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 용처 밝혔지만, 신세계의 향후 온라인 전략 여전히 ‘물음표’
신세계로 통해 보는 국내 온라인 생태계는
▲ 서초동 드림플러스 지하1층 이벤트홀에서 열린 제1회 생활물류연구소
지난 1월 26일, 신세계가 온라인 통합 신규법인 출범과 함께 1조 원 규모의 투자유치 소식을 알렸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어피너티에퀴티파트너스, BRV캐피탈매니지먼트 등의 투자회사와 온라인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해당 투자 회사들은 신규 법인에 1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며, 신규 법인의 기업 가치는 4~6조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오프라인 전통강자인 신세계는 최근 몇 년간 온라인 사업을 향해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신세계몰과 이마트몰, 트레이더스몰 등 신세계 계열 각 유통사의 온라인 사이트를 통합한 쓱(SSG)닷컴을 론칭했고, 신세계 그룹의 온라인 사업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신세계의 공격적인 온라인 사업 확장이 예고되면서 ‘1조 원’ 투자 발표 당시 사용처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지난 3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해당 자금은 하남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구축하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 부회장의 발표가 있기 전 업계에서는 지난해 결렬됐던 SK플래닛의 오픈마켓 11번가 M&A설이나 신선식품 스타트업 ‘마켓컬리’의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지난 2월, 본지는 ‘신세계 1조 원 투자의 용처’를 주제로 자유 대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유통’, ‘ICT’, ‘물류’를 대표하는 입이 근질근질한 3명(원래 4명이었는데, 자세한 사연은 생략한다.)의 자유로운 영혼이 모였다.
대형마트(롯데마트), 홈쇼핑(GS홈쇼핑), 오픈마켓(11번가), 소셜커머스(위메프) 등 유통 4관왕을 거쳐 물류판에 들어온 박성의 전 원더스 CMO, 이코노믹리뷰에서 잡썰매체 IT깡패를 맡고 있는 IT판의 전투민족 최진홍 ICT취재부장, 그리고 CLO에서 얼굴을 맡고 있는 김철민 편집장이 대담의 주인공이었다.
찌라시부터 기사화되지 못하는 별별 이야기까지. 조금은 막 나가는, 대담했던 대담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1조 원의 용처는 이미 밝혀졌지만, 전통 유통업체가 바라보는 온라인 시장과 신세계가 온라인 전략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는 물류 전략을 추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본다.
썰1. 1조 원의 의미
김철민: 신세계가 투자 받은 1조 원의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과연 신세계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박성의: 먼저 1조 원이라는 액수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1조 원이라는 돈이 개인에게는 엄청난 돈이지만, 회사 차원에서 보면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2016년 이커머스 업계에서 공식 마케팅 비용으로 가장 많은 돈을 쓴 회사는 11번가였다. 11번가는 당해 마케팅 비용으로 5,000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쏟아 부었는데, 그로 인해 매출액은 2조 원 정도 증가한 약 9조 원을 기록했지만, 흑자를 달성하지 못했다. G마켓, 옥션, G9를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약 14조)와 비교하면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현재 신세계의 모든 이커머스 사업부의 매출을 합하면 약 2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위메프의 연매출은 3조 원 정도로, 신세계가 1조 원을 전부 투자한다고 해도 이커머스 업계에서 볼륨 있는 사업자는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현재 신세계가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프라인과 연계된 O2O, 혹은 옴니채널 전략이다. 개인적으로 오프라인과 연계하여 고객을 끌어들일 새로운 비즈니스를 펼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선식품’이라던가.
최진홍: 신세계가 1조 원의 자금을 움직인다고 했을 때, 기자들은 먼저 ‘정용진’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화려하면서도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다. 국내 일반적인 ‘재벌가 오너’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정 부회장이 비교적 혁신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모든 기업에는 자사만의 정체성이 있다. 오너가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끈다 해도, 조직 자체가 가진 DNA가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는 이제껏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움직인 전통 유통기업이고, 따라서 오프라인 역량을 중심으로 온라인의 접점을 확보할 확률이 높다.
이런 전략은 미국의 아마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는 데이터에 기반한 ICT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출발했고, 현재는 종합 IT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업체들이다. 아마존과 알리바바 모두 ‘클라우드’ 사업을 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태생이 IT소프트웨어 업체인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종합적인 IT역량을 가져가기 위해 오프라인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기업은, 새로 성장하는 IT기업을 견제하는 수준의 전략을 내놓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프라인 기업이 온라인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프라인 성장에 기대어 단순한 ‘대응’ 이상의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세계가 오프라인과 이커머스를 연계하는 전략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쉽게 긍정하기 힘들다.
썰2. M&A 하긴 합니까?
김철민: 사실 신세계의 변화는 7년 전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이전까지 신세계는 자산관리 차원에서 인프라에 관심을 가졌다면, 최근에는 시스템 통합 부문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켓컬리는 이런 신세계의 변화 속에서 M&A 후보로 거론된 업체다. 정 부회장과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의 접점은 ‘오카도’에서 찾을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영국의 온라인 식품업체 오카도의 물류센터를 벤치마킹하여 지금의 신세계 물류자동화 센터 네오(NE.O)를 기획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일전에 M&A와 관련해 정 부회장이 “나는 회사가 아닌 소비자를 사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마트, 트레이더스, 신세계, SSG닷컴 모두 주요 소비자층이 다르다. 신세계의 11번가와 마켓컬리 인수설 역시 이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에, 현재 IPO를 준비하는 마켓컬리 입장에서는 흥행요소가 필요하다. 신세계는 마켓컬리에게 호재다.
신세계의 미래는 정 부회장의 마음속에 있고, 그 계획을 전부 짐작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할 수 있는 점은, 신세계가 인수 대상으로 바라보는 업체가 있다면 풀필먼트(Fulfillment), 라스트마일 딜리버리(Last-mile Delivery), 데이터 기반의 결제정보 업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이커머스에서는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이들을 어떻게 묶어나갈지 신세계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 김철민 CLO 편집장
박성의: 신선식품은 온라인 반복구매율이 가장 높은 부문이면서 동시에 온라인 침투율이 가장 낮은 부문이다. 신선식품만이 거의 유일하게 온라인 영역에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여전히 90%의 식품 소비는 오프라인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나머지 10% 역시 오프라인에 기반한 업체의 온라인몰에서 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신선식품 영역이 투자 대비 실질적인 효율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마켓컬리는 해당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업체 중 하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신세계가 마켓컬리를 인수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신세계의 쓱닷컴은 신선식품과 관련해 마트, 프리미엄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신세계의 MD 역량은 업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게 평가 받는다.
확실한 물량베이스를 확보할 수 있는 신세계의 내부 역량만으로도 웹 개편뿐만 아니라 쓱의 신선식품 부문 투자가 가능하다. 새벽배송의 경우, 최근 새벽배송을 대행하는 외주업체는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비용을 들여 마켓컬리를 인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
최진홍: 이커머스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출이다. 그리고 투자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한 회사가 최대한 이익을 내는 것이다. 매출은 크지만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 이커머스가 투자회사들로부터 1조 원이라는 투자액을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 하나는 투자자를 회유하기 위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신기술의 활용을 보증하는 것이다. 가령 고객의 니즈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상품을 정확하게 제안할 수만 있다면, 반품 최소화를 통해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IT영역을 포함한 이커머스 업계에서 데이터는 굉장히 중요하다. 신세계의 11번가 인수가 불발되고 난 뒤, SKT 측은 데이터를 이유로 11번가를 매각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일이 끝나고 난 뒤 후속조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데이터는 중요하다.
물론 이것이 하나의 가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세계가 이커머스 시장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위한 방법으로 데이터 처리 및 관리 기술을 도입한다면 그것이 효과적일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는 것이다.
▲ 최진홍 이코노믹리뷰 ICT취재부장
썰3.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넘본다고?
박성의: 국내에는 매출규모 조 단위의 이커머스 업체가 많다. 롯데만 해도 롯데닷컴, 롯데홈쇼핑, 롯데마트몰, 롯데백화점몰 등이 매출 1조 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고, 그에 따라 내부통합에 대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온라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소극적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명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 매출은 9월 정도가 되면 1조 원이 넘어간다. 웬만한 이커머스 업체의 연매출 규모를 뛰어넘는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도 이커머스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통 오프라인 유통업체에게 이커머스는 ‘크고 좋지만, 적자나는 것’일 뿐이다. 온라인을 오프라인 상품을 배송해주는 창구로만 보는 것이다.
이마트가 잘 하는 것 중 하나는 자사의 유통플랫폼에 고객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는 점이다. 특히 이마트는 이전부터 어린이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딩 작업을 계속해 왔다. 또한, 이마트, 트레이더스, 하남 스타필드 등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최진홍: 아마존은 미국 시애틀에서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 중이다.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내가 아바타가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보통 서점과 달리 아마존 서점은 제목만 볼 수 있는 진열이 아닌 정면 표지가 진열되어 있어 인터넷에서 쇼핑할 때 책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성공은 이런 디테일에 있다. 사용자를 자신의 생태계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자연스럽게 길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디테일한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 유통기업이 제공할 수 있을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커머스의 거래는 온라인에서 일어나지만, 결국 이 매매 행위는 모두 다 ‘사람’이 한다는 점이다. 관계나 사용자 경험이라는 말이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을 들여 브랜딩을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온라인에서도 제대로 승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신선식품을 품는다는 것은, 주기적인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고려한 전략이 나오길 기대한다.
썰4. 물류가 고객 잡는 열쇠?
박성의: 유통업체에서 PB 상품을 만드는 이유는 한 가지다. 고객만족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사 판매 물량을 구실로 납품 업체와의 단가 협상력을 높이는 데 있다.
물류 부문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물량을 가진 신세계는 창고나 배송업체들과 연합(얼라이언스)을 구성할 수 있다. 현재 신세계는 물류스타트업과 대형 택배사 모두에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신세계가 다른 부문보다 특히 ‘물류’에 있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 박성의 원더스 전 CMO
김철민: 신세계가 온라인 전략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물류를 어떻게 수행해 나갈지 궁금증이 모이고 있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2006년 신세계는 세덱스(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의 택배업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본사와 영업소 사이의 마찰, 그로 인한 배송 서비스 저하와 낮은 수익성 등으로 인해 세덱스는 2년 만에 한진에 매각됐다. 그 과정에서 한진은 신세계 물량을 장기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신세계의 물류역량은 현저히 떨어졌다. 현재 신세계의 물류는 ‘이마트 물류’와 ‘이마트가 아닌 물류’만이 존재한다. 즉, 통합물류가 없다. 이에 따라 과거 로젠, KGB택배와 같은 업체가 인수 대상으로 올랐지만, 해당 업체들의 실적 문제로 이뤄지진 않았다.
신세계의 택배부문 인수설은 아직까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택배사 인수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기존의 택배 서비스는 규모의 경제에 따라 운영된다. 아무리 빨라도 배송까지 무조건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최근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빠른 배송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상품을 배송해주는 ‘가치배송’이 각광받고 있다. 이제 이커머스 업체는 당일배송부터 새벽배송까지 다양한 옵션의 배송전략이 필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택배회사를 인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오히려 탄력적으로 다양한 배송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대형 택배사 인수보다는 연합군을 만들어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배송을 실현하고, 소비자를 신세계의 생태계에 묶어 놓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때다. 바로 ‘물류’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