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진화하는 배달로봇, 로봇도 내용물도 과연 안전한가?
로봇이라면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배달로봇의 미래는?
글. 신승윤 기자
Idea in Brief
SF의 3대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 3원칙’을 만들어 낸지 7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AI, 로봇을 표현함에 있어 로봇 3원칙은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 이상 영화나 소설이 아닌 일상생활 가운데 로봇이 진출하고 있는 요즘, 라스트마일 배송(Last Mile Delivery)을 책임지는 자율주행 배달 로봇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 이 배달 로봇들에게 로봇 3원칙은 어떤 의미일까. 나아가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하는 로봇은 과연 로봇에 대한 공격과 학대, 혐오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현시점 배달 로봇의 자기 보호 수단과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본다.
로봇 3원칙, 유효한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몰라도 ‘로봇 3원칙’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SF의 3대 거장 아시모프는 저서 <아이, 로봇>에서 이 로봇 3원칙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인간과 로봇의 갈등을 묘사한다. 그 갈등은 대략 이런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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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해선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
「셀레늄 체취로봇 ‘스피디’는 셀레늄 웅덩이 곁에서 빙글빙글 도는 원운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 ‘셀레늄을 채취하라’는 인간의 명령과 ‘셀레늄에 가까이 가면 기체가 부식된다’는 판단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것이었다. 로봇 제2원칙과 제3원칙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셀레늄 중독 위험으로 누구도 스피디 곁에 갈 수 없는 상황. 이에 로봇 기술자 ‘파웰’은 일부러 자신의 신체를 위험에 노출시켜 스피디의 무한한 원운동을 끝낸다. 인간 보호가 최우선이란 로봇 제1원칙을 이용해 스피디가 파웰 자신을 구하러 오도록 유도한 뒤 회수에 성공한 것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 로봇> 중 단편 <RunAround> 요약
이처럼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적극 활용해 창조자 인간과 피조물 로봇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모순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나아가 로봇 3원칙은 소설이 발표된 1942년으로부터 7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로봇이 등장하는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의 핵심주제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로봇 3원칙은 콘텐츠 속 극적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로봇 3원칙은 어떠한 법적 효력도 가지지 못하며, 사회적 합의도 거치지 않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군다나 스스로 사고와 판단, 이동이 가능한 로봇들이 생활 곳곳에 배치된 작중 배경과 달리 지금의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공학 기술은 한창 발전 단계에 있다. 즉 현재의 로봇팔, AGV, 드론 등을 운영하는 데 있어 로봇 3원칙은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원칙을 제외하고 말이다. 바로 제3원칙,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진화하는 배달 로봇, 늘어나는 기업 투자
물류에 있어 로봇하면 아마존(Amazon)의 ‘키바(KIVA)’, 징동(京东)의 ‘샤오홍런(小红人)’ 등 물류센터 자동화 이슈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자율주행 배달 로봇에 대한 관심과 투자 또한 만만치 않다. 이미 각종 지상 배달로봇과 드론이 시험운영과 상용화를 거쳐 실생활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쉽테크놀로지(Starship Technologies)의 음식 배달용 자율주행 로봇 ‘스타쉽’은 최근 2,5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에어비앤비(Airbnb)의 공동 창업자 네이선 블레차르지크(Nathan Blecharczyk), 스카이프 창업 멤버 자안 탈린(Jaan Tallinn)도 투자자로 나섰다. 도미노피자와의 제휴를 통해 음식 온도 조절 기능 등 배달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준 스타쉽은 2018년 말까지 미국, 유럽 등지에 1,000대 배치를 앞두고 있다.
▲ 자율주행 음식배달 로봇 스타쉽(왼쪽)과 한국 배달의민족의 음식배달 로봇 딜리(오른쪽)
중국의 경우 드론 배송에 한창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2위 업체 징동(京东)은 장쑤성(江苏省) 쑤첸시(宿迁市)에 185개의 드론 공항을 건설했다. 한 대당 최대 15kg까지 적재 가능한 드론은 10여분 만에 10~15km 거리를 날아 택배 배송을 마친다. 또한 베이징항공항천대학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阿里巴巴)의 물류자회사 차이냐오(菜鳥)와의 파트너십 체결과 함께 1t 무게의 화물을 싣고 1,500km를 날아갈 수 있는 원거리 드론을 개발 중이라 밝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자율주행 음식배달 로봇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진행 중이며, 지난달 자사 로봇 ‘딜리’의 첫 현장 시범운영을 마쳤다. 또한 요기요, 배달통을 서비스하는 알지피코리아는 드론을 통한 분식 배달 테스트를 성공시킨 바 있다.
이처럼 배달 로봇이 막대한 투자와 더불어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배경에는 라스트마일 배송(Last Mile Delivery)과 관련된 이슈가 있다. 배달 로봇이 인건비, 야간 및 새벽 배송, 섬‧산간 오지 배송, 물품 신선도, 배송 품목 및 지역 관련 데이터 수집, 빅데이터 활용 등 라스트 마일 배송과 관련된 각종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왜 ‘제3원칙’인가
다시 로봇 3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제3원칙이 왜 중요한가. 앞으로 일상생활 속에 보다 넓고 다양한 장소에서, 더 많은 배달 로봇들이 활동하게 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로봇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배달 로봇은 로봇 그 자체로 기업의 중요 자산이자 노동력이며, 배달 로봇의 안전은 고객이 주문한 물품의 안전 및 보안과 직결된다. 즉 배달 로봇이 안전해야 보다 효율적인 라스트마일 배송이 가능한 것이다.
아직까지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사고’가 불가능하다. 입력된 경로에 따라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면서 보행신호, 장애물 등을 감지해 출발과 정지를 결정할 뿐이다. 때문에 배달 로봇에겐 로봇 3원칙 중 제1원칙도, 제2원칙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만 제3원칙만은 지금의 배달 로봇에게 간절히 필요한 원칙이자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맞고, 쓰러지며, 학대당하는 로봇
미국 횡단을 꿈꾼 캐나다의 인간형 로봇 ‘히치봇(hitch Bot)’은 여정을 이어가던 중 필라델피아에서 신원 불명의 가해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됐다. 인간의 학대로 히치봇의 첫 미국 여행은 단 2주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 괴한에 의해 공격받아 파괴된 히치봇
뿐만 아니다.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매장에서 손님을 응대하던 중 공격을 당했다.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화풀이 대상으로 페퍼를 선택해 발길질을 하는 등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경비로봇 ‘나이트스코프(Knightscope)’ 또한 가해자들로부터 납치를 당하거나, 누군가 바비큐 소스를 센서에 부어 파괴되는 등 수난을 당했다.
이 같은 로봇에 대한 학대와 공격은 배달 로봇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고가의 물품을 배송하는 경우 더 심할 것이다. 배송 중 물품이 탈취당하거나, 바꿔치기 당할 수 있으며, 심하게 손상될 수도 있다. 음식배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부 충격과 흔들림에 의해 음식이 상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시민들과 함께 보행로를 주로 오간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더 커진다.
하늘을 나는 드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픈웍스(Openworks)에서 제작한 드론 포획 전용 바주카 스카이월(SkyWall)은 지상에서 드론을 향해 그물을 발사, 드론을 추락시킬 수 있다. 또한 드론의 특성상 전파 방해와 교란에 취약하다. 시스템 해킹을 통해 드론의 작동을 멈추거나, GPS 조작으로 엉뚱한 곳에 착륙하도록 명령할 수도 있다. 즉 배달 로봇은 견고한 하드웨어와 보안성 높은 소프트웨어, 두 가지를 모두 갖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제3원칙의 실현, 누가 로봇을 지켜주나
최근 중국 텐센트(Tencent) 등으로부터 1천만 달러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로봇 스타트업 ‘마블(Marble)’은 음식배달 로봇의 성능향상과 함께 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로봇의 의사를 전달하는 소통능력을 부여해 시민과의 갈등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 자율주행 음식배달 로봇 ‘마블’
마블의 창업자 중 한 명이자 소프트웨어 담당자 케빈 피터슨은 “배달 로봇이 보도에 서서 조금씩 전진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거리를 건너고 싶기 때문이란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행동 외에도 스피커를 탑재해 의도적으로 진로를 막거나 배달을 방해하는 사람에게 상태 설명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배송 물품의 경우 잠금장치를 이용해 보호한다. 배달 로봇 마블과 스타쉽은 튼튼한 기체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아무나 화물칸을 열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고객의 스마트폰과 연동해 주문에 따른 고유 접속코드를 제공한다. 이를 배송지에 도착한 로봇에게 직접 입력하거나, 잠금 해제 명령을 내려야만 주문한 물품을 꺼낼 수 있다.
한편 소프트웨어 방어 시스템 개발 또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조지아 공대 연구팀이 개발한 ‘허니봇’(HoneyBot)은 시스템 해커가 로봇을 해킹했다고 믿을 수 있게끔 거짓 정보를 흘린다. 이를 통해 해커는 해당 배달 로봇 또는 드론을 해킹해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허니봇이 보내는 가짜 위치정보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격렬히 저항(?)하는 미래의 배달 로봇
2004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은 앞서 소개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때문에 로봇 3원칙과 관련한 아이러니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영화 <아이, 로봇>에서의 로봇들은 원작 소설에서의 모습과 판이하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미래 로봇이란 설정은 같지만, 이들은 자기 보호 또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앞으로도 로봇의 인간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인간이 로봇에게 해를 가한다 해도 말이다. 만약 배달 로봇이 위협적이라 판단한 사람에게 전기충격 등 반격을 가한다 생각해보자. 누구도 쉽사리 이에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로봇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지, 어린이 등 약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지 등의 우려와 함께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력 외에 배달 로봇이 취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자기 보호 수단은 없을까. 이에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격렬한 ‘저항’을 택했다. 이들이 공개한 영상에서 사족보행 로봇 스팟미니(SpotMini)는 막대기로 치거나, 쓰러뜨리고, 끈을 묶어 잡아당기는 등 인간의 온갖 방해와 공격을 이겨내고서 ‘문을 열고 나가라’는 명령을 수행해낸다. 그 가운데 복종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닌 로봇의 저항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은 로봇에 대한 ‘공감’이다. 이들이 공개한 로봇 보행 실험에는 항상 로봇을 공격하는 요소가 등장한다. 앞서 말한 인간의 방해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보여주기 위함이다. 헌데 난데없이 영상 시청자들로 하여금 로봇 학대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로봇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지만, 그 공격받는 모습이 워낙 처절하다보니 시청자들이 일종의 연민을 느낀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로봇의 고통을 상상하고, 이에 연민을 느끼는 형태의 ‘공감’은 배달 로봇이 인간의 공격과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 인간처럼 표정과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대화기능을 통해 이해와 공감을 적극 이끌어낼 수 있다면 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의 공격을 받자 ‘도와주세요!’를 연발하는 배달 로봇을 그저 모른 척 지나갈 수 있겠는가.
▲ 사람에게 공간을 양보하는 기능을 실험 중인 툴루즈대학교 로봇
이와 관련해 미국 MIT, 프랑스 툴루즈대학교에서는 로봇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 밝혔다. 보행자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양해를 구하는 등 때와 장소에 맞는 예절을 통해 인간과 로봇사이의 갈등을 방지하려는 취지다. 이는 폭력이 아닌 소통을 통해 로봇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이다. 나아가 사회구성원들과 같은 예절, 소통방식을 공유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도가 배달 로봇이 사회구성요소로서 인정받는 계기이자, 로봇 제3원칙을 실현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