군, 혹은 제품 단가가 높아 태그를 써도 부담이 없거나 태그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에 태그를 부착하고 이를 트래킹해 제어할 수 있는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의약품처럼 법적인 이유로 RFID 사용이 강제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정부는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과 효율적인 정보관리를 위해 올해 안으로 의약품 일련번호제도를 유통업체에까지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할 예정이다. 이 제도가 발의되면 의약품 포장에는 의무적으로 유통정보를 담은 바코드나 RFID 태그를 부착해야 한다.
RFID의 투자 대비 효과는
민간 기업이 RFID를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ROI(Return on Investment), 즉 명확한 투자 대비 효과다. 하지만 현재까지 RFID의 투자 대비 효과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재고관리, 트래킹 등 목적에 따라 RFID 기술을 시험해본 뒤 RFID 도입을 점층적으로 확장하라고 조언한다. 하드웨어 장치를 비롯해 RFID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ROI를 명확히 따질 수 있는 정략적 평가방법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로는 ‘공급사슬을 이루는 주체 간 이익 분배 문제’가 있다. 한 예로 월마트는 2003년부터 공급망관리(SCM) 효율화 차원에서 자사 납품업체의 제품에 RFID를 부착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2007년, 월마트 사이먼 랭포드 이사는 “RFID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품절률 15~20%, 결품률 30%, 과잉주문 10~15%를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RFID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에서 일어난 비용 절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용 절감에 대한 수익 분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월마트처럼 강력한 시장 지배력(Market Power)을 가진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RFID 부착을 요구한다면 납품업체는 비용을 들여 RFID 태그와 리더기 같은 하드웨어 설비를 설치하고, 미들웨어 등의 소프트웨어를 구축해 사용법을 익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당시 월마트가 RFID를 도입했을 때 업계에서는 납품업체의 부담을 지적하기도 했다.
정태수 교수는 “이러한 문제는 각기 다른 이익집단이 모여 있는 공급사슬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또한 하나의 이익집단이 하나의 공급사슬에 속한 것만은 아니므로 가격 절감에 대한 분배가 RFID 도입의 방해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RFID, ‘표준’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공급망에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RFID가 그 목적에 맞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코드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태그에는 코드만 저장돼 있기 때문에, 리더기를 이용해 코드를 읽고 표준화된 방법에 따라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만약 한 조직 내에서만 RFID를 쓴다면 자체 코드체계를 쓰면 되고, 무선인식을 통해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을 놓고 볼 때 각 주체가 구축한 표준이 상이하다면, 서로의 데이터를 인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게다가 하나의 주체는 하나의 공급사슬에만 종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일된 표준이 없다면 RFID 도입을 통해 효과를 보기 힘들다.
▲ 국내 RFID 시장 규모
현재 코드 표준은 여러 가지가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공급사슬 전체에 통일된 표준이 퍼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공급사슬 내 주체들 간의 이익 분배 문제’까지 결부되면 RFID 활성화 시기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RFID 시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RFID 시장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RFID는 물류 부분이 아니더라도 헬스케어,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다”며 “특히 최근 국내에서는 스마트팩토리나 스마트시티 등의 분야에 RFID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슈가 생기고 있다”고 RFID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