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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에서 그려보는 한반도의 미래

by 송영조 기자

2018년 09월 13일

독일과 다른 한반도의 분단, '북핵 문제'와 '경제 격차'가 문제

경제협력 재개하고 관광산업 활성화해 지속적 교류 늘려야

글. 송영조 기자

 

Idea in Brief

 

1990년 10월 3일, 서독과 동독은 통일했다. 1949년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지고 40여 년의 분단 시기를 보낸 뒤였다. 베를린장벽은 시민들의 손에 무너졌고, 지구촌 주민들은 독일의 화합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이 낳은 비극은 그렇게 끝났다. 어느덧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2018년 오늘, 지구상 몇 없는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 평화가 오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보인다. 1990년 독일과 2018년 한반도의 상황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독일과 한반도의 통일여건 상 차이점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장을 역임한 염돈재 박사는 1990년 8월, 독일이 통일하기 직전부터 3년 동안 주독일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했다. 그는 본인의 저서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평화문제연구소 출판)에서 독일과 한반도의 통일여건 상 차이점으로 열한 가지 쟁점을 꼽았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염돈재 박사가 본 독일과 한반도의 통일여건 상 차이점

(저서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에서 발췌)

 

①독일의 통일을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전승 4대국의 동의가 필요했다

②통일국가로서의 역사와 연륜이 다르다

③동·서독은 통일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④상호간의 적대감 수준이 다르다

⑤분단의 수준이 다르다

⑥동독 주민은 민주주의의 경험이 있었다

⑦동독 주민은 서독 방송과 텔레비전의 수신이 가능했다

⑧동독과 북한은 주민 통제 수준이 매우 다르다

⑨동독과 북한은 집권층의 체제수호 의지가 다르다

⑩동독에는 소련이라는 종주국이 있었으나 북한에는 종주국이 없다

⑪동독에서는 대규모 시위나 탈출이 가능했다

 

염 박사의 저서에 따르면 서독과 동독은 통일 전부터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서로 전화 통화가 가능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상호 TV와 방송 청취가 가능해 동독에서도 서독의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다. 편지는 물론 친척이 있는 경우 서로 왕래까지 가능했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는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경우 남북한이 상호 불신이 높고, 지난 20여 년간 추진되어 온 인적, 물적 교류도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체제통합을 위해서는 독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염 박사의 설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서독은 양측 간 전쟁의 역사가 없어서 서로를 향한 적대감이 수십 년 비극의 역사가 있는 한반도와는 그 수준이 달랐다. 또한 동독 주민들은 공산 독재체제 아래에 있었으나 북한과 비교하면 과거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있어 시민의식이 훨씬 높았다고 염 박사는 말한다. 동독 주민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국가들이 갖고 있던 자유주의의 정신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선진적 민주제도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 주민들은 민주주의 경험과 민권의식이 없고, 철저한 세뇌교육과 주민 통제로 인해 민주화 열망 자체가 낮은 편이라고 염 교수는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분단 경험을 공유했다는 것 이외에 독일과 한반도의 정치적 환경에는 많은 부분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독일에는 없던 한반도만의 숙제, '북핵 문제'

 

한반도에는 독일이 겪지 않았으나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북핵 문제다. 학계에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경협이 우선시되어야 하지만, 북핵 문제가 선결되기 전까지는 제한적인 수준의 교류만 있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투자는 북한의 비핵화 속도와 매칭될 수밖에 없다”면서 “남북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북한의 철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여기에 최소 20조 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이상 진행되었다는 한미 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한 평화, 핵 있는 평화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독일은 이러한 정치적 리스크를 떠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류 및 경제협력에 있어서 부담이 덜했던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남 교수는 독일과 한반도 상황의 차이점을 언급하면서도 “평소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하고자 했던 서독의 동방정책만큼은 우리가 생각해볼만 하다”면서 “핵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 개선이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말처럼, 남한에서 출발한 기차는 유럽으로 달릴 수 있을까?

 

한반도가 극복해야 할 ‘경제력’이라는 장벽

 

1990년 동·서독과 2018년 남북한은 경제력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어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남 교수는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은 세계 3위권의 경제 대국이었고, 동독은 서독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세계 3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면서 독일의 ‘1:1 화폐교환’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동독과 서독의 경제 생산성은 4배나 차이를 보였지만 일대일 비율로 화폐를 통합했다”면서 “실제로는 서독의 0.25마르크가 동독의 1마르크가 되어야 했지만, 서독은 기꺼이 희생을 감내했다”고 말했다.

 

1:1 화폐교환 정책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동독 경제를 서독이 보전해주는 역할을 했고, 동독 경제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이 정책은 독일이 통일 후유증을 겪은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양측 간 경제력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묘책이었다는 목소리도 있다. 남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독일이 버틸 수 있던 것은 서독이 경제 대국이었기 때문”이라며 남한이 과연 북한의 경제를 떠안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한반도는 남북 경제력 차이를 고려한 교류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김현수 교수 또한 서독이 주도하는 통일독일정부가 동독을 접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독일 통일 모델은 한반도에서는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서독 인구가 동독의 4배였지만 소득 격차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남북은 소득이 약 30배나 차이가 나는데 북한의 인구는 남한 인구의 절반이나 된다”면서 “이렇게 국경을 맞대고 분단한 사례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통일이 되면 결국 남북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고도화와 관광산업 재개

 

그렇다면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장기간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개성공단에서 답을 찾는 목소리가 있다. 김현수 교수는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하고, 궁극적으로는 개성공단의 산업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임가공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용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임가공업 형태의 공장은 아무리 많이 지어도 실물경제에 긍정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남·북 모두에게 미미한 수준일 것”이라며 "개성공단이 남과 북이 서로 가까워지는데 매우 큰 정치적 역할을 하지만, 냉정하게 경제적 측면만 봤을 때는 저렴한 인건비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임가공형태의 입주기업만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교수는 따라서 개성공단의 산업을 고도화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유수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지 않고 있는 지금은 남측 전략물자의 북한 반입이 불가능하고, 첨단 경제특구를 북측에 조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대북제재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상 가능하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북한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었고, 해킹 기술 수준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개성에 있는 성균관대 공과대학에서 남북경협사업에서 활약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5만 4천여 명의 노동자가 교통편이 열악해 하루 두세 시간을 통근하는 데 썼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개성공단에 연구개발 시설을 유치하고 인근 유수 대학의 인재를 영입하면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 청년들에게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입주기업의 피해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만큼, 김현수 교수는 남측에 경제협력지구를 조성하는 것을 정치적 리스크의 극복 대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는 “남측 기업은 개성공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공장이 언제 닫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설비 투자를 하거나 물자를 반입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면서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는 입지의 장점을 활용하면서도 설비 투자에 대한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측에 경제특구를 조성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안심하고 노동자들을 남측으로 파견할 수 있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는 중국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구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지린성의 투먼과 맞대고 있다”면서 “이곳에는 중국과 연결되는 교량이 있는데, 천여 명의 노동자가 한 시간 거리로 출퇴근을 해 중국 측에 노동력을 제공한다”며 중국이 북중 접경지역과 가까운 곳에 경제 협력단지를 조성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우리도 북한과 가까우면서도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곳에 경제특구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김 교수는 북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노동자를 관리하기 쉬운 강화도와 같은 섬을 후보지로 꼽았다. 북한 노동자들이 돌발행동을 하거나 적법 절차 없이 망명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편, 대북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남 교수는 “개성공단 재개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지만, 다음으로는 대북 관광산업 활성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남북은 과거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함께한 경험이 있고, 관광산업에는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도 되는 만큼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식량 지원,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대규모 지원은 후 순위로 미루고, 성공모델이었던 과거 남북협력 사례를 복원하는 게 급선무”라고 밝혔다.

임진각에는 북한의 돈과 북한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었다. 굳게 내려진 셔터로 남북관계의 현재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정책

 

김현수 교수는 또한 서울과 평양의 도시협력이 실현 가능한 한반도의 경제협력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위생 및 안전문제를 진단해주고, 평양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상하수도 개보수, 주택, 보건 및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도시 관리 계획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서울과 평양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면 남북 주민들의 정서적 거리감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과거 급격한 경제화로 인해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택, 광역화, 환경문제 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서 “우리 도시정책의 노하우를 평양에 적용하면 남북 간 경제협력에도 도움이 될 뿐더러 북한의 자생력을 키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교수는 남한과 북한이 경제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신(新) 경제수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가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일 큰 비전은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일제 강점기에는 학생들이 철도를 이용해 북경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으로 인해 대륙과 고립된 ‘섬나라’ 대한민국이 유럽과 연결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고, 그 경제적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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