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편의점보다 창업 투자자본 적고, 매장 관리 용이해
낮은 마진율, 높은 손실률, 비효율적인 물류망 등 숙제 산적
무인편의점과 함께 중국의 무인유통을 이끌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무인가판대다. 무인편의점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무인가판대는 규모와 매출 면에서 무인편의점보다 작지만, 관리 편의성과 확장성이 높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중국의 무인가판대는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한국에서 무인가판대라고 하면, 주로 개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한적한 장소에 있는 작은 매대에 제철 과일이나 야채 등이 놓여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길을 지나가던 손님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양심적으로’ 돈을 낸다. 물론 대부분 카드 결제는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중국의 무인가판대는 편의점의 축소판이다. 2평 남직한 공간에 2미터 너비의 가판대를 놓으면 바로 운영이 가능하다. 구비한 상품의 경우, 간식이나 음료수 등 SKU 기준으로 100여 개가 채 되지 않는다. 타깃층도 비교적 확실하다. 중국에서 무인가판대는 주로 사무공간이 밀집된 곳에 인오피스(In-offece) 형태로 입점하는 경우가 대분이다. 자판기와 편의점의 중간 단계에서 어엿한 하나의 유통채널로 자리 잡은 것이다.
소비자는 가판대에서 상온 상품을 집거나 음료수의 경우, 냉장고의 문을 QR코드로 열어 상품을 꺼낸다. 이후 휴대폰으로 결제한다. 현재 중국의 무인가판대에 활용되는 기술은 크게 RFID, 이미징 인식, 자동 무게측정 기술, 변위(位移) 기술 등 크게 네 가지다. 그중 RFID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개발이 어렵지 않은데다, 현재 시중에 있는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한 가판대에서 파는 제품에 붙어 있는 RFID 태그(사진: TechWeb)
유통업체 아닌 이들까지 뛰어드는 시장
현지 업계에서는 작년 이후 현재까지 최소 50개 이상의 무인가판대 업체가 무인유통 시장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상상업연구원(中商商业研究员)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이미 16개의 무인가판대 업체가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그 규모는 25억 위안(한화 약 4245억 원)에 이른다.
무인판매 모델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계기 역시 무인편의점의 경우와 비슷하다. 알리바바, 텐센트, 징동(京东), 쑤닝(苏宁) 등 IT 및 유통 대기업의 투자가 일어나고 난 뒤부터다.
작년 12월 말, 중국 신선식품 전자상거래업체 메이르요셴(每日优鲜)이 무인가판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히며 해당 사업부문을 자회사 하여 ‘메이르요셴볜리거우(每日优鲜便利购)’를 출범시켰다. 메이르요셴은 '텐센트 계열'로 분류되고 있으며, 2015년 이후 텐센트가 3차례 투자한 업체로 알려져 있다.
▲ 메이르요셴볜리거우(每日优鲜便利购) 매대 모습
이후 메이르요셴볜리거우는 시리즈A, B를 합해 총 2억 달러 규모의 투자액을 유치했다. 시리즈A 투자에는 텐센트와 함께 3개의 투자기관이 참여했는데, 5300만 달러의 투자액 중 텐센트의 출자비율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7월 텐센트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위챗페이(Wechat Pay)와 합작을 발표하며, 텐센트와 무인유통 관련 합작 계약을 체결한 첫 번째 회사가 됐다.
같은 달, 중국 대형 가전기업 메이디(美的)그룹은 알리바바와 합작해 무인가판대 ‘샤오마이구이(小卖柜)’를 론칭했다. 지난해 11월, 징동은 자사 계열사인 생활 O2O 플랫폼 징동따오지아(京东到家)와 무인유통 연구부문 등이 합작해 만든 '징동따오지아GO(京东到家GO)'를 론칭했다. 쑤닝은 자사의 O2O매장 쑤닝샤오뎬(苏宁小店)의 물류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무인가판대 서비스 '쑤닝샤오뎬Biu(苏宁小店Biu)'를 론칭했다.
▲ 2017년 하반기 주요 무인가판대 업체 투자 유치 현황(자료: 췐징왕(全景网))
재미있는 점은 유통업체가 아닌 이들도 무인판매 영역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인중국 통신업체 치타모바일(CheetahMobile, 猎豹移动)은 작년 11월 ‘치타편의점(猎便利)’을 론칭해 운영 중이다.
자사가 구축한 물류망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택배업체들도 무인가판대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택배업체 슌펑(顺丰) 역시 작년 11월 말부터 무인가판대 ‘펑e주슬(丰e足食)’의 정식 운영에 돌입했다. 중국 6대 민영 택배기업 중 하나인 중통(中通)도 이달 무인가판대를 론칭했다.
▲ 한 고객이 슌펑의 무인가판대 펑이주슬(丰e足食)에서 상품을 결제하는 모습. 슌펑은 션전(深圳)에서 시범 운영을 진행한 바 있다. 펑이주슬은 샤오거(小哥, 작은 형)라고 불리는 슌펑의 택배기사가 관리한다.
택배업체가 무인가판대 영역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는 택배 거점으로 활용되는 영업소(대리점)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다. 중국의 택배업체는 전자상거래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다. 하지만 최근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택배사의 처리물량 역시 증가 속도가 더뎌졌다. 여기에 대형 브랜드 제조업체들이 택배 영업소가 아닌 자사 공장 혹은 물류창고에서 바로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영업소로 들어오는 물량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주로 사무공간이 밀집된 건물이나 오피스텔 빌딩에 자리 잡고 있는 택배 영업소는 인오피스 형태의 무인가판대 판매망을 구축하기에 유리하다.
쉬운 만큼 어렵다, 무인가판대가 넘어야 할 산은
이렇듯 활발한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지만, 무인가판대 시장 역시 무인편의점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경쟁과 낮은 마진율로 인해 모든 업체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상태다. 실제로 무인가판대 업계에서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이들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하나의 무인가판대에 드는 초기자본은 1000~1500위안(한화 약 17~25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가판대와 각종 설비가 300~400위안, 구비하는 상품의 가격이 600위안, 회사에게 내는 관리비가 100위안 정도다. 물류비와, 상품 손실비용을 제외했을 때, 하나의 무인가판대의 매출은 하루 평균 150위안(한화 약 2만 5000원) 정도로 파악된다. 또한, 무인가판대의 순이익률은 매출의 3%이므로, 무인가판대의 하루 순이익은 4.5위안(한화 약 760원) 정도다. 1000위안을 투자해 사업을 시작했다면, 222일이 지나서야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
제품 손실률이 비교적 높다는 것도 문제다. 무인가판대의 경우, 각종 보안장치와 출입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편의점, 돈을 넣어야만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자판기보다 손실률이 높은 편이다. 특히 상온 매대에 있는 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악의적인 마음으로 RFID태그를 제거하고 들고 간다고 해도 실시간으로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현지 매체의 보도나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무인가판대의 상품 손·망실률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까지로 추정된다.
이렇듯 운영상의 어려움은 무인가판대 업체의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치즐카오라(七只考拉)가 물류와 창고 부분의 인원을 제외한 90%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치즐카오라는 작년 2월 설립되어 5000만 위안(한화 약 85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업체였다. 이런 치즐카오라의 행보에 현지 업계는 사실상 업무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같은 달 싱볜리(猩便利) 역시 BD(Business Development) 부문의 인원 중 60%를 정리할 것이라 발표했다. 싱볜리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천 개의 가판대”를 콘셉트로 하여, ‘매일 상품 보충하고, 매주 신상품을 론칭’하는 전략으로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기본 상품뿐만 아니라 수입품, 온라인 인기 상품을 판매하면서 소비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새로운 가판대가 늘어나는 것을 물류 부문이 감당하지 못했다. 자가 물류망을 구축했지만, 전자상거래 업종 출신이 많은 싱폔리의 조직구조 상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했고, 상품 공급에 차질이 일어나면서 고객 경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물류 부문을 아웃소싱했지만, 효과는 미진한 상태다.
▲ 사무공간에 위치한 싱볜리(猩便利)의 무인가판대
이렇듯 낮은 마진율과 심해지는 경쟁 속에서 현지 업계 전문가들은 상품 구성을 다양화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빵이나 음료 외에도 과일, 야채 등 비교적 마진율이 높은 신선식품을 팔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역시 성공의 전제조건은 효율적인 물류망 구축과 공급망 관리 능력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다. 중국의 무인가판대 시장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과연 무인가판대가 중국 무인유통의 대표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