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 조직 구성에 대한 고민, 어떻게 해결할까
네 가지 사례로 살펴보는 바람직한 SCM 조직 만들기
벼랑끝 공급망, 전장(戰場)의 SCM⑤
<전체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의 묵시록>
글. 설창민 SCM칼럼니스트
Idea in Brief
SCM부서는 무슨 일을 할까. 공급부터 판매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다룬다고 하니 무언가 거창하다. 단순히 물류만 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기업 전략기획 담당자가 다뤄야 할 업무에 가까운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까. 슬프게도, 물류만 하거나 그것과 연결된 일부만 다루는 SCM부서는 꽤나 많다. 그리고 그런 조직은 공급망 운영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급망 혁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SCM을 잘 하기 위해서는, 특히나 이를 몸으로 체감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더 나은 공급망을 만들기 위해선, 사실 조직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이 SCM 실무자가 아닌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SCM의 개념이 태동하고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SCM은 다른 어떤 경영이론과 마찬가지로 컨설턴트나 고위 경영진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러나 SCM을 실행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 각 부서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SCM을 실행해 온 사람들의 관점에서 SCM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문득 그런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정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번민해 온 사람, 부서간 대립으로 서로 욕하고 욕먹는 상황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SCM이 절실하게 필요로 한 ‘실무자’들을 위해 이번 연재가 ‘안내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필자주)
SCM(Supply Chain Management) 부서는 무슨 일을 할까. 물류를 할까? 수요예측을 할까? 조달이나 구매를 할까? 이 모든 일들을 다 하고 있을까. SCM이라는 용어가 확산되면서 기업내 SCM 담당 조직을 만드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조직들이 하는 일들은 기업마다 각각 다르다. 지난 기고를 통해 SCM의 시작점인 ‘진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SCM을 잘 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직의 모습을 살펴본다.
뻔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공급망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SCM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들이 있다. ‘하나의 목표’, ‘사업계획’, ‘수요예측’, ‘업무규칙’, ‘BM의 이해’, ‘프로세스 설계’, ‘조직 구성’이 그것이다. 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 표에서 언급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볍게 다뤄지는 것이 있다. 7번째로 언급한 '조직 구성'이다. 판에 박힌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하고 싶냐 묻고 싶은 분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거 맞다.
컨설턴트는 조언을 하고, 경영진은 의사결정을 한다. 때문에 컨설턴트는 프로세스를, 경영진은 사업계획 수립과 그 실천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공급망 혁신과 운영을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에게는 조직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 조직 구성이란 이런거다. 먼저 조직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조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이 조직이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이 조직은 특정 관리지표로 누구를 평가할 수 있는지, 또 특정 관리지표로 누구로부터 평가 받는지 구분하는 것이다. 조직 구성이 사실 모든 공급망관리의 성공 실마리다.
필자의 주변인 중 SCM 혁신서를 저술한 분이 한 명 있다. 그 분은 최고경영진을 거치면서도 조직 구성에 집중했다. 그가 최고경영진으로 있었던 기업들은 어김없이 주가가 올랐다. 재고가 줄었고, 나름대로 공급망관리를 체질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직 구성이 중요한 이유? 증거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 분'이 최고경영진을 맡고 있을 당시(4기부터 6기) 기업의 재고회전율 및 영업이익률 추이
공급망관리 조직의 업무와 평가
기업이 공급망관리를 잘 하는지 살펴보려면 그 기업 공급망관리 조직의 업무와 평가(피평가) 체계를 살펴보면 된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공급망관리 조직은 성과가 좋다. 반면, 전체를 아우를 수 없는 공급망관리 조직은 말만 공급망관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음 사례들은 주변 기업들에서 매우 친숙하게 볼 수 있는 공급망관리 조직 형태를 각색한 것이다. 서술하기 전에 분명히 밝혀 둔다. 다음과 같은 형태의 조직 구조는 운영 관점의 공급망관리를 할 수는 있지만, 혁신은 할 수 없다.
물류만 하고 SCM이라고요?
먼저 A사례. 이 사례에 속한 업종의 SCM 조직의 이름에는 SCM이 달렸지만, 실상 물류업무만 하고 있다. 수요예측, 물량배정 협의와 같은 수급조정 업무는 다른 부서가 한다. 하는 일이 물류면 당연히 경영지원 소속으로 경영관리 전체를 총괄하는 임원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때문에 이 부서에게 무엇인가 요청할 때는 물류업무 합리화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간혹 SCM이라고 어디서 들은 게 있어서 이 부서에 일을 맡겨 버린다면 나오는 결과물들은 물류와 관련된 것들, 그러니까 물류비 절감, 배송 리드타임 절감, 통관 리드타임 단축, 운송 서비스 품질 개선 정도의 결과물을 내올 것이다. 물류 이상의 것을 하려면 다른 부서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하다.
A사례에 속한 업종의 비즈니스 모델은 완제품 수입·판매다. 이때 공급망의 시작은 영업부서의 판매계획이다. 그리고 끝은 물류(만 하는 SCM)부서의 배송이다. 그런데 물류부서와 영업부서는 상위조직이 다르다. 때문에 서로 평가를 하거나 평가 받는 관계가 전혀 없다. SCM부서가 말이 SCM이지 영업부서의 협조를 얻기가 정말 힘들다.
물류에 수요예측이 붙으면
B사례는 A사례의 SCM 업무(물류만)에 ‘수요예측’이 추가됐다. 수요예측 담당자(외국계 기업은 Demand Planner라고도 부른다)는 고객접점의 영업사원들이 만든 수요예측 데이터를 취합하여 기업 전체의 수요예측 데이터를 만들고 품질을 관리한다. 물류와 관련된 업무도 수요예측 담당자가 수립한 계획에 따라 배차 및 물류자원을 확보한다. 때문에 B사례는 수요예측 담당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 형태다.
이쯤에서 알아차렸겠지만, 수요예측 담당자는 영업부서와 물류부서 양쪽에서 싫은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직군이고, 담당자가 자주 바뀐다. 링크드인 등 구직활동을 위한 SNS를 잘 찾아보면 SCM 직군에서 가장 많은 경력자를 찾는 분야가 바로 이 수요예측(Demand Planning)이다.
그래서 조직 차원에서 수요예측 담당자의 육성 내지 유지가 매우 중요하겠지만, 실제 그렇게 실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인가 하니 우선 영업사원들의 수요예측(원본 데이터)이 터무니없는 경우가 꽤 많다. 영업사원들은 외근이 많고 재택근무를 하기도 하기에 수요예측 담당자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도 있다. 그래서 수요예측 담당자가 영업단을 건너뛰고 수요예측을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수요예측 담당자 역시 경영지원 소속으로 경영관리 총괄임원이 평가자가 된다. 때문에 수요예측 정확도 같은 것으로 평가는 받겠다. 하지만 수요예측 정확도를 개선하려면 근본적으로 영업사원을 통제해야 되는데, 그 방법이 없다. “왜 내가 이런 쓸데없는 수요예측이라는 행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씩씩거리며 억지로 수요예측을 하는 영업사원을 마주하는 수요예측 담당자는 날밤 새며 일하다가 못 견디고 그만두고, 새로 온 수요예측 담당자는 또 영업사원에게 휘둘리고, 그러다 또 그만두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물론 기업에 따라서 수요예측 담당자를 마케팅 내지 영업부서에 두는 경우도 있다. 이건 한마디로 “우리 기업의 수요예측은 거시적 시장상황, 거래선 상황, 경쟁사 동향과는 전혀 상관없는 순수 판매목표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 이 경우 A사례보다야 영업부서와 의사소통이 좋을 수 있겠다만, 여전히 한계는 분명하다.
정말 ‘공급망’만 관리하는 경우
C사례의 조직은 앞서 A, B사례와 달리 부품 구매와 조달, 생산을 직접 하고 있다. C사례에 속한 업종은 고가의 생산설비를 운영하는 장치산업, 첨단제품 제조/판매업이 많다. 이 같은 기업은 구매 정책에 따라 원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C사례의 경우 영업사원의 판매역량보다 생산설비 운영이나 사후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 시장 동향을 면밀히 주시해 미리 재고를 확보해 둬야 하는 소비재 산업에서는 영업사원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조직을 갖춘 기업이라면 공장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영업사원이 공장 프로세스에 맞춰줘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SCM조직의 업무범위 또한 생산관리, 물류, 구매를 포괄하며 넓어지는 경우가 있다. SCM조직이 생산 부문만 관장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영업사원이 개방된 시장에 제품을 팔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계약 관계에 따라 원청의 생산계획에 맞춰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의 경우다. 생산이 중요한 원가절감 요소이자 그 기업의 경쟁력인 경우 볼 수 있는 형태다.
이런 형태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공급망 관리’라고 하니 정말 ‘공급단’만 관리하는 형태다. 그렇다고 조직구성이 후지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업종이 수요예측보다는 공급능력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불가피한 조직 구조다.
공급망 일체를 책임진다!
D사례는 C사례와 비슷하지만 하나가 추가된다. 제품이 유행을 타거나 소비재에 가까워서 재고를 미리 확보해야 하는 그런 업종일 경우다. 이 경우 수요예측과 물류, 구매 모두를 SCM 부서에서 담당한다. 영업부서와 함께한 수요예측은 생산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산계획은 구매 및 자재도입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수요예측, 생산계획, 자재 구매, 자재 입고, 생산, 완제품 배송 등 기업의 공급망 일체를 한 부서에서 책임지는 구조다.
이쯤에서 눈치 챘겠지만 C사례와 D사례의 SCM 조직 구조는 공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A사례와 B사례에서 보듯 생산설비 없이 구매해서 판매하는 경우, SCM 부서가 그리 크지 않겠다. 하지만 D사례의 경우는 사실상 영업과 회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주요기능이 SCM부서 안에 있으므로 영업부서와는 비교적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협의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수요예측과 판매계획 수립에 대한 영업부서의 습관을 바꿔 나가는 데는 역부족일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4가지 조직구조 중에는 가장 엔드투엔드(End to End) 개념에 충실한 구성이다.
SCM은 전체를 바라봐야
중요한 것은 기업의 조직 구조가 무엇이 됐든 SCM 조직이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는 타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니 영업, 마케팅, 수요예측, 생산관리, 물류, 구매, 자재 등 기업이 고객과 만나는 접점부터 공급업체와 만나는 접점까지를 포괄한다.
실제 SCM 부서에 소속돼 관리업무를 하다보면 SCM부서에서 타 부서에 대한 평가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그나마 관리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물류부서는 거래처에 대한 적시배송(On Time Delivery)과 물류비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막상 자재부서를 대상으로는 공급업체를 상대로 한 적시배송이나 자재물류비로 평가를 하지 않고, 평가를 할 수도 없다면, 물류부서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물류부서가 아무리 물류비 아껴봐야 자재조달 물류에서 다 까먹고, 물류부서가 아무리 적시배송 하려고 애써봐야 자재조달이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타격은 물류부서가 받는다는 논리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수요예측 담당자들은 수요예측 정확도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수요예측의 기반 데이터를 제공하는 영업사원들은 거래선별 판매계획 정확도나 거래선 판매실적/재고/구매주문 적시 입수율 같은 것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까 말한 것처럼 수요예측 담당자들은 절망하고 직무를 바꿔달라고 하거나, 그냥 회사를 관둔다. 영업사원들이 거래선별 판매계획을 알려주지 않고 자신들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상태에서 수요예측 담당자가 백날 열심히 계획 짜봤자 영업사원들은 비웃을 따름이다.
전체 최적화라는 말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확실히 예전처럼 어느 한 부서가 잘 하려고 노력한다고 잘 되는 시대가 아니다. 만약 어느 한 부서가 노력해서 잘된 경험을 갖고 있다면 그 말은 필자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비효율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경영진의 의지가 ‘좋은 공급망’의 촉매
SCM 조직의 영향력 누락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조직 구성원들이 일을 똑바로 안 해서? 그보다는 경영진이 그런 애로사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리를 못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CM부서가 영업사원들을 거래선별 판매계획 정확도로 평가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자. 이때 SCM부서 실무자가 영업팀장 또는 영업담당 임원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하고 설득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아마 영업팀에선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일단 새로운 평가 항목이 생긴다는 것이 불안하다. 만날 거래선 만나가며 고생하는데 옆 동네 SCM 부서라는 것들이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더 괴롭힐 생각만 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 설령 충분히 공감하고 설득했다고 하더라도, 각론에 들어가 산하 직원들이 SCM부서의 정책을 따르도록 만드는 데는 오랜 설득과 스트레스, 몇 번이 될지 모르는 보고가 기다리고 있다.
직원이 수천 명인 대기업 얘기가 아니다. 직원 수십 명의 중소기업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수많은 경영학 수업의 결론에는 늘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최소한 SCM에서 이보다 더 절실한 말은 없다. 정말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의지가 있고, 최고경영자가 더 나은 업무를 위해 조직 간의 평가 및 피평가 관계를 정리해주지 않으면 조직은 서로 자기 갈 길만 간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최고경영자가 관심을 가져도 현장에서는 말 안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용어로 ‘막장’이라고 부른다.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관리는 수요자 중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수요자 중심의 시장이면 당연히 시장 정보가 기업 활동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영업부서가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는 판매계획을 공급망 가장 끝에 있는 공급업체에게까지 왜곡되지 않게 공유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설득부터 막힌다면? 4차 산업혁명이든 공급망관리든 깔끔하게 다 집어치우면 된다. 굳이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에는 이 정도로 내용을 마무리할까 한다. 두 가지만 기억하자. 엔드투엔드(End to End). 그리고 평가와 피평가. (계속)
군 복무 전 우연히 하게 된 창고 알바를 계기로 물류에 입문, 아직 초심을 안 버리고 물류하고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서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cscully)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독특한 시각과 필체로 써내려가는 것이 삶의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