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공간제, 기간제로 구분 되는 '매장 공유', 유휴 공간을 활용하다
초단기 임대 '깔세'부터 플랫폼 '마이샵온샵'까지 공간 공유 모델의 진화
aT센터, 지하철역 상가 등 예시로 본 새로운 공간 공유의 가능성
글. 임예리 기자
Idea in Brief
최근 몇 년 사이 ‘유휴 공간’을 판매하는 비즈니스가 국내외로 늘어나고 있다. ‘시간’, ‘공간’, ‘기간’에 따라 과금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깔세. 깔세는 본래 불황으로 인해 장기 임차인을 찾지 못하는 대신 단기 수익이라도 내고자 했던 건물주와, 적은 자본으로 빠른 시간에 비교적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임차인의 니즈가 맞아 떨어져 탄생한 매장 공유 모델이다. 깔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중개 사업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여 돈을 벌고 있을까.
매장을 공유하는 방법
저녁장사만 하는 술집, 낮 시간에 사용하지 않는 유휴 공간을 공간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는 없을까. ‘매장 공유’ 비즈니스가 시작된 이유다. 유휴 매장에 대한 임대인, 임차인 두 주체의 니즈가 맞아 떨어지기에 거래는 성사된다.
미국의 스토어프런트(Store Front), 영국의 어피어히어(Appear Here)와 같은 업체들이 상업시설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며 크게 성장했다. 어피어히어의 경우, 작년 1,2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해 누적 투자유치 액은 약 2,100만 달러가 됐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다양한 매장 공유 모델을 통해 유휴 공간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설립한 업체인 마이샵온샵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업계에선 ‘매장 공유’를 크게 시간제, 공간제, 기간제 세 가지로 나눈다. 시간제는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등 하루 중 ‘일정 시간‘만을 빌리는 형태다. 가령 낮 시간에 영업을 하지 않는 주점을 빌려 점심시간 장사만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간제 매장 공유는 기존 점포의 일부 공간을 빌려 다른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샵인샵(Shop-in-shop) 모델을 가리킨다.
초단기 임대, ‘깔세’를 아시나요
기간제 공유모델의 대표주자는 속칭 ‘깔세’다. 시장이나 지하철 역사 안에 있는 상가를 돌아다니다가 한번쯤 ‘점포정리’, ‘재고정리’, ‘폐업정리’, ‘땡처리 세일’ 등의 문구를 내걸고 싸게 물건을 파는 매장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자가 사는 동네 상가에도 10평 남짓한 공간에 세일 플랜카드를 걸어놓고 이불, 침구류를 파는 매장이 있었다. 해당 매장은 매장을 연 날부터 ‘재고 정리’ 세일을 했다. 한 달 정도 뒤에 이불가게는 문을 닫았다. 이불가게가 떠나고 그 자리엔 저렴한 옷과 잠옷, 일상 용품을 파는 업체가 장사를 시작했다. 이번 가게 역시 두 달 정도 뒤에 영업을 종료했다. 이후 채소가게, 만두가게를 거쳐 현재는 휴대폰 매장이 들어섰다.
▲ 서울 천호로데오 거리에서 운영 중인 한 깔세 매장
깔세란 재고 의류나 잡화 등을 단기간에 싸게 팔고 영업을 종료하는 가게를 말한다. 1차 세입자가 임차 기간 도중 폐업이나 이사를 갈 경우, 남은 임차 기간 해당 자리를 2차 세입자에게 세를 놓는 것이다. 2차 세입자는 권리금이나 보증금을 내지 않고, 월세보다 좀 더 비싼 임대료를 미리 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깔세 매장의 월세는 보통 기존 월세의 두 배 정도다. 즉, 해당 매장의 월세가 500만 원이었다고 한다면, 깔세 매장의 월세는 약 1,000만 원이 된다.
깔세 거래는 마치 부동산 거래와 비슷하게 이뤄진다. 다만 공인중개사가 중개를 하기보다 ‘자리 부장’이라 불리는 깔세 전문 중개인들이 깔세 매장을 관리하며 임차인을 모집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깔세 매물만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온라인 사이트도 운영 중이지만, 일반적으로 메신저를 통해 문의나 거래가 이뤄진다. 현행법은 초단기 임대차에 해당하는 깔세 영업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을 규정하지 않는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 16조에 따르면 일시사용을 위한 임대차임이 명백한 경우 해당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깔세는 오랜 경기침체로 인해 장기 임차인을 찾지 못한 건물주들이 단기 수익이라도 내려고 시도했던 것에서 출발했다. 반대로 임차인에겐 불황 속 틈새시장으로, 단기간에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주목 받았다. 단,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상권’이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다보니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의 깔세 매장은 중개 수수료나 월세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중국과 한국의 팝업 비즈니스
팝업 스토어(Pop-up Store) 역시 넓은 범위에선 기간제 공유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최근 2~3년 간 사무실이나 건물 내부의 공간에 가판대를 두고 간식이나 음료를 파는 무인 팝업스토어(가판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7년, 궈샤오메이(果小美), 폔리펑(便利蜂), 싱폔리(猩便利) 등 40여 개의 업체가 유치한 투자금은 약 30억 위안(한화 약 5,111억 원)에 이른다.
무인 팝업스토어는 말 그대로 사람 없이 상품을 판다. 대부분의 결제는 모바일에서 QR코드를 통해 이뤄진다. 무인 팝업스토어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도난이다. 대부분의 중국 무인 팝업스토어 업체는 상품 도난에 대한 위험을 그대로 떠안는 경우가 많다.
몇몇 업체는 RFID태그를 상품에 부착하는 방법을 도입했지만, 판매단가가 비교적 낮은 상품에 RFID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비용 부담의 우려가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 무인 팝업스토어 시장에 과도하게 자본이 몰리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체들의 파산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업체가 있다. 공간 팝업전문 중개 플랫폼 스위트스팟이 대표적이다. 매장이 아닌 오피스 빌딩, 지하철 역사의 남는 공간에 팝업스토어를 설치한다. 스위트스팟의 수익은 주로 매칭 중개 수수료에서 나온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스위트스팟의 플랫폼에는 100여 개의 유휴 공간이 등록되어 있으며, 254개의 브랜드를 대상으로 850회의 팝업스토어를 론칭했다. 지난 5월에는 홍콩까지 서비스 지역을 넓혀 국내 브랜드의 홍콩 팝업스토어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 잠실 Tower730에 설치된 한 화장픔 브랜드의 오피스 투어형 팝업스토어. 스위트스팟의 팝업 스토어는 주로 패션 브랜드 제품이 이용한다.(사진: 스위트스팟)
마이샵온샵으로 보는 공간 공유
국내업체 마이샵온샵으로 공간 공유 모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업 초기 마이샵온샵이 주력했던 영역은 ‘시간제 공유 모델’이었다. 현재까지도 시간제 공유 모델이 마이샵온샵 전체 거래의 90%를 차지하고 있는데, 가장 거래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은 강남이라고 한다. 최대헌 마이샵온샵 대표는 “주점과 음식점이 별도로 나눠지지 않고 한데 공존하는 상권은 사무실이 많은 오피스 상권”이라며 “이 두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지역이 강남”이라 전했다.
마이샵온샵의 시간제 공유 모델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기준 마이샵온샵 플랫폼에 등록된 매장공유 매물은 2,000개 정도이며, 약 150건의 매장 공유 매칭이 성사됐다. 최 대표는 “마이샵온샵의 서비스는 단순 매칭뿐만 아니라, 컨설팅이나 메뉴 개발, 온라인 홍보까지 전체 사업을 매니징하는 작업을 포함한다”며 “시간제 매장 공유의 경우 보통 6개월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데, 매칭이 성사된 사용자 중 약 30%는 두 번 이상 계약을 갱신했다”고 밝혔다.
마이샵온샵에 따르면 시간제 공유 거래가 많아지고, 안정화되자 자연스레 공간제 공유를 원하는 고객들도 늘었다고 한다. 가령 회사 사무실에서 사용하지 않는 일부 공간, 상업매장의 일부 공간을 임대하고자 하는 니즈가 대표적이다.
공간 매칭의 어려움, 깔대기 효과
마이샵온샵에 따르면 공간 공유 모델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매칭’이다. 공간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은 ‘좋은 입지’를 선호하지만, 좋은 입지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공간 매칭은 마치 깔대기와 같다”며 “대부분의 임차인은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가 좋은 곳을 선호하지만, 그런 공간이 많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말했다. 그는 또한 “좋은 입지의 공간 매물이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수요자 각각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매물만 늘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 설명했다.
마이샵온샵은 매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새로운 매장 공유 유통망을 구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여기서 유통망이란 마이샵온샵이 직접 매장으로부터 판매대를 빌리고, 해당 공간을 홍보나 판매가 필요한 이들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을 말한다. 임대 기간이나 임대하는 공간의 크기는 별도의 제한 없이 사용자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마이샵온샵의 판매대는 깔세와는 조금 다르다. 깔세는 임대료를 주수익으로 하는 반면, 마이샵온샵의 판매대는 임대료를 받지 않고, 광고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최 대표는 “대부분의 기업이 매대에서 직접 판매보다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홍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제조 소상공인, 스타트업 메이커스들의 다품종 소량 생산 특성을 잘 반영한 유통, 홍보방식이 될 것”이라 말했다.
마이샵온샵은 올해 하반기까지 서울 지역에 15~20개 정도의 판매대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도입 초기인 만큼 관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우선 설치될 예정이다. 단기 홍보에 집중하는 모델이라 기본적으로 종이 재질의 매대를 활용하고 있으며,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매대에 반영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것도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고객이 판매대에 있는 상품을 결제하고자 한다면 결제는 해당 매장에서 처리한다. 다만 판매 추이 모니터링을 위해 마이샵온샵은 점주에게 판매대 결제용 카드 리더기를 별도 제공한다. 마이샵온샵은 판매대 기능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직접 RFID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마이샵온샵의 판매대는 단순 판매보다는 비교적 높은 단가의 상품을 대상으로 한 홍보 효과에 주안점을 맞추고 있기에, 판매 추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RFID가 홍보 분석 결과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다.
지하철역의 빈 상가를 공유한다면?
한편, 마이샵온샵은 기간제 매장 공유 모델 또한 선보이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센터)와 협업해 진행했던 ‘에이토랑’이 대표적이다. aT센터가 일정 매장을 마이샵온샵에 빌려주면, 마이샵온샵은 매달 새로운 청년팀을 입주시켜 외식 서비스를 선보이는 프로젝트였다.
마이샵온샵은 최근 서울교통공사와 협업해 지하철 역사 안의 유휴 매장 공간을 청년 창업과 관련한 팝업 공간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프로젝트의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현재 서울교통공사와 마이샵온샵은 구체적인 모델 수립과 운영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샵온샵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1~8호선 총 277개 지하철역사 내 매장 중 26%가 공실 상태이며, 18% 정도는 깔세 매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최 대표는 “특히 공실이 밀집된 일부 지역에서 다수의 청년 사업가를 유치해 플리마켓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해당 역사 부근의 상권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크라우드 펀딩과 연계해 우수한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박람회 방식도 도입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점포 공실을 줄일 수 있는 마이샵온샵의 모델은 당장 단기간 내에 적용 가능할만한 모델”이라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