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설창민의 벼랑끝 SCM] 무한루프 속 '수요예측'의 의미를 찾아서

by 설창민

2019년 02월 17일

무한루프 속 수요예측의 의미를 찾아서, “우린 예측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수요예측에 관한 고정관념 3가지, "원래 안 맞으니 대충해?"

Benefit 아닌 Discipline, '생존' 아닌 '발전'을 위하여

 

글. 설창민 SCM 칼럼리스트

 

 

 

Idea in Brief

SCM은 숨겨진 비용, 즉 ‘히든 코스트(Hidden Cost)’를 절감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때문에 혹자들은 SCM을 쓸데없는 활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그 쓸데없는 활동으로 히든 코스트를 절감하는 것이 오늘날 기업경영에서 경쟁자와의 차별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글로벌 기업들도 SCM은 늘 서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글로벌 기업들도 잘 못하는 게 SCM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SCM 혁신은 누구에게나 늦지 않았다.

 

 

수요예측? 대충 해!

 

지금까지 열심히 SCM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경영진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지만, 수요예측 얘기는 꺼내기 참 망설여진다. 아래와 같은 고정관념이 뿌리 깊이 박혀 있어 수요예측을 대충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① 수요예측은 늘 틀려서 못 써먹는다

당연하다. 예측인데 실제 결과와 맞을 수가 없다. 특히 요즘처럼 수요자 중심의 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기 어려워서 더욱 더 예측이 안 맞는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수요예측은 정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틀리면 신속하게 대처하고 ‘틀려도 잘 틀리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요예측을 정확하게 하려고 하면 영업부서는 매출 올리기도 급한데, 스트레스 받고, 공장은 수요예측 틀려서 일 못해먹겠다고 여기저기서 채찍을 휘두른다.

 

② 수요예측 할 시간이 없다

영업부서는 모두 상황이 비슷하다. 인력의 이동이 심하니 수요예측 제대로 하라고 가르쳐 놓으면 그만둬 버린다. 사무실에 돌아와야 수요예측을 하는데 외근이 많으니 할 시간이 없다. 무리한 목표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곧이곧대로 수요예측을 하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만들면 팔리던' 고도 성장기를 이제 막 떠나보냈다. 최고경영자가 신화적인 영업 활동을 통해 일으킨 사업들이 많아서(예를 들어 바이어와 새벽까지 대작하고 택시 태워 보낸 다음 자신은 곧바로 사무실에 출근했다는 그런 무용담들) 기업 활동의 모든 초점을 영업에 맞추다 보니 수요예측을 영업부서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문제다.

 

③ 수요예측 해 봤자 공장에서 제 때 안 준다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수요예측을 했으면 한 만큼 공장에서는 공급을 해 줘야 하는데 공장에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 때 공급을 못 해준다. 가끔은 영업부서에서 대충 한 수요예측으로 인해 공장에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영업부서는 영업부서대로 대충 수요예측하고, 공장은 공장대로 이를 갈면서 공급한다. 회사에 막장 드라마 찍으러 출근하는 사람들 같다. 공급 못 하는 것을 온전한 공장의 책임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수요예측은 제대로 해야 한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면전에서 수요예측을 잘 관리하라고 말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동의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완전히 무시한다. 수요예측을 대충 해도 팔 물건은 공장이 다 챙겨주는 경향이 있는 데다(이를 갈면서), 과소예측해 놓고 없어서 못 파는 게 어찌 보면 과다예측해서 목표도 달성 못 하고 재고가 쌓이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결품이 나면 기회를 놓칠 뿐 그걸로 끝인데, 재고가 쌓이면 창고 임대료 등 눈에 보이는 비용만 자꾸 늘어난다. 오히려 결품이 나면 우리 회사 물건이 인기가 있다는 신호로 생각하는 독특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도 많다.

 

물론 내가 어려울 때 거래선에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어렵다는 치명적 단점은 있지만, 영업 지상주의 경영을 하는 회사는 그런 걱정 따위는 안 한다. 접대 몇 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마지막으로, 수요예측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과다예측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약간 줄어들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하나의 매트릭스로 만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 수요예측 행위의 강도와 결과 매트릭스

 

수요예측을 대충 하고 과소예측이 나오면 가장 힘 안 들이고 높은 편익을 달성하는 것이므로 일반적 실천이성을 가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저축, 소비, 대출, 공급 등 경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돈과 밀접한 우리 현대인을 일컫는 말)’라면 수요예측은 대충 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대충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보자. 대충 과다예측함으로써 쌓인 재고와 열심히 과다예측해서 쌓인 재고에 의한 회사의 피해. 어느 쪽이 더 심각할까? 대충 과소예측함으로써 놓치는 판매 기회와 열심히 과소예측해서 놓친 판매기회. 어느 쪽이 더 클까?

 

필자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과다예측의 피해도 덜하고, 과소예측으로 인한 판매기회 상실도 적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수요예측이 항상 더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수요예측을 정확하게 하려고 하는 그 자세 자체가 틀렸다. 수요예측은 당연히 틀린다. 문제는 두 가지다. 틀렸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잘 틀릴 것인가? 잘 틀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한다. 이번 회에는 대처하는 자세부터 설명해 보기로 한다.

 

틀린 수요예측에 대처하는 자세

 

모든 기업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수요예측을 하는 주체에게 틀리면 틀린 대로 다시 수요예측을 수정하라고 주문하는 자세.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자기 힘으로 높은 담을 뛰어넘으라고 가르치는 군사훈련과도 같다. 다른 하나는 수요예측이 틀리면 어떻게든 공장에서 맞춰 주는 자세. 한마디로 군사훈련 중 자기 힘으로 높은 담을 뛰어넘지 못하니 담 위로 올라가 밧줄 내려주는 자세다. MBC 예능 ‘진짜 사나이’를 본 독자들은 금방 이해될 것이다. 수요예측을 열심히 하는 곳은 전자에 속한다.

 

제조업과 유통업에서 공급망 하류에는 고객이, 상류에는 공급업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앞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가공하고, 내가 가공한 정보는 내 뒤에서 받아 또 가공한다. 업종 불문 다 똑같다. 재고가 완제품 또는 반제품, 어떤 상태일 때 주문을 받을지만 달라질 뿐이다. 흔히 디커플링 포인트라고 부른다. CPIM(Certification Production and Inventory Management) 공부할 때 배운 MTS(Make to Stock. 예측생산해서 완제품 재고를 쌓아 놓고 주문을 받음), ATO(Assemble to Order. 반조립 상태에서 주문을 받은 뒤 완제품을 조립). 이런 차이 정도다.

 

따라서 수요예측은 생산계획과 구매계획을 만드는 것은 물론 수주 주문을 입수하며, 심지어 운송차량과 물류센터 인력을 수배할 때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진짜 공급망 관리를 잘 하는 기업은 아예 이 수요예측을 가지고 회사의 미래 매출과 수익성을 판단하고 자금 확보 계획을 세운다. 요컨대 공급망 관리를 잘 하는 기업일수록 매 주기마다 하는 수요예측 데이터 하나를 가지고 여러 부서가 돌려쓴다.

 

열심히 수요예측을 하는 기업에서는 여러 부서가 하나의 수요예측 정보를 같이 쓰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인지하는 순간 수요예측부터 신속하게 수정한다. 그리고 그 수요예측에 따라 생산계획과 구매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수주 주문을 입수하며, 운송차량과 물류센터 인력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한다. 많이 들어온 PDCA(Plan – Do – Check – Action)의 반복이다. 고객이 물건을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그 짓을 하냐고? 자칫하면 재고가 남게 생겼는데 언제 그 짓을 하냐고? 필자가 위에서 말한 계획의 순서는 공급망의 하류(고객)에서 상류(공급업체)로 올라가는 순방향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방향대로 해야 점검하는 업무가 무리를 주지 않는다. 수요예측은 당연히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신속하게 잘 대응할 것인지 골몰하는 것이다.

▲ 엄격한 수요예측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기업 도해

 

이렇게 해도 과다예측 또는 과소예측은 발생한다. 아무리 점검을 잘 해도 결론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면 그걸로 끝이다. 물건을 못 받는 고객의 불만이 눈에 보인다. 공장은 이미 고정된 생산라인과 물류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어 바로 늘리거나 줄일 수도 없다. 이럴 때는 신속하게 공장을 교대근무제로 돌리거나 안전재고를 설정하거나, 이것도 안 되면 할당에 들어간다. 할당에 명확한 기준만 있으면 가장 불만 많은 고객부터 대응해 줌으로써 고객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가장 불만 많은 고객의 매출과 이익 기여도는 낮다고? 그건 당신 회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잘못된 것이므로 할당을 탓하면 안 된다. 그래도 그 정도면 선방이다. 이렇게 신속하게 변화를 인지하면, 공급망의 하류에 있는 물류에도 차량이나 인력 증감에 대한 신호를 줄 수 있고, 물류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증차나 감차를 하고 인력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쓸데없이 급행요금을 내거나 ‘Capacity’가 남아도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대충 수요예측을 하는 기업은 어떨까? 모든 부서가 수요예측 정보를 믿지 않기 때문에 각 부서는 수요예측을 보완하는 별도의 자료, 예를 들어서 유사시를 대비한 여유를 둔 생산계획이나 구매계획을 들고 있어야 한다. 벌써부터 채찍을 마구마구 휘두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자기 부서만 보려고 만든 자료이며, 수요예측이 빗나가는 특별한 순간에 공유하다 보니 혼란만 커진다. 또한 수요예측 정보는 바뀐 게 없으니 생산계획도 안 바뀌고, 구매계획도 안 바뀐 상태에서 뭔가 ‘비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점검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서마다 자기만의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 그 여유를 지키고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되므로 서로 협조를 덜 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안 해주려 한다. 공장에서는 라인 증설을 하거나 인력을 더 투입하면 해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자기의 비용이므로 안 해주려 하게 된다. 물류부서에서는 긴급 배송을 하면 해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물류비 증가로 나타나므로 안 해주려 하게 된다. 그러면 영업부서는 가만히 있을까? 당연히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관철시킨다. 오늘도 막장 드라마 한 편을 완성하고 퇴근한다. 지금 이 순간 잡플래닛이나 라이브도어 등 직장 리뷰 앱을 확인해 보면 ‘체계가 없는 회사’라는 이유로 낮은 평점을 받은 기업들이 있는데 아마 이들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대부분 이런 일일 것이다. 그림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대충 수요예측을 하는 기업 도해

 

그래서 앞서 소개한 그림 1의 매트릭스는 다시 그려야 할 것 같다. 결과는 아까와 똑같지만, 대신 수요예측을 대충 했을 때의 과다예측의 결과는 매트릭스로 담담하게 표현하기는 사뭇 심각하다. 아래와 같이 그리면 좀 더 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발 부탁인데 막장 드라마는 회사에서 찍지 말고 집에서 정주행하시기 바란다.

▲ 수요예측 행위의 강도와 결과 매트릭스 (현실)

 

수요예측은 솔직히 대충 해도 사는 데 지장은 별로 없지만, 바로 이게 무서운 거다. 요즘 같은 수요자 중심의 시장에서는 수요예측이 변동할 가능성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는데 그런 상황에서 수요예측을 대충 하면 신속하게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자기 자식 공부 대충 시켜놓고 SAT 만점 받고 아이비리그로 유학가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다. 분명 수요예측이라는,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부서는 영업부서 하나일 뿐인데 그거 하나가 공급망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크다. 회사 전체가 수요자 중심의 시장에 대응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구성원들이 이 악물고 일하는 회사를 만드는 셈이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고착된 영업 지상주의 경영의 폐해다.

 

Benefit이냐 Discipline이냐

 

필자는 과거 기고를 통해 프로세스 혁신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그 프로세스 혁신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공급망 관리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한 프로세스 혁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Benefit’이다. 리엔지니어링 시대에는 프로세스 혁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Benefit이었다. 이걸 하면 뭐가 좋아지느냐 이 말이다. 리엔지니어링 시대처럼 온 동네에 낭비가 철철 넘쳐흐르던 시절에는 조금만 혁신하면 수십억 원 절감은 일도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Discipline’이다. 해야 하는데 안 하던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리엔지니어링 시대처럼 엄청난 비용 절감과 효율을 기대할 수 없는 요즘, 과연 프로세스 혁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곱씹어 볼 때마다 필자의 머릿속을 떠도는 것은 바로 규율을 만들고 그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프로세스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모든 프로세스 혁신이 여기에 해당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요예측처럼 해야 하는데 안 하는 일, 안 하면 온 회사가 전부 다 비효율을 감수해야 하는 그런 일을 하도록 하는데 여기에 ‘이거 하면 좋아진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거꾸로 생각하면 영업 지상주의 경영도 하나의 Discipline이다. 우리는 왜 지금까지 영업 지상주의 경영에 아무런 시비도 걸지 않았을까? 영업 지상주의 경영을 당연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시대에 따라 그 ‘당연한 것’은 당연히 바뀐다.

 

SCM 교과서에서는 “수요예측을 잘 하면 재고가 줄고, 고객은 만족하고…” 뭐 이런 주장을 하지만 진짜 SCM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 수요예측을 잘 하면 저런 효과들이 늘 팍팍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안 하면 '헬게이트(Hell Gate)'가 열린다는 것을. 그래서 수요예측을 잘 하는 것은 Benefit 측면이 아니라 Discipline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맞다. ‘이걸 하면 좋아진다’가 아니라 ‘원래 해야 하는 일인데 안 해왔다’는 접근이 더 낫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원래 해야 하는 일인데 안 해온’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임시정부 100년을 맞아 역사를 되돌아보는 김에 기업에서도 원래 했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던 수요예측 관리와 같은 일들을 이제는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번 기고문에서는 이것만 기억하자.

Discipline으로서의 수요예측 관리는 안 해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회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설창민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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