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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자원절약 위한 ‘강제적 역물류’, 빈병(空甁)은 언제나 부활을 꿈꾼다

by 신승윤 기자

2020년 02월 19일

빈용기보증금제도, 이는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주류공급망 구성원들이 가진 의무, 핵심은 '빈병 역물류'

빈병 재활용 공정 통해 점치는 주류 가격 하락 가능성

 

글. 신승윤 기자

 

‘빈용기보증금제도’는 주류, 청량음료 등을 포함한 음료의 판매가격에 빈병값을 보증금 명목으로 포함시켜 판매한 뒤 소비자가 빈병을 다시 반환할 때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환경보호 및 자원재활용을 위해 1985년부터 시작됐으며, 병의 용도에 따라 국세청과 보건복지부에서 나눠 관리하던 것을 2003년부터 환경부에서 일괄 취급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보증금이 인상됐으며, 환경부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증금을 인상할 경우 87.7%가 반환하겠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높은 반환율을 기대하기도 했다.

물류에 있어 빈용기보증금제도는 ‘강제성을 띤 역물류’라고 할 수 있다. 음료 제조와 물류‧유통을 거쳐 소비자가 내용물을 소비하고 나면 다시 빈병을 수거해 재활용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일련의 과정은 법적 강제력 아래 진행되는데, 이는 주류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음료가 소비자에게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뒤집는 형태로 진행돼 빈병의 출고와 회수는 완벽한 원 형태의 사이클을 이루고 있다. 과연 매일같이 수없이 소비하는 음료, 그리고 이를 담은 병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 보자.

 

빈용기보증금제도, 왜 필요한가?

 

빈병은 왜 재활용해야 할까. 먼저 흔히 사용하는 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석회석, 규사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자연 가운데 채굴하는 방법이 필수적이며, 이는 당연하게도 환경파괴로 이어진다. 또한 소주병 기준 새로운 병 하나를 제조하기 위한 원가는 병당 143원인 반면, 재사용 비용은 55원밖에 들지 않는다. 즉 환경보호 효과와 함께 병당 약 88원의 제조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 환경부 자료

 

▲ 빈용기 보증금 제도 현황(출처: 환경부 홈페이지)

 

결국 빈병은 재사용 횟수가 많아질수록 원가절감 효과는 더 커지는데, 2016년 기준 한국의 빈병 재사용률은 85%, 재사용 횟수는 평균 8회다. 이는 핀란드 98.5%/30회, 독일 95%/40회에 비해 다소 저조한 수치다. 이에 따라 빈병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2017년 1월부터 빈병 보증금이 인상됐다. 더불어 빈병자동반환기 설치, 소매점들의 수거의무 강화 및 위반 시 과태료 부과, 수거 거부 매장 신고자 포상금 지급 등 원활한 빈병 수거를 위한 제도‧환경적 보완을 거치고 있다.

▲ 규격별 빈용기보증금액(2017년 1월 1일 이후)

 

공급망 구성원들이 가진 의무

 

주류를 포함한 병 음료 공급망의 주된 참여자는 크게 제조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 소비자 4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참여자들은 빈용기보증금제도에 따라 강제적으로 빈병 역물류에 동참하게 된다.

 

① 제조업자

 

병에 담긴 주류‧청량음료 제조업자는 빈병 역물류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병 제조에 드는 원가를 확연히 절약할 수 있으며, 빈병 재활용이 활성화될수록 이로부터 얻는 이익은 거듭 증가하는 구조다. 단 제조업자는 그만큼 많은 의무사항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혜택만큼이나 책임져야 할 내용이 다양하다.

▲ 소주 ‘좋은데이’ 제조 공정(출처: 무학)

 

우선 규격별 보증금에 따라 산정된 취급수수료를 도매업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또한 반납을 원하는 소비자 불편을 줄이기 위해 제품 판매처와 관계없이 취급제품에 해당하는 공병을 의무적으로 반환받아야 한다. 또 보증금 환불 요구 및 불편, 부당사항 신고처를 음료 상표에 반드시 기재해야 하며, 관련해 소비자의 신고가 있을 때는 이를 조사해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더불어 제도 홍보의 의무도 가지는데, 빈용기보증금과 관련된 홍보물을 제작해 연 2회 이상 중앙일간신문이나 TV, 라디오에 광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역물류에 있어서는 반대로 종착지에 위치한 제조업자는 도매업체를 통해 수거된 빈병을 분류, 보관, 세척하여 재활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도, 비록 새 병을 제작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보다는 저렴하지만, 상당량의 자원과 인력을 투여한다. 빈병이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② 도매업자

 

주류 및 청량음료 물류는 까다롭다. P-Box라 불리는 전용 박스가 있어야만 보관과 운반이 가능하며, 한 박스마다 ‘한 짝’으로 불리며 담을 수 있는 최대 수량이 정해져있다. 예를 들어 소주 한 짝은 곧 P-Box 1개의 최대 보관 수량인 30병을 의미한다. 이 P-Box를 가득 채운 뒤에는, 이번엔 다수의 P-Box를 공백 없이 물류 창고나 차량에 싣는 요령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P-Box는 병의 손상이나 이로 인한 제품 오염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여백을 두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 다량의 병을 운반하기 위해 설계된 P-Box(출처: 삶과술)

 

도매업자는 차량을 이용해 소매업자에게 음료제품을 전달한다. 대상이 되는 소매업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부터 식당, 주점, 편의점, 슈퍼마켓까지 모든 상점을 아우른다. 도매업자의 빈병 수거는 새 제품을 납품하면서 이뤄진다. 납품은 소주 00짝, 맥주 00짝 등 짝별로 이뤄지며 빈병 수거도 마찬가지로 짝별로 이뤄진다. 단 새 제품과 달리 빈병은 P-Box 내 빈 공간이 생길 수 있다. 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병이 합포(?)된 상태로 반납되는 경우도 있다.

 

한 주류도매 화물운전기사는 “P-Box가 가득차지 않은 채 이동하는 것은 분명 비효율”이라며 “소매업체에서도 웬만하면 빈병을 종류별로 분류해 짝마다 가득 채워 반납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면 1차적으로 운전기사들이 직접 정리한다. 납품 업무와 별개로, 빈병 반납을 통해 제조업체로부터 정산 받는 수수료는 운전기사들이 병당 인센티브로 가져간다. 대부분의 도매업체가 그러하며, 이는 80년대 보증금제도가 생긴 이래부터 계속돼 온 관행으로 알고 있다. 단 보증금이 올랐다고 도매업체가 받는 수수료나 기사들의 인센티브가 오르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한편 도매업체 외에도 공병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존재한다. 해당 업체들 또한 소매점들로부터 공병을 수거해 제조업자에게 반납한 뒤 수수료를 받는 업무 형태를 띤다. 단 수집 전문 업체의 경우 일일 허가된 최대 수거량, 정해진 보관 장소와 보관 가능한 최대 수량이 정해져 있는 등 관련 규정을 지켜야만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수집 전문 업체는 막대한 양의 빈병을 효율적으로 수거하기 위한, 그리고 ‘한라산’ 소주처럼 통일된 디자인의 병 외에 소량 생산되는 병들까지 원활히 재활용하기 위한 ‘역물류 3PL’이라 할 수 있다.

▲ 초록색 아닌 투명한 자체 제작 병을 사용하는 한라산 소주

 

③ 소매업자

 

소비자들이 병에 담긴 음료를 구매할 수 있는 모든 곳이 소매업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소매업자들은 본인들이 취급하는 음료 종류에 따라 소비자로부터 빈병을 반납 받고 보증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해당 의무는 구멍가게나 슈퍼마켓, 편의점은 물론 대형마트나 백화점까지 모두가 동일하게 가진다.

 

여기서 취급하는 음료 종류란 소주와 같은 증류주류, 맥주나 막걸리 같은 발효주류, 청량음료 등이 있다. 즉 소매업자가 증류주류를 판매하고 있다면 증류주류에 포함된 모든 빈병을 수거해야 하며, 반대로 발효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면 관련 빈병을 수거할 의무도 없음을 의미한다. 또 페트병만 취급하는 매장은 어떤 빈병도 수거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한편 업소용으로 납품된 빈병은 일반 매장에서 거부할 권리를 가지지만, 군납용 또는 증정용은 가정용과 마찬가지로 취급됨으로 수거 대상이 된다.

▲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무인빈병수거기

 

소매업자는 빈병이 깨진 상태이거나 이물질이 들어가 있는 경우 등 오염된 상태라면 수거를 거부할 수 있다. 또한 취급 제품이 아닌 종류의 빈병도 거부 가능하다. 단 의무 규정과 무관하게 소비자로부터 수거를 거부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지불해야 한다.

 

관련해 한 슈퍼마켓 운영자는 “빈병 하나를 수거할 때마다 보증금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고, 이를 분류해 따로 보관까지 해야 한다”며 “매장에 공간도 부족하고, 악취도 나는 것 같아 곤란하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주류 구매는 카드로 하는데, 보증금은 현금으로 지불하다보니 결국 빈병을 받아봤자 소매업자가 차지하는 금액은 병당 10원 수준”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④ 소비자

 

소비자 입장에서 병에 담긴 음료를 구매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증금을 포함한 비용을 지불함을 의미한다. 즉 빈병을 반납하지 않으면 보증금만큼의 손해는 소비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이러한 차원에서 소비자 또한 빈병 역물류에 참여하고 있으며, 충분히 강제성을 띤다고 말할 수 있다.

▲ 병음료마다 판매가에 빈병 보증금이 포함돼 있다.

 

소비자는 본인이 해당 음료를 구매한 소매장이 아니더라도, 하루 30병까지는 어디서든 빈병을 반납할 수 있다. 단 같은 종류의 음료를 취급하는 매장이어야 하며, 30병이 넘어갈 경우 해당 매장에서 구매했음을 증명하는 영수증을 첨부해야 한다. 규정 외의 이유로 빈병 수거를 거부하는 매장은 신고 대상이며, 소비자는 연간 10회까지 회당 신고보상금 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신고는 거부 상황을 녹음 또는 동영상 촬영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빈병은 어떻게 부활할까

 

역물류를 거쳐 다시 제조업자에게 되돌아온 빈병들.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어떠한지 자세히 알아보자.

 

▲ 빈병 재활용 공정 단계

 

제조업체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공장에 도착한 빈병들은 유통 경로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모인다. 식당, 주점 등 업소용 빈병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P-Box에 담긴 상태다. 한편 편의점, 슈퍼마켓 등 가정용 빈병이나, 대형매장용 빈병은 종이박스에 담긴 채로 운송된다. 그 과정에서 도매업체 또는 직매장에서 종이박스로 들어온 빈병을 P-Box로 옮겨 운송하기도 하는데, 이를 현장에서는 ‘P갈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P갈이가 진행되는 이유는 재활용 공장 생산라인에 빈병이 투입되려면 반드시 P-Box에 담긴 형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자동화 기계가 P-Box에 담긴 빈병을 꺼내고, 소팅머신(Sorting Machine)이 빈병을 선별한다. 선별 기준은 병뚜껑의 유무, 파손 상태, 통일되지 않은 타사 제품 모양 등이다. 그 중 병뚜껑이 있는 빈병은 디캐퍼(Decapper)를 통해 뚜껑을 제거한다. 제조업체는 병뚜껑이 씌워진 빈병을 오히려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운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내부오염을 일정부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병뚜껑이 제거된 채, 깨지는 등의 파손이 없으며, 소주병이나 맥주병 등 해당 라인에 맞는 모양의 병만 남게 된다.

▲ 세병기로 이동하고 있는 맥주 빈병(출처: 식품저널)

 

다음은 세병기를 통해 병을 세척한다. 상수(上水)에 가성소다를 섞은 용액을 80~85℃로 가열해 약 1시간가량 고압 분사하는데, 이때 병 외부에 부착된 라벨이 모두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병 내부 세척까지 씻겨나간다. 이후 빈병검사기(Empty Bottle Inspector)가 세병기를 거친 빈병을 검사하고, 반려된 병은 몇 번이고 세병공정을 다시 거친다. 끝내 모든 세척과 검사를 마친 빈병에는 음료가 들어가고, 병뚜껑이 닫히며, 라벨이 붙어 새 제품으로 부활한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재활용 공정에 있어 P-Box에 빈자리가 있음은 당연히 물류비 낭비”라며 “박스마다 정량이 다 차있어야 비용 절약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내부오염이 심각한 병들은 세척이 반복돼 이 또한 비용 낭비로 이어진다. 먹다 남은 술 등이 세병조건에 약영향을 미치며, 참기름이나 담뱃재 등이 담겼던 병은 ‘악성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 ‘넥링(Neck Ring)’ 잔존 병이 있는데, 이는 소주 뚜껑과 병목이 맞닿는 자리에 이물질이 남은 병을 의미한다. 넥링은 자동화 공정을 통해 제거가 불가능하기에 수작업이 필요하다. 애초에 빈병 재활용의 목적이 원가절감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물류 및 공정에 있어 비효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관리의 핵심을 차지하는 빈병 역물류

 

빈병 재활용은 환경파괴 방지라는 인류의 거대한 사명 외에도 공급망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인 ‘가격’을 결정짓는다. 제조원가를 절감시키는 효과는 물론이며, 물류‧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아무리 절약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비용, ‘보증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음료 공급망에 있어 보증금제도의 실질적 혜택은 소비자들이 가져간다는 것이 환경부 측의 설명이다. 보증금 인상을 통해 빈병 재활용 횟수가 늘어날수록 제조원가 절감 효과는 증폭되고, 이는 곧 음료 가격 인하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통해 실제 주류 등 음료 가격이 하락할지는 미지수다. 제조원가 하락이 반드시 최종 가격 인하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 빈병 역물류가 보다 활성화되어 지역별 특색을 가진 소주나 크래프트 맥주 등 특수 빈병의 수거까지 가능해진다면, 이는 소규모 양조업체의 제조원가 하락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곧 소비자 입장에서 보다 다양한 종류의 주류를 차별화된 가격으로 만나볼 기회가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올해 빈용기 보증금 인상 제도 재검토를 앞둔 지금, 꾸준한 제도 정비와 함께 역물류 3PL 등 빈병 수거 관련 인프라가 확보된다면 자원절약과 함께 새로운 산업 활성화까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승윤 기자


'물류'라는 연결고리 / 제보 : ssym232@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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