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위해
"규제는 소비자가 풀어야"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글.엄지용 기자 | 사진. 노현우 객원기자
창업하기 좋은 시대다. 우선 정부지원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으며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행사 또한 늘어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엑셀러레이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 또한 증가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이런 추세 속에서 미래창조과학부의 제안으로 네이버가 100% 출자하여 만들어진 비영리단체다.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과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목표로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한 편에는 15년 전 닷컴버블처럼 스타트업 열풍이 무너질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가 매출을 만들지 못했던 그 때와는 달리 지금 디지털경제를 이끌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우버와 같은 회사들은 조 단위의 매출을 만들어 내고 있다.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경주하고 있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과의 대담을 통해 스타트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스타트업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은 임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1.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센터장님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제안으로 네이버가 100% 출자하여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만든 비영리기관이다. 주요업무는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와 한국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이다. 그 외에도 스타트업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테헤란로 커피클럽’이나 ‘북클럽’ 같은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스타트업 관계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대화함으로 스타트업 세계를 이해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출범 당시 대략 50개의 스타트업 관계사가 함께했다. 그러나 사실 이 숫자에 큰 의미는 없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결국 스타트업 생태계 전부를 연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투자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중립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아우를 수 있다. 스타트업 창업자는 물론 국내 및 해외 투자자, 미디어, 정부, 대기업, 교육기관을 연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을 위한 에반젤리스트(Evangelist)라 볼 수 있다.
저는 조선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UC버클리 유학을 통해 실리콘벨리와 인연을 갖게 됐다. 그 이후 2006년 다음 본부장, 2009년 보스턴 라이코스 CEO를 거쳐 2012년부터는 실리콘벨리에서 1년 반 정도 스타트업 투자관련 업무를 맡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직을 맡기 전에는 스타트업에 블로그,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미국 스타트업 관련 이야기를 많이 전했었고, 그러던 중 한국 스타트업 관계자 몇 분을 통해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받았다. 그러던 중 네이버를 통해 제안 받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직을 맡게 됐다.
2. 현재 국내 스타트업 시장 규모 및 현황에 대해 알고 싶다. 최근 창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금을 창업하기 좋은 시대라 평할 수 있나.
사실 명확하게 스타트업 규모 및 현황에 대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다. 국내에는 수많은 작은 기업이 존재한다. 가령 택배기사도 개인사업자 아닌가. 그런 개인사업자와 벤처의 차이는 무엇이고, 스타트업이란 또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스타트업의 숫자를 따져 보자면 국내에 벤처인증을 받은 업체는 3만여 개다. ‘로켓펀치’와 같은 스타트업 정보 업체에 등록된 스타트업은 대략 1천여 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또한 한국 스타트업 지도를 만들었다. 지도에 등록되는 기준은 어느 정도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10억 이상 투자받은 업체’다. 처음엔 대략 50여개로 시작했는데, 이것을 SNS에 올리고 나니 여러 군데서 제보가 들어오더라.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는 대략 110여개의 스타트업이 업데이트 돼있다. 그리고 이렇게 등록되는 스타트업은 매주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지금은 창업하기 굉장히 좋은 시대다. 이것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해외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한국 역시도 처음 창업을 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다. 일단 정부지원 프로그램이 많다. 창업관련해서 이것저것 도와주는 각종 행사도 존재하며, 전국에 설립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사무실 또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해주는 엑셀러레이터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VC 또한 늘어나고 있다.
스타트업을 만들기도 쉬워졌다. 랩탑 하나만 있으면 오픈소스를 통해 코딩을 할 수 있다. 모바일로 앱을 만들어 앱스토어라는 공간에 쉽게 유통할 수도 있다. 그것을 SNS로 홍보하는 것 또한 매우 쉬운 일이다. 서버 또한 아마존의 AWS를 사용하여 쉽게 구축할 수 있다. 킥스타터(Kickstarter)와 같은 소셜펀딩 사이트 또한 존재한다. 한 마디로 말해 창업에 소요되는 기본적인 자금 자체가 옛날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세계 대부분의 인구가 모바일 폰을 사용하는 시대다. 그것을 매출로 연결하고 만들어내는 디지털 경제, 모바일 경제에 진입이 쉬워진 세상이다.
3. 스타트업 전문미디어 플래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가 활발히 일어났던 분야는 ‘ICT 서비스’ 분야였다. 그렇다면 올해 투자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스타트업 분야는 무엇인가.
요즘 세상에 ICT가 안 들어가는 서비스가 어디 있을까. 사업을 나누는 기준이 애매해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올해 투자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온디맨드라고도 불리는 ‘O2O’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메가 트렌드다. 사실 O2O라는 이야기는 한국, 중국에서만 많이 쓰고 있는 용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사업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국 우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온디맨드 경제의 사례다. 무엇이든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버튼만 누르면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많은 서비스 비즈니스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연결되어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물류는 O2O 분야에서 상당히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핀테크 분야에서도 투자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또한 유심히 살펴볼 부분이다. 제 관점에서 봤을 때 투자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골고루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근래 들어서는 ‘게임’ 분야의 스타트업 투자는 그렇게 크게 일어나고 있지 않다.
4. 2015년 O2O, MCN, 온디맨드 등 다양한 트렌드를 기반으로 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2016년에 스타트업 시장에서는 어떤 트렌드가 각광 받을 것이라 생각하나.
핀테크 분야 투자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이커머스 분야에도 투자가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 예측된다. 사실 헬스케어, 하드웨어 분야 또한 유심히 보고 있지만 해외와는 달리 국내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헬스케어 같은 경우 원격 진료와 같은 요인들이 들어갈 경우 여러 가지 규제에 가로막히는 부분이 있다. 개인정보 보호 같은 부분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이런 규제를 뚫고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이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다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 충분히 이슈화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드웨어 같은 경우 국내에서 몇몇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 투자에 경험이 있는 VC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5. 규제 이야기가 나왔다. 국내 스타트업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마트규제라는 말이 있다. 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선제적인 규제, 그리고 서비스를 사용하는 시민 중심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규제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야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불편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새로운 업체가 들어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된다. 소비자가 느끼는 편익은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가령 서비스에 소외된 지역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택시도 서울에서는 잘 잡히지만 지방은 분명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택시기사 또한 존재할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보완적 서비스가 등장하고, 안주하고 있는 기존 플레이어들에게 경쟁을 도입하는 정책을 스마트하고 적극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6. 많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해외사업 진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해외사업 진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에게 조언 부탁드린다. 가령 국내에서 창업하여 국내사업에 집중하는 것, 처음부터 해외에서 창업하여 해외사업에 집중하는 것, 국내에서 창업하여 사업을 성장시키고 해외로 연결하는 것 중 어떤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나.
일단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스타트업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제 생각으로는 기본적으로 국내시장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야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해외에서 투자를 받고 성공하는 것은 국내에서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이미 성공한 경험이 있는 유명 창업자가 아닌 한, 국내에서 창업을 해 서비스를 성공시키고 해외로 연결시키는 것이 맞다고 본다.
반대 의견으로는 국내에서 사업이 잘 안되니 해외에서 하라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이것은 조금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도 처음부터 해외진출을 하여 잘됐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은 대부분 투자자들이 요구해서 행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투자자는 일단 해외진출 가능성이 있어야 투자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시장이 작고, 한국에서 사업을 성공시켜봤자 기업가치가 얼마나 될 것이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투자를 왜 하겠는가? 투자한 VC는 최소 몇 배 이상의 투자회수를 원한다. 그래야 VC도 먹고사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정의처럼 창업(Start) 이후 급격한 성장(Up)을 통해 큰 보상을 주는 회사가 ‘스타트업’이 되는 것이다.
7. 스타트업트렌드리포트 2015에서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스타트업의 성공요소로 ‘해당분야의 전문지식’, ‘사업기획과 제품개발’, ‘자금조달’을 꼽았다. 그렇다면 센터장님이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성공요소는 무엇인가.
너무 뻔한 답변일지 모르지만 결국 ‘사람’이다. 창업자의 실력과 됨됨이는 기본이며, 무엇보다도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중요하다.
제가 아는 몇몇 후배들이 “자신의 기업도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는데, 스타트업이라 하면 직원들이 바람들 것 같아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은 ‘쿨’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좋은 인재가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만들고 로켓처럼 성장시킬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이미지 포장일 수도 있지만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왜냐. 여타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정체된 이미지를 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좋은 인재가 왜 스타트업에 들어오겠는가. 성장성을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부 대기업을 가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때문에 스타트업은 보통 평범한 기업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배달의민족과 같은 남다른 문화를 가진 곳이 대표적이다. 부장, 과장과 같은 보수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닌 젊고, 자유롭고, 재량 것 해결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스타트업이다. 일반적인 중소기업이 “우리도 똑같이 5명 이하의 인원을 가지고 창업한지 얼마 안됐는데 스타트업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스타트업의 혼(Spirit)을 가지고 있느냐” 되묻고 싶다.
또 하나. 스타트업은 굉장히 큰 변화를 만들어야 된다. 스타트업의 혼을 가지지 못한 단순히 적은 인원을 가진 중소업체라면 매출 얼마에 이익 얼마 남는 것 가지고 잘 살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기준으로 한 10년 전부터 벤처컴퍼니(Venture Company)라는 용어가 스타트업(Start-up)으로 바뀌더라. 지금은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조금 가벼운 말이 되지 않은 것인가 우려되기도 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좋은 시대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말 그대로 스타트한 것을 업시키는 것이다. 벤처는 모험이라면, 스타트업은 급성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가야될 것이다.
8. 반대로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나.
질문을 약간 바꿔서 답변 드리겠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되려면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다.
첫 번째가 ‘스타트업에 친근한 문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타트업이 이렇게 쿨하고, 창업자라 한다면 그에게 멋지고, 대단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문화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가령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부모님들 반응은 대개 “망할거 왜 하느냐?”, “서울대 나온 애가 무슨 창업이냐?”와 같다. 이런 안정 지향적인 사회분위기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두 번째가 ‘많은 창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잘 되려면 경험이 많은 창업자가 상당수 존재해야 한다. 앞서 자리를 만들어낸 창업자들이 후배를 밀고 당기고 도와줄 필요가 있다. 가령 스타트업 상장(IPO)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업계에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창업자의 층이 부족하다. 글로벌 진출을 해본 사람 또한 거의 없다. 대개 글로벌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대기업에 존재한다. 그들 중에는 실무자라기보다는 관리자 마인드로 폼만 잡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 또한 많다. 때문에 스타트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스타트업에 대한 다방면의 경험 있는 사람들의 두터운 층이 존재해야 된다.
세 번째로 ‘혁신에 우호적인 규제환경’이 있어야 한다. 규제부터가 스타트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기득권 보호 측면에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작은 회사를 아랫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 인정해주는 평등한 업계 문화가 존재해야 하는데 한국은 ‘갑을관계’를 기준으로 작은 업체를 바라본다.
네 번째로 ‘굉장히 성공한 슈퍼스타 롤모델’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슈퍼스타를 보고, 그를 롤모델로 삼아 창업에 도전할 것이다. 다섯 번째로 ‘실패에 대해 관용적인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 문화가 있어야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국내는 한번 실패하면 실패자로 낙인찍혀 재기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존재한다.
여섯 번째로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일수록 투자를 받기 어려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초기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몇 억의 투자 이후에는 수십, 수백, 수천억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밀어줄 수 있는 VC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그런 환경이 없다면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문턱에 못가고 중소기업 수준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이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국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풀이 부족하다. 대기업에 있는 개발자들은 그곳에서 잘 나오려고 하지 않으며, 교육기관에서 배출하는 개발자 또한 거의 없는 것이 실정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실현해줄 수 있는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9. 스타트업트렌드리포트 2015에서 국내 10대 그룹 재직자가 꼽은 대표적인 스타트업은 쿠팡, 배달의민족, 우버다. 이들이 10대 그룹 재직자가 꼽은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 언급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쿠팡, 배달의민족, 우버는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다. 쿠팡은 소프트뱅크의 1조 투자와 광고가 대중 인지도 상승에 한몫했다. 대중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친숙한 서비스였다는 점도 인지도 상승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배달의민족은 재치있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과 더불어 한 때 TV광고 융단폭격을 했던 점도 대중 인지도 상승에 영향을 줬다. 쿠팡과 배달의민족은 모두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우버는 어떤 기업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엄청난 급성장 스타트업으로 언론에서 많이 회자되기도 했으며, 한 때 업계와 법적 공방을 일으켰던 사실 때문에 일어난 버즈가 워낙 커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아직 한국에서 일반인들은 ‘스타트업’을 잘 모른다. 앞서 언급한 통계는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지금 바로 생각나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말해달라”는 질문을 해서 얻어낸 통계다. 그리고 응답자 중 70%는 그 질문에 바로 답변하지 못했다. 나머지 30%에 기반한 답변이 위에 있는 답변인 것이다.
10. 국내에서 우후죽순 탄생하는 B2C 스타트업에 비해 B2B 스타트업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해외는 되지만 국내는 안 된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B2B 창업을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고객이 되는 기업들이 독립기업의 소프트웨어를 높은 가격에 써주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고객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 심해진다. 대기업들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통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제가 기업 영수증을 처리해주는 획기적인 모바일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고 하자. 이것은 고객기업의 회계담당 부서가 사용해야 되고, 그것을 통해 전파되어 보다 많은 기업이 사용해야 좋은 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스타트업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데 인색하다. 특히 대기업은 더하다. 국내 대부분 대기업들은 IT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제가 영수증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 하더라도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통해 해당 소프트웨어를 그 기업이 만든 것처럼 포장한 후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할 것이다.
게다가 B2B스타트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판매채널이 많아야 되는데 국내에서는 그 판로를 뚫는 것이 만만치 않다. 1조 가치가 넘는 회사가 미국에 1000여개가 있다면 한국은 10개에 불과하다. 이 10개도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하기보다는 계열 IT회사를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을 처리한다. 스타트업이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직접 진입하는 것이 아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계열 소프트웨어 회사를 통해 들어온다. 다단계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스타트업이 받는 이익은 더 줄어든다. 또 한 가지. 만약 삼성에 판매한 소프트웨어면 LG에는 못 파는 이상한 상황 또한 발생한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한다.
반면 해외 같은 경우 대기업들이 많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B2B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수 있는 판로도 많다. 결정적으로 외부 업체의 제품을 제 값을 주고 사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B2B 비즈니스에 열려있다는 의미다.
11. 물류 또한 B2B가 중심이 되는 분야다. 아직 숫자는 많지 않지만 배달, 커머스 분야를 넘어서 물류 자체를 사업 아이템으로 선정하여 시장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B2B 스타트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말씀해 주셨는데 물류스타트업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될까.
모든 스타트업이 마찬가지지만 잘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시장영역의 틈새에 잘 들어가서 고객의 니즈에 맞춘 제품을 내놓고 유연(Lean)하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어떤 꽉 막혀있는 시장이라도 100% 고객이 기존의 것에 만족하고 있다 보지 않는다.
어디에나 틈새는 존재한다. 대기업들이 이런 틈새를 채우지는 못할 것이다. 1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은행이 10억 나오는 비즈니스를 등한시하거나 귀찮아한다면 그런 곳에 핀테크 스타트업이 들어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작은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한다면 기회가 생기고 그것을 확장해나갈 수도 있다.
물류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기존 물류기업이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틈새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류를 다루는 스타트업이 들어가야 할 곳은 이러한 완전한 니치시장이다.
쉽(Shyp)이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항상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이 우체국에 직접 찾아가서 화물을 부치고 포장도 직접 해야 됐던 부분이다. 쉽은 이러한 부분을 개선해 줬다. 물론 우리나라는 퀵서비스라는 것이 일상화돼있기 때문에 같은 사업모델을 붙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와 같이 국내 물류환경 안에서도 기존 기업이 해결해주지 못했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12. 최근 개인적으로 몇몇 VC로부터 물류산업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지막으로 투자업계 관점에서 물류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싶다.
사실 투자업계 관계자를 만나서 어떤 특정 분야를 정하고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가 이야기를 하더라도 ‘물류분야’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최근 투자업계와 대화 중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분야는 O2O, 핀테크, IoT, 그리고 하드웨어다.
만약 특별히 물류산업에서 혁신을 하겠다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그 산업에 들어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다. 가령 O2O 스타트업 중 세탁분야에서는 배송을 직접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히 ‘물류의 혁신’을 기조로 가지고 나온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
미국 같은 경우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사업이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클라우드에 모이고 있다. 이런 작은 사업들이 디지털화 되면서 많은 부분이 투명해지기도 하더라. 서로 다른 업체의 서비스가 결합(Plug-in)되면서 핵심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모든 것을 스마트폰을 활용함으로 만드는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도 구시대적인 것들이 많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지하 경제가 많다는 느낌 또한 든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스타트업이 들어와 결합할 부분을 찾는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온디맨드, 핀테크 등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그에 따라 결합되는 여러 가지 서비스들이 함께 나타날 필요가 있다. 물류분야에서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미국에서 우버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해당 기사는 CLO 통권 66호(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일부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