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을 만드는 기술 블록체인, 신뢰비용을 절감하다
수많은 관계기업이 얽히는 물류는 블록체인 활약하기 '딱 좋은' 산업
블록체인 확산 막는 '투명성'의 역설, 만병통치약 되기에는 아직
글. 엄지용 기자
머스크, 월마트, IBM. 국내의 현대상선, 삼성SDS까지. 쟁쟁한 물류, 유통, IT기업이 공급망관리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다고 하여 화제가 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물류산업의 디지털 전환의 핵심기술로 거론되기도 하는 블록체인이지만, 왠지 모르게 비판도 존재한다. 블록체인 물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장벽이 존재하며, 블록체인 실증사례라고 이야기 되는 것들 중에서는 극히 일부의 블록체인 기술만이 들어가 블록체인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것들도 많다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블록체인, 정말 물류산업을 뒤집을 수 있을까.
블록체인이 물류산업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끌 핵심기술로 거론된다. 쉽게 말해 블록체인은 물류와 공급망관리 분야에서 오랜 숙제로 거론된 ‘투명성’을 만드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한 기업들의 정보는 공개, 열람할 수 있으며, 쉽게 위변조할 수 없다. 즉, 공급망의 여러 관계자들을 거치는 과정이나, 중간자의 어떤 의도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왜곡을 막을 수 있다.
이영달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블록체인을 적용하여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기존 소진하던 총량 신뢰비용이 총량 운영비용보다 커야된다”며 “물류, 금융, 헬스케어, 에너지와 같은 산업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고, 향후 블록체인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진영 SK텔레콤 블록체인사업부장의 정의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디지털 세상을 넓히는 촉매다. 블록체인은 우리가 디지털 세상에서 무엇인가 거래하거나, 어떤 작업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구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우리가 했던 신뢰를 검증하는 작업들, 예컨대 무엇인가 증명하고, 원본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결국 블록체인으로 인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실물 거래의 폭은 훨씬 더 넓어지며, 산업간 영역 자체를 확산시킬 수 있다. 종국에는 국가간 경계도 없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특정 국가의 화폐, 그러니까 미국 달러나 중국의 위안화가 아니다. 암호화폐로 인한 거래가 활성화된다면, 환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거로움이나 비용 없이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화폐경제를 만들 수 있다.
이 부장은 블록체인을 간단히 ‘위변조가 불가능하게 저장된 분산장부’라 설명한다. 한 군데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군데에 나눠서 저장하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이다. 원본이나 사본의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분산돼 저장되고 공유되는 모든 데이터가 원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글로벌 물류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여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부장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원본 데이터를 동시에 가질 수 있기에, 무역거래를 함에 발생하는 계약서나 선하증권 원본이 이동하면서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라며 “모든 참가자가 가진 데이터가 원본임이 입증되고, 개별 참가자가 가진 데이터가 잘못되거나 변동이 되더라도 나머지 참가자에게 저장된 기록으로 자동으로 바뀌게 돼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유통되는 것”이라 말했다.
블록체인, 어렵지 않아요
이 부장에 따르면 블록체인이 기존 우리에게 익숙했던 업무 프로세스를 새롭게 통합(Integration)하는 개념은 아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상에 필요한 정보만 일부 취합하여 연결해서 쓸 수 있는, 그러니까 원장(Ledger) 공유를 통해 하나의 시스템처럼 사용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블록체인의 원리다.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정보가 필요한 사람의 업무나 환경에 맞춰 그것을 취하는 개념이다. 즉, 블록체인은 세상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는 기술이 아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디지털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는 개념이다.
토큰(Token) 경제라는 것이 있다. 이 부장에 따르면 토큰이란 거래정보에 붙은 태그와 같은 개념이다. 거래 내용을 식별해야 그것을 기반으로 거래가 될 수 있기에, 거래 하나하나에는 모두 토큰이 붙는다. 이 토큰을 가지고 스마트 계약(Contract)이 가능해진다. 조건에 맞는 자동 계약과 정산이 일어나기에, 모든 거래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이 부장은 “블록체인은 물류산업에 서로 주고받고 확인하는 것만으로 관련 서류가 공유되고, 정산이 되는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다”며 “다음 단계를 보자면 배송물품의 품질 관리는 물론, 배송기사와 같은 근무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성과가 좋은 근로자의 평가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블록체인을 통해 당장 쓰지 않는 운송수단, 물류센터의 빈 공간과 같은 자산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면, 좀 더 효율적인, 최적화된 솔루션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물류에 ‘딱’ 맞는 기술
장인수 삼성SDS 첼로플랫폼팀장(상무)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커진다. 그래서 물류와 SCM은 블록체인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는 게 장 상무의 의견이다.
가령 국제물류 프로세스만 보더라도 화주, 수입업체, 선사, 항공사, 터미널, 세관, 금융보험사 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기업과 기관이 서비스를 만드는 각 축을 담당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조달, 생산, 판매로 나뉘는 물류 프로세스의 각 과정을 ‘한 기업’만 맡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하나의 자동차를 만드는 데 2만 여개의 부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부품을 모두 한 기업이 만들고 있지 않다. 원청부터 시작해, 1차, 2차 하청, 그 다음 단계의 업체들까지. 수없이 많은 관계자들이 연결된다. 항만 터미널도 비슷하다. 현대상선, SM상선과 같은 선사들이 이용하는 터미널은 각각 다른데, 당연히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방법 또한 각각 달라진다.
혹자가 물류는 인류(人流)라는 이야기를 하듯, 수없이 연결된 기업 담당자간의 관계와 신뢰가 물류 서비스의 품질을 결정한다. 매우 까다로운 일이고, 그렇기에 블록체인 도입으로 인한 효과가 기대될 수 있다.
장 상무는 “삼성SDS가 참여하고 있는 블록체인 컨소시엄의 경우 현재 60여개 기업이 참가하고 있다”며 “블록체인의 특성상 참가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고는 덜어지고, 효과는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블록체인을 한다고 실질적인 운송 리드타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 ‘헤매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공급망 전체 관점에서 봤을 때는 운송시간이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모든 중간상을 사라지게 만드는 기술
머스크가 IBM과 함께 블록체인을 실험하고, 합작법인까지 만들 정도로 엄청난 투자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사와 화주 사이의 중간 다리를 놓아두던 포워딩 업체를 배제하고 화주와 금융사끼리 물류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아닐까.
블록체인은 종국에 물류산업 중간에 있는 중개상(Broker)을 사라지게 만들 기술이라는 데 업계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블록체인을 통해 기존 자본 없이 공급사슬 안의 여러 관계자들을 연결해주고, 서류작업을 대행해주던 포워더(Forwarder)나 화물운송 주선업자들이 필요 없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부장은 “블록체인으로 인해 물류나 무역거래에 있어 존재했던 은행과 같은 중간상들이 필요 없는 P2P 형태의 거래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당연히 우리가 기존 일하던 프로세스는 더 단순한 구성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상무는 “글로벌 선사 머스크가 엄청난 돈을 블록체인에 투하하는 이유는 중간상을 배제하기 위해서라 해석하고 있다”며 “물류업계 많은 이들이 블록체인 도입으로 인해 포워딩이라는 업태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확산을 막는 ‘투명성’
투명성은 블록체인이 만드는 가장 큰 가치다. 그러나 역으로 그 투명성이 블록체인 확산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기도 한다. 이 부장에 따르면 C레벨 경영진들에게 있어 블록체인 도입은 엄청난 도전이자 실험이다. 기존 영업기밀로 취급하며 꽁꽁 싸매고 있던 정보를 네트워크에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장 상무의 의견도 비슷하다. 장 상무에 따르면 물류 블록체인 활용의 전제는 ‘정보를 공개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기꺼이, 마치 ‘기부’하듯 내놓지 않으면 블록체인 물류의 활성화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장 상무는 “삼성SDS가 지난해 5월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시작하며 모인 15개 업체 관계자들도 (정보공유와 보안 문제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했다”며 “실제 블록체인 물류의 실효성에 의문점을 가진 실무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컨소시엄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과 참가기업 고위층부터 내려온 강력한 의지(Push) 때문”이라 설명했다. 결국, 물류와 같이 B2B 영역에서 블록체인을 이용한다면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만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할 것이고, 정보 공유와 보안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기존 인터페이스와 업무 방식을 활용할 것이라는 게 장 상무의 예측이다.
이 부장에 따르면 블록체인 참가자를 늘리고 자신의 정보를 올리게 만들기 위해서는 참가자에 대한 명확한 ‘보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안 되면 블록체인은 기존 시스템과 다를 바가 없다. 당연히 정보 제공에 대한 대가를 줘야 되고, 그 대가를 참가자들이 함께 누릴 수 있어야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풍부해지고 활성화될 수 있다. 이 부장은 “계속 자신의 것만 고집해서는 내가 바라보는 것에 시장을 국한시킬 수밖에 없다”며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나의 것’을 과감하게 배팅(betting)할 수 있는 변화관리가 일어나야 할 것”이라 말했다.
블록체인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항간에는 블록체인의 한계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현재 블록체인 기반의 실증연구가 사실 블록체인 없이도 구현 가능한 것들이며, 그 중에는 블록체인 특성을 살린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는 의견이다. 심지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선 ‘블록체인’을 빼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 부장은 “블록체인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블록체인으로 모든 것을 할 필요는 없다”며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면 먼저 기술 자체보다는 현재 업무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파악하고, 블록체인이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기존 우리가 편하게 잘 쓰고 있는 것들 중에서 아쉽거나, 어쩌면 없어져도 괜찮을 것들을 잘 찾아서 블록체인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그게 블록체인의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실제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다보면 개발자들이 ‘이게 무슨 블록체인이냐. 블록체인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금 블록체인은 기존 잘 정리돼 있는 레거시(Legacy)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는 황금률을 찾아내는 게 가장 큰 숙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 블록체인 물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규제’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현재 국내법은 국제물류 프로세스 상에서 블록체인에 담긴 정보를 진품으로 인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장 상무는 “블록체인 활성화를 위해서는 결국 물류법규가 바뀌어야 한다”며 “다행인 것은 관세청이 블록체인의 물류 도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 올해 시범사업을 하고자 하기에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