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공급사슬의 블랙스완

by 민정웅

2014년 09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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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M을둘러싼 새로운패러다임의등장

글. 민정웅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


최근 들어 SCM을 둘러싼 외부 환경 속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1982년 부 즈 알 랜 해 밀 턴 (Booz Allen Hamilton)의 컨설턴트였던 케이트 올리버 (Keith Oliver)에 의해 공급사슬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SCM은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인 발전과 변화의 과정을 겪어왔습니다. 30여년간의 프로세스 개선과 새로운 기법의 도입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된 모습을 일구어온 SCM은 2010년을 기점으로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공급사슬 변동성의 증가와 산업간 영역의 붕괴, 그리고 3D프린터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그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총 3회에 걸쳐,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꾸다

블랙스완을 우리말로 한다면 검은(Black) 백조(Swan)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니라는 새를 우리가 통상적으로 백조라 부르다 보니, 흑과 백이 서로 모순되게 합쳐진 검은 백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비단 우리말에서만 그럴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는 고니를 흰색의 새(白鳥)라 믿어 의심치 않아 왔습니다. 그래서 백조는 항상 고귀하고 순결한 이미지로 우리의 머리에 각인되어 왔던 것입니다. 적어도 검은색의 고니가 발견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흰색 고니의 관찰을 통해 경험적으로 다져진 백조의 이론은, 1697년 한 마리의 검은색 고니가 호주에서 발견되면서부터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모든 백조가 다 흰색은 아니며, 적은 수이긴 하지만 검은색의 고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증권분석가로 일한 경험이 있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교수는 2007년 출판된 그의 책“블랙스완(The Black Swan)”을 통해, 이러한 극단적으로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때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결과를 경고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가 정의하는 블랙스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값(Outlier)으로,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잘 알려지지 않아 발생가능성에 대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고 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그런 이후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는 사건을 블랙스완이라 한다.”

탈레브 교수는 블랙스완의 대표적인 예로 2001년 9.11테러 사건이나 인터넷의 등장을 꼽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의 비행기가 뉴욕의 심장부를 겨냥하여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릴 확률이나, 과학자들이 만든 소규모 네트워크가 지구 곳곳을 연결하는 거대한 정보망으로 성장하게 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러한 일들이 현실화 된 이후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2007년 출간 당시,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으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함께 내놓았는데, 그의 주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현실화됨에 따라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블랙스완은‘매우 진귀한 것’혹은‘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블랙스완의 경고는, 공급사슬 속에서도 종종 목격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라 공급사슬을 구성하는 기업들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됨으로써, 아주 작은 블랙스완에 의해서도 공급사슬 시스템 전체가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입니다.

에어버스와 차세대 여객기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Dreamliner)의 사례에서도, 우리는 공급사슬을 교란시키는 블랙스완의 파괴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Dreamliner)의글로벌 공급사슬

보잉 787은 합성플라스틱을 이용한 최초의 비행기로, 자체 중량을 현저히 낮추어 연비를 향상시킨 보잉의 야심찬 차세대 여객기입니다. 개발 초기인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치솟는 유가로 인해, 여객기의 대형화로 개발 방향을 잡은 에어버스사의 A380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현재 A380은 대한항공이나 아랍에미리트 항공 등 각국의 항공사들에 의해 속속 정기노선에 투입되면서, 프리미엄 항공사로서의 도약을 위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보잉은 787기의 납기 연기를 5번이나 발표하며 2008년으로 예정되었던 항공기의 인도가 3년 이상 늦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시장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보잉사의 납기지연을 유발했던 블랙스완은, 바로 비행기의 동체를 연결하는 조그마한 볼트(Fastener) 부품 때문이었습니다.
보잉 787은 유럽(이태리, 스웨덴, 프랑스), 미주(미국, 캐나다), 호주, 그리고 아시아(한국, 일본, 중국)에 위치한 50여개의 납품업체로부터 각종 부품과 동체 모듈이 제작된 후, 미국 워싱턴?州 시애틀 인근의 애버레트(Everett) 공장에서 모든 모듈들이 최종적으로 조립됩니다. 보잉사의 짐 맥너니(Jim McNerney) 前 회장도 787 모델의 이러한 글로벌 공급사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보잉 787은 여러 개의 타임 존을 거치는 광범위한 수평적 공급사슬을 연결하고 있으며, 많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수많은 기술자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787을 성공적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부분을 우리의 관리 하에 보다 확실하고 철저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맥너니 회장의 공급사슬에 대한 적절한 상황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려는 모듈화된 비행기 동체를 연결하는 작은 볼트로 인해 현실화되고 맙니다. 통상적으로 비행기 한 대를 조립하는 데에는 약 44만 개(보잉737)에서 270만 개(보잉 777) 정도의 볼트가 소요되지만, 생산원가로만 따진다면 전체의 약 3% 정도에 불과합니다. 보잉사는 볼트 수급량의 상당 부분을 외주업체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과거 747모델의 경우 50% 수준이었던 외부업체 공급 비율을, 보잉 787부터는 약 80% 수준으로까지 높여 설계하였습니다.

그런데 2001년 9.11테러 이후 항공기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항공기 제조산업도 함께 위축되었고, 이로 인한 여파로 볼트 제작 업계가 구조조정을 거치며 전체적인 볼트 생산 용량이 감소되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항공기용 볼트에 대한 수요는 다시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숙련된 생산인력의 확보나 생산시설의 확충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볼트 생산 업계는 엄청난 공급 부족현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항공기 볼트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티타늄과 니켈 값이 폭등함에 따라, 이로 인한 자재비 상승도 이들 업체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볼트 생산량의 부족으로 인해 결국 보잉은 비행기 조립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었고, 이는 공급사슬의 대재앙으로 이어지게 되어 오늘날 보잉의 위기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엔진이나 날개와 같은 핵심 부품도 아닌, 단지 보잉 787 생산원가의 3%만을 차지하는 조그마한 볼트로 인해 비행기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보잉은 일본 대지진이라는 또 하나의 블랙스완과, 배터리 문제로 인한 기내 화재로 인해, 여전히 기나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잉사의 예처럼 글로벌 공급사슬 곳곳에는 지뢰밭과 같은 수많은 블랙스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급사슬에 있어 비용의 절감과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절대적인 목표가, 공급사슬의 안정성 확보를 더욱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으며, 이는 또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정웅

필자는 현재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및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으로 정석물류통상연구원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역-저서로는 ‘미친 SCM이 성공한다(2014, 영진닷컴)’, ‘물류학원론’, ‘공급사슬물류관리’, ‘물류기술과 보안의 이해’등이 있다. IT 및 Operation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실무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급사슬관리, 물류정보시스템, 물류보안, SCM과 소셜네트워크 등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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