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이성일의 콜드체인로드] 신선식품 이커머스, '정기배송'만이 능사인가

by 이성일

2017년 01월 15일

- 신선식품 온라인 판매의 성장을 이끈 정기배송(Subscription), 맞닥뜨린 한계- 정기배송의 허와실, '소비자 측면의 불편'과 '벗어나지 못하는 HMR 상품군'- 정기배송의 대안 '매입후 판매방식', 전체 식품군을 취급하기 위해 필요한 것

 

글. 이성일 마켓컬리 로지스틱스 리더 / 정리. 임예리 기자

 

Idea in Brief

전자상거래의 진화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소비자 구매 패턴이 이동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채널은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 자사몰 등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신선식품 쇼핑몰’ 같은 경우는 유독 온라인에서의 발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국내 시장의 협소함’ 또는 ‘식품 분야에 대한 온라인 구매 문화 비확산’ 등을 원인이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원인이 기존 신선식품 온라인 쇼핑몰의 ‘정기배송’ 판매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기배송 방식의 단점은 무엇이며, 이를 혁신하기 위한 신선 물류의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 클릭 한번으로 신선한 식품을 식탁 위에.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최근 이색 식품 배달서비스 상품을 속속 개발하면서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이는 일반 상품판매로는 다른 쇼핑몰과 차별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색 배달상품으로 고객 잡기에 나선 것이다. <중략>

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이색식품을 정확히 배달해줌으로써 인터넷쇼핑몰의 편리함을 생활속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 독신자, 신세대 맞벌이 부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쇼핑몰업계, 이색식품 배송서비스 경쟁, 매일경제, 020930)

 

위 글은 매일경제가 보도한 ‘쇼핑몰업계, 이색식품 배송서비스 경쟁’이라는 기사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을 발췌한 내용이다.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기사인 듯 보이는데 충격적이게도 2002년에 작성된 기사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이다. 전자상거래의 진화, 1인 가구의 증가, 다이어트 및 웰빙 열풍, 유기농 & 무농약 농산물을 필두로 하는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 증대로 인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의 범람을 봐왔다.

 

그러나 그동안 온라인 식품 시장은 새로운 업체가 잠시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비슷한 컨셉의 후발주자가 나타나면 매출이 줄어드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여 왔다. 시장은 군소 업체의 난립으로 치열한 치킨게임에 돌입했고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혹자는 국내 식품 시장의 크기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고, 아직은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신선식품 온라인 시장 규모는 수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형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도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이 안 됐다는 의견은 조금 철지난 분석으로 보인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전통의 오프라인 강자들이 온라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 음식배달 O2O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는 현재 상황이 이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라인 신선식품 쇼핑몰이 부진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원인이 기존의 온라인 신선식품 쇼핑몰들이 ‘정기배송 방식(Subscription)’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물류 혁신에 실패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식품 온라인 정기배송의 난립

 

16년 전 국이나 반찬 판매를 시작으로 집밥 식단을 구성하여 각 가정에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명가아침’이 등장했다. 그 이후 ‘더푸드’, ‘트루라이프’가 뒤를 따랐다. 2009년에는 간편식 시장에 뛰어들어 급격히 성장한 ‘AM푸드’가 있었고, 2011년 풀무원은 다이어트 열풍에 편승하여 ‘잇슬림’이라는 다이어트식 배송 브랜드를 론칭했다. 2014년 이후에는 이런 중소 업체의 판매와 배송을 대행해주는 배민프레시(구: 덤앤더머스)가 등장하여 시장에 활력을 넣기도 했다. (상기 언급된 ‘더푸드’를 배민프레시가 인수합병하기도 했다.)

 

상기 나열된 업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는 정기배송 방식의 식단 판매를 주로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독자적 물류망을 구축했거나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쿠팡이 기존의 3PL 물류(택배사)에 의존하던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물류망을 구축하며 크게 주목받고 있지만, 상기 업체들은 수도권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자사 물류망을 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최근 마켓컬리, 배민프레시, 헬로네이처(현재 SK플래닛 매각) 등을 통해 주목 받고 있는 ‘새벽배송’을 이미 시도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이중 몇몇 업체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급성장했다. 그러나 곧 후발주자와 시장을 나눠 갖거나 신선도, 가격, 고객 편의성 면에서 대형마트, 편의점, 배달 O2O 업체 등보다 나은 해법을 내어놓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다. 그나마 ‘가정식사 대체식품(HMR: Home Meal Replacement)’ 영역과 정기배송 방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반찬 전문 업체’, 또는 정기배송 방식 자체가 비즈니스에 적합한 ‘클렌즈 주스’, ‘이유식 업체’들만이 선전하고 있을 뿐이다.

마켓컬리 샛별배송
양날의 검, 정기배송

 

물론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방식중 가장 매력적인 수단 중 하나가 ‘정기배송’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SCM 전반에 걸쳐 판매자에게 엄청난 편익을 주기 때문이다. 우선 재고관리(Inventory Management) 부분에서 적은 재고 보유량으로 운영할 수 있다. 자연히 이에 따른 폐기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주문처리(Order Fulfillment)에서는 예약 주문의 특성상 주문처리(제조 및 Picking & Packing)에 소요되는 시간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다. 배송(Last-mile Fulfillment)에 있어서는 예측 가능 수량에 기반을 둔 권역 설정 및 배차 효율 증대를 가져올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존 택배사의 3PL과 신선식품 간 최악의 궁합이었던 터미널 잔류(물량이 많아지면서 배송시점이 익일로 넘어가게 되는 현상)도 0으로 수렴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전반적인 SCM 운영 부분에 소요되는 비용 및 리스크 자체가 최소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들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불편으로 다가온다. 첫째로 소비자는 일정 기간 동안 구매해야 하는 정기배송 상품들에 대한 금액 결제를 미리 해야 한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리스크를 고스란히 소비자가 부담하는 요인이 된다. 예를 들면, 미리 정기배송으로 주문·결제해 둔 상품의 수령일이 내일인데 갑자기 출장이나 여행 등 집을 비울 일이 생긴다거나, 예약한 상품을 새벽배송으로 집 앞에서 배송 받았는데 깜빡 잊고 출근하여 상품 품질이 훼손되거나 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그 귀책은 상품 수령 일자를 반드시 숙지하고 상품 배송 일정에 신경을 쓰지 못한 소비자에게로 돌아간다.

 

둘째로 정기배송으로 받은 식단 중 일부 원하지 않는 상품이 포함되었을 경우, 부분 환불을 받거나 상품 교환으로 인해 일정하게 짜인 식단을 걸러야 하는 등에 따른 불편함도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또한 주문한 시점부터 상품 수령일까지 최소 18시간 이상의 대기 시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이 정기배송의 태생적 한계인데, 이로 인하여 다른 오프라인 채널(대형마트, 편의점, 오프라인 음식점)과의 경쟁(가격, 편의성)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 HMR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기배송’을 외친다면

 

물론 일각에서는 정기배송의 형태가 2차 배송부터는 주문절차 자체를 생략하게 되어 소비자 편의가 증대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마존의 ‘대시버튼’이나, 11번가의 ‘스마트버튼 꾹’의 출시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 또한 정기배송만의 메리트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앞서 언급한 장치들은 고객 편의성을 저해하게 되는 정기배송 일괄 결제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사진= 아마존의 대시버튼(위)과 11번가의 스마트 버튼(아래). 소비자가 상품이 필요한 시기에 해당 버튼을 누르면 필요한 수량만큼 소비자 문전에 그때그때 배송되는 온디맨드(On-demand) 방식이다.

 

정기배송 방식의 재고 보유량이 적기 때문에 신선도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신선도 유지는 SCM 전체의 전반적인 품질관리(원재료 수확 시점부터의 기간 관리 포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지, 물류센터에 계류하는 시간이 짧다고 해서 신선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산지에서의 수확 시기 자체가 오래된 상품이 센터에 짧게 계류했다고 해서 그 상품이 신선한 것은 아니다. 또한 센터 입고 이전 신선도가 같다는 전제하에, 일정 상품에 대해 수요량을 예측하여 선발주하고 판매후 잔여 재고는 전량 폐기하는 방식으로 재고를 관리한다면 입고후 판매 상품과 예약주문 상품의 신선도는 동일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정기배송을 선택했을 때 할인이 적용되고, 그 기간이 길수록 할인율이 높아지는 가격정책 자체가 소비자가 온갖 불편함을 무릅쓰고 정기배송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이라 해석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그렇게 정기배송이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이라면 오히려 정기배송을 도입하고 더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서비스가 되려면 소비자가 다시 찾을만한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현재의 식품 정기배송 서비스는 소비자가 많은 불편을 감내하며 장기간 이용할 만큼의 매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기배송의 대안 ‘매입후 판매방식’

 

그렇다면 신선도와 소비자 편의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물류 혁신을 통해 고객에게 선택받는 서비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기존 정기배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문을 미리 받아 놓는 정기배송 방식은 필연적으로 주문마감시간(Cut-off)에서 배송 완료까지의 배송시간(Delivery Time)이 길어진다. 이는 긴 배송시간이 상품의 품질을 저하할 수 있다는 신선식품의 특성을 차치하더라도 고객의 편의성을 떨어뜨린다. 결국 정기배송 상품으로 경쟁력 있게 취급할 수 있는 상품군은 HMR 부분에 한정된다.

 

필자는 이 문제의 해법을 ‘매입 후 판매 방식’에서 찾는다. 상품을 매입한 후 판매하게 되면 고객은 획기적으로 단축된 배송시간에서 높은 편의성을 얻을 수 있고, 기업은 HMR 영역에 한정하여 취급했던 상품군을 훨씬 더 넓게 확장할 수 있다. 물론 판매가능 기간이 짧은 신선식품 특성상 매입 후 판매방식은 현장운영에서 많은 문제점이 일어난다.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부분별로 알아보겠다.

 

먼저 재고관리 측면을 살펴보자. 매입 후 판매 방식은 판매 후 잔여 재고의 폐기량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발생한다. 자칫 발주량 조절을 잘못하면 폐기량이 많아지고 이는 판매단가의 상승으로 연결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반드시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발주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또한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값을 정밀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발주량 조절이 필요하므로 산지 및 생산자와 협력하여 최소구매발주수량(MOQ: Minimum Order Quantity)을 최소화해야 한다.

 

다만, 1회 입고 시 입고량이 적은 경우에는 물류비로 인해 상품 단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촘촘한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 더불어 상품기획자(MD: Merchandiser) 및 품질관리(QC: Quality Control) 조직을 구축하여 산지 및 생산자부터 시작해서 물류센터에 입고되는 순간까지 신선도 관리에 부족함은 없었는지 체크해야 한다. 물론 산지부터 고객 수령 시점까지 전 과정 콜드체인(Full-Cold Chain)을 만드는 것 또한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

 

주문처리에서는 창고관리시스템(WMS: Warehouse Management System) 내에 실시간 주문처리를 위한 피킹(Picking) 알고리즘 및 주문처리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실시간 검수 프로세스를 도입하여 상품의 센터 계류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상품별로 최적화된 환경을 조성하고 각 조건에 적합한 패킹(Packing) 가이드를 제시한다면 배송 완료 이후에도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 고객 만족에 한 층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배송 부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배송시간(Cut-Off부터 배송 완료 시점까지)의 단축이다. 이를 위해 출하주문관리(TMS: Transportation Management System) 상에 변동 물동량에 따른 가변적 권역 설정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에 언급한대로 당일 주문량에 따라 몇몇 지역에 물동량이 몰려 잔류가 발생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출차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류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Cut-Off 시점에 즉시 배차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결과값을 출력하는 등의 실시간 배송 프로세스(Real Time Last-Fulfillment Process)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직매입 방식은 분명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노력들로 인하여 기존 정기배송 방식의 한계인 ‘HMR 영역’을 벗어나 전체 식품군을 취급 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로 인하여 온라인 식품 시장 역시 활짝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집 걸러 한집마다 걸려 있던 정기배송 우유 주머니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던 우유 주머니는 지금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몰 등에 유통 경쟁력을 잃으며,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시장의 요구가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빠른 시장의 변화 속에 운영상 편리함이나 비용절감이 쉽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이뤄가는 것이 기업가, 특히 스타트업의 자세가 아닐까? 시장이 존재하여 기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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