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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과 쿠팡, 그리고 택배의 단상

by 김철민 편집장

2016년 01월 27일

김편의 구라까이(일곱 번째 이야기)
비즈니스의 가치 ‘콘텐츠’
 
어렸을 적, 독서에 흥미가 없던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 괴도 아르센 루팡과 탐정 셜록 홈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도둑과 탐정이라는 상반된 두 캐릭터지만 제게 더 흥미롭던 인물은 루팡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괴도 루팡’은 짐작할 수 없는 무한대였기 때문이었죠. 그는 다양한 과학적 도구로 진실한 경지에 이른 변신술을 선보였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열차에 오른 루팡은 열차에서 내릴 무렵이면 어느새 귀족 혹은 병사, 심지어 자신을 잡으려 하는 치안국장으로 변신해 있기도 합니다. 그는 탁월한 연기자이자 법학도였으며, 의학도이자 위대한 마법사였던 셈입니다.
 
 
루팡의 신출귀몰한 행동이 멋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본질’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그는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거울을 보면서도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회한했습니다. ‘선과 악, 모두가 나를 잡아끈다’며 ‘균형 잡기가 어렵다’고 이중성을 토로하던 괴도 루팡. 어린 나는 그런 그의 번뇌를 짐작하려 애썼습니다. 범죄는 저지르되 살인은 하지 않는 자. 남작의 성을 털기 전, 편지로 예고하는 대범함을 지녔지만 과부와 고아의 수호신이기도 했던 루팡. 그 시절 루팡은 언제 돌아봐도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출처: CJ대한통운 택배)
 
이야기를 바꿔서…. 얼마 전, 금융업계 운송물류분야 애널리스트 몇 분과 술자리를 하다 ‘쿠팡’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술자리에서 공장이야기는 섞지 않는 나름의 원칙(?)이 있지만 서로의 공통된 관심 분야인지라 쿠팡의 기이한 행동과 이에 대한 갑론을박 다양한 분석은 제법 맛있는 술안주가 되었습니다. 잠깐 이 자리에서 나온 코멘트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쿠팡(대형화주)의 직접배송으로 택배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 속에서 CJ대한통운, 한진 등 대형 택배사들의 주가가 떨어졌나요? 수치상으로 이들 업체의 주가 동향은 올랐습니다. 이커머스 활성화로 라스트마일 영역의 물동량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쿠팡으로 인해 택배(배송) 서비스의 부가가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주목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출처: 쿠팡)
 
이때, 제 뇌리 속에 스쳐간 단어가 ‘쿠팡, 음... 루팡(?)’이었습니다. ‘쿠팡과 루팡’이라니, 이 무슨 랩퍼의 라임을 흉내내는 것도 아니요, 아재개그처럼 유치한 말장난이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 관점은 쿠팡을 바라보며 소비자들이 느끼는 ‘콘텐츠의 힘’ 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콘텐츠는 미디어 관련 기업들만의 생산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콘텐츠는 미디어에 담기는 내용물을 듯합니다. 하지만 개념을 더 확장해보면 인간의 오감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수단을 활용, 스토리 라인이나 메시지를 전달해 만족감을 주는 상품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브랜드를 일종의 콘텐츠로 받아들입니다. 브랜드 자극에 노출되면 소비자들은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는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과 만족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핵심 메시지를 다양한 수단으로 전달하는 콘텐츠 제작 방식을 활용하면 보다 가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요즘 ‘빠르고, 친절한’ 배송의 대명사 쿠팡처럼 말입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로스리더(Loss leader) 품목을 선점하기 위한 배송 차별화 전략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이 한번 싸다는 것을 인식하면 쉽게 거래업체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겨냥하여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그런데 쿠팡은 단순히 ‘가격’ 만으로 소비자를 유인하지 않았습니다. 로켓배송의 주인공인 쿠팡맨의 ‘감성 배송’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 있고, 쿠팡은 ‘로켓배송’ 품목을 중심으로 어떤 경쟁사도 쉽게 쿠팡의 시장을 빼앗아 올 수 없는 철옹성을 구축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의 핵심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참신성 혹은 의외성 입니다. 전통적인 왕자 공주 스토리라인을 파격적으로 깨트린 영화 ‘겨울왕국’의 흥행은 참신성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새롭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결론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콘텐츠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점에서 쿠팡은 기존 택배회사나 유통업체들과 달리 소비자들 사이에서 변별력 없는 그저 그런 서비스인 ‘배송’이란 분야에서 참신한 서비스 차별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제가 마치 ‘괴도 루팡’의 매력에 빠진 것처럼 말입니다.
 
P.S: 물론 쿠팡이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도 많습니다. 밖으로는 직접 배송에 따른 인력 충원과 시설 확대로 인한 비용증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해야 하며, 안으로는 최근 쿠팡맨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는 업무 강도 등 고용 안정화와 수익보장에 대한 불안 요소 등도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김철민 편집장

Beyond me(dia), Beyond logistics
김철민의 SCL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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