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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생태계를 뒤바꿀 ‘물류’의 법칙

<골목의 전쟁> 저자, 김영준 씨를 만나다

by 박대헌 기자

2018년 01월 18일

골목의 전쟁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출판산업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 발행된 신간 종수는 4만 5천부가 넘는다. 1년 사이에 출간되는 책의 종류가 4만부가 넘는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도 저자의 첫 책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를 해낸 작가와 책이 있다. 김영준 씨의 <골목의 전쟁>이다.

 

<골목의 전쟁>은 출간 직후 전자책 서비스 업체 리디북스에서 실시간 1위를 차지했다. 저자인 김영준 씨가 저명한 교수는 아니다. 유명한 회사의 대표도 아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한다는 것이 있겠다. 김영준 씨의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3천명, 블로그 이웃은 9천명에 이른다.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는 1,000~2,000명 사이라고 한다.

 

물론 SNS상의 유명세가 베스트셀러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이라 할 수는 없다. 11월 중순 기준으로 <골목의 전쟁>은 리디북스 경제경영분야 1위, 예스24 경제경영분야 10위를 차지했다. 이 순위는 인기만으로 얻을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저명한 외국 교수의 경영서적보다 높은 순위이니 말이다. 이쯤에서 독자 분들은 궁금해지실 것이다. 아니, 도대체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인가.

 

<골목의 전쟁>은 골목 상권을 다룬다. 우리가 흔히 한국 직장인의 최종 도착지라고 부르는 자영업자들 사이의 경쟁을 다루는 것이다. 왜 각종 자영업 아이템은 유행처럼 등장했다 빠르게 사라지는지, 기존에 성경처럼 받들어지는 자영업의 성공기에는 어떤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는지, 정말로 대형마트가 자영업자의 적인지, 그리고 앞으로 자영업이 살아남기 위해 갖춰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골목 유통 시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당연히 골목 유통 시장에도 ‘물류’가 있다. 원재료를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하여, 완성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물류가 없으면 안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오프라인의 새로운 경쟁자들은 온라인을 통한 물류 서비스로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골목 유통 시장에서도 물류는 인프라이자, 경쟁력이며, 동시에 경쟁 서비스가 된다.

 

그래서 <골목의 전쟁>의 저자인 김영준 씨를 찾아갔다. 그가 말하는 골목 유통 시장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시장 곳곳에 숨어 있는 물류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물류는 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어떤 식으로 바꿔놓고 있는가. 나아가, 물류는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줄 수 있을까.

 

김영준 작가

▲ <골목의 전쟁>을 쓴 김영준 작가

 

‘권리금’은 사라져야

 

골목 장사에는 빼먹을 수 없는 주제가 ‘권리금’이다. 우리는 흔히 나쁜 임대인과 불쌍한 임차인이라는 프레임에 익숙하다. 따라서 임차인이 최대한 권리금을 보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김영준 씨는 달랐다. 오히려 그는 권리금이 차츰차츰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보았다. 역설적으로 권리금이 사라지게 되면, 임차인에게 더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게 어찌된 말일까.

 

김영준 씨는 권리금이 기존 임차인을 내쫓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권리금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상권에서는 사업소득이 아니라 권리금의 차익을 노리고 진입하는 임차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달한 골목 상권이라 해도, 오프라인 매장이 사업을 통해 벌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다. 매장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고, 이에 따라 회전율도 무한정 높아질 수 없다. 그러나 권리금 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임차인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업으로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임대료라도 기꺼이 내고 상권에 들어올 수 있다. 사업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향후 권리금을 이용한 자본차익으로 사업 중에 쌓인 손실을 보상받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능력과 무관하게 권리금 차익만 노리고 들어오는 임차인으로 인해, 기존 상권을 일궈온 임차인들은 밀려나게 된다. 기존 사업소득만으로는 높게 형성된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기에 다른 골목으로 이동한다. 물론, 새롭게 들어오는 임차인도 임대료가 과하게 높음을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업소득은 더 이상 주요 소득원이 아니다. 기꺼이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고 들어오는 이유다.

 

나아가, 김영준 씨는 ‘입지에 대한 중복 지불’ 문제는 권리금에서 불거진다고 주장한다. 원래 권리금은 사업적 연속성에서 ‘기존 사업’에 대한 보상으로 지불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현재 지불되는 권리금은 ‘사업적 연속성’과 무관하게 지불된다. 동일한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며, 노하우와 시설 그리고 고객 등이 이어지지 않음에도 권리금은 납부해야 한다. 요컨대, 현재 지불되는 권리금은 ‘입지’적인 성격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입지에 대한 가격은 ‘임대료’로 이미 지불되고 있다. 굳이, 권리금으로 중복 지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입지’적인 측면에서 권리금이 지불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기존 사업주는 애써 ‘사업 능력’을 늘릴 동기를 얻지 못한다. 사업 성공유무와 무관하게 입지에 따른 권리금 차익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준 씨는 원래 권리금은 임차인의 사업 성공 시, 건물의 부가가치 증진분을 보상받기 위해 등장한 제도였다고 말했다. 임차인에 대한 보호가 미비했던 과거에는, 임차인이 일궈놓은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임대인이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짧은 임대 기간이라는 한정된 조건이 있다. 계약 갱신권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임차인은 사업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리금 제도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가 있다. 즉 사업능력이 있는 임차인을 내쫓고, 권리금 차익만 노리는 임차인의 등장을 돕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권리금은 장기적으로 사라지도록 해야 하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장기 사업권 보장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김영준 씨의 주장이다.

 

이처럼 권리금은 입지와 깊은 인과관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입지가 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까. 아니다. 최근의 변화로 인해 입지의 가치가 흔들리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그 변화의 원인 중 하나가 ‘배달’이라는 물류 서비스의 범위 확장이다.

 

홍대

▲ 거리가 큰 상권을 형성한 홍대

 

골목유통을 재편하는 ‘물류’

 

배달의민족과 같은 배달앱은 골목 유통 시장에서 더는 빼놓을 수 없는 서비스가 되었다. 배달음식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고, 배달대행서비스라는 배달업무의 ‘외주화’ 현상이 나타났다. 김영준 씨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오프라인 유통 생태계가 양극화될 것으로 보았다. ‘찾아갈만한’ 아이템과 ‘배달용’ 아이템으로 점점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준 씨는 배달용 아이템의 대표주자로 프렌차이즈 상품을 말했다. 일정 품질 수준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브랜드가 있는 상품이 주로 배달시장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의 배달 서비스 ‘주문하기’의 경우 오직 프렌차이즈 업종만 진출해 있다.

 

이를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프렌차이즈의 경우 ‘굳이 찾아갈 만한 상품’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소비자들이 ‘핫한 거리’에서 만나고 싶은 가게는 맥도날드가 아니다. 서울에 있는 사람이 부산 맥도날드를 애써 찾아가지 않는 것과 같다. 부산 맥도날드는 ‘우리 동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렌차이즈 업체들은 주로 ‘대로’에 입지한다. 유동인구가 많아서 애써 찾지 않아도 바로 눈에 띄는 장소가 그들이 선택하는 장소다.

 

만약 프렌차이즈 상품의 ‘배달 소비’가 늘어난다면 ‘대로의 가치’는 예전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화장품 및 의류 등 물류 서비스를 통한 상품 가치 하락이 거의 없는 업종의 경우, 입지의 가치는 예전처럼 중요해지지 않는다. 온라인 물류 서비스를 통해 소비가 늘어날수록, 대로와 같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편, 찾아갈만한 아이템은 대로가 아니라 골목에 있다. 소비자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가게가 아무리 외진 골목에 있다한들 찾아내고 만다. 그렇다면 그 가치는 무엇일까. 김영준 씨에 의하면 그것은 ‘경험’이다. 우리 동네와 다른 무엇, 쉽게 소비할 수 없는 상품이 ‘경험’이라는 가치가 된다. 소비자는 단순히 ‘음식’을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에 가는 게 아니다. 레스토랑과 레스토랑을 둘러싼 거리가 가져다주는 ‘분위기’를 소비하고자 가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준 씨는 ‘레스토랑 상품의 배달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배달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음식의 가치하락은 놔두더라도, 오프라인 가게가 가져다주는 ‘경험재’의 가치를 배달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배달서비스 업체들은 프렌차이즈화된 상품을 넘어 레스토랑 쉐프의 요리마저 배달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우버이츠가 이태원과 강남 등지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러한 ‘경험재’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경리단길

▲ 이태원의 경리단길

 

이러한 관점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에도 적용된다. 김영준 씨는 단호하게 “물건만 파는 시장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이제 시장은 물건을 파는 공간‘만’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물건을 구매하는 쾌적한 환경으로는 마트와 복합쇼핑몰을 따라갈 수 없고,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으로는 모바일을 따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시장에 가는가. 특정 시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준 씨는 대표적으로 통인시장과 광장시장의 사례를 들면서, 시장체험이 일종의 ‘관광 상품’화 된 곳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주적으로 비난받는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도 적용된다.

 

코엑스는 왜 거대한 쇼핑몰 한 가운데에 도서관을 놓았을까. 사람을 붙잡아놓기 위함이다. 김영준 씨는 저서에서 이를 ‘걷고 싶은 길’을 만드는 것으로 표현했다. 걷고 싶은 길에는 다른 길과는 특별한 ‘볼거리, 즐길 거리, 맛볼 거리’가 존재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낼 수 있다. 최근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지역 맛집’도 오프라인만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기획인 셈이다.

 

이렇게 전통시장도, 복합쇼핑몰도 모두 ‘온라인 물류 서비스’의 빠른 성장으로 그 존재가 위협받거나, 새롭게 탈바꿈 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전통시장의 적이 대형마트 및 복합쇼핑몰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양측 모두 온라인 물류로 인한 새로운 소비로 급격히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통시장에 비해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이 자본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재 상품을 개발하고, 오프라인 속 유동인구를 만들기 유리하다는 점이다.

 

김영준 씨는 결국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온·오프라인 물류 서비스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경험재를 판매하는 가게, 혹은 물류 서비스 자체가 과비용이 되는 다이소 같은 가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단가’ 물류를 뛰어넘으려면

 

그렇다면 온·오프라인 물류 서비스 그 자체는 어떨까. 빠르게 성장하는 물류 서비스는 기존 유통망을 휘저으면서 유통업체들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데 물류 서비스 그 자체가 고도화되어 부가가치를 만드는 상품이 될 수는 없을까. 오늘도 배달의민족의 리뷰란에는 ‘배송비’ 추가에 대한 아쉬움과 원성으로 넘쳐난다. 무료배송이 기본인 문화, 지불하는 물류비도 최소한으로 내는 국내 시장이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골목의 전쟁>에서 김영준 씨는 상품의 단순 원가 비교를 통해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손실을 준다고 했다. 시장 속에서 ‘품질 미달의 상품’만 넘쳐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물류상품에 대입해보자, 현재의 매우 낮은 물류비로 인해 소비가 입는 손해는 없을까.

 

김영준 씨는 택배 상품을 빠르게 처리함으로서 발생하는 배송 문제를 들었다. 저비용 구조로 운영되는 택배업무의 경우, 수익을 증대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회전율을 높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상품을 배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택배 상품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것은 어렵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미 물류 서비스가 저비용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 서비스조차 ‘고비용’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김영준 씨는 아마존이 드론 물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사람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가 고비용 구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결국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면서 ‘서비스 차별화’를 통한 비용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김영준 씨의 생각이다. 김영준 씨는 그 사례로 ‘영화 티켓’에 대한 가격 차별화 정책을 들었다. 영화 티켓의 경우, 관람석의 위치 그리고 스크린의 특징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김으로서 비용 인상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물류 서비스도 서비스 차별화를 통한 설득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논지이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던 김영준 씨와의 대화 속에서 변화에 놓인 골목 유통시장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유통의 변화 뒤편에는 물류 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물류서비스에 대해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을 것이고, 누군가는 물류서비스를 이용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물류 서비스가 만드는 새로운 부가가치가 주목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박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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