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사진
글. 양석훈 기자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취재 중 찍은 사진 한 장을 공개한다. 이 어색한 사진은 뭘까. 홍보팀이 찍은 사진 아니다. ‘설정샷’인 것은 맞다. 이처럼 설정의 향기가 폴폴 나는 사진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사진에 택배의 어떤 ‘정수’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일까. 무엇이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을 만드는 것일까. 숨은그림찾기를 시작해보자.
머릿속에 지도가 있다
추석 때만 되면 택배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떠돈다. 그러나 본 기자는 택배에 관해 잘 모른다. 특히 현장에 대해서는 더욱 모른다. 큰 그림을 그리기엔 내공이 부족하니, 가장 작은 단위, 한 명의 사람에 집중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수소문 끝에 CJ대한통운의 파주 대리점으로부터 한 택배기사와 동승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8시쯤 CJ대한통운 파주지점에 도착했다. 하차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터미널 안에 거대한 레일이 돌고 있었고, 파란 유니폼을 입은 SM(Service Manager. CJ대한통운에서 택배서비스를 제공하는 배송기사를 지칭하는 말이다.)들과 파랗게 도색된 택배차량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레일이 돌며 물건을 커다란 권역별로 일단 분류하면, 각각의 SM이 자신의 구역에 배송해야 할 물건을 집어갔다.
▲ 보통 레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2~3시까지 계속 돈다.
CJ대한통운 파주지점은 이 레일을 도입한 뒤부터 2회전 배송을 시작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전에는 모든 SM이 오전 7시에 출근해 하차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2~3시쯤 하차가 끝나면 동시에 배송을 나갔다. 따라서 작은 구역을 도는 SM은 6~7시면 모든 배송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지만, 넓은 구역에 흩어진 곳으로 배송을 해야 하는 SM의 업무는 9~10시가 되도록 안 끝나기도 했다. 게다가 오전 7시부터 오후 2~3시에 하차가 완료되기까지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것도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레일이 계속 돌면서 9시까지 하차한 물건을 오전에 한 번 배송하고, 그 이후에 하차한 물건은 오후에 다시 한 번 배송하는 2회전 배송체계가 가동되고 있다. 가령 예전에는 400개의 물량을 최종 하차가 완료된 오후에 한꺼번에 배송해야 했다면, 이제는 오전에 100개 정도의 물량을 배송하고, 나머지를 오후에 배송하는 것이다. 덕분에 SM들의 업무 종료 시간이 전과 달리 많이 평준화됐다고.(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러한 레일이 도입된 이후 회사가 SM에게 2~3회 배송을 강제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본 기자는 CJ대한통운 파주 대리점 소속의 서정민 팀장이 모는 차량에 동승할 예정이었다. 서 팀장은 레일이 실어 나르는 박스 가운데 자신이 배송해야 할 것을 집어, 그 겉면에 매직으로 송장에 적힌 주소를 다시 한 번 큼지막하게 적고 있었다. 실제 배송을 할 때는 자신이 다시 쓴 주소만 보고 배송을 한다고 했다.
그 후 서 팀장은 주소가 적힌 박스를 자신의 택배차량에 차곡차곡 쌓았다. 아니, 차곡차곡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햇수로 9년차 경력의 서 팀장은 매번 같은 구역을 돌면서 머릿속에 그 구역을 지도처럼 새겼다. 그 머릿속 지도를 ‘되감기’하면서 순서대로 택배를 쌓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배송할 물건은 택배차량 적재공간의 바깥쪽에 나중에 배송할 물건은 안쪽에 쌓이게 된다.
▲ 서 팀장이 오전에 처리해야 할 물량 총 127개가 그만의 규칙에 의해 쌓여있다.
SM이 하루에 처리하는 물량은 요일별로 차이가 있다. 화요일이 가장 많고, 그 다음 ‘수목금토일월’ 순이다. 서 팀장의 경우 하루 평균 300개의 물량을 친다. 이날 오전에 서 팀장이 배송해야 할 물량은 127개. 127개의 박스가 그만의 규칙에 따라 택배차량에 적재되자, 택배차량이 출발한다. 얼른 그의 옆자리에 몸을 실었다. 어색해 하는 본 기자에게 서 팀장이 먼저 말을 붙였다. “원래 내 차에 안 태우려고 그랬어. 차가 좀 더러워서. 집에 늦게 들어가니까 주말 아니면 세차 하기 힘들고, 주말에도 쉬다 보면 세차할 시간도 없고.”
서 팀장은 6시 10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알람소리를 듣고 깼는데, 요즘은 5시 반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일어나서 담배 한 대 피는 게 서 팀장의 하루의 시작이다. 출근해서 개인 전산을 열면 오늘 얼마만큼의 물량을 배송해야 하는지, 반품 물량은 어느 정도인지 시스템이 알려준다.(시스템이 100% 정확하게 배송 물량을 알려주는 건 아니다. 서 팀장에 따르면 전산보다 적게 배송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반면 전산상 반품 물량은 거의 100% 정확하다.) 그것을 훑어보며 나름대로 배송 코스를 짜다보면 7시가 되고 레일이 돌기 시작한다.
서 팀장이 맡은 구역은 임대아파트 한 곳과 군인아파트 한 곳. 오전에 그 두 곳을 돌고 한 시까지 다시 지점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1시 15분에 배송을 나가는 사람과 교대할 수 있다. 서 팀장에 따르면, 이러한 스케줄은 지점이나 대리점에서 일괄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점 아래에 조직된 일종의 분대가 분대 단위별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SM 간의 이해와 협력이다. 서 팀장이 오전에 배송을 하는 동안에도 레일은 멈추지 않고 돈다. 그러면 다른 동료(분대원)가 서 팀장이 오후에 배송할 물건을 대신 받아줘야 한다. 그렇게 안 해주면 서 팀장이 오후 배송을 나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서 팀장이 정해진 시간(1시)에 복귀해야만 동료가 오후 스케줄을 나갈 수 있다. 한 명이 이런저런 핑계로 스케줄을 어기면 동료의 스케줄까지 함께 꼬이게 되는 거다.
“외우는 게 노하우지”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첫 번째 배송지인 한 임대아파트에 도착했다. 서 팀장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택배하는 사람은 걸음이 빨라. 시간 싸움이니까.” 서 팀장에게 서 팀장만의 노하우가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 “노하우? 일 빨리 끝내는 게 노하우지 뭐. 개인적으로는 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집은 이 시간에 사람이 있다, 없다 같은 거. 혹은 이 집은 항상 소화전이나 현관에 물건을 두라고 한다. 뭐 이런 것들?”
실제로 서 팀장은 배송지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외우고 있었다. 이 집은 아이가 사는 집, 이 집은 이 시간에 항상 사람이 없는 집 등등. 그의 머릿속으로 마치 증강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배송은 그 증강현실이 펼쳐 보이는 대로 척척 진행됐다. 고객에게 일일이 전화나 문자를 하지 않고도 어떤 곳에서는 직접 고객과 만나, 또 다른 곳에는 현관 앞에 물건을 전달했다.
▲ 늘 같은 곳에 배송하면서 이곳은 소화전에, 이곳은 현관 앞에 배송하면 된다는 그만의 규칙이 만들어진다.
“여기 임대아파트는 오전에 10집 중 8집에 사람이 없어. 나머지 한두 집에도 애가 있거나 사람이 자고 있거나 그래. 그래서 다들 초인종 누르는 걸 싫어해. 그래서 보통 현관 앞에 물건 두고 문자를 보내. 물론 고객이 중요한 물건이라거나, 음식물이라거나, 며칠 집에 못 들어온다거나 하는 답장을 보내면 다시 물건을 찾아 대처를 하지.”
아파트 층을 오르내리는 것에도 규칙이 있었다. 서 팀장은 맨 먼저 1층부터 배송했다. 1층에는 다른 층과 달리 현관에 물건을 두지 않았다. 애들이 오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집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1층은 꼭 초인종을 눌러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사람이 없을 때는 현관 앞이 아니라 소화전처럼 잘 안 보이는 곳에 물건을 둔다.
1층 배송이 끝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배송을 한다. 왜냐고 물으니,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배송해야 하는데, 그건 힘들잖아. 그러니까 위에서부터 배송하면서 만약 엘리베이터가 지나가면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배송하는 거야. 우리는 엘리베이터 기다리면서는 일 못 해. 시간이 돈이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서 팀장의 이런 방식이 ‘배송의 정석’이라거나 ‘고정불변의 법칙’인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만 하더라도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람이 있고,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을 자신만의 ‘매뉴얼’로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쌓이면서 그 매뉴얼은 점차 단단해지고 마침내 ‘노하우’가 된다.
▲ 택배차량뿐 아니라 핸드카트에 박스를 싣는 데도 순서가 있다. 즉 먼저 배송하는 게 위에 쌓인다.
“여기 입주자랑 다 친해”
임대아파트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쉴 틈 없이 곧바로 다음 배송 장소로 향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됐다는 군인아파트였다. 서 팀장은 이 곳 역시 오전에는 집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여기는 경비실이나 관리소에서도 택배를 안 맡아준다. 그러니 배송 방법은 오로지 하나, 현관 앞 배송이다.
서 팀장에 따르면, 처음에는 이런 방법에 대한 입주자의 반발이 컸다. 왜 문자 한 통만 틱 남기고 현관 앞에 택배를 두고 가냐는 항의도 종종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에 사람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든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고 배송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서 말했듯 택배는 시간 싸움이기 때문이다. 서 팀장은 바로 입주자를 위한 설득을 시작했다. 아파트 관리소장을 만났고 아파트에서 계급이 가장 높은 중령도 만나 일종의 협상을 했다. ‘이 아파트에서는 현관 앞 배송이 불가피하다. 이해해 달라. 대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당일배송을 하겠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물건이 없어지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 다만 그러한 문제가 있을 경우 송장번호와 함께 내게 연락을 달라.’ 이런 식이었다.
서 팀장은 군인아파트 입주자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다. 처음에는 외부인이라 안 받아줬는데, 카페지기를 만나 설득할 끝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가입이 승인된 뒤에는 카페를 통해 입주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오전 배송을 하는 중에 카페지기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 팀장에게 무언가를 요구했고, 서 팀장 역시 배송과 관련한 내용을 카페에 대신 좀 올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번 주부터 명절 주까지는 일반 물건 집하를 안 해요. 카페에 좀 올려주세요.”
이러한 노력 끝에 이제는 일일이 초인종을 누르거나 전화를 하지 않고도 현관 앞에 배송을 할 수 있게 됐다. 배송 효율이 높아진 것이다. 10개월 동안 이곳에 배송하면서 분실건은 하나도 없었다고.
서 팀장은 많은 SM이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을 위해 이와 같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또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 팀장은 고객과 불필요한 불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클레임을 자주 거는 사람들은 명단을 만들어, 그 집에 배송을 갈 때는 평소보다 더욱 신경을 쓰고 더 잘 지내기 위해 애쓴다.
“한 번은 한 꼬마아이가 건물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거야. 엄마 번호 아느냐니까 안대. 거기로 전화를 걸었는데 평소에 클레임을 많이 거는 분이더라고. ‘아드님이 이러한 사정인데, 비밀번호 눌러 올려 보낼까요’라고 물으니 그렇게 해 달라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했지. 그 다음부터는 그 집도 현관 앞에 배송하라고 해. 나를 믿기 시작한 거지. 이제는 여기 입주자랑 다 친해.”
글을 시작하며 공개한 사진의 비밀도 여기에 있다. 사진 속에서 물건을 받는 사람은 군인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자다. 군인아파트가 생기기 전 다른 곳에 살 때도 서 팀장으로 물건을 받아봤기 때문에 서 팀장과 안 지는 6년쯤 됐다. 일을 보러 외출하다가 서 팀장과 마주쳤고 서 팀장은 ‘잡지에 실리는데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위의 사진이 나왔다.
앞서 말했지만, 본 기자는 저 사진에 택배의 어떤 ‘정수’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루트를 만들고 고객이 어떤 방식으로 배송을 받는지 외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는 노력들, 저 사진에는 이러한 것들이 숨어있다. 그리고 이것이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을 만드는 게 크게 일조한다.
사람이라 실수도 한다
그렇게 오전 배송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단지 내 어린이집. 원래는 109동 다음 어린이집에 들렀다가 108동으로 가는데, 이날은 어린이집으로 배송할 물건은 없고 반품 물건만 큰 게 하나 있어서 마지막에 들른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먼저 들러서 큰 반품 물건을 차에 실어버리면 그 이후 차에서 물건을 꺼내고 빼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품 물건의 사이즈가 크다는 사실을 서 실장은 어떻게 안 것일까. 서 실장은 “며칠 전에 내가 어린이집에 배송했으니까 오늘 여기 반품 물건이 있다면 아 그거구나 하고 대충 아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렇다. 배송 루트를 짤 때는 며칠 전 무엇을 배송했는지까지도 고려된다. 이쯤 되면 언론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첨단 ‘라우팅 시스템’ 따위 필요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서 팀장은 “서울처럼 길이 막히거나 일반 번지로 배송을 갈 때는 어플을 켜서 경로를 확인하기도 하는데, 나 같은 경우 배송을 하면서 스스로 루트를 최적화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 팀장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서 팀장은 군인아파트에 10개월째 다니며 분실건은 없었지만 자신의 실수는 종종 나왔다고 했다. 하차 시 박스 겉면에 주소를 매직으로 다시 한 번 적는 과정에서 잘못 적기도 하고, 이 집을 가야하는데 바쁘다 보니 저 집을 가기도 하고, 차가 흔들리면서 뒤에서 물건이 섞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시스템이 사람의 실수를 어느 정도 보완해준다. 가령 4동에 배송해야 할 물건을 3동에 배송하는 경우가 있다. ‘물건을 전달했다’는 문자를 받은 고객은 ‘물건 못 받았다’고 답장을 보낸다. 그러면 시스템을 켜서 확인해보는 거다. 배송완료 카테고리의 월 마감현황을 조회하면 날짜별, 시간별 배송 이력이 쭉 뜬다. 그 목록에서 43번째 배송이 ‘4동’ 301호, 44번째가 ‘4동’ 501호, 45번째가 ‘4동’ 1201호 등인데, 중간에 ‘3동’ 301호가 끼어 있으면, 3동에 배송할 것을 4동에 배송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문제를 얼른 바로 잡을 수 있다.
즉 시스템이 사람의 일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상품을 현관 앞에 두고 고객에게 배송 완료 문자를 보낼 때도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다. 택배박스의 송장 바코드를 기계로 찍으면 시스템에 90% 정도 완료된 배송 완료 문자가 준비되고, SM은 거기서 ‘현관 앞/소화전/가족에게 등’만 선택한 뒤 클릭하면 문자가 발송되는 식이다. 그러니 멀뚱히 서서 일일이 ‘CJ대한통운 택배입니다. 고객의 물건을 현관 앞에 두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를 적을 필요가 없다. 서 팀장은 “이런 시스템이 생긴 지 2년도 채 안 됐다”며 “잘 못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만 사용하면 배송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의 이면
어린이집에서 반품 물건을 찾고 터미널로 복귀했다. 터미널에는 서 팀장이 오후에 다시 배송해야 할 물량이 오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이 쌓여 있었다.
▲ 돌아와 보니 오후에 배송해야할 물량이 산처럼 쌓여있다.
1시. 누군가는 점심을 먹을 시간. SM은 어떻게 점심식사를 해결할까. 서 팀장에 따르면, SM 중에는 일하다 식당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거나 빵으로 간단하게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 팀장은 “아침, 저녁이야 원래 집에서 알아서 해결한다지만 업무 특성상 점심은 좀 애매하긴 하다”며 “동료 중에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라면으로 대충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도 많고, 나 같은 경우는 늦어도 여섯 시에는 집에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가끔 점심을 거르더라도 일을 빨리 끝내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날은 이야기도 더 나눌 겸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면서 서 팀장은 요즘 허리가 좀 아프다고 했다. 직업병이라고. 그러나 며칠 푹 쉬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SM은 쉬더라도 레일은 멈추지 않고 돌고 물량은 계속 쌓인다. 누군가 쉬면 동료들이 그것을 대신 해줘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3~4명이 짝을 이뤄 돌아가면서 휴가를 간다. 하지만 그래 봐야 월 하루 정도다. 보통 쉴 때는 ‘토일월’을 연이어 쉰다. 일요일에 집하를 하지 않아 월요일의 배송 물량이 일주일 중 가장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석과 같은 특수기에는 물량이 많으니 하차 시간이 길어지고, 자연히 퇴근 시간도 늦어진다. 서 팀장은 요즘처럼 바쁘거나 토요일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을 쉬면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한다고 했다. 주말 물량이 월요일로 밀리면 월요일 퇴근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SM은 직업 특성상 물량이 가장 적은 월요일에 병원이나 은행에 가야 하는데, 월요일 퇴근이 늦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엔 바깥에서 잘 안 보이는 것들이 감춰져 있다.(터미널 시설의 열악함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파주 터미널의 남자 화장실은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 부족하나, 지점에서는 개선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파주지점을 나오며
점심까지 먹고 파주지점을 빠져나왔다.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서 팀장만 졸졸 따라다녔는데도 온몸이 욱신거렸다.
본 기자가 파주지점을 방문한 것은 추석 시즌,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이 요구되는 기간이었다. 한나절 서 팀장을 따라다니며 지켜본 결과, 그 속도와 효율성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지도와 증강현실을 가동하고, 적재공간에 규칙에 따라 박스를 쌓고, 고객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이 택배의 핵(정수)이다. 여기에 레일과 시스템이 거들고, 종종 힘들고 부조리한 상황이 뒤따른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우리가 바라보는 택배가 된다.
서 팀장은 택배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택배 올 시간만 되면 애들이 많이 기다려. 산타할아버지 왔다고.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이나, 생일에 내가 선물 배달해주니까. 주차하려고 하면 아저씨 몇 동 몇 호 택배 왔어요? 하고 막 물어봐. 쪼그만 게”라며.
▲ CJ대한통운 파주 대리점의 서정민 팀장
일하는 내내 서 팀장은 내게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일 쉬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래. 커피 한 잔 못 하고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 특히 사장님한테”라며 장난 섞어 말했다. 그러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사장님을 만나지 못 했다. 이 글로 그의 수고를 대신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