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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창고이야기, 모세 이야기부터 관도대전까지

by 엄지용 기자

2014년 0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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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倉庫)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랙(rack)과 파렛트(pallet), 그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지게차가 생각날 수 있다. 또 컨테이너가 늘어서 있는 항만의 적하장을 떠올릴 수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우리는 물건을 저장하는 장소를 창고라고 부른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의 첫 만남을 위해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거대한 창고시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공간들도 우리는 개인용 창고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창고를 언제부터 이용하기 시작했을까? 구체적인 문헌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창고는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신석기 혁명 이후 토기의 발명은 인류에게 그전까지 없었던 보관의 개념을 창출했고, 이후 사람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물건들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창고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을까?

창고의 본질적인 기능은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때에 꺼내어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가치 사슬과 맞물려 창고의 기본 기능이외에도 많은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창고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저장’이고, 이는 수세기를 거슬러올라가는 과거에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어찌됐든 창고는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곳에 존재하고 있었고, 우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창고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앞서 이야기를 꺼냈듯이 마음에 드는 이성과의 첫 만남을 위해서 옷장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옷장 안에 있던 정말 아끼던 옷이 없어졌다. “이 옷이 없으면 내가 원하는 코디를 할 수 없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하면서 속상했던 경험을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과거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창고로 인해 울고, 웃는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였다. 과거의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들이 창고에 대해 얻을 수있는 통찰 또한 있을 것이다. 한번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양치기 소년, 왕국의 총리가 되다

꿈해몽 하나로 삶이 완전히 뒤바뀐 소년이 있었다. 양치기 집안의 늦둥이로 태어나 노예생활을 거쳐 감옥까지 갔던 소년의 이름은 요셉이다.

소년은 수감생활 중 이집트의 왕 바로의 꿈을 풀이해주었다. 바로가 꾼 꿈은 처음에 나타난 7마리의 살찐 소를 나중에 나타난 7마리의 야윈 소가 잡아먹는 괴이한 내용이었고, 이집트 왕국의 누구도 해몽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의 요청을 듣고 요셉이 말하길, 7마리의 살찐 소는 7년간의 풍년을 의미하고, 그 이후에 7마리의 야윈 소는 7년간의 기근을 의미하니, 7마리의 야윈 소가 살찐 소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그 기근이 너무도 심해 7년의 풍년을 잊게 만들만큼의 대기근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에 덧붙여 요셉은 왕에게 7년간의 흉년을 대비해서 풍년 기간 동안 각 성에 창고를 짓고 곡물을 저장해야 된다고 간언하였다. 이에 왕은 소년의 총명함에 감복하여 소년에게 이집트의 총리직을 맡기게 된다. 한낱 양치기 출신의 죄수였던 소년은 하루아침에 왕국의 핵심요직에 오르게 된 것이다.

수요예측 통한 적정재고 보관

창고는 수요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불확실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창고에 안전 재고를 비축하게 되고 그것은 위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물론 현대의 기업들은 요셉의 꿈해몽과 같은 신적인 능력을 활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들은 저마다의 도구를 사용해서 불확실한 수요를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과거의 수요 데이터를 활용한 시계열 분석은 이미 흔한 방법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키워드, 이미지와 같은 웹상에 널리 퍼져있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맞추어 적정재고를 생산, 보관한다. 보다 민첩한 공급사슬이 요구되는 시장이 많아지면서 이런 새로운 수요예측 기법들은 날로 진화하고 있으며,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고객 수요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 아무리 수요예측 기법이 발전을 하더라도, 100% 확실한 수요예측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업은 적정수준의 재고보유와 더불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재고 또한 보유해야 되며, 이런 안전재고의 양을 결정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요셉은 해몽이라는 절대적 능력을 통해서 100% 수요 예측에 성공하여 그에 대비한 재고를 비축할 수 있었다. ‘넘칠 때 보관하고, 부족할 때 공급한다’는 창고의 기본 기능을 설명하기에 좋은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기업들은 요셉과 같은 절대적인 수요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수요예측 도구들을 통해서 나날이 진화하는 불확실한 시장환경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군량창고 오소에 떨어진 원소의 눈물

후한 건안 5년, 당시 하북을 지배하고 있던 장수는 원소였다. 한복, 공손찬, 장연 등의 하북 군벌을 통합한 원소는 군웅할거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군벌을 이끄는 지도자 중 하나였다.

반면 조조는 원소의 지원으로 세력을 키운 신흥 군벌에 불과하였다. 비록 그의 재능을 통해 수많은 인재를 획득하고 헌제 옹립이라는 대의적 명분을 얻을 수 있었지만 원소에 비해서는 크게 뒤떨어지는 군사력을 지닌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원소는 화북지방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조조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당시 원소의 책사 전풍은 상대적으로 적은 군량을 가진 조조이기 때문에 지구전에 들어가면 큰 피해 없이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원소에게 간언했지만, 원소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전면전에 들어간다.

전쟁 초기에 조조는 기습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승리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군량부족 등의 문제로 장기적인 전황은 확실히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원소군의 장수중 하나인 허유가 원소를 배신하고, 원소군의 군량과 무기가 보관되어 있는 장소인‘오소’의 위치와 현재 방비가 허술하다는 사실을 조조에게 전하게 된다.

이에 조조는 군량이 모여 있는 창고인 오소를 기습공격하고, 이것에 대한 책임소재로 인해 내분이 발생한 원소군은 자멸하여 화북의 패권은 조조에게 넘어가게 된다.

진수의 저서인 삼국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 1만여명의 불과한 조조군이 10만여명에 달하는 원소군을 이긴 대승이었고, 그 승리의 결정적 원인은 군량창고에 대한 방비를 허술하게 한 원소의 불찰에 있었다.

외부 위협과 안전 보관

역사에서 창고가 언급되는 경우는 대부분 전쟁사이다. 물류학이 태동하게 된 원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병참술(Logistics)에 근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창고의 적절한 관리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먼 곳을 이동하는 대규모의 병력에 있어서 적절한 식량과 무기의 보급은 부대의 전투력을 좌우하는 요소이며 그런 보급에 타격을 입는다면 부대의 전투력 뿐만 아니라 사기에도 큰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원소가 조조에 비해서 월등하게 앞서는 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이유도 창고의 허술한 관리로 인한 것이었다. 적절한 창고 관리자를 채용하지 못했음은 물론 부대 운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군량을 하나의 창고에만 모아서 관리한 것도 문제였다.

이런 사례는 현대에도 통찰을 주고, 그것은 전쟁 상황이 아니라도 의미가 있다. 창고의 본질적 기능 중 하나가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안전한 보관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창고 내부에 있는 상품에 대한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혹 손상이 발생할 경우, 그것은 곧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외부의 불확실한 위험에 대한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가령 지난 4월 칠레에 닥친 강진으로 인해서 칠레 구리생산 공장과 보관창고가 큰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 이유로 당시 구리가격에 반영되어서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1주일간 6%가 오른 사례가 있다. 만약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하여 구리 창고를 한 군데가 아닌 분산해서 지은 생산자가 있었다면 이런 환경 중에서도 큰 차익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안전한 보관을 위한 창고 설계와 적절한 관리자의 임명, 외부 위협에 대한 적절한 대비는 창고 관리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루기 힘든 요소이기도 하다. 원소가 군량창고 오소에 대한 기습을 예측하지 못했듯이, 현대시장 환경 또한 불확실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산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팍스로마나의 시발점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일어난 포에니 전쟁에 대해서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알프스를 넘어서 이탈리아 대륙 본토에 타격을 준 희대의 명장 한니발과, 카르타고의 본진인 북아프리카를 직접 공격하여 한니발을 이탈리아 대륙에서 끌어낸 로마의 명장스키피오의 이야기는 세계사 교과서를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마는 이 전쟁을 통해서 지중해의제해권을 장악하고 로마의 패권으로 인한 세계의 평화, 즉, 팍스 로마나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쟁 이면에 숨겨진 물류학적 통찰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카르타고의 수도는 북아프리카에 있다. 한니발은 에스파냐에 건설한 카르타고의 점령지를기반으로 알프스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어서 로마의 본토에 진입하였다. 당시 1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로 지중해의 제해권은 이미 로마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즉, 알프스를 넘어간 한니발의 군대는 서쪽으로는 알프스 산맥, 동쪽으로는 로마군대, 남쪽으로는 로마에게 지배당한 바다에 막혀서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10여년을 이탈리아 대륙안에서 로마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한한니발은 사방이 막힌 상태에서 어떻게 보급을 해결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로마인들은 결국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은 보급 창고와 관련이 있다.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이 보급 문제 해결이었다. 단순한 약탈만으로는 3만에 달하는 군대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이탈리아에서 트레비아강 인근의 로마군의 군량 창고인‘카스테조’를 우선적으로 공략한 것이고,이어서 남로마로 이동했을 때도 로마군의 식량 저장창인‘칸나이’에서 첫 전투를 개시한 것이다.

이런 한니발은 로마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바로 수도를 공략하는 것이 아닌 로마의 속국, 동맹국과 이어진 ‘로마연합’의 붕괴를 유도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로마인 포로는 죽이거나 노예로 삼는 반면, 로마 동맹국의 포로는 몸값도 요구하지 않은 채 무조건 석방을 했다.

똘똘 뭉친 그들의 결속을 파괴하지 않으면 한니발이 가진 소수의 병력으로는 로마 전체를 상대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전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장수였고, 그는 소수의 병력으로 로마군을 상대로 연달아 승리하면서 카푸아, 타란토, 시라쿠사 등 남이탈리아의 중심 도시들의 로마연합 이탈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한니발은 이 세 도시를 제외하고는 로마연합 이탈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며, 그나마 이륙한 결과마저도 금새 로마군에게 탈환당해 결국 이탈리아 대륙 변두리에 몰리는 처지에 이른다.

결국 로마대륙 내 기반을 상실하고 제해권까지 잃어버린 카르타고는 한니발에게 원활한 보급을 지원해주지 못했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스키피오의 카르타고 수도 공략으로 인해서 카르타고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끝없는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공급망과 상생경영의 승리

그렇다면 로마는 어떻게 승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로마의 승리에는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로마연합의 결속이다.
로마와 식민도시들의 관계는 사실상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닌 공존공영의 관계였다. 그들은 과거의 적국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상대 도시의 자치권을 인정해줬으며, 그들에게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주었다. 그 결과 동맹국들은 국가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으며, 그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든든한 동료인 로마의 패권 아래에서 스스로 로마연합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니발이 로마연합의 붕괴를 절실히 유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도시가 로마의 편에서 한니발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가도의 확충이다 .
로마인들은 사회간접자본의 중요성을 인식한 최초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동맹국, 속국을 가리지 않고 도로를 연결했으며, 이것은 각각의 군수 거점들을 이어주는 망을 만들었다. 가도 건립의 기본적인 목표는 군대의 빠른 이동이었으나, 군수 창고를 이어줌으로써 원활한 물자 공급은 물론 평시에는 상인을 포함한 민간인의 이동 또한 가능했기때문에 로마연합 전체의 생산성 향상에도 이바지했다.

세 번째는 보급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
사실 로마연합에서는 한니발에 맞설 수 있는 장군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니발의 보급을 끊고 직접적인 전투를 취하지 않는 지구전 방식으로 전쟁을 끌어갔다. 한니발의 직접적 배후지라고 할 수 있는 에스파냐지역을 점령하고, 지중해 제해권 장악을 통해 한니발에게 해상 지원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다. 결국 외부의 보충 없는 병력의 지속적인 소모로 인해서 한니발은 이탈리아 대륙 구석에 몰려서 수비적인 태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창고의 연결, 이제는‘SCM’

로마의 군수창고를 이어주는 가도는 현대의 공급망과 같다. 몇 개의 군수창고를 보유하고 있지만 맥이 끊어져 있는 한니발은 결국 뛰어난 전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전투를 수행하지 못해서 패배하였다.

게다가 로마는 사회간접자본을 통해 물자의 흐름을 연결하는 망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각각의 동맹도시들과의 돈독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과시하고 상대 도시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 적절한 상생을 택하였다. 반면 카르타고는 그런 포용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새로운 영토를 유지하지 못했다.

로마연합에 속한 각 동맹도시들을 공급사슬과 연관된 이해관계자, 가도를 공급망이라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현대의 공급사슬 관리기법과 상통한다. 각각의 창고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각각의 창고들이 연결돼있는 망을 관리하고, 그 안에서 이해관계자들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현대의 공급망관리의 핵심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기업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공급망 관리기법들을 과거 로마는 이미 충분히 활용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팍스로마나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적량의 재고를 보관하는 것, 그리고 보관된 재고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창고의 기본기능이다.

그러나 현대의 불확실한 시장환경 속에서는 이러한 단일 창고관리 뿐만 아니라, 창고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 유통업체 등의 이해관계자와 그들을 연결하는 공급망까지 고려해야지 유의미한 관리를 수행할 수 있다. 과거 로마인들이 공급망 설비를 통해 세계의 패권을 잡은 것처럼, 미래 기업의패권을 결정하는 것은 SCM(supply chain management)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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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倉) + 고(庫)'

어원 : 창고는 '창(倉)'과 '고(庫)'를 합친 단어이다. 곡물을 보관하는 '창'과 옷감, 보물, 병장기 등을 보관하는 '고'로 크게 구분된다. 창은 주로 식료품을 저장했고, 고는 무기와 잡화 등을 보관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 중기 이후부터는 창과 고의 개념구분 없이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 :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은 잉여물품?때문이다. 물건을 잘 보관했다가 필요할때 다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 창고(倉庫)이다. 창고는 개인의 창고에서 국가의 창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과 다양하게 얽힌 구조물이었다.

진화 : 미래 창고의 형태를 예견하기는 불확실하다. 다만, 최근??e커머스의 성장은 미래 창고의 변화를 짐작케한다. 전 세계 연매출 7500억 달러에 이르는 e커머스 시장, 소비자의 습과은 변화하고 있고, 소매업체들은 e커머스를 '성장사업(Estabilshed Business)'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소매업체들의 경쟁 가속화와 산업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공급망과 창고에 폭발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엄지용 기자

흐름과 문화를 고민합니다. [기사제보= press@clomag.co.kr] (큐레이션 블로그 : 물류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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