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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투표지는 누가 다 옮겼을까

by 김정현 기자

2017년 05월 26일

뜨거웠던 19대 대선, 3100만 투표지는 어떻게 이동했을까

선관위부터, 투표소와 개표소에 이르는 선거 물류 연결고리

투표, 선거

 

글. 김정현 기자

 

5월 9일, 19대 대선 투표일. 본 기자는 집 근처 초등학교로 향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투표를 했고, 투표가 끝난 뒤에는 손에 도장을 찍어 ‘인증샷’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 대선 기간은 유례없이 짧았다. 대선 준비 기간도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대선 기간과는 별개로 전국 투표율은 77.2%로 높았다. 총 4,248만 명 유권자 중 3,100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방법

▲ 19대 대선, 투표방법

 

‘세 발자국만 움직이면 물류’라고 한다. 투표 또한 예외는 아니다. 3,100만 개의 소중한 한 표들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 것일까?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투표소에 모인 표들은 투표함에 보관되었다가 개표소로 향한다. 각 지역 수십 개의 투표소에 설치된 투표함이 개표소에 모이는 것이다. 즉 개표소는 일종의 허브(Hub) 역할을 한다. 개표소에서 개표된 표들은 비로소 ‘표’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게 ‘선거 물류’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지금부터는 돋보기를 대고 선거 물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투표 전, “선관위-투표소-개표소의 연결고리”

 

우리나라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1962년 선거관리위원회 설립을 결정했고, 이듬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나라의 모든 선거를 관리하며 선거가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지도록 위법 행위를 예방·단속하는 일을 한다.

 

선관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투표 전 과정에서 필요한 투표 안내용지, 투표용지, 투표함 등의 이동경로를 정하는 것이다. 투표부터 개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프로세스를 선관위는 어떻게 구축하고 있을까?

 

“이번 19대 대선은 유난히 짧은 기간 동안 준비되었죠. 덕분에 선관위는 최근 몇 달간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중앙선관위 공고과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전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됐을 때부터 선거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나마 올해 12월 20일에 대선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미리 준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며 “원래는 4월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받고 4월 말부터 선거기간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모든 준비 과정이 앞당겨졌다”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하나의 기관이 아니다. 선관위는 여러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중앙선관위 산하에는 ①서울특별시·광역시·도 선관위, ②구·시·군 선관위(이하 구 위원회) ③그리고 선거 때만 임시로 설치되는 읍·면·동(이하 동 위원회) 선관위가 있다. 본격적인 선거 시즌에 돌입하면 이 모든 조직이 함께 투표소 및 개표소의 위치를 정하고, 투표용지와 투표함의 수송·회송 준비를 한다.

 

선거 과정에서 표의 배송은 크게 두 번 이뤄진다. 이를 수송과 회송이라 한다. 수송은 투표 전에 후보자의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투표소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반면 회송은 투표가 완료된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수·회송 계획은 어떻게 수립되는 것일까? 수·회송 준비는 보통 선거 수십 일 전부터 기획되며, 구 위원회는 동 위원회로 투표함을 보내기 3일 전에 투표함 수·회송 계획을 동 위원회에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투표용지와 투표함이 이동하는 노선이 결정된다. 구 위원회에서 동 위원회로 이동하는 ‘수송’노선의 경우, 각 구 위원회는 일반적으로 12개의 노선을 확보한다. 반면 투표소에서 개표소로 이동하는 ‘회송’노선은 보통 78개가 지정된다. 구체적인 노선 및 경로는 지역 특성과 수·회송 물품의 용적, 중량, 승차인원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에 궁금한 점 하나. 수송노선과 회선노선의 개수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투표소와 개표소 개수의 차이 때문이다. 투표소는 한 동에 5개 이상 존재하기도 한다. 반면 개표소는 관할 구역에 한 군데 설치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전국에 설치된 투표소의 개수는 1만 4천여 개소였는데, 개표소는 251곳에 불과했다.

 

특히 이번 대선은 보궐선거였기 때문에 투표소로 활용할 만한 공공시설을 사전에 확보하기 어려웠고, 전체의 11% 정도는 민간시설 투표소로 마련되었다. 이번처럼 투표소를 긴급하게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투표소는 공간의 면적, 위치, 편의시설 구비 여부 등의 요건을 고려해 민간시설로 지정되기도 한다. 반면 개표소는 관할 선관위가 각 구역에 있는 조합의 회의실 등에 설치한다. 물론 섬이나 산간지역처럼 투표함을 개표소까지 운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투표소에 개표소가 설치되기도 한다.

 

선관위와 투표소, 개표소를 연결하는 노선을 결정하는 것은 ‘구 위원회’의 몫이다. 선거 준비 기간에 구 위원회는 투표함과 투표용지를 각 지역의 동 위원회로 수송하는데, 구 위원회에서 출발한 차량 한 대가 배차 경로에 따라 수 개의 동 위원회로 투표용지를 수송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송은 하나의 거점에서 다수 거점으로 표가 이동하는 과정이다.

 

반면 회송은 다수 거점에서 소수 거점으로 표가 재이동하는 과정이다. 회송할 때는 각 지역에 흩어져있는 수십 개 투표소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개표소로 표가 이동하기 때문에 수송에 비해 보다 많은 노선이 필요하다. 단, 개표소가 2개 이상 설치·운영되는 경우 개표소별로 회송노선이 정해진다.

개표소▲ 수십 개의 투표소에서 중앙 개표소로 모든 표들이 이동한다.

 

투표, “첫째도 보안 둘째도 보안”

 

투표용지 및 물품 인수▲ 투표용지 및 물품 인수. 정당추진위원, 투표관리관, 간사 등이 투표용지 봉인상태를 확인한다.

 

구 위원회는 늦어도 선거 전일 오전까지는 선거 용지, 투표함, 기표대, 투표소 설비, 관리용 서식투표 등 투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각 동 위원회에 전달해야 한다. 이때 투표함 등의 수·회송 안전 관리 대책은 사전에 수립돼야 하며 미리 정해진 경로대로 움직여야 한다.(<투표함 등의 수·회송 준비 편람>)

 

투표에 필요한 물품은 일반적으로 선거 전일에 동 위원회로 전달되지만, 도서 및 산간지역, 오지와 같은 특수지역의 경우 기상 등의 변수를 고려하여 이보다 이른 시점에 전달되기도 한다. 중앙선관위 선거과 관계자는 “주간 날씨를 파악해 풍랑이나 해일 등이 예상되면 물품을 전달하기로 계획한 주의 맑은 날이나 그 1~2일 전에 사전 이송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투표에 필요한 물품이 전달 완료되면 정당추천위원, 투표관리관, 간사 등이 투표용지의 봉인상태를 확인하여 ‘인수인계서’를 작성한다. 인수인계서는 총 2부 작성되며, 그중 한 부는 수송책임자가, 다른 한 부는 동 위원회가 보관한다.

투표, 인수인계서▲ 구 위원회에서 동 위원회로 투표함, 기표대 등 물건을 수송할 때는 반드시 인수인계서를 작성해야 한다. 2부를 작성하여 그중 한 부는 수송책임자가, 다른 한 부는 동 위원회에서 자체보관한다.

 

물품을 전달받은 투표소는 투표 전날 투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무리해야 한다. 투표소는 투표에 필요한 물건 가운데 무언가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각 물품의 개수는 정확한지, 관련 서류는 제대로 구비되었는지 등을 확인하고 구 위원회로부터 전달받은 기표대와 투표함을 투표소에 배치한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음 날 투표가 실시된다.

기표대▲ 투표전날 기표소를 설치한다.

 

투표가 종료되면 기표된 표는 투표함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보안 유지에는 ‘안전 실드’가 사용된다. 투표함 마개에는 ‘특수봉인지’ 스티커가 붙는다. 이 스티커는 한 번 떼면 다시 붙일 수 없으며, 떼어내면 자국이 남는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이 스티커를 제거하고 일회용 자물쇠까지 해제해야만 비로소 개표를 할 수 있다.

투표함▲ 특수봉인지와 일회용 자물쇠로 봉인된 투표함

 

투표 후, “한 표 한 표가 소중하기에”

 

투표가 끝나고 특수 봉인지와 자물쇠가 채워진 투표함은 개표소로 ‘회송’된다. 투표함은 누가 운반하는 것일까? 특히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위해서는 투표용지가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상태로 이송돼야 한다. 때문에 아무나 투표함을 이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관위는 관련 행정기관의 협조 하에 투표함 이송 인력을 확보한다. 동 위원회 간사와 투표관리관이 투표함 수·회송 책임자로 선정되며, 이송 과정에 투표사무원, 투표 참관인이 동행한다. 또한 투표함을 회송할 때는 각 노선별로 두 명의 경찰공무원이 의무적으로 호송을 맡도록 되어 있다. 이는 도서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투표함 이송▲ 투표가 끝나면 투표소에서 개표소까지 투표사무원, 투표참관인, 경찰공무원이 동행한다.

 

투표함은 투표가 끝나는 즉시 개표소로 옮겨진다. 투표에 사용된 기표대, 도장 등의 기타 물품은 이때 함께 옮겨지기도 하고, 추후 따로 옮겨지기도 한다. 따로 이동하는 경우 인근 투표소의 물품을 한꺼번에 수거할 수 있도록 경로가 지정되기도 한다.

 

투표함을 회송할 수 있는 이송차량에도 제약이 있다. 회송차량은 버스와 승합차 등 유개차여야만 한다. 부득이한 경우 무개차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비가 올 가능성 등에 대비하여 투표함에 덧씌울 수 있는 포장재 등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투표함 회송이 차량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도서지역이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의 경우 특수 차량이 이용되기도 한다. 특히 도서지역의 회송에는 선박이 이용된다. 선박을 포함해 투표함 운반을 위해 임차하는 모든 차량 및 교통수단은 종합보험 등에 가입된 것이어야만 한다.

 

회송을 준비할 때는 기후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 위원회는 갑작스런 기상 변화와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비상운송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기관과 사전에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유지해야 한다. 특히 동절기에는 안전한 운송을 위해 체인, 삽 등의 안전 장구를 차량에 구비해놓아야 한다.

 

재외국민선거, “표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이나 투표 기간 동안 해외에 나가 있는 국민을 위해 마련된 재외국민선거의 물류는 어떨까.

 

재외국민선거는 투표용지 발급기를 통해 이뤄진다. 때문에 투표관련 물품의 사전 배송이 필요 없다. 재외국민은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사전 선거 신고신청을 해야 한다. 이번 19대 대선의 경우, 4월 25일부터 4월 30일까지 재외국민선거가 치러졌다. 투표 당일, 재외국민선거 대상자는 재외 투표소에서 신분확인 절차를 거친 뒤, 투표용지 발급기에서 출력된 용지에 투표하고 회송용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집어넣으면 된다.

 

투표함에 보관된 모든 표는 한국으로 운반된 뒤 중앙선관위에 인계된다. 이때 해외 투표함에 보관된 투표지는 외교행낭(Diplomatic Bag)으로 취급되어 국내에 이송된다. 외교행낭으로 분류되는 투표함은 통관절차상 특혜를 받아 신속하게 국내 재외공간으로 전달된다.

 

직항노선을 보유한 공관 56개는 해외 투표함을 직접 배송한다. 경유노선이 있는 공관 98개는 중간 기착공관까지 투표함을 인편으로 보내면 허브 공항이 이를 취합해 다시 한국 항공편으로 보낸다. 한국에 도착한 투표함은 개봉된 후, 투표용지별로 관할 구 선관위에 등기우편으로 배송돼, 국내에서 회송된 투표지와 동일한 절차로 개표된다.

재외국민선거▲ 국외에서 도착한 재외국민 투표함을 분리작업 중인 선관위(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금까지 투표소부터 개표소까지, 표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살펴봤다. 선거의 표면은 화려하다. 언론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이러한 ‘선거 물류’가 존재한다.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대선이 별 탈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선거 물류’가 치열하게 준비됐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끝으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한다. 표의 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대선, 모두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표로써 행사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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