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박스 한 상자’그 두 가지 시선에 대하여

by 천동암

2014년 09월 19일

글. 천동암 삼성전자로지텍 부장


<박스 한 상자>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내 삶에 얽힌 두 가지 상반된 경험에 대해서 얘기하고 독자들도 삶의 다층적 의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 경험은 회사가 태평로 본관에서 강남사옥으로 이사 할 때 일이다. 내 책상 서랍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 것들은 휴지통에 버리고 박스에 담아야 할 소지품을 정리하였다. 무의적으로 서랍 안에서 버려야 할 서류들을 정리하고, 여분의 신발들도 박스에 쑤셔 넣었다. 내 소지품을 <박스 한 상자>에 포장하고 내 이름표를 박스에 붙였다.

다음 날 이삿짐 업체가 포장된 <박스 한 상자>를 강남 신사옥 내 책상에 옮겨놓았다. 포장된 박스를 다시 개봉하여 서랍에 다시 정리하였다. 소지품을 담았던 빈 상자는 죄의식도 없이 그대로 휴지통에 버려졌다. 내가 일하는 장소와 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나는 업무 환경에 적응 할 뿐 <박스 한 상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매일 해돋이와 해넘이가 찬란한 눈부심으로 나의 눈을 비추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나의 주위를 둘러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내가 보는 이 세계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나는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두 번째 경험은 작년 12월에 예고도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인사과 임원이 면담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 동안 업무성과가 탁월하여 본사에서 수여하는 상을 여러 번 수상 한 적이 있었는데 임원으로 승진 안 되어서 나의 심성관리를 위해서 면담 요청을 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는 어둡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장님, 이번에 조직개편이 예정되어 있는데 부장님이 맡은 조직이 해체되기 때문에 담당부장이 되고 물류전문가이시
니 자회사의 부장으로 전출했으면 합니다. 회사 여건상 자회사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라는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나고 가슴에 칼바람이 불어와 내 몸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가슴이 쓰렸다. ‘그동안 매년 탁월한 업무 성과를 내고 승승장구했던 나였는데 이것이 모두 허상이었구나! 어떻게 대처하지!’ 마음속에착잡하고복잡한생각들이많이들었다.‘ 계속 버텨볼까? 아니야, 후배들에게 추한 꼴을 보이지 말자! 아름답게 퇴장하자, 역사의 뒤안길로.......’

직원들과 어색한 작별인사를 하고, 책상 서랍에 있는 소지품을 박스에 담았다. 직장생활에 담겨진 희로애락(喜怒哀樂) 추억들이 <박스 한 상자>에 짚(ZIP)파일처럼 압축되어 있었다. 자회사 전출을 결심하고 휴가를 혼자 떠났다. 고향 압해도 섬, 땅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만나서 하소연 하고, 내가 살았던 옛 집터 우물가도 가 보았다.

“동암아! 압해도 촌놈이 대한민국 최고기업 본사에서 부장까지 했으면 출세 했으께잉 잘한 것이다.”

아버지가 당상 나무아래에서 크게 소리치는 있는 것 같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전날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 내 게스트 하우스에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 밤 쏟아지는 별이 내 쪽으로 날아와 가슴을 찌르고 나도 모르게 하늘에 대고 욕을 해대고 울부짖고 있었다. 중년 남자의 고독한 눈물이 <박스 한 상자>위에
뚝~뚝 떨어지고 상자는 뜨거운 눈물을 맞으며 윙윙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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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암

시와 소설을 쓰는 물류인 천동암 박사는 한국코카콜라와, 삼성전자, 한화큐셀에서 근무했던 물류 전문가입니다. 2010년 계간 한국작가에 등단(시)하여 시집으로 <오른다리>, <천가박가> 소설은 <아버지의 유산>, <물류 부장 오달수의 하루-일본편>을 출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와 국제자격증인 CPL, CPIM 및 CPSM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문서적으로는 국제물류론, 창고하역론을 집필했다. 물류와 문학을 융합시켜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인간이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경동대학교(경기도 양주 캠퍼스)에서 물류와 SCM 및 물류정보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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