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공급망뒤집기]제조업 물류센터에 봄은 오는가

by 설창민

2017년 04월 16일

유통업체의 눈부신 물류혁신, 반면 초라한 제조업 물류센터

문제는 ‘주문처리’ 영역, CPFR 등으로 개선해야

 

창고

 

글. 설창민 SCM 칼럼니스트

 

유통업체의 눈부신 성공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많은 유통업체들, 중개와 물류를 결합한 O2O(Online to Offline, Offline to Online) 업체들의 눈부신 물류혁신을 지켜봤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근처 수제버거집만 가더라도, O2O업체 배달기사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스마트폰으로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저녁거리를 주문하면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다. 친절한 직접배송 서비스로 유명한 한 온라인 유통업체의 배송차량은 보안이 삼엄하기로 유명한 곳도 문제없이 드나든다고 한다. 온라인 신발 유통업체로 시작한 기업 자포스(Zappos)는 웬만한 물류업체 못지않은 자체 물류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포스 물류시스템의 핵심인 피킹로봇을 공급하는 키바 시스템(KIVA System)은 아마존에 인수되기도 했다.

 

이들 유통업체의 공통점은 ‘신속한 주문 처리 능력’이다. 신속한 주문 처리는 성공하는 유통업체가 되기 위한 필수 역량이라 할 만하다. 이를 위해서는 물건을 피킹(Picking)하고 차량에 적재하는 과정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유통업체가 물건을 직접 매입하여 자체 물류센터에 보관함으로써, 소비자의 주문을 받자마자 제품을 바로바로 출고하기도 한다.(실제 신속한 주문 처리를 보장하는 유통업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유통업체가 직접 배송하거나, 직접 매입하는 물품이거나, 혹은 유통이 제한된 지역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제조업체 물류센터의 현실

 

한편 제조업체 물류센터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기계화나 자동화 같은 물류센터의 최신 트렌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O2O와도 거리가 멀다. 왜 그럴까? 앞서 언급한 ‘주문처리’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 때문이다. 유통업체는 재고정보를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구매 가능 여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주문을 처리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결제정보만 확인하면 물류센터에 곧바로 출고 지시를 내릴 수 있다. 특정 물품의 재고가 부족할 때는 소비자에게 대체 상품의 판매를 촉진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제조업체에게 재고 부족은 그대로 ‘판매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가 유통업체별로 고려해야 할 서비스 수준도 상이하다. 특히 유통업체의 대금결제 능력을 검증하는 것은 무엇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제조업체에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물건은 대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 때문에 이른바 할당(Allocation)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마저도 불가능하면 공급 부족분을 생산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이 과정에서 자칫 실수라도 생기면 제조업체는 제조업체대로 주문을 맞추는 것에 급급해지고, 유통업체는 유통업체대로 제조업체의 서비스 수준에 불만을 갖게 된다.

 

유통업체가 물건을 가져다 제대로 팔았는지도 제조업체로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관리를 제대로 하는 제조업체라면 유통업체가 물건을 제때 팔았는지 여부를 확인해서 다음 재고 할당에 이를 반영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제조업체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주문처리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물류센터가 출하지시를 내리기까지의 리드타임이 길어지고, 자연히 물류센터가 주문을 인지할 수 있는 시점도 늦어진다. 이렇게 되면 제조업체는 각각의 유통업체가 원하는 팔레타이징(Palletizing: 팔레트를 자동으로 공급하고 운반하는 작업) 및 라벨 부착을 따로 해줘야 할뿐 아니라, 원활한 배송능력을 제때 확보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이것이 제조업체 물류센터의 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봄은 오는가?

 

이러한 주문처리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CPFR(Collaborative Planning, Forecast and Replenishment: 협력적 예측·보충 시스템)이 있다. CPFR은 판매·재고 데이터를 이용해 제조·유통업체가 상호 협력하여 공동으로 예측하고 계획하며 상품을 보충하는 업무 프로세스를 말한다.(한경경제용어사전) 즉, 원칙을 만들어서 그 원칙에 따라 재고를 할당하고,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전자문서교환)를 통해 주문을 주고받으며, 미리 합의된 원칙에 따라 납기를 받음으로써 의사소통 오류를 최대한 방지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제조업체는 협력 유통업체에서 발생하는 주문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물류센터에서도 주문만 믿고 배차와 작업인력을 확보하여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다.

 

O2O 시대, 제조업체 물류센터는 무언가 엄청난 혁신을 이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물류에 다양한 IT기술을 도입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신속한 주문 및 출고 처리를 위해 끊임없이 할당과 생산계획 반영 절차를 손보고, 유통업체와 협력 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꽃이 피고 봄이 성큼 찾아왔다. 제조업체 물류센터에는 언제쯤 봄이 올지 지켜볼 일이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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