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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만 10시간…설 선물, 이렇게 배송됩니다

by 김동준 기자

2018년 02월 13일

 

글. 김동준 기자

 

“10분 만에 오실 수 있죠? 못 오시면 사람 없어요”

 

수화기 너머로 설 선물세트 배송을 기다리는 고객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배송을 담당하는 기사는 한 손으론 운전대를, 다른 손으론 운송장을 쥐고 있다. 동시에 운송장에 나와 있는 주소지와 눈 앞 아파트 단지가 동일한 곳인지 확인한다. 내비게이션에서는 100m 앞에서 좌회전을 하라는 안내 음성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따른 농축수산품 선물 가액을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완화했다. 이에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의 선물세트 매출은 약 30% 전후로 늘었다. 명절에 늘상 받아오던 선물세트. 과연 어떻게 배송될까?

 

몰아닥쳤던 한파가 잠시 주춤해진 지난 9일, 설 선물세트 배송보조원 아르바이트 체험을 위해 롯데백화점 분당 물류센터를 방문했다. 오전 7시 물류센터 앞에 도착하자 가로등 불이 일제히 소등됐다. 흐린 날씨 탓인지 주변은 어둠이 깔려 있었지만 물류센터 앞에는 배송을 기다리는 배송트럭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물류센터에 도착했을 때 선물세트는 차량에 상차가 거의 완료된 상태였다. 물류센터 직원들은 배송지역별로 분류된 차량에 실린 선물세트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물세트와 운송장에 적힌 물품명, 물품코드를 육안으로 대조해 이상이 없는 배송트럭은 대기행렬에 합류했다. 선물세트는 고가의 육류와 과일류 등 신신석품이 다수를 차지했다.

 

▲선물세트 배송을 앞두고 배송 물량과 운송장 대조 작업이 한창인 물류센터 앞. 오전 7시에 도착했지만 이미 선물세트 상차 작업은 완료된 상태였다.

 

물류센터 내부로 향하는 길에 만난 인력업체 관계자는 대기실 위치를 알려준 뒤 배송 간 착용할 명찰과 아르바이트 지원서를 배부했다. 대기실에는 이미 30여명의 아르바이트 지원자가 몰려 있었다.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간혹 여성 지원자들도 눈에 띄었다. 이 곳에서 만난 이 모씨(서울 관악구・26)는 “힘든 일이지만, 배송트럭 기사와 케미만 잘 맞으면 일이 빨리 끝날 수도 있어서인지 여성도 많이 지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비스가 생명인 백화점 특성 때문인지 본사 측에서 나온 직원에 의한 서비스 교육이 이뤄졌다. 특히 배송 1시간 전에는 고객에게 무조건 ‘방문콜’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객 응대 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정형화 된 멘트와 서비스정신도 교육 내용에 포함됐다. 여성 아르바이트 직원이 있어서인지 성폭력 대응 교육도 있었다.

 

이후 배송 과정에서 활용해야 하는 전산 시스템에 대한 교육이 실시됐다. 핸드폰을 이용해 금일 배정받은 차량이 배송해야하는 물량의 세부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교육 내용의 골자였다. 배송지 주소, 배송받을 고객의 연락처 등 전산 시스템 내 정보를 바탕으로 배송을 할 수 있었다. 교육을 진행하던 담당자는 “배송 이후 고객에게 서명을 받으면 내부망을 통해 전산으로 처리 된다”고 말했다.

 

교육 뒤에는 물류센터 앞에 설치된 간이천막에서 롯데백화점 배송보조원 조끼와 수건, 빵, 물, 가글 등이 들어있는 물품세트를 받았다. 동시에 배송에 나설 차량과 기사도 배정됐다. 배정받은 차량은 총 42건의 선물세트 배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날 배송에 나선 차량은 총 166대. 각 배송트럭 별 최소 33건에서 최대 45건의 물량을 처리해야 했다. 즉, 분당 물류센터에서 소화하는 선물세트는 일일 6,000건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오전 8시 반을 넘겨서야 출발한 배송트럭 기사 정 모씨(서울・50대)는 이미 배송할 주소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둔 상태였다. 정 씨는 “운송장을 정리하고 미리 주소지를 입력해두지 않으면 배송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가까이 붙어있는 아파트의 경우엔 동선을 잘 짜야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우체부는 “젊은 사람이 고생 많으십니다”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힘든 배송현장에서도 ‘정’은 있었다.

 

배송 현장에서 배송기사와 배송보조원은 각각의 역할이 나눠졌다. 배송기사는 배송지와 가장 가까운 곳 까지 차량을 운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배송보조원은 배송지 방문에 앞서 방문콜을 하고, 이후 고객에게 선물세트를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배송 과정에 있어 방문콜을 한 뒤 직접 배송지를 방문한다는 점은 통상의 택배가 가지는 프로세스와 큰 차이점이 없어 보였다. 다만 일반 택배와 달리 고객이 부재할 시 경비실이나 집 앞에 배송품을 둘 수 없었다. 고객의 요청이 완강할 경우엔 예외적인 경우를 적용할 순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직접 배송이 원칙이다. 신선식품이 다수인 선물세트 특성 상 상품의 변질이나 선도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내비게이션 기준 도착 1시간 전부터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객으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였다. 간혹 빠른 배송을 재촉하는 고객도 있었고, 전화 자체를 안 받는 고객도 일부 존재했다. 해당 경우에도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일일이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배송지 앞에 도착하면 차량에서 신속히 하차해 운송장과 짐칸에 실린 선물세트의 상품명, 상품 코드를 확인했다. 이어 운송장과 선물세트를 들고 고객의 집 앞으로 향했다. 배송이 이뤄지면 핸드폰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으로 고객의 서명을 받았다.

 

아파트단지 4개 분량의 배송을 마친 시점. 시계는 이미 1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점심식사를 할 짬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배송에 앞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던 고객들의 배송 요청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결국 점심은 차 안에서 빵과 물로 해결했다.

 

배송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주로 오전에는 배송지 여러 개가 몰려 있는 아파트 단지 위주로 물량을 처리했고, 오후에는 단독주택이나 빌라, 상가 등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는 배송지를 공략했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주소가 명확해 업무가 비교적 쉬웠다. 또한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아파트에 설치된 1층 인터폰을 통해 고객 부재 유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독주택이나 빌라로 배송되는 선물의 경우 주소지 지번만 운송장에 기록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층 구분이 어려워 배송지 앞에 와서도 전화로 재차 확인하는 수고가 따랐다. 배송이 힘들어지려는 찰나 정 씨는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배송물량이 많았다”며 “그 때는 화장실 가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배송 당일 이용했던 한 아파트단지 경비실 내 화장실. 택배기사나 선물세트 배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주로 급한 용무를 해결하는 곳이다.

 

결국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42개의 배송지를 모두 방문했다. 총 42건 가운데 20건 배송을 완료했고, 고객의 요청에 의해 7건은 경비실에 맡겼다. 나머지 15건은 고객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추후 배송을 원하는 경우였다.

 

배송을 마친 차량은 남은 선물세트 물량을 싣고 지하철 2호선 용두역 근처에 위치한 집결지로 향했다. 이 곳에선 배송하지 못한 선물세트 수량을 확인하고 반납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배송업무가 완료되는 데로 남은 선물세트를 취합해 다시 분당 물류센터로 옮길 예정이라고 집결지 측 관계자는 전했다.

 

선물세트 물량과 남은 운송장을 대조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자 배부받은 수건과 조끼 등을 반납했다. 이어 퇴근기록부에 사인을 한 뒤에야 퇴근해도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퇴근하면서 바라본 해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돼서야 설렁탕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배송에 앞서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객 중 한명이었다. 지금 당장 배송해달라고 화를 내는 고객을 향해 욱하는 성질을 죽이며 말했다. “고객님, 선물세트는 내일 다시 배송될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준 기자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정치부/산업부 기자로도 일했다. 지금은 CLO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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