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박승범의 공급망뒤집기] 공급 거래선 관리, 엑셀 탈출부터

by 박승범

2017년 09월 22일

힘들게 구축한 공급업자 포탈 안쓰는 이유 : 1. 슈퍼을의 존재/ 2. 그냥 귀찮아서

제조업계 SCM 혁신은 스마트팩토리 이전 엑셀탈출부터

 

글. 박승범 SCM 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최근 공급업체 관리 트렌드로 공급업자 포탈을 통한 열린 구매라는 것이 거론된다. 정말 많이들 사용할까. 실상 여전히 많은 업체가 포탈 대신 엑셀을 사용한다. 대개 공급업체에 포탈을 사용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반대로 구매업체에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포탈 좀 사용하지 않으면 어떠냐고?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이조차 쓰지 않으면서 스마트팩토리나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한 우리는 이미 많이 늦었다.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야 할 때다.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에서 다수의 업체로부터 물건을 공급받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온라인 홈쇼핑이나 소셜커머스, 오픈마켓과 같은 유통채널은 라면부터 명품까지, 서로 다른 공급업체로부터 공급받은 수많은 물건을 판매한다. 여러 공급업체로부터 원자재와 부품을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공급업체 관리 트렌드로 ‘공급업자 포탈’을 활용한 ‘열린 구매’라는 것이 떠오르고 있다. 구매업체는 공급업자 포탈을 통해 재고정보, 판매실적, 발주정보, 대금지급 실적 등을 보여주고, 발주처리, 배송처리, 대금청구 및 지급 등을 수행한다. 구매업체가 제조업체라면 공급업자 포탈에 생산계획에 따른 부품과 원재료 필요 수량을 보여주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추가 기능이 붙기도 한다. 가령 발주 후 발주확인을 요구하는 구매업체가 있을 수 있고, 생산계획에 따른 부품과 원재료 필요 수량을 보여준 뒤 공급업체에게 그 수량을 충족할 수 있는지 확인해줄 것을 요구하는 구매업체도 있다. 물론 이때 확인이란 것은 “우리 할 수 있어요!”라고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라는 게 아니라, 공급업자 포탈 상의 확인(OK) 버튼을 누르라는 것이다.

 

현실은 원칙과 다르다

 

여기까지가 공급업자 포탈에 관한 일종의 원칙(공급망관리 용어로는 Rule)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은 원칙과 다르다. 공급업자 포탈에서 구매업체가 공급업체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까닭은 대개 구매업체가 ‘갑’이고 공급업체가 ‘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이 ‘슈퍼을’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때 슈퍼을이란, 구매업체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나 원자재, 부품을 공급하는 공급업체의 시장지배력이 너무 강해서 갑이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대를 뜻한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반도체는 고도의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한번 구매량과 생산일정을 정하면 이를 바꾸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공급업체가 구매업체와 공급업자 포탈을 통해 일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아, 네 알겠습니다.” 할 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슈퍼을이 최근 트렌드라는 공급업자 포털을 뿌리치면 그 사이를 다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바로 엑셀이다. 과거 회귀다. 구매업체 직원 누군가의 컴퓨터에는 가장 최근에 받은 슈퍼을의 공급계획과 주 단위로 합의한 선적수량이 엑셀파일로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정기적으로 일일이 관리하고 공유하는 일이 다시 시작되는 거다. 게다가 엑셀에는 마감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보내는 이가 “죄송합니다, 이걸로 재송드립니다”라고 하면 이후 책임은 받는 이가 모두 지게 된다.

 

슈퍼을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슈퍼을만 아니라면 공급업자 포탈을 써볼 만할까. 여기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대단히 많은 공급업체 모두가 공급업자 포탈을 능숙하게 쓰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공급업자 포탈은 공급업체에게 다량의 엑셀 작업이 요구되는 정보를 포탈에 정기적으로 올릴 것을 요구한다.

 

가령 구매업체의 요구에 따라 ‘생산계획 대비 공급 가능 여부’ 정보를 포털에 올려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공급업체는 해당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업체 내부의 이 부서, 저 부서에 연락을 취해야하고, 심지어 2차 협력업체에까지 전화를 돌려 정보를 파악하여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정보를 파악한 뒤 공급업체가 포탈에서 해야 할 일이 고작 ‘OK버튼’을 누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가. 게다가 힘들게 파악한 정보에 오류라도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평범한 공급업체가 공급업자 포탈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또 다시 엑셀이다. 엑셀 작업에 의한 관리의 복잡성과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심지어 구매업체 스스로가 공급업자 포탈을 통해 공급업체와 일할 의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공급업자 포탈에 보이는 발주와 생산 계획은 본체만체 하고 실제 발주 및 생산 계획은 엑셀과 전화, 스마트폰 채팅 앱으로 전송한다. 이렇게 구매업체와 생산업체는 공급업자 포탈을 쓰지 않기로 대동단결한다.

 

누군가는 공급업자 포탈 좀 안 쓰면 어떠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공급업자 포탈조차도 안 쓰면서 스마트팩토리나 4차 산업혁명이 웬 말인가.”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엑셀과 전화로 업무를 주고받으면서 단말기에 터치 한 번만 하면 생산이 가능한지, 공급이 가능한지 알 수 있다는 스마트팩토리와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한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어떻게든 시스템을 사용하라

 

결국 중요한 것은 구매업체와 공급업체의 ‘의지’이다. 구매업체는 최대한 포탈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려 해야 한다. 공급업체는 그 정보를 기준으로 업무프로세스를 구성해야 한다. 실제 국내 스마트팩토리 구축 사례를 보면,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월마트의 공급업체 포털 EDI 가이드라인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1년에 5,500건 이상의 대금청구서를 발행하는 공급업체에게는 EDI 사용을 권한다는 것이다. 연간 5,500건이면 하루에 25건, 근무시간 기준 시간당 3건 이상의 대금청구서가 발행된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거래량이 발생하는 공급업체에 EDI을 권고한다는 것은 EDI를 쓰는 것 자체에 집중하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라는 뜻이다.

사진= 월마트 공급업체 EDI 지침서 중 일부.  EDI 사용 방법이 적시돼 있다.

 

도시물류 같은 트렌드는 선진국이나 우리가 똑같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 때문에 별로 늦었다는 생각이 안 든다. 반면 시스템을 활용한 정보 공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문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매업체와 공급업체 간의 정보 공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서 걸음을 떼자. 그리고 속도를 내자.



박승범

물류에 뜻을 두고, 물류센터 현장분류부터 '운송회사'까지 전전한 끝에 최근 대형 제조업체 물류IT 업무를 맡고 있는 평범한 물류인입니다. {개인블로그}를 통해 물류 관점에서 본 세상 이야기와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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