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천동암의 물류에세이] 물류부장 오달수 일본에 가다 (10)

by 콘텐츠본부

2016년 01월 21일

물류부장 오달수 일본에 가다 10 (일본편 마무리)

글 . 천동암 한화큐셀 물류담당 상무

 

Who?

천동암

시 쓰는 물류인 천동암 씨는 한국코카콜라와 DHL코리아, 삼성전자, 삼성전자로지텍을 거쳐 현재 한화큐셀 글로벌 물류담당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 부문)을 했으며, 시집 ‘오른다리’ 를 출간했다. 경영학 박사 및 CPL, CPIM, CPSM 등 국제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물류전문가로 국제물류론, 창고하역 보관론을 집필했다.

 


가을비가 추적거리면서 내리더니 어느새 폭우로 변하여 사무실 유리창을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오 부장은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저마다 소리 냄새가 있었다. 가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소량 다품종으로 주문하는 고객의 목소리였다. 신규 고객으로부터 처음 주문할 때 나오는 빗물 소리는 갓 나오는 푸성귀의 상큼한 새색시의 달콤한 입술 냄새였다. 우렁차게 떨어지는 빗물소리는 18톤 FTL(Full Truck Load)과 같은 20대 남정네의 포호함이었다. 졸졸 흐르는 빗물소리는 1개월에 한번 정도 약을 주문해야 하는 당뇨병에 시달리는 중년남자의 찌질한 냄새가 났다.

비가 잦아들고 뚝뚝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빗물소리는 ‘나를 알아주세요’ 라고 목울음을 울어내는 오 부장의 목소리로 들렸다.

냄새가 휘고 있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일본 법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기간 동안에 일본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오 부장은 자기가 작은 존재라는 것을 절감했다. 조그만 존재였다. 무엇인가 센 것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오 부장을 짓누르고 있는 짐은 ‘비용절감과 물류체질 개선’이었다.

‘과연 물류체질 개선을 하면서 동시에 대폭적인 비용 절감을 달성 할 수 있을까? 무엇이라고 단언하기가 겁이 난다. 내가 하는 일들이 과연 정당하고 회사를 위해서 온전한 일인가. 아무것도 실행 된 것이 없고 계획만 가지고 비용절감을 한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나중에 말 많은 성 전무 그리고 일본 법인장과 직원들이 오 부장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오 부장은 그들의 돌에 맞아 피가 흐르고 피에 얼룩진 상처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지는 않을까?’

오 부장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계획과 실행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두려움에 몸이 오싹해지고 있었다.

일본법인의 단일한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에 9개 업체가 제안서를 냈다. 오 부장은 제안서를 검토하면서 ‘비용절감과 서비스 개선’을 외치는 화려한 문구에 기가 질렸다. ‘비용절감과 최고의 물류서비스’는 화주기업과 물류회사의 최선을 추구하는 기치이다. 그러나 물류업체들의 제안서에 숨어있는 오고 가는 뻥 속에 진실을 찾는 것, 허풍과 진실 사이를 구분하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었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일본 법인장을 포함한 물류기획 직원들과 TF직원들이 동시에 물류 아웃소싱 제안서를 이메일로 받고 물류운영 가격표는 봉인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일본 법인장을 포함한 팀장들 그리고 TF인력 전원으로 구성하였다.

한국계 물류회사들의 제안서는 탁월했지만 그들의 물류 실행 능력에 의구심이 들었다. 오 부장은 일본 전역에 펼쳐진 배송과 창고 운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인력운영, 차량운영 등의 인프라를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반면에 일본 법인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물류 실행을 위한 민첩한 행동은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부장은 한국계 물류회사들은 전국에 걸쳐서 분산된 건설현장에 제품을 정시에 배송하고 실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더구나 이들 물류회사들은 무자산(Non Asset) 회사들이고 물류를 실행하기 위한 실행사를 하부에 두고 다시 운영하는 구조였다.

일본계 물류회사들은 화려한 수식어는 없었고 필요한 부문만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 내용은 화려한 수식어는 없이 투박하였지만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명확하였다.

물류회사가 제안한 물류 운영 견적서가 일본 법인사무실에 등기로 왔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세윤 주임이 개봉하였다. 순간적으로 긴장감 때문인지 누군가 침을 꼴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색한 침묵을 깨졌다. 이윽고 견전서가 개봉되고 동시에 김필립 차장이 능숙한 솜씨로 물류운영 요율에 근거하여 요약표를 만들었다.

김 차장은 제안서 충실성 점수 30%와 가격요율 70%를 가중치가 반영된 제안서 점수 심사표를 만들어서 심사위원들에게 제공했다. Short List에 반영하기 위하여 3개 업체를 선정했다.

1등과 2등 그리고 3등. 1등과 2등 점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점수 차이가 거의 동등하기 때문에 현장을 방문한 TF에서 운영역량을 반영하여 결정을 하라고 채근하였다.

당황한 오 부장은 TF인력들이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법인장님! 현재 지급하는 요율대비 1등과 2등은 각각 19.5%와 19.8%로 절감이 예상됩니다. 두 개 회사 모두 일본 내에서 물류 운영능력이 동등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물류운영 단가로 판단했으면 합니다. 따라서 이들 업체를 저와 TF인력들이 미팅하여 최종적으로 단가 네고를 하고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네고 폭이 큰 업체로 선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정위원들은 모두 동의를 해 주었다. 오 부장은 2개 물류업체를 일본법인 사무실로 불러서 미팅을 하는 것보다 직접 방문하는 하심(下心)자세가 협상하기에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부장은 요시다 그리고 이세윤 주임을 데리고 업체 방문계획을 세웠다.

업체 방문을 위해 연락한 결과 두 개 업체 중 ‘S´사는 물류 단가를 더 이상 낮출 수 없다고 했다. 오 부장은 실망감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식은땀이 났다.

´N´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슬비가 소리 없이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택시 창문가에 이슬비가 흩뿌리는 것이 오 부장의 마음을 싸륵싸륵 쓰다듬고 있었다. ´N´사 본사 건물로비에 들어서자 물류제안을 했던 담당과장이 오 부장일행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물류비 항목 중 고객 배송비가 전체 물류비의 65%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 배송비 35% 단가 절감을 하는 것이 비용절감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다. 오 부장은 ‘N´사 제안한 물류비 항목별 단가표를 펼쳐놓고 설명을 했다.

“귀사가 제안한 물류단가가 저희가 목표로 하는 단가 물류비 절감인 30%에 미치지 못합니다. 물류비 항목 중 고객 배송비 단가를 35% 절감 해 줄 수 있나요?”

통역을 하던 이세윤 주임도 잠시 멈춤 거리다가 오 부장에게 되물었다.

“부장님, 고객 배송비 35% 단가 절감이요?”

“이 주임, 맞아요!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세요.”

오 부장의 단독직입적인 전투적인 말투에 ‘N´사 물류담당과장과 부장은 눈이 오백 엔짜리 동전처럼 커졌다.

‘35% 절감’이라는 말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순간의 침묵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건곤일척(乾坤一擲)’ 오 부장은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내가 너무 많이 질렀나!’

오 부장은 순간적으로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들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N사의 마쭈다 물류부장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윽고 마쭈다 부장이 무거운 입을 떼고 얘기를 했다.

“오 부장님, 35% 배송비 절감 요구는 당사로서 지금 당장 수용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군요. 1시간만 시간을 주시면 내부적으로 경영진과 협의 후 다시 미팅을 재개하도록 하시지요.”

1시간정도 기다리는 동안 요시다 과장은 오 부장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건넸다.

“오 부장님, 35% 단가 절감은 일본물류업계에서는 받아 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요시다 과장! 35% 절감을 요구해야지 25%정도라도 달성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세게 밀어붙이고 기다려 보자고!”

오 부장은 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먹구름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헤집고 있었다.

마쭈다 부장이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임원을 데리고 회의실로 다시 왔다.

그는 ‘N´사에서 물류총괄 계약을 책임지는 이시다 상무였다. 체구는 크지 않지만 금테 안경 너머 눈빛은 레이저 광선을 내뿜을 듯이 살아 있었다. 이시다 상무가 침묵을 깨고 오 부장에게 단독 직입적으로 물었다.

“오 부장님! 귀사가 요구한 대로 저희가 고객 배송비 35% 단가 인하를 해준다면 이 입찰에서 위너(Winner)가 될 수 있나요?”

오 부장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했다.

“이시다 상무님! 이 단가 인하 조건을 수용해주신다면 이 입찰에서 위너가 될 가능성은 90%입니다. 10%은 본사의 사장님에게 재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입니다.”

“좋소. 귀사의 단가 인하 조건을 수용하겠소. 다른 조건들인 RFQ상에 있는 조건 등을 준용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언제쯤 귀사의 사장님 재가를 받을 수 있나요?”

오 부장은 쾌재를 불렀다
.
“RFQ 상의 계약 조건들은 동일한 것이고 1주일 이내에 당사의 사장님 재가를 받고 최종적으로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동석했던 요시다 과장과 이세윤 주임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흥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일본법인 사무실에 돌아와서 최종적인 단가 협상 사항을 이 법인장과 팀장들에게 알렸다. 모두 다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필립 차장이 현재 단가와 절감된 견적단가에 금년 판매 실적과 미래 경영계획 물량을 곱해서 단가 차에 의한 물류비 절감액을 산출하였다, 절감 금액은 원화로 약 98억 원이었다. 98억 비용절감은 10% 영업이익을 감안하면 980억 추가 매출액과 동일한 재무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물류업체 선정 결과를 성 전무에게 메일로 상세하게 보내고 대표이사 재가를 부탁했다. 몇 시간 후에 성 전무로부터 대표 이사를 승인을 득했으니 신속히 진행하라는 연락만 받았다.

‘성 전무는 아무리 노력을 해서 잘해도 수고했다는 말은 없네! 지적을 안 당하면 잘하고 있는 거지. 너무 실망 할 필요도 없지!’

오 부장은 자족적인 말을 내 뱉었으나 서운한 마음이 비처럼 스며들었다.

3개월 동안 진행했던 과제들을 정리했더니 대과제 7개와 세부과제 19개가 나왔다. 이미 9개 과제는 완료했고 진행 중인 과제는 17개였다.


그 동안 진행한 과제들은 TF인력들이 진행을 했고 아직 진행 할 과제들은 개선주체와 기한을 정했다. 오 부장은 일본법인 물류팀과 추가로 과제들을 도출하고 해야 할 주체들을 정하는 마무리(Closing) 미팅을 하였다.

프로젝트 기간에 소원했던 요시다 과장은 어느새 오 달수 부장을 친형처럼 살갑게 대했다. 이정서 일본법인장은 저녁 식사자리에서 오 부장에게 조그만 감사패를 전달했다. 오 부장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심각했던 일본 법인의 물류운영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오 부장은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동경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빛들은 ‘물류(物流), 심류(心流)’라고 속삭이며 오 부장을 쓰륵쓰륵 비추고 있었다.

물류부장 오달수 일본에 가다 끝

다음호에는 ‘ 물류부장 오달수 중국에 가다’ 편이 시작됩니다.

 

*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6권(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



콘텐츠본부

제보 : clo@clomag.co.kr




다음 읽을거리
추천 기사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