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농장 이력관리... '데이터'로 해결한다
스마트팜의 실마리, IoT 기술 적용으로 푼다
스마트팜 열풍 속에서 소외된 곳이 하나 있었으니 ‘축사’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키우는 원예농가와 달리 움직이는 동물의 행동양상, 변화를 ‘데이터화’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팜 솔루션’을 제안한 업체가 있다. 축사의 스마트화가 왜 어려운지, 그리고 기술이 어떻게 스마트한 축사를 만드는지. 기술이 적용된 돼지농장에 직접 방문했다.
# 전라남도 해남에서 우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씨는 네덜란드 여행 중 알람을 받았다. 우사의 소들이 먹을 사료가 다 떨어져 5톤 분량의 사료를 자동으로 주문했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우사를 운영하는 농장주에게 있어 장기간 해외여행은 불가능한 꿈이었다. 하루 24시간 우사에 달라붙어 온·습도는 적당한지, 환기는 잘 되는지, 소들이 물과 사료는 잘 먹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달랐다. ‘스마트팜(Smart Farm)’ 덕분이다.
‘스마트팜’이 축산업계에 새바람을 불어올지 주목받는다. 삼정KPMG에서 발간한 <스마트팜이 이끌 미래농업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팜 시장은 2012년 1,198억 달러에서 2016년 1,974억 달러까지 성장하였다. 이는 연평균 13.3% 성장률을 기록한 수치다.
해외 스마트팜 기업들은 첨단분석 기술 및 로봇 기술 등을 활용하여 품질 및 생산성 향상에 힘쓰고 있다. 덴마크의 ‘호센스 도축장’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약 100년 전부터 생산라인의 자동화를 연구해왔으며 계류장 시설의 자동화 시설을 완비했다. 국내 스마트팜 시장의 전망 역시 밝다. 같은 보고서에서 국내 스마트팜 시장은 2012년 2조 4,295억 원에서 연평균 14.5% 성장하며 2016년 4조 1,699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껏 국내 스마트팜 분야의 발전은 주로 원예농가에 치중돼 있었다. 기존 스마트팜 시스템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기후별 온도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조량 조절을 위한 자동 비닐하우스 천장계패, 동절기 냉해 방지를 위한 보일러 원격가동 등이 원예농가에 적용된 대표적인 스마트팜 기술이다.
축사는 아니었다. 식물을 제배하는 원예농가와 달리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는 축사 특성상 동물의 움직임, 변화, 행동양상을 데이터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2013년 스마트팜이 처음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연구개발, 산업 생태계 조성 등의 내용을 포함한 ‘농식품 ICT 융복합 확산 대책’이 마련됐지만 축산업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스마트팜 구축을 위한 표준 매뉴얼이 부재하기도 했다. 농장주는 다양한 회사의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했다. 농장주가 각각의 시스템을 개별 관리해야하는 것은 또 다른 번거로움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마트팜 통합시스템’을 들고 나온 업체가 있다. 2015년 설립한 기술 스타트업 ‘인프로’다. 인프로가 내세우는 무기는 축사에 설치할 수 있는 사료관리 플랫폼과, 사물인터넷 통합플랫폼, 그리고 ‘스마트 저울’이다.
▲인프로가 제시한 사물인터넷 기반 사료관리 솔루션 모형도
“재고가 안 맞는데요?”
인프로가 해결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문제는 ‘재고관리’다. 업계에서 물류 및 SCM 관리자의 고통을 유발하는 고질적인 문제인 그 ‘재고관리’ 맞다. 전산상의 재고와 실제 존재하는 재고간의 차이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물류학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실물일치’*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실제 존재하는 데이터를 전산상의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을 ‘사람’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기에 그 과정에서 실수와 누락은 당연히 나타난다. 이렇게 발생하는 데이터의 불일치가 공급망을 거치면서 점점 심화되는 게 그 유명한 ‘채찍효과’**다.
축산업계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축사 운영비의 70%를 차지하는 것은 사료의 비용이다. 축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보통 하나의 축사가 매주 5~7톤의 사료를 주문한다. ‘어림잡아서’ 말이다. 사람이 어림잡아 주문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는 왜곡되고, 실제 도착하는 사료량과는 100kg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사료 공급 누락은 가축의 성장에도 영향을 준다. 이렇게 발생하는 손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년에 통상 2,000만 원 이상의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인프로의 스마트저울은 기술을 통해 재고관리 문제에 해법을 제시한다. 사료빈(자동 급이기)*에 ‘인프로 IoT 저울 센서’를 부착하면 중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무게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 그 정보는 자체 서버에 전송돼 ‘데이터’로 전환된다. 이로 인해 농장주는 실시간으로 실물사료의 재고를 파악할 수 있고, 기록된 데이터를 통해 주문을 할 수 있다.
▲거대한 사료통(사진 왼쪽)의 기둥 4개에 각각 스마트저울(사진 오른쪽)이 붙어있다. 4개의 저울을 통해 측정되는 중량을 합산해 전체 중량을 측정한다. 저울 설치를 위해 별도 바닥 공사비용이 들지 않는 게 장점이다.
이 데이터는 농가뿐만 아니라 사료회사까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료회사는 지금껏 주문과 동시에 생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료에 함유된 ‘수분’* 때문에 사료를 저장할 수 있는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 최대한 맞춰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남겨지는 ‘재고’는 비용으로 산화한다. 만약 사전에 사료 수요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생산계획에 반영할 수 있다.
▲인프로가 자체개발한 ‘우리농장’ 어플리케이션. 농장주는 우리농장을 통해 ‘급이량’, ‘음수량’, ‘온습도’, ‘환풍기 작동 유무’, ‘CCTV’ 등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개체관리 솔루션까지... ‘스마트 축사’ 가보니
경상남도 거창에 소재한 ‘더불어행복한농장’은 인프로의 스마트 솔루션이 가장 먼저 도입된 곳이다. 더불어행복한농장은 최근 인프로의 ‘개체관리’ 솔루션을 도입했다. RFID 기술 스타트업 ‘라이엇’과 협업을 통해서다. 더불어행복한농장에서 키우는 돼지의 귀에 장착된 라이엇의 RFID는 인프로의 스마트 저울에 부착된 센서와 반응하여 특정개체의 급이 여부를 파악해준다. 여기서 쌓인 데이터는 농장주에게 전송된다.
▲더불어행복한 농장은 거창에서 첫 번째(국내 돈사 중 12번째)로 동물복지농장에 선정됐다. 축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영복을 착용하여 소독기를 거쳐야 하기도 한다.
만약 특정 돼지가 급이를 하지 않는 등의 이상이 감지될 경우 RFID에 부착된 LED 태그를 통해 해당 개체를 축사 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술을 도입하기 전에는 각 돼지의 인식번호를 수첩에 적어, 바코드를 통해 일일이 확인했는데, 이에 비하면 시간과 노동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이 솔루션으로 질병감염이나 낮은 서열로 도태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돼지를 징후가 발생하기 전에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돼지가 각각의 장치 안에서 자동급이기에서 지급되는 사료를 먹고 있다. 이 움직임을 확인해 각 개체가 급이를 하였는지 기록된다. 음수 역시 같은 방법으로 관리된다
김문조 더불어행복한농장 대표는 “스마트팜 솔루션을 도입한 농장의 돼지를 기존 농장의 돼지와 비교해봤을 때 수치만 봐도 품질 차이가 분명하다”며 “돼지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소비되는, 그러니까 1kg의 무게를 만들어내는 사료량부터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돼지는 지능이 높은 동물이기 때문에 급이나 음수에 있어 매우 정밀한 관리가 필요한 동물”이라며 “(인프로가 개발한) 우리농장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기존에는 어려웠던 정밀 관리와 데이터 축적이 가능해졌기에, 이를 잘 분석하고 활용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돼지는 가축 중에서도 특히 사육하기 까다로운 동물로 꼽힌다. 돼지는 탄생에서 출하까지 지속적으로 돈사를 이동한다. 돼지가 태어나 젖을 뗄 정도로 자라면 ‘이유돈사’로 보내져 사육된다. 이곳에서 3주가 지나 일정 증량 이상이 되면 ‘비육돈사’로 넘어간다. 이처럼 이동하는 많은 돼지를 일일이 이력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돼지의 높은 지능도 사육이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돼지의 IQ는 75-85로 가축화된 동물 중 가장 높다. 돼지는 분뇨를 배출하는 공간과 자는 공간을 구분한다. 또한, 사료가 충분히 공급된다는 것을 학습하면 다른 개체가 사료를 섭취하고 있는 것을 인지해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릴 수 있다. 이런 돼지의 움직임은 정형화되지 않아 예측이 어렵고, 그렇기에 관리는 어렵다. 각각의 돼지들이 할당된 식사량을 잘 먹었는지, 물은 마셨는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이력제의 실마리, ‘데이터’
스마트팜은 유명무실한 ‘돼지고기 이력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부터 돼지고기 이력제를 시작했지만, 실상 이력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탄생부터 도축까지 평균 6개월의 짧은 주기(소의 경우 3년)를 가진 돼지이기에 산발적인 이력 관리가 번거롭다는 게 그 이유로 꼽힌다. ‘언제, 어떤 농장에서 몇 마리의 돼지가 출하됐다’ 정도의 정보 외에는 관련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어렵다.
이런 문제 역시 인프로의 우리농장 솔루션을 적용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인프로의 솔루션은 ‘개체’별 데이터 관리를 통해 백신접종, 생산주차, 가계관리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문조 대표는 “(스마트팜 기술로) 향후 4~5년 안에는 제대로 된 돼지고기 이력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미래 식량안보에 있어 중요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최승혁 인프로 대표는 “인프로가 개발한 우리농장은 온습도나 환풍기 개폐기 등 환경적인 요소 조작에 국한되어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기반의 물자관리와 개체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국내 유일 데이터 기반 ICT 스마트팜 플랫폼”이라며 “농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상품 가치 증대를 통한 수출 확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서비스를 발전시킬 계획”이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