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비 더 내고 이용하는 온라인 편의점, 과연 소비자들에게 먹힐까
온라인 편의점 표방한 '나우픽'의 편의점 O4O(Offline for Online)란?
글. 엄지용 기자
Idea in Brief
대한민국에 널려 있는 편의점. 그 상품을 온라인으로 3,500원의 배송비를 받고 배송해주면 과연 팔릴까. 팔리더라. 고객의 ‘귀차니즘’을 공략하여 잘 나가는 편의점, 그 이상으로 매출을 내고 있는 ‘온라인 편의점’이 있다. 얼핏 보면 동네 구멍가게처럼 생긴 이 업체의 오프라인 거점은 철저하게 ‘온라인’을 위해 설계됐다. 오프라인 판매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 간만에 만난 O4O(Offline for Online)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그 문을 열었다.
편의점에서 팔던 상품을 그대로 온라인에서 팔면 팔릴까. 지난 5월 온라인 편의점을 표방한 업체 ‘나우픽’이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업체가 판매하는 물건들은 편의점의 그것과 같다. 음료, 과자, 라면, 가정간편식 같은 것들이다. 실제 나우픽에서 판매되고 있는 SKU(Stock Keeping Units)는 2,500개 수준으로 편의점의 SKU와 비슷하다. 매일매일 필요한 만큼 재고를 공급받는 시스템도 편의점의 그것과 같다.
대한민국은 편의점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다. 그리고 나우픽은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편의점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소비자가 편의점에 직접 방문하여 구매하는 대신, 배송료 3,500원을 내고 집에서 상품을 받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귀차니즘 때문에 동네 편의점을 방문하지 않고 3,500원을 낼 수 있는 고객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한국 편의점 숫자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프렌차이즈 편의점 숫자는 36,824개. 편의점당 인구수는 1,406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팔리는 이유
놀랍게도 나우픽 상품은 꽤 잘 팔린다. 나우픽에 따르면 그들이 받는 주문은 하루 평균 130건 정도. 지난 6월 기준으로 월매출 1억 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나우픽은 그 이유로 편의점보다 다양한 상품군을 꼽았다. 가령 지금 나우픽에서 팔리고 있는 이케아나 코스트코 구매대행 상품은 편의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상품이다. 그러고 보니 나우픽은 정육, 청과, 야채, HMR(가정간편식) 등 편의점보다는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서 팔 법한 상품들까지 팔고 있다. 실제 나우픽의 객단가는 편의점(5,088원, 편의점협회 자료)보다 훨씬 높은 25,000원 수준으로 형성됐다고 한다. 이는 슈퍼마켓(18,150원)과 대형마트(40,206원) 사이에 있는 무언가다.
송재철 나우픽 대표는 “나우픽은 상품 자체를 ‘샘플링’ 형태로 소싱한다. 만약 해당지역의 수요 데이터를 봤을 때 수요가 높다면 판매재고를 늘리고, 반대로 수요가 적다면 상품재고를 줄인다”며 “예를 들어 물 같은 경우는 하루에도 몇 백 개씩 재고를 들여놓지만, 아예 적게 들여놓는 상품은 2개씩 넣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편의점 대비 나우픽이 가지는 또 다른 비교우위는 ‘시간지정 배송’이다. 가령 이런 거다. 새벽 2시, 화장실에 곱등이가 출몰했는데 벌레약은 없다. 난감하다. 이럴 때 나우픽에서 에프킬라를 주문하면 당장 평균 30분 안에 배송이 가능하다. 최저임금 이슈로 이마트24를 필두로 24시간 문을 열지 않는 편의점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나우픽은 갑작스레 무엇인가를 사고 싶은 상황에서 꽤 괜찮은 대안이 된다.
나우픽에서 에프킬라를 검색하면 진짜 나온다.
그럼 나우픽이 ‘대형마트’보다 나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로 대표되는 국내 대형마트 3사는 모두 배달 서비스는 물론, 시간지정 배송을 제공하는 사업자도 존재한다. 송 대표에게 물어보니 두 서비스의 장단점이 분명하다고 한다. 단점이란 오토바이 배송의 한계다. 사륜차 배송을 하는 대형마트에 비해 이륜 배송을 하는 나우픽이 배송하지 못하는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장점이란 다시 한 번 ‘시간지정 즉시배송’이다.
송 대표는 “현재 대형마트 중에서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정확히 배송을 해주는 업체는 없다”며 “고객이 당장 필요한 상품을 주문하려고 하면 배송 받고자 하는 시간 주문이 마감돼 있거나, 배송이 되더라도 3시간 단위와 같은 식으로 정확한 시간을 지정한 배송은 어렵다”고 말했다.
온라인을 위한 오프라인
나우픽은 현재 강남 언주역 인근에 물류거점을 두고 있다. 물류센터보다 동네 구멍가게처럼 생긴 이 거점에서는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인매장도 아니다. 여기에 있는 직원들은 배송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피킹, 패킹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 같은 구조가 나타난 이유는 나우픽이 철저히 온라인을 위해 오프라인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만약 나우픽 물류거점에 현장 고객이 들어왔다면, 우리 직원은 오프라인 고객을 먼저 응대할 수밖에 없다”며 “그것 때문에 온라인 고객에 대한 응대는 늦어지고, 오프라인 고객이 실시간으로 빼가는 상품들에 대한 재고정보를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도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나우픽 언주역 물류거점. 담배 팔 것 같은 동네 구멍가게처럼 생겼다. 직원도 있다.
나우픽의 입지 결정도 온라인을 위한 오프라인에 초점을 맞췄다. 판매가 아닌 운영, 즉 임대료와 개설비용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 아닌 이면도로, 심지어 지하에도 물류거점을 만든다. 애초에 판매용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테리어 비용은 신경 쓰지 않는다. 송 대표는 “물류거점을 개설할 때 기본적인 랙과 냉장냉동 설비를 제외하고는 투자비가 크지 않다. 만약 해당 거점에서 상품판매가 잘 되지 않더라도, 보증금과 설비를 빼고 상품을 다른 거점으로 옮기면 투자비용 손실은 거의 없다”며 “초기 투자비용으로는 초도 판매물량 채우는 4,000만 원을 포함하여 1억 원 정도면 된다”고 말했다.
나우픽은 내년 말까지 현재 언주 거점을 넘어 서울 전역으로 여러 개의 마이크로 거점을 구축한다고 한다. 나우픽의 물류거점은 반지름 기준으로 약 2km 범위의 시장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데, 이는 온라인 주문고객에게 온디맨드 즉각 배송이 가능하도록 고려해 설정한 것이다. 송 대표는 “매출이 잘 나오는 편의점이 월 1억 원 정도의 매출을 내는데, 나우픽의 강남 거점이 딱 그 정도”라며 “여기서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배송거점 당 3억 원 이상의 매출이 나오는 수준으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