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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부터 스트리밍까지, 디지털이 바꾼 영화 공급망

by 신승윤 기자

2018년 08월 28일

디지털 영화 시대의 도래, '필름'은 지고 'DCP'가 뜬다

극장상영, 영화제에 이어 웹 스트리밍까지, 디지털 시대의 '영화물류'

 

글. 신승윤 기자

 

Idea in Brief

 

필름 중심의 영화 제작이 디지털화 되면서 영화물류 또한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영화의 촬영과 편집, 극장 상영에 있어 필요한 물자의 성격이 변화했으며, 그 비용 또한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나아가 상업 콘텐츠이면서 예술장르이기도 한 영화의 성격에 따라 사전 홍보, 시사회, 영화제 등 다양한 이벤트 속 영화물류 또한 새롭게 변화했다. 영화의 배송, 보안, 관리 등 디지털 시대의 영화물류는 어떤 식으로 변화해 소비자인 우리에게 최종 전달되는지 확인해본다.

 

영화의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주로 35mm 필름을 사용해 영화를 촬영하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촬영과 편집, 상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디지털화 됐다. 이 같은 기술적 변화는 영화물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 그 중에서도 상업 영화 콘텐츠는 그 기획부터 개봉까지 수백 명 이상의 인원이 함께하며 투입되는 자본 또한 만만치 않다. 영화의 디지털화는 그 가운데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을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큰 부피와 무게를 가진 필름깡통(출처: 6080 추억상회)

 

디지털이 영화물류에 미친 영향

 

과거 영화를 기록하는 필름은 비싸고, 무거우며, 양이 많아 이동이 번거롭고, 그 관리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필름깡통 하나는 보통 400피트(ft) 길이의 필름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가격은 25~30만 원 선이다. 그리고 400피트 필름으로 촬영할 수 있는 영화의 길이는 5분 내외. 때문에 1시간 분량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4,800피트의 필름이 필요하며 그 가격만 300만 원이 넘어간다.

 

영화 편집 전 촬영을 위해 소모되는 필름 길이는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촬영과 편집을 위해 개당 약 2kg의 필름깡통을 끊임없이 옮기고 관리해야 하니 그 과정은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필름이 디지털 파일로 대체된다는 것은 영화 물류에 있어서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준다. 고가의 필름깡통 다수가 재활용 가능한 소량의 하드디스크나 USB로 대체되니 말이다.

 

이처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름의 구매와 운반, 관리 문제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해결되고 나니 영화사들은 영화의 극장 상영 또한 디지털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셜, 파라마운트, 디즈니 등 유명 영화사들이 모여 결성한 디지털시네마이니셔티브(Digital Cinema Initiatives)는 영화의 디지털 상영을 위한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 냈다. 바로 DCP(Digital Cinema Package)다.

 

DCP의 등장, 급변하는 영화물류

 

DCP는 거대한 디지털 영화 파일을 무손실에 가깝게 압축하는 포맷이다. 거대한 컨테이너와도 같은 DCP는 실제 그 안에 JPEG2000 형식의 사진파일을 담고 있다. 영화를 디지털 사진파일로 저장한 뒤 빠르게 넘기는 형태로 상영한다는 점에서 DCP는 말 그대로 디지털 필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저장된 DCP의 용량은 통상 120GB 이상으로 하드디스크에 저장 가능한 크기며, 저장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USB에 담아 옮길 수도 있다.

▲ 디지털 방식의 극장 상영을 가능케 한 DCP

 

이 DCP의 등장은 세계 영화물류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8년 당시 국내 극장의 약 94%를 차지하던 필름영화 상영은 2013년 1.2%로 급감,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기에 이른다. 이는 매출의 90% 이상이 극장에서 나오는 한국영화의 수익구조를 감안했을 때 실로 엄청난 변화다. DCP가 간편한 휴대 이상으로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DCP는 상영용 필름의 제작비와 운송비를 확연히 감소시켰다. 손바닥만 한 하드디스크를 운반해 극장마다 파일을 복사해주기만 하면 끝이다. 게다가 필름과 달리 재활용이 가능한 DCP는 내부의 영화만 교체해주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 또한 KDM(Key Delivery Message)이란 전용키가 없이는 상영이 불가능한 구조이기에 보안성 또한 우수하다.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가진 DCP로 인해 영화계 가장 보편적인 이벤트인 극장 상영은 전면 디지털화 된다.

 

영화 공급망의 디지털화

 

그렇다면 극장 상영 외 영화 관련 이벤트들은 어떻게 진행될까. 대중문화 콘텐츠로서의 상업성과,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모두 가진 영화는 배급 차원에서 다양한 전략이 수립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개봉 전 홍보 전략이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 관련 매출의 대부분은 극장 상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 영화 파일은 보다 효율적인 전략 수립을 가능케 한다.

 

먼저 영화 예고편 제작이다. 1910년대부터 제작됐다 알려진 영화 예고편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줘 본편을 관람하게 만들기 위한 홍보물이다. 모 대형 배급사 관계자는 “홍보물 제작을 위한 편집용 소스가 디지털 파일로 제공된다”며 “영화 본편 편집을 마치기 전에, MOV 등 디지털 영상 파일을 외장하드를 통해 사전 전달받을 수 있다. 때문에 예고편, 포스터, 팸플릿 등 개봉 전 홍보물 제작에 대한 효과적인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각종 시사회를 위한 상영 역시 디지털 파일을 이용한다. 배급 시사회, 언론 시사회, VIP 시사회 등 사전 상영 이벤트에 DCP가 활용된다. 배급사 관계자는 “개봉 1~2주 전 최종 편집 종료를 의미하는 편집 락(Lock)이 걸린다”며 “이후에는 시사회를 위한 DCP 제작에 들어가며, 제작된 DCP는 배급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시사회 상영관으로 배송된다. 이 때 DCP는 시사회 전용으로 제작되지만, 필요하다면 극장 상영용으로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물류의 ‘끝판 왕’, 영화제라면?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 영화제의 경우, 수천 편의 영화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현장 상영되는 영화 물류의 ‘끝판 왕’이라 할 수 있다. 영화제 작품 수급은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하는 등 총괄 역할을 수행하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에 의해 진행된다. 초청을 원하는 작품에 대해 영화제 측에서 해당 영화감독에게 연락을 취하면, 영화감독이 작품을 영화제로 발송하는 식이다.

▲ 1천 편 이상의 영화를 심사 및 상영하는 국제영화제(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경우 초청작이 많게는 수백 편이며, 그 발송지 또한 해외 100여개 국가에 달한다. 때문에 영화제에서는 원활한 영화 수급을 위해 DHL, 페덱스(FedEx)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물류회사를 이용한다. 실제 DHL코리아는 19년째 전주국제영화제를 후원하고 있으며, 페덱스코리아 또한 10년 가까이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운송업체를 담당하고 있다.

 

DHL코리아 관계자는 “영화제 상영을 위해 필름을 들여올 때는 재수출조건부수입 신고를 통해 들여온다”며 “필름 수출입에 있어 빠른 통관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반 서류 준비 등 사전 협조를 마친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한 “과거 필름으로 영화를 운송할 때와 달리 해가 거듭할수록 물량이 줄어든다. 한 작품 당 20kg 이상의 무거운 필름깡통에서 DVD, 디지베타테이프로 변하면서 무게가 0.5~1.0kg 내외로 크게 감소했다”며 “나아가 최근에는 DCP 파일로 작품을 전송하기에 확연한 물량 감소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화제 초청작들의 상영 일정이 어긋나면 어떻게 할까? 보통 영화제 참가 작품들은 한 영화제에서만 상영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수많은 영화제에 참가하는 가운데, 상영을 위해선 최소 2-3일 전에는 영화가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다. DHL코리아 관계자는 “(그런 경우) 상영 일정에 맞춰 배송할 수 있도록 전담지원팀을 파견한다”며 “현 시점에서 가장 빠른 상업용 항공기 또는 전용항공기에 영화를 실어 보낸다. 간혹 긴급 상황에서는 상영 하루 전 영화가 도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 출품, 디지털로 가능하다

 

영화제의 경우 영화의 초청과 상영도 중요하지만, 출품작들의 사전 배송과 심사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많게는 1천여 작이 넘는 영화들이 영화제 측으로 접수돼 사전 심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 중 선택받은 영화만이 경쟁부문 등으로 진출해 영화제 기간 내 현장 상영이 가능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 영화제 상영이 결정되지 않은 출품작들의 해외 배송은 감독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필름 복사본을 영화제에 출품할 경우, 감독들은 막대한 복사 및 배송 비용을 감당해야했다. 하지만 영화의 디지털화와 함께 이러한 부담이 크게 감소했다. 외장하드나 USB를 활용해 디지털 파일 형태로 출품이 가능해졌으며, 필요하다면 상영용 영상 포맷이 아닌 심사용 저용량 포맷으로 변환해 출품할 수도 있다. 낮은 용량은 저장 기기의 무게 및 부피 감소를 의미하며, 이는 배송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동영상 파일의 웹 업로드가 자유로운 요즘, 웹 플랫폼을 통한 영화제 출품이 확산되고 있다. 영화 <쓰리룸>으로 2018년 제40회 클레르몽 페랑 국제단편영화제 등 프랑스, 미국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 진출해 작품을 상영한 이나연 감독은 “실물이 아닌 디지털 파일로 국제영화제 출품을 진행했다”며 “유투브(YouTube), 비메오(vimeo) 등 동영상 호스팅 플랫폼을 통해 출품이 가능하다. 웹에 저용량 출품작을 업로드한 후 비공개 링크를 영화제 측에 전송하는 방식이며, 필요한 경우 보안을 강화한 유료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보다 더 많은 영화를 담다, 웹 스트리밍

 

영화제 그 이상으로 많은 영화를 보관 및 상영하는 곳이 있다. 바로 웹 스트리밍 서비스다. 음악 콘텐츠가 음반을 넘어 스트리밍 시대를 맞이했듯, 상대적으로 고용량인 영화 콘텐츠 또한 DVD를 넘어 스트리밍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통신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영화 파일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는 디지털 영상 기술의 역할 또한 크다. 이로서 소비자는 극장이 아닌 원하는 장소 어디서든 TV, 스마트폰 등 다양한 스크린을 통해 영화 감상이 가능하다.

▲ 웹 스트리밍 시대를 맞이한 디지털 영화 (POOQ 영화 카테고리 캡쳐)

 

국내 대형 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배급사마다 부가판권 담당 부서가 존재한다. 웹 부가판권의 주거래 대상은 KT, SKT 등 통신사와 넷플릭스(Netflix), 왓챠(Watcha) 같은 스트리밍 업체”라며 “이들을 통해 영화가 IPTV, VOD 등 웹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되며, 그 수익이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라 전했다.

 

실제 2017년 개봉한 강윤성 감독 영화 <범죄도시>는 VOD 매출액만 110억 원 이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극장 상영, 영화제에 이어 웹 스트리밍까지 각종 이벤트 속 영화물류의 변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승윤 기자


'물류'라는 연결고리 / 제보 : ssym232@clo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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