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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사태로 본 물류 현주소(4)

by 김철민 편집장

2009년 09월 28일

[진단] 불투명한 거래관행이 문제 키운다 (4)
<육상.주선사업 부문>

 

다단계 심화시키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
내부자 거래 통해 시장 독점


화주 기업의 화물 운송 의뢰는 운송업자보다 주선 사업자에게 의지하는 방식을 취한다.

 

배송 업체를 선정하는 단계부터 공개입찰방식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공개 입찰 방식보다는 수의계약이나 친인척, 퇴직 임직원 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일단 물량을 주면서 주선 업체나 운송 업체로부터 일정 수준의 리베이트가 오고간다. 이것이 음성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물류업계 리베이트의 단면이다.

 

개인 화물 차주들은 화물 정보가 취약하다 보니 주선 업체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대부분 영세한 규모의 사업체들인 화물 운송사들은 하청?재하청을 반복한다. 운송 단계가 늘어날수록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나마 이러기만 한다면 화물 차주들 사이에서 불만이 적은 편에 속한다. 운송회사가 취급 능력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받아다가 다시 다른 운송회사에 하청을 주면 중간에 다른 주선 업체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기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화주와 차주의 불투명한 거래관행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공개적인 중개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들의 활동도 1년을 못 채우고 사그라졌다.

 

이들 업체에 배차 기능이 없어 책임 있는 화물 중개를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기존에 이루어졌던 화주와 주선 운송 업체들 간의 은밀한 뒷거래 관행도 이들의 사업실패 원인의 하나였다.

 

이렇게 다단계로 이어진 거래 과정을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차량이 없는 사업자(브로커)가 화주 업체와 접촉해 로비 등을 통해 물량을 확보하고, 일정 정도의 수수료를 공제하고 재주선하는 등의 몇 단계를 거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래단계가 많아질수록 실제 차주에게 제공되는 운임은 급격하게 낮아진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런 관행이 고쳐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 관행처럼 이루어진 계약관계를 바꾸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가 어렵고 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기에 화주와 차주가 적정한 가격을 맞출 수 있도록 별도의 요율 지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다단계 심화시키는 대기업 물류 자회사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이같은 다단계구조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형 화주들은 2000년대 초부터 물류 자회사들을 설립해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삼성전자 로지텍), LG(범한 판토스, 하이로지스틱스), 현대자동차(글로비스), 롯데(롯데로지스틱스) 등 상위 그룹사들은 대부분 물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들은 주선 업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자체 직영 차량을 확보하지 않은 채 모기업의 물량을 가지고 물량 장사를 하는 것이 있다. 모기업의 물량을 확보한 후 주선 업체에게 재하청하면서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 구조라 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이들은 전체 운송료의 약 7~8%를 수수료로 떼고 있다. 대기업은 자본금 1억원이 예치된 통장과 사무실만 있으면 주선 업체를 설립할 수 있다. 3백만원 정도만 있으면 주선업 면허를 매수할 수도 있다.

 

대형 화주들은 자사의 임원들이 퇴직할 때 보험 성격의 물량을 떼 준다. 해당 임원은 일명 ‘페이퍼 컴퍼니’로 불리는 주선 업체를 차린 후 수수료를 받는다. 화주의 친인척들이 주선 업체를 차린 후 영업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회사들은 대형 화주나 물류자회사들의 관계사가 된다. 이럴 경우 화주에 의해 3단계(화주-물류 자회사-주선회사)가 기본적으로 만들어진다. 실제로 대형 화주들은 생산 공장에서 서울로 화물을 보낼 때 물류자회사를 통해 대형 운송회사 혹은 자회사 관계사와 계약을 한다. 자체 차량을 확보하지 못한 자회사나 관계 회사는 화물차가 부족하면 주선 업체를 통해 다른 운송사에 운송을 의뢰한다.

 

하청을 받은 다른 운송회사도 화물차가 모자라면 재하청을 주고, 하청, 재하청을 하다보면 5~10%의 수수료가 빠져나간다. 화물 차주가 손에 쥐는 것은 실제 운송료의 70% 정도가 된다. 화물 차주들은 3~4단계의 알선 과정에서 주선 업체가 몇 개 끼어들면 전체 운송비용의 30%가 수수료로 빠진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 소속 관계자도 물류 자회사는 모기업의 물류 효율을 높이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활동이 화주와 운송사 중간에서 주선 형태의 사업을 하는데 그쳐 물류 사업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부인하진 않았다.

 

물류 자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주선 업체들의 경영진이나 대주주는 대부분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가족, 전직 임원 출신들이다. 그러다 보니 계열사 성격이 강하다. 이들 사이에서 운임 조정, 리베이트 제공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화주와 택배사, 인터넷쇼핑몰과 택배사의 물량 계약 시에도 리베이트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택배비 2천5백원을 받으면 이 중 30%에 달하는 7백원을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화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대기업 택배사를 비롯한 중소형 규모의 택배사까지 백마진 영업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백마진 영업 경쟁이 심화되어 평균 10%의 리베이트 규모가 40%대까지 치솟고 있다.

▣ 내부자 거래 통해 시장 독점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들은 사실상 내부자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물류 자회사 물량에서 모기업의 배송 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80% 이상인 것을 보면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들 물류 자회사가 정상 거래가 아닌 독과점 거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모기업의 물량은 물론 협력 업체나 하청 업체들의 물량까지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최초 운송비의 20~40%가 대형 화주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공제된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화물차가 없는 운송회사들과 거래하고 있다. 이들 운송회사는 지입을 통해 차량을 확보한다. 대기업 S사는 물류 자회사를 통해 운송사에 주는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운송료가 58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화물연대 경인지부는 지입 차주들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이 36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S사가 건넨 돈의 약 4%가 중간에서 증발한 셈이다. 지입 차주들은 운송 업체들에게 알선 수수료를 주는 데다 운송 업체로부터 받는 어음을 할인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는다.

 

불합리한 하도급 결제 관행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수백~수천 대의 차량을 지입 받은 뒤 장부상 결제는 현금을 지급한 것처럼 처리하고 실제로는 운송비 결제를 서너 달 미루면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유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기업의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등의 창구로 악용될 수있는 창구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H그룹은 2001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5년간 물류 자회사를 통해 7백5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물량 밀어주기 등 부당내부자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만든 것이다.

 

다단계 운송 구조를 개선시키지 않으면 화물 차주들의 운송료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 물류업계는 다단계 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이 화주나 차주들이 모두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화물차의 공급 과잉 상태도 정리해야 한다. 이것은 정부와 화주, 운송주선회사, 화물 차주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다.

 



김철민 편집장

Beyond me(dia), Beyond logistics
김철민의 SCL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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