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라스트마일, 고객접점에서의 물류 전쟁이 시작됐다. ‘이륜차’는 라스트마일 물류를 개척하기 위한 대표적인 운송수단 중 하나다. 이륜차는 허브앤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중앙 센터에 집하되어 말단으로 배송되는 ‘택배’와는 달리 고객첨병에서 ‘실시간 물류’를 맡는다. 이륜차는 ‘당일배송’이 이슈가 됨과 동시에 수많은 업체들이 이륜차 망에 관심을 갖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이륜차 물류’를 포괄하는 명확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륜차 물류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포함되지 않으며, 업종 진입이 자유롭다는 특성상 정확한 통계가 파악되지 않는다. 통계청에서는 이륜차 물류를 ‘늘찬배달업(분류코드 : 49402)’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늘찬배달업 업종에 포함되는 업체는 69개로 그 신빙성은 미비하다.
전국퀵서비스라이더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 퀵서비스 라이더의 규모는 17~18만 명, 시장규모는 4조원 이상이라 추산하고 있다. 전국퀵서비스운수사업자협회에서 퀵서비스업으로 홍보하고 있는 전국의 퀵서비스 업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조사기간 : 2012.1~2012.5)에 따르면 국내 퀵서비스 업체는 1만 1600여개가 존재하지만, 이 또한 온라인 홍보를 위해 여러 업체로 위장한 사업자들이 존재하여 실제 퀵서비스업체 수와는 다를 수 있다.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이륜차 물류업계의 통계만큼, 퀵서비스 시장에는 수 조원 이상의 지하경제가 형성돼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업종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제도권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수많은 만행이 횡행하고 있다. 라스트마일 물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그 한 축을 담당하는 이륜차 물류업계 또한 어두운 장막을 걷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륜차 물류스타트업 날도의 서비스 중단을 시작으로 기획연재를 통해 장막에 감춰져있던 이륜차 물류생태계의 목소리와 변화의 움직임을 전한다. |
날도는 지난 4월 1일, 돌연 문을 닫고 도망치듯 떠났다. 기사님들에게 양해 하나 없이 충전금을 7일까지 입금하겠다는 공지 하나만 남긴 채 말이다. 이어서 공용센터에서 CID번호를 삭제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해서 날도 사무실로 갔다. 문이 잠겨있더라. 저 같은 경우 80~100만원 정도의 적립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저희들은 만 원짜리 하나 배송하고 사무실에서 23% 떼어가는 걸 보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다. 없는 사람 등쳐먹어 가면서 그러면 안 된다. 돈을 못 받았다는 사실보다 기사들은 항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는 현실에 화가 난다. 이와 같은 사건이 다른 퀵사에서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날도 피해 퀵라이더)
지난 3월 31일, 이륜차 물류업계에 진입하여 사세를 확장하던 스타트업 와일드파이어코리아(서비스명 : 날도)가 문을 닫았습니다. 날도는 자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인성데이타 퀵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퀵사들의 연합인 공용센터 1그룹(코리아퀵물류연합)과 3그룹(전국네트워크)에 각각 다른 아이디를 등록해서 공유기사망을 함께 사용하며 서비스를 운영하던 업체였습니다.
퀵라이더 사이에서 날도는 공용센터 3그룹 안에서 주문량 기준으로 거의 1~2위를 다투었다고 평가되는 업체였습니다. 날도에 따르면 서비스 중단 당시 날도의 거래처는 700여개에 달합니다. 그리고 불과 3년 만에 그 정도의 영업망을 만든 퀵서비스 회사는 거의 없다는 것이 퀵라이더들의 평가입니다. 어찌됐든 날도는 이륜차 물류판에서 네트워크 측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입니다.
날도의 서비스 중단이 이슈가 된 이유는 너무 갑작스럽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업체가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날도에 따르면 서비스 중단의 공식적인 이유는 ‘불량 화주사로 인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날도의 폐업 사유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무엇보다 사전 공지 없이 돌연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점 때문이었겠지요.
저는 지난 4월 1일 날도를 사용하던 한 화주사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대표는 “2주 전부터 날도의 상담사 연결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고, 3일 전쯤에는 날도 서버에 대한 디도스 공격으로 배차가 잘 안 된다는 팝업이 떴었다”며 “4월 1일 아침부터는 날도를 거치는 오토바이 퀵 주문이 모두 자동으로 취소가 되어 부랴부랴 다른 업체를 찾아 퀵서비스를 맡겼다”고 말했습니다.
날도의 폐업 이후 퀵라이더 커뮤니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날도가 퀵라이더들이 받아야할 적립금을 지급하지 않고 잠적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같은 날 날도 사무실로 확인차 전화를 했었습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몇몇 퀵라이더들은 적립금을 받기위해 날도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날도는 일전 퀵라이더들이 주문을 수행하고 받은 배송료를 적립금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한 달에 두 번인 15일, 30일에 퀵라이더들에게 일괄지급하고 있었습니다. 퀵라이더들 입장에서는 받아야 될 돈을 못 받은 상황이 됐으니, 황당하고 화나는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날도에 등록한 한 퀵라이더가 받은 적립금 지급 지연 안내메시지)
날도측은 퀵라이더들에게 ‘화주로부터 받을 미수금이 존재하여 적립금을 4월 7일까지 지급할 것’이라 모바일 프로그램상에 공지했습니다. 그러나 날도가 약속했던 7일, 아직도 많은 퀵라이더들은 적립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 퀵라이더가 날도에 메일을 보내서 날도 운영팀장의 답변을 받기도 했는데요. 해당 답변 내용 전문을 아래 참조합니다.
안녕하세요, 와일드파이어코리아 운영팀장입니다.
먼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기사님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전후사정을 충분히 설명드렸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 뒤늦게나마 서신을 드리는 점에 대해서도 너무나 죄송합니다.
3월 기준 저희 회사는 고객사로부터의 미수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통장에 잔고가 바닥나 부득이하게 모든 지출이 올스톱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1일 임금 지급이 어려울 듯 하여 기사님들의 항의로 업무가 마비되는 것을 막고자 회사 문을 닫고 직원들이 카페에서 세금계산서 발행 및 미수금 수집 작업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고객사 미수금 수급이 완료되는대로 대금 지급 일정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재무담당이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는 미수금을 보통 최소한 4월 15일까지 기다려야 할 듯 하지만 관련 법규에 따라 직원들에게 급여를 먼저 지급해야 하고 그 다음부터 한분씩 한분씩 지급되실겁니다.
지금까지 기사님들께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하려 노력해왔던 날도인만큼 이런 상황을 맞아 매우 유감스럽고,
모든 직원들이 상황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와일드파이어코리아 운영팀장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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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월 15일, 여전히 많은 퀵라이더들은 적립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한 퀵라이더가 피해기사를 모아서 날도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퀵라이더에 따르면 날도 피해기사 수는 그에게 연락 온 사람만 70명입니다. 그렇게 연락이 온 기사들의 피해금액은 1800만 원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 퀵라이더 커뮤니티 ‘퀵라이더연대’는 별도로 날도로부터 적립금을 받지 못한 퀵라이더들의 피해액을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퀵라이더연대 카페지기는 “인성 공용센터에 등록된 날도 아이디를 사용했던 퀵라이더들의 피해금액만 5300만원”이라며 “자사기사, 직권제 기사를 추가적으로 운영하던 날도의 특성상 초기 사건이 터졌을 때 피해액은 1억원이 넘을 것”이라 추산했습니다.
(사진= 적립금을 지급받지 못한 한 퀵라이더의 문의 메일에 대한 날도측의 답변메일(4월 18일 기준). 날도에 따르면 기사들에 대한 적립금 지급은 5월 중 대부분 완료됐다.)
그 이후 2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날도 피해기사들은 모두 날도로부터 적립금을 지급받았습니다. 기사 작성이 많이 늦어진 이유는 사건 이후 곧바로 연락이 닿았던 날도 고위관계자로부터 “기사가 먼저 유포되면 화주들의 미수금을 받는데 많은 악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날도 고위관계자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현재 시점에서 ‘날도 서비스 중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해서’입니다. 저는 날도 관계자로부터 이번 서비스 중단과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서비스 중단에 따른 재무·법적 이슈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날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날도가 사업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국내 이륜차 물류 생태계’에 대해서는 꽤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날도가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국내 이륜차 물류 생태계가 굉장히 비정상적이라는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었지요.
제 입장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전달할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한 사항에 대해 취재할 때 3명 이상의 관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 공통적인 분모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륜차 물류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이야기가 취합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습니다. 이는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수많은 관계자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전통적인 이륜차 물류 생태계는 실질적인 서비스를 담당하는 ‘퀵라이더’, 퀵라이더가 등록되어 있는 ‘퀵사’, 퀵라이더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퀵사에 공급하는 ‘퀵 프로그램사’로 구성됩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퀵사들은 ‘공용·공유센터’라는 이름의 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014년부터 이륜차 물류업계를 혁신하고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이륜차 물류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여기에는 수십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배달의민족(엄밀히 말하면 자회사인 우아한청년들)’, ‘플라이앤컴퍼니’, ‘메쉬코리아’, ‘허니비즈’ 등 ‘푸드테크’로 구분되는 업체 또한 포함되지요. 이에 따라 기존 업계와의 충돌, 그리고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퀵라이더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뒤섞여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국내 이륜차 물류판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날도의 서비스 중단은 어찌 보면 그 격변의 한축을 담당하던 한 업체가 무너진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이번 날도의 서비스 중단을 단순히 ‘날도 이야기’ 하나로 풀어나가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재기사를 통해 현재 국내 이륜차 물류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생태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전해보고자 합니다. 가능한 자세하게, 그리고 사견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이번 주제의 시작은 ‘날도’였습니다만, 그 끝에는 날도가 없을 듯합니다. 어찌됐든 이륜차 물류판의 격변은 이미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