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혁신 이야기③
창조적 파괴는 언번들링과 리번들링의 순환
혁신의 목적지는 ‘독점’, 파괴자가 파괴의 대상으로 바뀌는 역설
글. 이종훈 롯데엑셀러레이터 투자본부장
혁신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용어 중 하나가 ‘창조적 파괴’다. 새로움과 사라짐이라는 상반되는 의미가 결합돼 만들어진 이 용어는 ‘언번들링’과 ‘리번들링’의 순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누군가가 기존 지배경제 체제가 다루는 특정 한 분야를 개선시키고, 그것을 기반으로 확장하여 새로운 지배경제 체제가 되는 것. 누군가를 파괴한 자가 새로운 파괴자들을 맞이하는 그 선순환 속에서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 환경이 만들어진다.
현대사회에서 혁신을 이야기 할 때 자주 함께 이야기 돼 빼놓고 지나가면 참 서운할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창조적 파괴’입니다. 혁신을 논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흔하게 회자되는 이 용어는 참 독특합니다. ‘창조’ 그리고 ‘파괴’라는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가진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역설적인 용어가 나타났나 생각해 봤습니다. 혁신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는 ‘새로움’입니다. 새로움은 기존 지배적인 모델(또는 Dominant Design)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지위를 파괴하고 빼앗는 과정을 동반합니다. 21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는 이러한 혁신 과정을 ‘창업가가 만든 새로운 조직을 통하여 기존의 경제적 균형(제품, 생산과정, 시장관행, 경쟁구조 등)이 깨지고 새로운 경쟁체제와 부가 창출되어 시장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는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특히 주목해야 할 개념입니다.
1975년 Utterback과 Abernathy에 의해 도입된 기술관리 개념. 시장에서 사실상 표준이 되는 핵심기술의 특징을 의미한다. 좀 더 확장하여 지배적인 전략과 제품, 디자인을 통틀어서 말하기도 한다. 지배적인 디자인이란 시장과 고객의 충성심을 얻는 것이 핵심이다. 구모델의 경쟁 체계를 무너뜨리는 신모델의 혁신이 갖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지배적 디자인 지위의 획득이다. 대표적으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원 중 ‘가솔린 엔진’은 지난 100년간 시장의 지배적인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 지위는 배터리와 모터의 결합 기술로 빠르게 파괴되며 대체되고 있다.
이번에는 위대한 창업가들이 자신의 스타트업을 통해 실현해가는 창조적 파괴를 또 다른 뜨거운 키워드 두 개를 통해 바라보고자 합니다. 바로 언번들링(Un-bundling)과 리번들링(Re-bundling)입니다.
언번들링 : 새로움의 창조, 파괴의 시작
우리는 흔히 스타트업을 통한 ‘창조적 파괴’를 논할 때 이런 상상을 합니다. 특정 스타트업이 기존의 대기업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면서 업계의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요. 그러나 스타트업의 기득세력 파괴 과정은 대개 단순한 한 가지 아이템으로 기존 강자들의 사업군 일부를 잠식하는 데서 출발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령 구글은 오직 검색 서비스만으로 야후, 라이코스 등을 제치고 결국 포탈 시장을 파괴했습니다. 카카오는 무료 모바일 채팅 서비스를 통해 SKT, KT, LG와 같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SMS 시장을 파괴했습니다.
이것이 언번들링(Un-bundling)입니다. 즉, 기존 경제적 기득권의 파괴가 스타트업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창조적 파괴의 시작점에는 스타트업의 언번들링 활동이 있었습니다. 작은 영역, 한 가지 영역에서 조금씩 시장을 잠식한 모습이지요.
최근 들어 구글과 카카오와 같이 단순한 언번들링에서 시작한 성공 사례는 특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영역은 금융, 호텔, 은행, 물류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은행은 핀테크 스타트업들뿐만 아니라 ‘암호화폐’로 인해 기존 사업자들이 제공하던 많은 기능이 대체되고 있습니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2015년 보도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이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을 언번들링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왜냐. 첫째, 기존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장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업간 경쟁 환경에서 기업의 규모는 과거와는 달리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둘째,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 것이 전례 없이 쉬워졌습니다. 오픈소스(Open Source), 온디맨드(On-demand), 클라우드(Cloud) 기반 서비스를 통해 제조, 물류, 홍보와 같은 주요 자원을 저렴하게, 필요한 만큼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 소비의 주축이 밀레니얼 세대로 변화했습니다. 기존 기업이 신생 기업 대비 가지는 브랜드 우위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객은 브랜드보다 리뷰(Review)나 랭킹(Ranking) 정보에 의지하여 새로움을 쉽게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번들링 : 경쟁체제의 붕괴, 새로운 순환
성공적으로 언번들링을 이룬 기업, 그러니까 더 이상 스타트업이 아니게 된 기업들은 그들이 성공적으로 장악한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주변 사업모델을 추가로 확대(Re-bundling)해 나가며 새로운 복합 기업체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기업들은 리번들링 과정을 통해 기존 지배적 위치를 가지고 있던(그리고 그들이 파괴시켰던) 전통 기업들보다 더 강한 경쟁체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구글, 아마존, 국내의 카카오와 같은 기업 사례에서 이런 전략의 결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글과 카카오의 리번들링 사례
이처럼 성공적인 리번들링을 통해 새로운 경쟁체제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창업가들의 파괴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파괴가 성공하는 순간 스스로 파괴대상이 되는 순환 과정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더욱 활발하게 새로운 경쟁자로 인식되는 기업들을 먼저 찾아내 투자하고 인수하면서 스스로 파괴 대상임을 드러내고, 새로운 경쟁자를 맞이하게 됩니다.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 환경은 이러한 창조적 파괴(언번들링 + 리번들링) 현상이 소비자(인류)의 가치 증대를 위하여 빈번히 이루어 질 때 만들어집니다.
이 때 파괴하려는 쪽과 파괴당하지 않으려는 쪽 모두가 전략적으로 지향하는 혁신의 목적지는 ‘독점’입니다. 독점은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 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계대상으로 다뤄져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관련 베스트셀러인 <제로투원(Zero to One)>의 저자 피터 틸은 이 부분을 지적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창조적 독점’입니다. 창조적 파괴 과정에서 언번들링과 리번들링이 자연스럽고 활발한 선순환의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독자분들은 어떤가요? 최근 급변하는 환경에서 당장 창조적인 독점에 기반한 언번들링 또는 리번들링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다면 본인의 현실 인식능력 또는 운영하거나 소속되어있는 기업의 경영 전략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본인과 기업이 그저 그런 존재로 서서히 시장에서 사라지길 원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롯데액셀러레이터의 투자본부장을 맡고 있다. 기술경영학(MOT)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벤처기업 CFO로도 활동했다. 벤처기업 투자활동과 더불어 스타트업의 혁신, 액셀러레이팅, 벤처투자에 대한 연구 및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