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쪼다 규제가 쪼다 국가 만든다

by 김진상

2018년 10월 18일

혁신 성장? 규제 혁파? 대한민국 스타트업 시장의 현 주소

시대에 맞춰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규제의 원칙'

다시 한 번 '네거티브', 네거티브에는 확실한 책임 따라야…

 

 

글.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 대표

 

Idea in Brief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도 어느덧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아젠다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혁신 성장과 규제 혁파다. 대통령 직속으로 구성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그것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조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네거티브 규제와 규제 샌드박스를 외치던 정부의 모습은 어디 갔는가.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1년 동안 이룬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쪼다 같은 규제는 혁신가가 떠난 쪼다 같은 국가를 탄생시킨다.

 

“희귀 질환 환자와 보호자보다 질병 정보에 더 밝은 공무원은 없었어요. 정부가 환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달 조선일보에 송고된 한 기사(당뇨 아들 둔 엔지니어 출신 엄마, 의료정책 바꾸다, 180707)의 첫 문장이다. 당뇨병에 걸린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국내에서 정식 수입되지 않은 혈당 측정 의료기기를 들여왔다가 관세법,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식약처에게 고발당했다는 내용이다. 어머니는 무허가 의료기기를 들여온 이유를 식약처에 설명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여곡절 끝에 승소했지만, 휘귀 질환 환자를 고려하지 못하는 한국법은 변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 업계 사람보다 혁신성장 정보에 더 밝은 공무원은 없었어요. 정부가 스타트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규제의 원칙은 어디에

그렇다.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간섭하는 사전규제와 그것을 집행하는 정부조직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독극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전규제로 변화와 혁신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부조직의 악습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물론 규제 개혁의 목소리는 높다. 창조경제로 명망을 떨친 이전 정부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개혁이 안 된다. 오히려 기형적인 새로운 규제가 탄생한다. 부처 간, 이해당사자간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원칙 없는 규제개혁’에서 찾고 싶다.

 

가령 현재 한국의 규제개혁의 모습은 이렇다. 한 학급에 지각생이 많아졌다. 담당 교원은 지각생을 없애기 위해 지각생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신고를 받는 것까지는 좋았다. 교원은 ‘지각시간’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정하지 않았다. 몇 시를 넘어야 지각으로 처리되는지. 1분 혹은 1초를 넘겨도 지각으로 처리되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알 수 있는 것은 지각생 신고를 받는다는 정보뿐. 그래서 신고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누굴 지각생으로 처벌해야 되는지는 담당 교원도 모른다. 이 얘기를 듣고 최근 모빌리티 규제와 관련된 이슈가 생각난다면 이 업계 사람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명확한 규제개혁의 원칙은 무엇일까. 혹자의 말처럼 ‘기업하기 좋은 세상, 잘 만들어보자’일까? 이건 마치 ‘잘 살아보세’와 같은 감성적 선동 문구와 같다. 수많은 부작용만 낳게 될 뿐이리라.

 

시대는 기민하게 변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무형의 정보지식 산업이 혁신을 이끈다. 미국 투자은행 오션토모(Oceantomo)가 2015년 S&P500 기업들의 시장가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의 비중의 역전이 눈에 띈다. 1975년에는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의 비중이 17:83을 형성했다. 그런데 2015년에는 84:16으로 완전히 역전됐다. 무형자산 비중의 증가는 혁신의 결과다. 그리고 그 혁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철학과 문화인 ‘투명’, ‘공유’, ‘협력’, ‘권한 이임’을 중심으로 한 개방형 혁신에서 나오고 있다.(참고: Don Tapscott : Four principles for the open world, TED)

 

HBR(Harvard Business Review)은 말한다. 소셜시대 또는 초연결시대라 불리는 현 시대는 거대한 800파운드짜리 고릴라가 지배하던 시대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이제는 힘없고 약하며 심지어 마땅한 리더도 없어 보이는 800마리 가젤이 수많은 가치와 혁신을 만들어내는 시대라고. 즉, 거대한(Big) 것이 주는 이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날렵하고 기민함(Lean)이 만드는 이점이 거대함 그 이상을 넘본다.(참고: Rules For the Social Era, HBR)

 

X문가는 안 변한다

이를 인지 못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은 여전히 압축 성장 시대의 환상에 빠져있다. 대기업 만능주의가 대표적이다. 몇몇 이들은 스타트업도 대기업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구글과 텐센트는 대기업에 의지해서 오늘날처럼 어마어마한 기업이 됐는가? 천만에 만만에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원래부터 상호적 관계로 성장했지, 그걸 압축 성장 시대의 원청-하청 관계로 보면 곤란하다.

 

소위 전문가들이 시대의 변화를 학습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는 짓이 이렇다. 수제맥주와 최고급 원두커피, 유기농 음료와 샐러드 등을 비치한 트렌디한 사무실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혁신의 토대라도 되는 냥 뻐긴다.

 

미안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회사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이해하고, 열광해서 입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개인에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한 채 린(Lean)하게 경영하지 않는다면, 트렌디한 업무 환경은 혁신을 만드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직원들이 육체적 포만감과 자존심만 내세우며 딴 짓을 하게 만들 뿐이다.

 

무분별한 스타트업 지원의 근원에도 ‘소위 전문가’는 있다. 혁신기업을 선별할 능력도 없는데, 말도 안 되는 구시대적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선정된 심사위원들과 멘토가 그들이다. 이들 때문에 시장의 본질에 전혀 부합하지도 않는 무능한 창업자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짓 창업자는 본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시장을 우습게 본다. 그러면서 시장의 방향과는 동떨어진 ‘지원 사업 따내기’에 몰두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업하는 이들로 인해 시장은 왜곡된다.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몰두하고, 정부지원은 계속 받으며 경쟁사의 발목을 잡는다. 그들의 호객행위는 고객의 삶을 저하시킨다. 고용을 통한 일자리창출 재원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결국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진짜 스타트업은 이들이 만든 왜곡된 시장을 바로 잡는 데 소모적인 활동과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 절망감이 쌓인다.

 

혁신 막는 포지티브, 다시 한 번 네거티브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스타트업 중에서도 혁신을 창출하는 미국이나 중국의 스타트업처럼 회사의 존재 이유와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든 구성원이 숙지한 채, 혁신을 추구하는 곳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800마리의 가젤처럼 낭비 없이 허리띠를 졸라맨 채 빠르고 기민하게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린스타트업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못하는 구습을 깨부수며 도전한다.

 

그러나 이들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고 뭔가 본격적으로 해보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목을 쳐내고 배를 갈라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 있다. 바로 정부의 시대에 맞지 않는 포지티브 규제다. 포지티브 규제란 법률이나 정책에 허용되는 것들만 나열하는 방식이다. 이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은 불허한다.

▲ 세계 주요도시별 벤처투자 및 회수건수 비교(출처: CB인사이츠)

 

규제개혁의 대원칙은 ‘네거티브’다. 네거티브 규제란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사안에 대해서만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외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한 없이 마음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장려한다. 미국과 같은 혁신성장으로 가득한 국가들은 모두 네거티브 규제 형태를 채용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외치는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상황.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가 과연 앞으로도 유용할지 의문이다. 농경시대에서 산업화시대로 넘어가는 마당에 농경시대의 직업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화를 향한 모든 실험과 시도를 규제하는 꼴이다. 이것은 다 같이 망하자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도 못 만지나

실제 한국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가 규제에 의해 빈번히 좌절되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 포지티브 규제로 인해 기존 사업자와 구성원들은 보호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기업이 시대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빼앗아 본인과 후대의 밥그릇을 박살내는 모양새다. 포지티브 규제개혁 시나리오는 이렇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이슈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일단 사전 규제를 만든다. 정부 부처 간 서로 조율조차 되지 않은 복잡한 규제로 인해 혼란만 가중된다. 공평하지 않은 규제에 대한 시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결국 스타트업하는 불효자 노릇은 때려치우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겠다는 시장 참여자들을 양성한다.

 

정부가 기존 사업자들을 내버려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사업자들이 시대에 맞춰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상적이고 온당한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도를 하지마라고 막는 것은 아니다. “해봤어? 일단 해봐!” 도전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했네? 허락은 받았어?”라는 식의 경직성만 남았다. 자라보고 놀랐다고 솥뚜껑을 포함한 자라 비슷한 모든 것을 사전 규제하는 꼴이다. 진짜 자라인지 확인하고 사후 처벌할 것은 생각조차 안하는 듯하다.

 

네거티브에는 ‘책임’이 따라야

네거티브 규제라고 해서 무법지대를 만들고 아무거나 다 해보라고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네거티브 규제는 마음껏 뜻을 펼쳐보는 자유와 함께 이에 대한 엄청난 책임을 요구한다. 네거티브 규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혁신 의지를 무참히 짓밟고 사회 질서를 혼란케 하는 불공정, 기술 탈취 등의 반기업적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대비 ‘최소’ 10배 이상을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손배제의 도입과 같은 강력한 처벌을 마련해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가 도입된다면 자유에 따른 책임 강화를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출자제한 공정거래법. 이 법은 주주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하는 이익을 특정 주주에게 몰아주는 배임·횡령과 같은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합병의 활성화를 막는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한다면 이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주되, 사익편취를 위해 악용하는 이들이 드러난다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

 

정부가 모든 사안마다 쪼다 같이 미주알고주알 감 놔라, 배 놔라 해가며 규제할 것이 아니다. 큰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는 더욱 강력하게 처벌하자.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히 마음껏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들자. 법 제도를 만들어 강력하게 시행하면 되는 일을, 특정 기업을 언급하며 이익을 나누라고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독재시대 선동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발언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한다. 상당히 우려스럽다.

 

정부지원도 지원 대상을 먼저 선별하고, 누가 봐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성과를 달성했을 때만 ‘후 지원’ 형태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타트업과 대학 등의 성과가 예측 불가능한 경우 민간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탈에게 맡기는 것이 상식적이다. 지난달 재도전창업자 130명을 지원한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이들 중에는 시장성이 부족한 아이템으로 재도전함에 불구하고 130명이라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혈세가 낭비된 경우가 있지는 않았을까. 이런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런 경우도 민간 시장에 맡기면 좋을 것이다.

 

혁신성장 원한다면 스타트업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비해 갖는 경쟁력은 무엇인가. 스타트업은 돈도, 업력도, 브랜드도, 안정된 기술도, 고객도 없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은 ‘혁신’이다. 대한민국에서 스타트업만큼 혁신에 절박한 조직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좋아하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혁신성장을 이룰 때 극대화된다. 혁신조직인 스타트업과 정부의 잦은 만남은 정부 의식의 혁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기업은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대해 분명한 목적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고 임하는 기업가정신을 상실한 지 오래다. 결국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민첩한 기업이 시대의 변화에 맞는 혁신과 기회를 창출할 것이다.

 

따라서 스타트업 정책을 주도하는 중기부는 자영업자와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역할에 더해 새로운 기회를 촉진하는 혁신 부처로 거듭나야 한다. 혁신과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부 부처 간의 모든 갈등과 이해상충을 즉시 해결하는 ‘5분 타격대’와 같은 기능을 만들어서 혁신 주도형 스타트업의 애로사항을 공격적으로 해결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한껏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긍정적인 것도 보인다. 지난 5월 중기부 장관과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해서 수많은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3시간 동안 치열하게 생중계로 토해낸 행사(나와라! 중기부!)가 있었다. 집단지성을 효과적으로 도출시켜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개혁의지에 큰 용기를 준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이런 기회가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스타트업 관계자 분 중에서 이 방송을 못 보신 분은 꼭 보시길 권한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규제와 정부지원 정책에 대한 대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전 규제와 무분별한 지원정책을 만드는 과거의 구습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그에 따라 혁신성장을 위한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퇴화 소멸하는 추세로 갈 수밖에 없다면, 잠재력이 높은 스타트업 창업가가 구조적 한계 때문에 죽게 내버려 두지 말자. 차라리 어딘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외 이민 정책이라도 마련해주자. 비관적인 소망이다.

 

겨울에 입었던 수천만 원짜리 명품옷이더라도,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됐는데도 입고 다니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만약 겨울 명품옷을 찢어발겨 반팔, 반바지로 만들어 입고 다닌다고 하면, 그 옷은 더 이상 명품도, 여름옷도 아닌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100년 만에 폭염이 찾아왔다고 한다. 여름에는 여름옷을 입자. 겨울옷은 잘 접어 옷장에 넣어놓자.

 

규제개혁에 ‘내로남불’이 있다면

규제개혁에 내로남불이 있다. 남의 규제개혁은 적극 외치는 데, 정작 자신의 규제개혁에 대해서는 나몰라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규제개혁을 방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진정한 의미의 규제개혁을 위해선 규제개혁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자살골을 막아야 한다.

 

지난달 한 경제신문의 기사를 통해 규제 철폐를 요구한답시고 억지 주장을 펼쳐 오히려 규제개혁의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모습을 봤다. 기사의 논조인즉 대기업을 역차별하는 사내 벤처투자기업(CVC, Corporate Venture Capital) 설립 규제를 철폐하자는 내용이다. 한국은 금산분리법에 의해 지주사가 밴처캐피탈과 같은 투자사를 설립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필자 또한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사가 말하는 주장의 근거인 ‘계열사 직접 투자(현재허용) 한계’, ‘외부 벤처캐피탈 출자(현재 허용) 한계’, ‘구글, 아마존 등 해외기업과 역차별’은 근본적으로 억지 주장이다. CVC의 목적은 투자이익 확보에 더해 기존 기업의 신사업 기회 발굴 및 시너지 창출에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뭐가 문제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계열사 직접 투자(현재 허용) 한계

기사는 대기업 의사결정 구조상 재무구조가 취약한 스타트업 투자가 어렵고, 실적 민감한 CEO가 리스크 큰 스타트업 투자 단행을 꺼린다고 말한다. AI 등 융합되는 신사업 투자를 특정 계열사가 주도하기도 어렵고, 투자해도 대기업 계열사 우산에 들어오면 도전·벤처 정신은 사라진다고 한다. 반면, CVC는 수십 곳 포트폴리오 투자 후 리스크 분산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대기업 계열사의 조직문화와 의사결정구조가 혁신 투자를 직접 수행하고 기투자한 스타트업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룹 계열 투자사의 과실을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없다. 그냥 대기업 계열 투자사가 독립적으로 투자행위를 할 뿐이다. 또한 CVC도 극도의 위험을 전제로 한 모험자본 VC의 한 형태다.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런 리스크를 감당한 투자를 계열사가 감당할 수 없는 분위기라면 당연히 이 계열사의 상위조직인 지주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외부 밴처캐피털 출자(현재 허용) 한계

기사는 CVC는 수익률·투자 회수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기업의 벤처 투자는 기존 사업과의 전략적 측면을 중시해 충돌한다고 한다. CVC는 각 계열사와의 전략적 시너지를 발휘하기 용이하다는 논조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대기업이 외부 벤처캐피탈을 활용하되, 특수목적 펀드를 설립하면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펀드 공동운영자로 기업 측 인력을 외부 벤처캐피탈에 편입시킬 수도 있으며, 투자심의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게 규약을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순수하게 내부에서 진행하는 것에 비하면 비효율적인 요소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 여겨진다.

 

구글, 아마존 등 해외기업과 역차별

기사는 구글, 애플과 같은 해외기업은 외부 CVC를 설립해서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 대기업의 해외 벤처캐피털 설립은 역차별을 당한다고 한다. CVC는 대기업 자금 투입으로 국내 벤처 생태계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구글은 투자회사인 구글벤쳐스뿐 아니라 구글도 엄청난 스타트업 투자를 하고 있다. 심지어 지주사가 직접 투자도 한다. 가장 왕성하게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 합병하고 있는 기업가치 900조원에 달하는 기업인 애플과 아마존 등은 아예 외부 CVC 없이 직접 투자하고 있다.

 

혹자는 우리 계열사는 직접 혁신 스타트업에 투자할 준비가 안 돼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주사가 별도의 벤처투자사를 만들어도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오로지 경제와 산업의 혁신을 위해 별도의 외부 벤처투자사 조합에 출자하는 것이 훨씬 전략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지주사의 벤처캐피탈사 설립 금지에 문제가 있다는데 동의한다. 다만, 이런 규제를 풀기 위해 엉뚱한 논리를 제시하느니 차라리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부당한 사익편취를 위해 벤처캐피탈을 악용할 경우 패가망신 당할 정도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것이 규제혁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언론이 절박한 규제개혁의 염원을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에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을지 더 고민했으면 한다. 이 염원을 기껏 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훼손시키면 안 된다.

 



김진상

앰플러스파트너스(주) 대표이사 및 인하대 겸임교수. 넥스트벤쳐투자, 삼성전자, 3M, LG전자 등에서 연구개발, 기술마케팅 및 영업, Corporation Venture Capital, Venture Capital 업무 등을 수행하였으며, 창진특(톈진)전자유한공사 등에서 창업 및 사업을 하였다. 구글캠퍼스, 국민대, 서강대, 서울대, 유니스트, 한양대 등에서 기업가정신 및 스타트업 관련 강의 및 교육을 진행하였다. 스타트업 도우미가 되고 싶은 마음에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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