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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제3자물류, 창고로 일어설까

by 임예리 기자

2017년 04월 10일

3PL의 등장과 확산, 그리고 곧 마주한 한계

2PL 횡포에 경기침체까지, 중소 3PL의 살길은 어디에

창고

(위 사진은 본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글. 임예리 기자

 

90년대, 3PL의 등장

 

제3자 물류(Third Party Logistics, 이하 ‘3PL’)는 물류의 전부나 일부를 물류업체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 3PL이 도입되기 전까지 물류의 각 과정은 작업별로 나뉘어 있었다. 하역은 하역대로, 운송은 운송대로, 화주의 요구에 맞춰 물류의 각 부문별 대행 측면만이 강조됐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3PL 모델이 국내에 등장했다. 이와 함께 물류 운영 방식 또한 이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금지급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3PL 도입 이전까지 물류비는 사람 한 명당, 혹은 차 한 대당의 ‘고정급’ 형식으로 지급됐다. 하지만 3PL 도입 이후 물류비는 상품 매출액 혹은 매입액의 일정 부분을 퍼센트(%)로 따져 책정하는 ‘변동비’의 형식으로 변화하였다.

 

3PL은 이론적으로 화주업체와 물류업체 모두에게 ‘물류 효율화’라는 이점을 선사한다. 우선 화주는 3PL을 이용함으로써 필요한 만큼의 인원과 차량을 쓰고, 그만큼의 물류비를 지급할 수 있게 됐다. 가령 제조업체는 한 달 내내 물류업무로 바쁘지도 않을뿐더러 날마다 물량의 편차도 존재하는데, 3PL을 통해 물류자원을 필요한 만큼만 쓰면 물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다.

 

3PL은 물류업체에게도 이득이다. 3PL 모델은 여러 화주의 물량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 고정급 방식에서 수익을 높이기 위해 인원 투입 등 자원의 수를 늘릴 수밖에 없었던 물류업체는, 3PL 모델 안에서 실력을 발휘해 ‘물류 편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배차 역시 자사의 스케줄에 맞춰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3PL 물류업체는 예전처럼 한 화주의 물류 업무만 맡는 게 아니라, 여러 화주사와 계약을 맺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3PL 모델이 처음 활용된 사례 중 하나로 1994년 ㈜진로의 맥주시장 진출이 거론된다. 진로는 맥주시장에 진출하며 물류 업무 전부를 삼영물류에 위탁했다. 특히 진로는 물류 아웃소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물류센터에 자사의 지원 인력을 파견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삼영물류에 따르면, 당시 진로의 물류센터에는 약 40억 원 어치의 재고가 보관돼 있었는데, 진로는 작업 세트를 만들거나 포장을 하는 과정에도 파견직을 일절 보내지 않았다.

 

3PL의 본격적 확산

 

한국에 3PL이 정착한 것은 2000년대 전후로 파악된다. 당시 국내 대기업에게 물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오너의 친인척이나 임원 출신 등 ‘의전’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배려 차원에서 물류회사를 맡기는 정도였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IMF 이후 한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기업이 핵심역량에 집중했고 이에 따라 주변 역량인 물류를 아예 없애 외주화하는 회사가 늘기 시작했다. 이때 화주기업은 운송, 하역, 포장 등의 물류 단계별 작업을 각각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어 관리하는 대신 이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이 물류비를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니즈 변화에 따라 3PL 사업 모델을 도입하는 물류기업도 자연히 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정부가 실행한 ‘종합물류기업 인증제도’는 3PL 비즈니스 확산에 불을 지폈다. 종합물류기업 인증제도란 정부가 제3자 물류기업을 육성하고 물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로, 이는 물류기업이 여러 화주의 물류업무를 모아 처리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물류 효율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복안이었다.(한편 2005년 초기 제정 당시 종합물류기업 인증 기준은 물류사업의 총매출액 중 제3자 물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었지만, 현재는 40% 이상으로 강화되었다.)

종합물류기업 인증기준▲ 종합물류기업 인증기준 중 제3자 물류매출 관련 개정 사항(자료=한국항만경제학회지, 2014)

 

이렇게 좋은데 왜 안 될까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3PL업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3PL업체 대표 사이에서는 3PL 비즈니스가 한국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왜일까? 대기업의 물류자회사, 즉 2PL업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재 국내 물류시장의 상황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2016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내부거래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내부거래 금액이 큰 업종 중 5위가 운수업(대분류 기준)이었다. 또한 거래 금액이 2조 원 이상인 업종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업종 1위는 창고 및 운송 관련 서비스업으로 꼽혔다. 내부거래 비중은 최근 감소세이긴 하지만, 2015년 들어 소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부거래 금액 역시 2014년 하락세로 돌아서는 듯하더니, 2015년 다시 상승했다.

내부거래 비중 업종

 

물론 2PL업체들도 외부 화물 비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조차도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 중소 물류업체 대표는 “몇몇 대기업이 3PL 비중을 높이기 위해 자사 물량을 줄이는 대신 협력 업체 등 다른 회사의 물량을 끌어와 비율을 맞추는 방식을 쓰고 있다”며 증언했다. 그는 또한 “타 회사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자사 그룹 내에 있는 다른 업종을 활용하는 이른바 교환영업을 하면서 본질적인 물류 서비스의 개선보다는 ‘물량 끌어오기’가 중심이 돼버린 상황”이라 덧붙였다.

 

복수 중소 물류기업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2PL와 3PL의 경계가 애매하다. 그들은 심지어 대기업의 2PL업체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물류 물량을 끌어당기고 있어 소형 운수회사나 3PL 전문업체가 이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내부거래 비중▲ 창고 및 운송관련 서비스업의 내부거래 비중 추이와 내부거래 금액
 

‘하청’ 혹은 ‘전문화’

 

이러한 국내 물류의 상황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대형 물류업체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현대글로비스는 2014년 말 폴란드의 물류회사 ‘아담폴’을 인수하며 현대·기아차의 해외 진출이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CJ대한통운 역시 2015년 중국 냉동·냉장 기업 룽칭물류를 인수하여 CJ로킨을 설립했고, 지난해 7월에는 중국 TCL 그룹과 물류 합작법인 CJ스피덱스를 설립했다. CJ대한통운은 또한 지난 9월 말레이시아 물류기업 센추리로지스틱스를 인수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필리핀의 물류기업 TDG그룹과 합작법인 CJ트랜스테셔널 필리핀을 설립하며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반해 중소 물류기업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2PL 물류 대기업의 ‘협력업체’나 ‘하청업체’가 되는 것이다. 대기업과 협력하면 수익 자체는 많지 않지만, 안정적인 물류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전문화’ 전략이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파고들어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다. 가령 해외 특정 지역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처럼 지역을 특화할 수도 있고, 의약품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의약품 전문 물류업체처럼 산업을 특화할 수도 있다.

 

전략 따라 창고도 바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3PL 모델을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중소 물류업체 삼영물류에게도 선택의 순간은 찾아왔고, 삼영물류는 후자(‘전문화’)를 택했다. 삼영물류는 물류센터 역시 이 전략에 맞춰 구축했다. 이상근 삼영물류 대표는 “지역별 센터마다 집중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르다”며 “가령 인천센터는 화장품과 소형 전자상거래 업체 전용, 청라센터는 옐로O2O 물량을 대행하는 O2O 전용, 인천항센터는 편의점 전용 창고로 구분돼 있다”고 전했다.

 

삼영물류의 인천센터는 약 2,000평이다. 만약 이 물류센터를 한 화주가 모두 사용한다면 모든 것이 해당 화주에 맞춰 있을 것이므로 센터 운영 및 관리 난이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삼영물류 인천센터에는 23개 화주의 물량이 들어와 있다. 입고 날짜, 적재 일시가 제각각이며, 재고관리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가령 포장만 하더라도, 어떤 제품은 단순하게 박스 포장만을 하면 되지만, 밀봉(Sealing)과 압축과정을 거쳐야하는 제품도 있다. 또한 하나씩 분리돼 있는 상품을 세트로 모아 택배박스에 담아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큰 상자를 분리해서 하나씩 제품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여러 화주의 물류업무를 동시에 맡게 되면 센터의 운영·관리가 복잡해진다. 삼영물류는 이러한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장비를 구비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전에 없던 과정이 추가됨에 따라 한 회사의 물량만을 단독으로 받을 때보다 물류 단가는 높아졌다. 이 대표는 “까다로운 물류센터 관리 때문에 많은 업체가 이러한 사업 방식을 꺼려왔다”며 “삼영물류는 다른 업체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고 전했다.

 

중소 물류센터에도 봄은 올까

 

이렇듯 물류센터에서 경쟁력을 찾고자 하는 중소 물류업체가 늘고 있다. 하지만 중소 물류센터는 지난 2월 공개된 이마트몰의 ‘김포 물류센터’ 마냥 최신 장비로 가득 차있는 모습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국내 물류센터 운영업체 관계자는 ‘첨단시설’은커녕 일반화된 ‘자동화 장비’ 도입에도 회의적이다.

 

소형 물류센터룰 운영하고 있는 한 중소물류업체 대표는 “아마존의 키바나 드론, 자동화 장비를 도입할 때는 생산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소형센터에서 이런 장비가 투자한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이런 장비를 도입했을 때 해당 비용을 화주들이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물류센터에 적극적인 투자가 부족한 또 다른 이유로 ‘짧은 계약 기간’이 언급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10년 이상의 장기계약보다는 단기계약을 선호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중론이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화주와 물류업체 간의 계약은 1년 단위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수시 계약의 형태였다.(2014년 기준)

물류센터 계약기간▲ 물류기업과의 계약기간(출처= 한국무역협회, 2014년 3자물류 및 물류공동화 활용 실태조사)

 

중소물류업체 한 관계자는 “10년 동안 쓸 수 있는 장비를 들여와도 화주와의 계약이 3년이라면, 투자비용을 3년으로 나눠 청구해야 하는데, 이는 다시 물류업체의 비용 문제로 돌아온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계약기간이 짧으면 화주와 협상해야 할 기간이 빨리 돌아온다는 뜻인데 이를 이용해 물류업체를 제어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근본적으로 화주와 물류업체 사이의 파트너십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인식”이라고 밝혔다.



임예리 기자

三人行,必有我师。 페이쓰북 / 이메일: yeri@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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