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거래와 직매입마저도 한계 봉착, ‘검수’ 서비스가 대안 될까
‘갈라파고스’ 중고시장, 큐딜리온·MCN 등에서 변화 시도
‘지하’에 꿈틀대는 돈 냄새
중고시장이 뜨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실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국민신문고 온라인 페이지에서 답변한 내용에 따르면, 국가승인통계(300여 개 기관에서 작성한 900여 종의 국가승인통계 기준) 가운데 중고거래 시장 현황에 대해 작성 및 수집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시장이 뜨거운 것은 사실인 듯하다. 회원 수 1,540만 명, 네이버 1위 카페에 빛나는 ‘중고나라’가 자체 조사한 결과(2017년 5월 기준)에 따르면 중고나라 카페에서 발생하는 월 평균 거래액은 약 800억~1,000억 사이로 추산(이는 최근 게시글 1만개 중 판매완료로 처리된 25%의 게시물 평균거래액인 10만 5천 원을 기반으로 하여 추산한 결과다.)된다. 이러한 수치가 중고나라라는 단 하나의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거래만을 추산한 것이며, 그마저도 판매자가 자발적으로 ‘판매완료’ 처리를 한 25%의 거래만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감안하면, 실제 중고시장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권오현 큐딜리온(중고나라 운영 법인) 전략기획본부장은 “중고시장에 관한 통계는 10조 원부터 20조 원 이상까지 뒤죽박죽이지만, 실제 중고시장의 규모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중고나라가 내놓은 조사에도 ‘중고차’나 ‘부동산’ 등의 카테고리에서 발생하는 개인 간 거래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하라서 나타나는 문제들
중고시장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시장이다. 현금과 실물의 이동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 ‘개인 간 거래’를 규정하는 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중고 판매자는 일반적인 온라인 판매 사업자가 갖는 통신판매업자 신고 의무, 정보 제공 의무, 구매안전서비스 제공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구매자는 여러 ‘거래 위험’에 노출된다.
중고 판매자가 구매자의 돈을 받고 잠적하는 사기가 대표적이다.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 휴대폰을 구매했는데 벽돌이 왔다는 ‘괴담’이 심심치 않게 돌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면? 2006년부터 지난 3월까지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치트’에 등록된 온라인 사기 피해 건수는 약 24만 9,000건이며, 전체 피해금액은 808억 2,200만 원에 이른다. 심지어 더치트에는 2015년 9월 21일 중고나라에서 휴대폰을 구매했는데, 휴대폰 대신 ‘닭다리’ 과자가 왔다는 사례도 올라와 있다.
▲ 중고 갤럭시S4를 12만 5,000원에 구매한 소비자가 휴대폰 대신 택배로 받은 ‘닭다리’(출처: 더치트)
중고 판매자가 하자가 있는 상품을 정상적인 상품으로 속여 판매하는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는 중고거래의 특성상, 구매자는 판매자가 올린 상품 설명 텍스트와 몇 장의 ‘사진’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진짜’처럼 보이는 구찌 브랜드의 가방이 진품인지 가품인지는 오직 판매자만 알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품감별법’이 심심찮게 떠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새것(속칭 ‘민트급’)처럼 보여 구매한 휴대폰 배터리가 불과 한 시간 만에 방전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모바일 중고거래 플랫폼 및 커뮤니티는 판매자가 ‘동영상’을 찍어 올릴 수 있도록 하거나, 하자 제품의 표시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촬영의 주체는 판매자이기 때문에, 판매자가 하자가 있는 부분을 강조하지 않고 촬영하거나 하자가 있음에도 정상적인 제품이라 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결국 하자가 있는 제품의 거래를 원천봉쇄할 방법은 없다. 중고거래를 하는 구매자 스스로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뿐이다.
▲ 모바일 중고거래 플랫폼 ‘헬로마켓’이 판매자에게 제공하는 실시간 동영상 촬영 및 하자여부 선택 화면
실패한 안전거래, 결국 직거래뿐인가
결국 중고거래에서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거래’다. 그러나 직거래에는 분명한 단점이 존재한다. 가령 판매자와 구매자는 직거래를 위해 ‘시간’과 ‘교통비’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더욱이 시와 도를 넘어가는 개인 간 거래에는 그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2,500원이면 전국 익일택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시대에, 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니. 이만한 ‘비효율’도 없다. 그러나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이와 같은 비효율을 감수하면서도 직거래만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신뢰’가 문제다. 온라인 중고거래의 가장 큰 한계로 꼽히는 ‘신뢰 확보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직거래의 번거로움을 해결하고 그 대가로 수익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이러한 아이디어로부터 등장한 서비스가 있으니, 바로 ‘안전거래’다. 안전거래란 PG사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개입하여 구매자가 지불한 거래대금을 잠시 맡아두었다가, 구매자가 물품 수령 및 확인을 끝마치면 판매자에게 거래대금을 최종적으로 지불하는 서비스다. PG사는 그 대가로 거래 수수료의 일부를 받는다. 중고나라에서도 안전거래 방식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중고 판매자는 네이버페이, 이니P2P(KG이니시스), 유니크로(다우기술) 중 하나를 안전거래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안전거래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중고나라가 자체 집계한 결과(2017년 5월 기준)에 따르면 안전거래 비중은 전체 거래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중고나라는 안전거래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판매자가 상품을 판매한 뒤 바로 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을 든다. 실제로 안전거래 방식으로 거래를 하면 구매자가 ‘구매확정’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정산이 이뤄지지 않으며, 만약 구매자가 상품을 수령한 뒤에도 구매확정을 누르지 않으면 정산이 일주일 이후로까지 밀리기도 한다.
구매자라고 안전거래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구매자는 안전거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번거롭게도 PG사에 별도의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뮤지션 커뮤니티 ‘뮬’의 ‘안전매매장터’를 예로 들면, 악기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뮬 회원가입을 한 뒤 뮬와 연계된 안전결제 서비스 ‘유니크로’에 또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 뮬에서 제공하는 ‘안전매매장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뮬 회원가입과 유니크로 동시 회원가입이 필요하다.
권 본부장은 “안전거래를 원하는 구매자의 니즈는 충분하지만 판매자가 안전거래를 희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안전거래를 하지 않아도 잘 팔릴 상품을 정산도 늦은 안전거래 방식으로 판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판매자가 안전거래를 이용하지 않으니 자연히 그 이용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직매입’으로 두 마리 토끼 잡나
직거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안전거래마저 실패한 상황에서, 간접거래와 직거래의 불편함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안으로 ‘직매입’ 방식의 중고거래 커머스가 떠올랐다.
직매입 중고몰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고 판매자의 물건을 구매하고, 이를 다시 커머스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표적인 업체로는 ‘셀잇’이 있다. 전자제품 전문 직매입 중고몰을 운영하는 셀잇은 판매자의 상품을 검수하여 이상이 없으면 100% 구매하고 있다.
직매입 방식은 판매자가 일일이 여러 중고 커뮤니티를 찾아 상품을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해준다. 구매자도 합리적인 가격에 업체의 ‘검수’가 끝난 안전한 중고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직매입 방식은 시간과 교통비를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직거래와 안전한 거래를 보장할 수 없는 간접거래의 단점을 동시에 보완한다.
▲ 직매입 중고몰을 운영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물건을 ‘잘’ 사야한다. 사진은 셀잇이 직매입 판매자에게 제공하는 질문 체크사항 중 하나.
그러나 현실과 이론은 늘 다른 법. 최근 직매입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매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가운데는 현금흐름의 위기를 겪는 곳이 적지 않으며, 또 몇몇 업체는 직매입 방식에 기존 직거래 방식의 중고거래, 신상품 판매 등을 결합하여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매입 중고몰을 이용하는 고객 사이에서도 원하는 견적을 책정 받지 못하거나 중고 물품 매입 자체를 거절당한 판매자들의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한 직매입 중고몰의 앱스토어 후기에는 “브랜드 제품만 구매한다”, “업체 입맛에 맞는 브랜드만 구매한다”, “견적이 만족스럽지 않다”, “심지어 새 제품을 보내도 매입을 거부당했다”는 등의 후기가 쇄도하고 있다. 이는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가격에 팔릴 만한 물건만을 구매하는’ 직매입 방식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판매자는 기존 중고 커뮤니티에선 잘 팔리지 않는 물건을 직매입 중고몰을 통해 쉽게 팔고자 하는데, 직매입 중고몰은 반대로 ‘팔릴’ 물건만을 사야하니,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사실 수요가 많고 가격이 적정하게 책정된 상태 좋은 중고 물품은 어떤 채널을 통해서도 잘 팔린다.)
‘검수’를 서비스로 판다면
이처럼 직매입 중고몰조차도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직매입 전문몰이 제공하는 ‘검수 서비스’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공하는 업체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트리플에이(법인명 텐원더스)가 대표적이다. 트레플에이는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커머스’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직매입 중고몰과 비슷하다. 그러나 트리플에이는 철저히 ‘플랫폼’의 입장을 견지한다. 즉 직매입 중고몰의 한계로 언급되는 현금흐름의 위험은 회피하면서, 동시에 택배를 이용한 간접거래의 한계인 ‘검수’를 서비스로 제공하여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트리플에이의 판매 및 구매 프로세스를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판매자가 판매하고자 하는 중고 물품을 트리플에이의 플랫폼에 올린다. 구매자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른 후 결제(2,500원의 택배비는 구매자가 별도 부담한다)한다. 구매자는 결제에 앞서 판매자와 가격 협상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구매자는 원하는 단계의 검수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청구한다. 구매자의 결제가 완료되면 판매자는 물건을 트리플에이 사무실로 보낸다. 트리플에이는 판매자에게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단, 택배비는 판매자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끝으로 단계별 검수가 끝나면 트리플에이는 구매자에게 중고 물품을 배송한다.
트리플에이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롯이 검수를 통한 매출만이 트리플에이에 남게 된다. 비용은 인건비와 일부 운영비 정도가 발생할 뿐이다. 매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감가상각비, 보관비 부담이 없고, 수거 및 재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택배비는 각각 구매자와 판매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정훈 텐원더스 대표는 “에스크로를 기반으로 한 안전거래 방식은 ‘돈’에 대한 안전만 보장할 뿐 ‘상품’의 품질을 검증해주지는 않는다”며 “트리플에이는 검수를 통해 안전한 중고제품이 거래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중고거래에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간접거래 방식이기 때문에 비용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리플에이는 현재 성장기에 있다.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트리플에이에 따르면 가입자 수와 거래량이(4월 25일 기준, 가입자 631명, 누적 거래량 222개) 제이커브를 그리며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트리플에이는 지난달 중순까지 발생한 거래의 주체 중 80%가 지방 거래자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트리플에이는 이를 수도권에 몰려있었던 기존 중고거래가 지방까지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텐원더스는 트리플에이에 ‘샵인샵’ 형태로 ‘셀리샵’을 운영하고 있다. 셀리샵은 셀럽의 소장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이다. 실제 셀리샵에는 아프리카tv 등에서 BJ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셀럽이 개인 소장품의 가격을 책정하여 판매한다.(사족. 셀리샵과 관련해 매번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팬티가 팔리면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인데, 다행히 아직은 그런 일이 없다고.)
물론 트리플에이처럼 검수를 서비스화한 플랫폼 방식의 중고거래에도 풀어야 할 숙제는 존재한다. 판매자가 트리플에이 플랫폼에만 중고 상품을 판매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구매자가 보기에 ‘허위매물’ 같은 상품이 트리플에이 플랫폼에 잔류할 가능성이 있다. 트리플에이 또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또한 트리플에이는 추후 거래량이 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중고시장, 누가 바꿀 것인가
‘중고시장’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 영역을 개척하려는 여러 업체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중고나라와 같은 기존 커뮤니티, 커뮤니티에서 거래되던 중고거래를 독립적인 모바일 앱으로 끌어들인 업체, 직매입 방식으로 중고거래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자 한 몇몇 업체 등. 심지어 지난해 9월에는 중고거래에 퀵배달을 결합한 서비스가 등장했으며, MCN(Multi Channel Network)방식을 결합해 BJ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장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업체까지 나왔다. 중고시장의 열기가 그야말로 뜨겁다.
한편 대표적인 중고거래 커뮤니티인 중고나라는 지난해 큐딜리온이라는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다. 큐딜리온은 온라인 거래 중심의 현재 중고거래의 다음 단계를 ‘오프라인’으로 상정하고, 성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큐딜리온은 가입자 2,100만 명의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카페 1,540만, 모바일 550만)를 포함해, 고물 방문 수거 및 재판매 서비스 ‘주마’, MCN을 결합한 폐쇄형 커머스 ‘비밀의공구’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주마를 통해 직접 물류를 실험하고 있다.
중고시장은 오랫동안 고립된 갈라파고스 같았다. 하지만 최근 많은 업체가 갈라파고스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와는 관계없이, 변화는 조금씩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