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부는 '불평등'의 바람, 저임노동과 부의 편중 확산 논란
스타트업이 문제를 야기하는가, 창업과 불평등의 상관관계
창업제한은 답이 될 수 없기에... 창의적 규제 개선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 노력 필요
글. 김도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빠르게 성장하는 실리콘벨리의 기업들이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우버와 리프트의 운전자들이 저임노동으로 생활을 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차에서 생활한다는 등의 내용이 외신을 통해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다. 정말 스타트업이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일까. 몇 가지 연구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주가를 보고 있을 때, 혹은 유니콘 기업들의 대규모 펀딩 소식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떠신지요? 세상의 변화를 흐뭇한 마음으로 느끼십니까? 혹시 아 주식 좀 사놓을 걸, 혹은 저 회사에서 일했더라면 삶이 달라졌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실리콘 밸리의 눈부신 성취에 대해서 찬사가 넘치지만, 주변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한 비판의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가디언’은 페이스북의 카페에서 일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인근 차고에서 지내면서 일하는 이들은 저임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페이스북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멋진 음식이 대부분 남아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도 거기에 손을 댈 수 없다고 합니다.
가디언에는 우버와 리프트 운전자들의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는데, 역시 저임노동으로 생활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차에서 사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응원하던 이들이 점차, 그 결과가 오히려 소수에 대한 부의 편중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런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Y컴비네이터의 창업자인 폴 그라함입니다. 그는 지금 목격하고 있는 불평등은 강자가 약자의 것을 착취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며 창업자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이를 악이라고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불평등은 창업자들의 강력한 동기부여장치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축소하려고 한다면 스타트업 활동은 위축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론의 근거도 충분합니다. 폴 그라함의 주장대로라면, 불평등이 낮았던 미국의 1970년대나 현재의 스웨덴과 같은 상황에서는 창업활동이 지금만큼 활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통계는 정확히 그 반대로 나타납니다. 다른 자료를 들여다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구국가들의 경우 창업의 질이 대단히 우수합니다. 생계를 위한 창업은 별로 없고, 기술혁신에 기반한 창업이 대부분입니다. 아마 생계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복지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탓인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최근 수년간 언론에서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적인 불평등현상, 그리고 여러 갈등을 보도해 왔지만, 불평등과 스타트업에 대한 연구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습이다. 경제학자들은 창업활동이 국가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주력해왔고, 경영학자들은 스타트업의 운영방식과 혁신 프로세스에 매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지역과 국가, 세계 수준에서 창업활동과 스타트업의 성장이 불평등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한 성과는 거의 없습니다.
실증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불평등이 커지면 상위소득자들의 자본이 늘어나기 때문에 투자여력이 커지고, 창업투자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불평등이 야기하는 사회적 갈등요인들이 창업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2-3년 사이 이 연구주제를 다룬 실증논문들이 막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저희 연구실의 대학원생도 용감히 뛰어들어 심각하게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직 초기이긴 하지만, 이들 연구들에서 약간의 시사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여러 논문들에서 불평등이 너무 적거나 높은 나라보다는 중간수준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나라에서 창업활동이 활성화되는 듯한 경향이 나타납니다. “적당한” 불평등이 창업에 좋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가의 경제성장수준이 커지면 이 관계는 조금씩 약화됩니다. 즉, 미국이나 스웨덴쯤 되는 나라의 경우 불평등수준이 창업에 미치는 영향은 약할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반대로 창업활동이 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아직 명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측정상의 오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불평등 측정방식(지니계수, 십분위계수)이 소득불평등을 측정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창업을 통해서 거대한 부를 이룬 이들을 반영하려면 소득보다는 자산액을 측정하여야 할 텐데 현재 이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연구자들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방식입니다.(피케티의 책이 가치가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창업과 불평등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혁신적 창업이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지만, 그 결과가 혹시 거대한 불평등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싹트고 있는 사회적 갈등이 더 뜨거워지고, 온 세계로 번진다면 세계는 심각한 불안에 휘말릴 것입니다.
그렇다고 창업을 제한하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수많은 규제들은 창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기존사업자들을 보호하는 장치인 셈인데, 이런 낡은 방식은 오히려 기존사업자와 혁신창업자 모두를 망가뜨리기 십상입니다. 규제는 창의적으로 개선하고,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을 넓게 쳐 경쟁에서 탈락하는 이들을 품어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 논의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뜨겁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