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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리베이트 규제, ‘만드는 자’, ‘나르는 자’, ‘파는 자’들의 동상이몽

by 신승윤 기자

2019년 12월 03일

주류 거래 질서 확립 고시, 리베이트 쌍벌제 앞둔 주류시장

리베이트 이전과 이후, 만드는 자‧나르는 자‧파는 자의 관계

주류 시장의 동상이몽, 소비자가 받을 영향은?

 

글. 신승윤 기자

 

지난 5월 국세청이 입법예고한 ‘주류 거래질서 확립 고시’ 개정안에는 주류 리베이트, 일종의 판매 지원금에 대한 부분이 명시돼 있다. 소주와 맥주의 경우 기존처럼 리베이트 자체가 금지되며, 위스키의 경우 제조·수입업자는 도매업자별 위스키 공급가액의 1%, 유흥음식업자별 공급가액의 3% 한도에서 금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도가 정해졌다. 그 가운데 이번 개정안은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주류 제조‧수입업자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도‧소매업자도 함께 처벌한다는 ‘쌍벌제’를 포함하고 있어 큰 이슈를 가져왔다.

 

주류 리베이트?

 

7월부터 시행 예정이었다가 미뤄진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주류 리베이트란 도‧소매업체가 주류를 구매할 시 일정량의 금액을 되돌려 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주점에서 1짝*의 맥주를 도매가 3만 원에 구매한다고 했을 때, 2000원을 리베이트로 되돌려 받는 구조다. 더불어 한 번에 많은 양의 주류를 구매할수록 리베이트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는데, 50짝을 구매할 경우 리베이트 금액은 짝 당 4000원으로 뛴다. 즉 구매력이 클수록 더 많은 금액을 리베이트 받을 수 있다.

* 병 주류 전용 플라스틱 박스를 짝이라고 칭한다. 소주 1짝은 30병, 맥주 1짝은 20병이 들어있다.

 

▲ 총 30병으로 이뤄진 소주 1짝. 짝당 리베이트 금액이 책정된다.

 

주류 리베이트는 주류 제조업체로부터 시작한다. 도매업체들은 제조업체로부터 한 번에 많은 량의 주류를 구매하며 리베이트 혜택을 받는다. 소매업체들, 주점이나 식당에서는 기본적으로 도매업체로부터 리베이트 혜택을 받지만, 해당 매장이 얼마나 주류 구매력이 있는지에 따라 제조업체와 도매업체 모두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다. 목 좋은 곳, 예를 들어 통행량이 많은 사거리 1층에 위치해 손님이 끊이지 않거나, 어디서나 눈에 잘 띄는 매장이라면 제조업체와 도매업체 모두의 영업 대상이 된다.

 

쌍벌제 이전 그들의 관계

 

사실 주류 리베이트는 이전부터 금지 대상이었다. 다만 오랜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일정부문 허용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일방적으로 리베이트 제공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과 차이가 있다. 쌍벌제가 시행되면 리베이트를 제공받는 도‧소매업체까지 모두 처벌받는다. 때문에 이번 개정안에 따라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이들은 제공자이면서 수혜자였던 도매업체 보다 소매업체들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자영업자들과 프랜차이즈 등에서는 쌍벌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단, 주류 제조업체와 도매업체의 영업 방식은 리베이트 제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금전 혜택 외에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데, 예를 들어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제조업체의 경우 각종 현수막, 메뉴판, 전단지 등을 제공하며, 도매업체의 경우 주류 냉장고, 생맥주 설비 등을 무료로 임대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소모품, 내구소비재 제공 금지 조항은 초기 개정안에 포함됐다가 이후 수정안에서 모두 폐지돼 여전히 유효한 영업 방식이다.

 

소비자들은 잘 알 수 없었던, 주류 물류‧유통 과정에서의 치열한 영업전쟁은 향후 과연 어떤 국면으로 흘러가게 될까. ‘만드는 자’인 제조업체, ‘나르는 자’인 도매업체, ‘파는 자’인 소매업체 각각 당사자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드는 자, ‘점유율 뒤집기 위한 대책 필요’

 

제조업체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주류 영업을 진행한다. 그 대상은 도‧소매업체 모두다. 도매업체의 경우 실제 소매업체에게 주류를 납품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며, 소매업체의 경우 고객들과 대면해 해당 주류를 판매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매업체의 선택에 따라 특정 주류를 선택해 판매할 수 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소매업체가 해당 주류를 판매하고 싶어도 거래 중인 도매업체가 이를 보유하지 않았다면 납품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제조업체는 도‧소매업체 모두를 대상으로 영업이 필요한 것이다.

 

주류 제조업체 관계자는 “사내에는 도매업체 대상, 그리고 소매업체 대상 영업팀이 각각 존재한다”며 “이들은 서로 다른 전략을 가지고 영업을 진행하는데, 그 중 핵심은 역시 금전적 리베이트이며,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업체들을 상대한다. 도매업체의 경우 관계유지 및 개선을 중심으로 잦은 만남과 회식 등이 중심이 되고, 소매업체의 경우 매장 운영과 관련해 도움을 주는 형태의 영업이 주가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모 주류 제조업체에서 소매업체 대상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식당이나 주점 내 존재하는 대부분의 집기는 제조업체가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며 “리베이트는 기본이고, 식당 내 달력, 현수막, 메뉴판, 수저, 술잔, 병따개, 앞치마, 심지어 테이블이나 의자까지 제조업체가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집기에 특정 주류 이름이나 광고가 포함돼 있다면 무조건 제조업체가 제공한 것이 맞다. 리베이트와 관련해 갑질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제조업체 영업사원들이 받는 주된 스트레스 중 하나가 이런 집기와 관련된 것이다. 새벽에도 현수막 만들어 와라, 메뉴판 바꿔 달라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흔히 볼 수 있는 식당 앞 배너와 현수막. 특정 주류 광고가 포함돼 있다면 대부분 주류 제조업체에서 제작대행한 것이다.

 

▲ 주점 내 소주잔, 앞치마 등 집기에 특정 주류 광고가 포함돼 있다면 이 또한 주류 제조업체에서 제작대행한 것이다.

 

제조업체들이 서로간의 출혈을 감안하고서라도 영업에 힘쓰는 이유는 판매 경쟁, 즉 점유율 싸움 때문이다. 주류시장 특성상, 특히 소주와 맥주의 경우 소비자들이 익숙한 제품을 습관적으로 주문하기 때문에 한번 형성된 소비자들의 기호를 뒤집기란 쉽지 않다. 그 가운데 제품 판매 점유율이 제조업체 간 경쟁의 척도가 되며, 영업사원들은 이를 어떻게든 유지 또는 역전하기 위해 각종 영업에 힘쓰는 것이다.

 

또 다른 주류 제조업체 관계자는 “리베이트가 쌍벌제를 통해 업계에서 사라질 경우 제조업체 입장에서도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주요 영업 수단이 사라지면서 점유율 경쟁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요즘은 금전적 보상 외에 다른 수단을 강화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수단 중 대표적인 것에는 회식 지원, 간식 지원 등이 있다. 제조업체에서 해당 소매업체 명의로 식당이나 마트, 빵집에 일정 금액 선 결제를 마쳐놓으면, 소매업체에서 이를 회식이나 간식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모 제조업체 영업팀에서는 사원들을 소매업체 매장 청소에 투입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나르는 자, ‘음지에서 양지로, 쌍벌제 환영’

 

도매업체는 주류 리베이트의 혜택을 받으면서, 또 혜택을 제공해야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 가운데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는 “국세청 고시 개정안은 그동안 수많은 문제점을 양산해 온 리베이트 관련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류제조업체는 물론 도매업계의 유통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쌍벌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리베이트를 받지도, 주지도 않으면 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쟁점이 되는 것이 바로 ‘주류 대출’ 허용 여부다. 주류 대여금이라 불리기도 하는 주류 대출이란 소매업체들이 창업하며 부족한 자금을 도매업체로부터 빌리는 대신, 계약기간 동안 해당 도매업체로부터만 주류 납품을 받아야 하는 일종의 금융 서비스다. 국세청은 개정안 초기 이 주류 대출 또한 금지될 예정이었으나, 수정안을 통해 주류 리베이트에서 주류 대출 항목은 제외했다.

 

모 주류 도매업체 관계자는 “주류 대출은 주로 도매업체가 소매업체를 제2금융권이나 제조업체 등과 연결해 제공하는 서비스”라며 “이를 통해 도매업체는 꾸준한 납품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지만, 이를 현장에서 담당하는 영업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채권을 일일이 관리하는 과정에서 담당 소매업체들과 갈등을 빚는 등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분위기다. 만약 주류 대출이 금지됐다면 곤란한 것은 창업을 준비 중이었던 자영업자나 프랜차이즈업자들이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파는 자, ‘관행 무시한 독단적 결정’

 

소매업체들은 이번 개정안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비록 소모품 제공이나 주류 대출 등은 이후 수정안을 통해 허가되었다고 하더라도, 리베이트 자체는 주류 업계의 오랜 관행이자 영세 자영업자들의 매장 운영 및 유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인건비와 임대료는 나날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당사자들 간 이해관계 속에서 제공받던 혜택까지 금지된다면 향후 자영업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경남지회가 부산지방국세청 앞에서 진행한 주류 리베이트 반대 집회(출처: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대학가에 위치한 모 주점 운영자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을 것”이라며 “자영업자들만큼 술값에 예민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영업 이익을 위해 향후 주류 가격을 쉽게 낮추지 못할 것이며, 그렇다고 주변 상인들의 술값 인하에 무덤덤할 수도 없다. 그 가운데 대학가에 위치한 주점들이 학생들에게 비교적 저렴하게 주류를 판매할 수 있는 것은 리베이트 덕분이다. 제조업체들의 치열한 대학가 제품 경쟁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혜택을 받고, 이를 학생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또 다른 주점 운영자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3+1 행사’ 등 각종 이벤트 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식당이나 주점에서 행해지는 주류 이벤트는 대부분 제조업체나 도매업체의 지원을 통해 진행된다. 점주 스스로 그런 이벤트를 운영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헌데 주류 리베이트가 다방면으로 금지된다면 해당 이벤트들도 위축되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 주점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각종 이벤트

 

한편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주류 리베이트 규제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이 있었다. 모 식당 운영자는 “주류 리베이트는 자영업자 전체를 위한 혜택이 아닌 가진 자들을 더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악습”이라며 “목 좋은 곳에서 많은 매출을 발생시키는 매장의 경우 제조업체나 도매업체에서 알아서 찾아와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반면 통행량이 적은 건물 2층, 3층에 위치한 식당들은 자연스레 소외된다. 금전적 리베이트를 받지 못하거나 확연히 그 액수가 적음은 물론, 각종 집기 등 모든 부분을 대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 리베이트 혜택은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니 공정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류 시장의 동상이몽, 소비자가 받을 영향은?

 

최근 ‘임페리얼’, ‘골든블루’ 등 위스키 출고가가 속속들이 인하되고 있다. 이는 경기침체와 김영란법 시행 등의 영향도 존재하나, 시행을 앞둔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조업체가 출고가 자체를 인하해 도‧소매업체의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단 이 같은 가격 인하가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가져올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모 주류 제조업체 관계자는 “위스키를 포함해 소주, 맥주의 출고가가 낮아진다고 해도 시중에 형성된 주류 시세가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리베이트 규제로 인해 생긴 손실을 메우는데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결국 물류‧유통단계에서의 음성적 리베이트 체계를 규제한다고 해도 당장에 소비자들이 받을 혜택은 미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3+1 행사’, ‘4캔 만원’ 등 주류 영업의 영역에 포함된 모든 이벤트 혜택이 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소비자들은 이번 주류 리베이트 규제 개정안을 통해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주류시장 내 음성적 관행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국세청의 결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개인에 달린 상황이다.



신승윤 기자


'물류'라는 연결고리 / 제보 : ssym232@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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