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박승범의 공급망뒤집기] 노동 없이 소비하는 세상, 월-E가 보여주는 공급망의 미래

by 박승범

2016년 12월 27일

- 구매력이 수반된 구매욕구 '수요', 구매력을 만드는 '노동'- 노동이 무너진 시대, 수요가 보장되지 않는 미래- 공급망의 위기, 공급 위해 수요 만드는 미래 찾아올까

 

글. 박승범 SCM칼럼리스트 / 편집. 엄지용 기자

 

Idea in Brief

물건을 만들면 만드는 대로 다 팔렸던 공급의 시대가 이제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그 원인중 하나는 기존 노동으로 수요를 만드는 데 충분한 ‘구매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는 ‘헬’, ‘열정’과 같은 분노한 노동자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공급망 관리 관점에서 역시 이제 예전과 같은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했다. 이런 상황하에 영화 월-E는 우리에게 하나의 통찰을 줄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미래인들은 전혀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소비 행위를 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 답을 함께 고민해보자.

 

필자가 지난 6개월 동안 연재한 ‘SCM이여 다시 한 번’이라는 주제의 마지막 기고다. 늦은 밤, 폭염 속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를 6개월에 걸쳐 최대한 많이 글로 풀어냈고,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이제 끝을 맺는다.

 

잠시 지난 연재를 회고해보자. 스마트 공장도 따지고 보면 SCM이지만, 그 평가는 장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 했다. 또한 글로벌 소싱이 아닌 부품 국내조달이 공급망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녹색 SCM(Green Supply Chain Management)도 일단 공급망 관리를 잘 해야 실현된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여기서 잠깐 기본으로 돌아와 보자. 공급망 관리는 결국 ‘시장 수요에 민첩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수요란 무엇인가?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보면 수요의 정의가 잘 설명돼 있다. ‘사람들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려는 욕구로, 주어진 가격에서 공급의 제한이 없을 때 실제 구매하는 양’이라는 설명이 그것이다. 즉 수요는 ‘구매력이 수반된 구매 욕구’다.

 

그렇다면 구매력이란 어디서 생기는가? 노동에서 생겨난다. 그럼 지금의 노동은 노동하는 주체가 행복할 만큼의 충분한 구매력을 제공하고 있을까? 마지막 질문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모순을 상징하는 수없이 많은 키워드, 뭐 예를 들어 헬...열정...청년... 이런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썩 괜찮게 돌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수요가 공급을 따르던 시대의 종말

 

그러나 이미 4차 산업혁명은 시작됐다. 인공지능이 대중 앞에 무겁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조 능력은 상향평준화되어 생산성이 전 지구적으로 높아졌다. 기존 산업의 노동 기회는 줄어들고 있으며, 지구의 에너지 자원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화석연료를 그만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요컨대, 전통적으로 노동이 충분한 구매력을 제공했던 활동들의 전제는 분명했다. 아직 우리는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다. 왜냐. 지구상 어딘가에는 우리가 발굴해서 더 나은 일에 쓸 수 있는 자원과 그 자원을 소비할 수요가 많이 있으니까. 자연히 투입대비 적게 산출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투입 대비 많이 산출하는 기업이 살아남아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뭐 이런 것들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급 위주의 전제들’이다. 그리고 이제 그 활동들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제 전통적인 방법으로 노동이 충분한 구매력을 제공하도록 하는 데는 한계가 드러났다. 즉, 공급망 관리 관점에서는 수요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았다. 수요가 증가하지 않더라도 그런대로 마켓센싱(Market Sensing)을 하고 수요를 예측하고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공급망 관리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과연 기업 활동은 지속할 수 있으며, 기존 노동시장 참가자들의 노동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해소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요컨대 헬...열정...청년...하는 키워드들은 비록 지금 당장은 봉합이 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나타날 인류 전체의 숙제다. 이것은 과연 공급망 관리가 가능할 수 있을 만큼, 그래서 파는 이나 사는 이나 모두 행복할 만큼의 수요가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갈림길이다.

 

공급을 위해 수요를 만드는 미래

 

그런 의미에서 연말연시를 맞은 지금, 가족과 함께 볼 만한 영화로 2008년 픽사에서 제작한 ‘월-E(Wall-E)’를 추천한다. 비교적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애니메이션답지 않게 인공지능과 로봇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암울한 미래와 그 암울한 미래를 벗어나는 인류의 모습을 픽사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영화의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해 본다. 먼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공급하는 초거대기업 Buy & Large(B&L)사가 인류에게 극단적인 소비를 조장한 끝에 지구를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B&L사는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인류를 데리고 우주선 액시옴(Axiom) 호에 태워서 우주를 떠돈다. 그러던 중 지구에서 조용히 쓰레기 치우고 살던 청소로봇 ‘월-E’의 활약으로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가서 지구 재건에 나선다는 줄거리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장면이 있다. 바로 이 액시옴호 안에 있는 인류의 모습이다. 영화는 인류를 가만히 앉아서 먹고 놀기만 해서 살이 뒤룩뒤룩 쪄 버리고, 그래서 로봇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으며, 바로 옆에 사람이 있음에도 가상현실 기구를 통해 상대방과 의사소통할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을 잃어버린 것처럼 묘사한다. 그들은 혼자서 일어설 수 없으니 당연히 자동으로 움직이는 안락의자 비슷한 장비에 실려 이동하는데 이들에게 안락의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방과의 채팅, 음식 주문, 그리고 컴퓨터 게임 정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사육당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영화에서도 B&L사는 여전히 지구인들에게 음식을 공급한다. 최신유행 옷도 공급한다. 여전히 B&L사는 인간에게 소비를 조장하고 있고, 그 소비에 따른 쓰레기는 주인공 월-E보다 훨씬 진화된 초거대 청소로봇들이 우주에 방출하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영화 속에서 인류는 일하라고 해도 도저히 일을 할 것 같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리고 일하는 모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려면 이 뚱보들은 어디서 돈이 나서 돈을 내고 살까? 일단 액시옴호에 탑승한 만큼 매일 사용료 정도는 나갈 텐데 그것도 이상하다. 액시옴호에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후손이었을까? 에이 이미 액시옴호가 만들어지고 수백년이 지난 상태다. 그 돈이 수백년 지나서도 남아 있을라고?

 

필자의 추리는 이렇다. 어쩌면...B&L사는 초기에는 탑승자들로부터 요금을 받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생산과 판매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이 한정된 숫자의 인류에게 일부러 돈을 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무한정 돈을 줄 수 없으니 인간이 최소한의 활동만 하도록 안락의자에서 살게 만들어 버리고, 그 대신 최소한의 음식물과 의류 등을 소비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B&L사는 수요 창출을 위해 스스로 돈을 풀어서 소비자가 B&L사의 제품을 소비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해 보니 많은 공상과학 영화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별로 안 나온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도대체 뭘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도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실업자가 돼 일정 수당을 받아 연명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 설정상 안 그런 영화도 많다. 영화 ‘로보캅’에서는 거대 기업의 부동산 개발에 의해 정부 공권력이 와해되면서 공무원들이 아무런 구제를 못 받는 실업자가 되었다. 또 다른 영화 ‘써로게이트’에서는 인간은 집에 누워만 있을 뿐 실제 경제활동은 아바타가 처리하고 있었다. 나머지 답은 영화 월-E를 보면서 자녀분들과 같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실제로 현재 전 지구적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정 금액의 수당을 지급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이것은 너무 인기에 영합한 정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만들면 팔리는 시대’를 살아 왔기 때문에 아직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을 부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로 받아들였다. 20여 년 전 IBM의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사람들은 잠깐 인공지능이라는 것에 흥분했을 뿐 더 이상 인공지능을 입에 담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구글이라는 전 지구적인 기업이 새로운 인공지능을 들고 나오면서 우리는 다시금 인공지능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공급망의 수요를 지속 창출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것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공평한 수당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더 이상 새로운 실험이 아닌 날이 올지 모른다. 공급망이 지속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시장 수요를 지속시켜야 한다. 그런 와중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에나 맞을 법한 해결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면, 과거의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영화 월-E는 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수백년 동안 소비를 지속했지 않은가 싶다. 그 해결책이 유토피아라면 새겨봐야 할 것이고, 디스토피아라면 앞으로 인류가 조심할 일이다. 예를 들어 그 해결책으로 인해 영화에서처럼 뚱보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영화 월-E 얘기 나온 김에 한마디 더. 영화 속 등장하는 로봇 이브(Eve)는 애플의 아이팟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그리고 월-E의 시동음은 애플OS X의 부팅 사운드를 그대로 썼다고 한다.



박승범

물류에 뜻을 두고, 물류센터 현장분류부터 '운송회사'까지 전전한 끝에 최근 대형 제조업체 물류IT 업무를 맡고 있는 평범한 물류인입니다. {개인블로그}를 통해 물류 관점에서 본 세상 이야기와 물류업계 종사자들의 삶과 애환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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