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이동하는 '생산기지'가 탄생한다는데, 공급망은?

by 박승범

2018년 03월 08일

뜬다는 모빌리티... ICT 무기로 이동하는 '매장', '생산기지' 만들어

3D프린팅 기반 이동식 생산, B2B 거래에선 회의적... 건전한 거래문화 선행돼야

글. 박승범 SCM칼럼리스트

 

Idea in Brief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이동시킨다. 요즘 뜬다는 트렌드인 ‘모빌리티’는 새삼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동식 은행, 푸드트럭, 최전방 부대의 황금마차까지.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다만 거기에 ICT가 결합되면서 조금 더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게 현시점의 모빌리티다. 많은 제조·유통업체가 모빌리티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를 ‘모빌리티 기업’이라고 정의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모빌리티를 받아들일 ‘기본’을 갖췄을까.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6년 본지 기고(노동 없이 소비하는 세상, 월-E가 보여주는 공급망의 미래)를 통해 영화 <월-E>가 보여주는 미래 인간군상을 그려본 적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미래인은 가만히 앉아서 먹고 놀기만 해서 살이 뒤룩뒤룩 쪄 버린, 그래서 로봇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다. 바로 옆에 사람이 있음에도 가상현실 기구를 통해 상대방과 소통을 한다. 극도의 편의를 추구한 인간이 마치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사육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편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군상은 2018년이 된 오늘날, ‘모빌리티’라는 이름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월 CES2017에서 집에서 앉았던 의자가 카시트가 돼 자동차에 들어가는 세상을 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토요타는 올해 CES2018에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이동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기업이 된다고 발표했다. 택배배송은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라는 이름으로 진화했고, 그 사이에 인간이 자동차를 타지 않는 순간마저 기업이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물론 모빌리티가 그렇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모빌리티의 탄생 배경에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었다. 신한은행이 창립 초기 재래시장에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상인들의 잔돈을 바꿔주고 예금을 받은 ‘이동식 은행’ 덕분에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것을 생각해보자.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하신 분들이라면 이동식 군매점 ‘황금마차’에 얽힌 추억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에게 친숙해진 ‘푸드트럭’도 모빌리티의 연장선이다. 초고령 사회(2015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비중 26.7%)의 대표격인 일본에서는 ‘이동식 편의점’이 영업하고 있고, 객단가는 일반 점포보다 높다고 한다. 모두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이동한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빌리티는 새삼스레 ‘트렌드’가 돼 다가왔다. 이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힘들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반영됐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그런 불편함을 첨단 ICT를 활용하여 좀 더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 또한 만들어졌다.

 

공급망에서 데이터 찾기

 

이동하는 무인매장은 모빌리티의 미래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시다. 그런데 이 이동매장은 모든 물건을 다 갖출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일본의 이동식 편의점과 같은 경우 트럭 한 대에 300~400종의 상품을 적재한다고 한다. 일본의 편의점 점포가 보통 3,000종의 상품을 갖추는데 이에 비하면 매우 적다. 한 마디로 이동하기 때문에 가장 잘 팔릴만한 물건들로 구색을 갖춰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품절이 된다면 그 물건이 팔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되며, 다음에 이동할 때는 이 때 품절된 물건이 팔릴 가능성을 보고 제한된 공간에 그 물건을 어떻게든 갖추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빌리티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주 고도화된 공급망 관리가 전제돼야 지속 가능하다. 선진 기술이 모빌리티의 진화를 촉진시킬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 도입 이후 관리 역시 이전보다 더욱 복잡해지고, 고도화될 것이 자명하다. 그만큼 필요한 데이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어야 모빌리티는 작동한다.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주 단위에서 일 단위로 관리 방법을 바꿔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에, 모빌리티의 등장은 이제 일 단위 안에서도 특정 지점(Spot) 단위의 계획을 필요하게 만들었다.

 

B2B에서도 모빌리티 뜰까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기업간(B2B) 거래에서도 모빌리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차량에 배치한 3D프린터를 통해 이동하면서 부품을 생산하고 현장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언젠가 들어본 적 있다. 범용품이 아닌 전용품이라면 그렇게 해볼 만하다. 전용품은 신중한 계획이 선행돼야 하기에 아예 달리는 차량 안에서 바로 생산해서 공급하는 게 공급업체의 서비스 수준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범용품이라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범용품은 재고로 쌓아 놓아도 계속 소비될 물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의 전제는 3D프린터로 생산한 물건이 품질을 담보해야 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모빌리티 생산의 효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왜 우리는 그런 게 활성화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닦달문화’를 그 이유로 꼽겠다. 공급업체를 닦달해서 물건 받아내는 것이 습관화돼 있는 제조업체가 무엇 하러 값비싼 3D프린터를 차량에 배치할 생각을 할까. 더 나아가 그들이 ‘모빌리티’에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닦달하면 어떻게든 가져다주는 공급업체가 있으니까 말이다.

 

모빌리티는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그 와중 모빌리티 기술의 발전이 영화 <월-E>처럼 인간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모빌리티가 고령자나 소외된 지역에 거주한 이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나아가 기업간 거래에서도 모빌리티의 활용 이야기가 화두가 될 수 있도록, 우리내 거래 문화도 조금은 더 성숙하기를 바래본다.



박승범

물류에 뜻을 두고, 물류센터 현장분류부터 '운송회사'까지 전전한 끝에 최근 대형 제조업체 물류IT 업무를 맡고 있는 평범한 물류인입니다. {개인블로그}를 통해 물류 관점에서 본 세상 이야기와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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