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존재한 우버식 공유경제? 퀵서비스 공유망의 역사
사무실 연대, 공유망 형성, 프로그램의 등장… 퀵서비스 1세대의 탄생
글. 김동현 체인로지스 대표
Idea in Brief
한국 라스트마일 배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퀵서비스. 그런데 매년 10% 이상의 고성장을 보이는 택배와는 달리 퀵서비스는 찬밥이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3조니, 4조니 하는 시장규모 통계가 돌아다니지만, 이게 정말 맞는 숫자인지는 정부도 모른다. 업계 한 편에서는 한국에서 퀵서비스는 성장 정체기에 도달했다는 평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퀵서비스에 우버와 같은 방법론이 이미 10년도 더 전에 도입됐다면 믿겠는가? 근데 우버는 글로벌 1위 데카콘이고, 한국 퀵서비스는 골목상권을 못 넘어간다. 왜일까. 이제부터 파헤친다.
우버식 공유경제(이 말에 논란은 참 많지만 편의상 쓴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유롭게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일한만큼 돈을 버는 그 구조가 한국에서는 10년도 더 전부터 있었다면 믿겠는가. 그 구조는 퀵서비스 ‘공유망’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예쁜 UI라던가 블록체인과 같은 힙한 기술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퀵서비스 배송기사와 사무실(퀵사)이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다.
공유망의 탄생을 짚기 전, 한국에서 퀵서비스 시장은 언제부터 형성됐다고 볼 수 있을까. 필자만 해도 퀵서비스업계에서 16년을 일했지만, 그 시작이 언제인지 명확하게 선긋기 어렵다. 과거 쌀집 배달을 하던 자전거부터 충무로 인쇄골목을 돌아다니는 삼발이까지. 현재도 동대문부터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구상권에 가면 남아있는 여러 운송수단은 모두 퀵서비스의 한 유형들이다.
20년 전 규모의 경제 ‘탕튀기’
필자는 퀵서비스가 하나의 업이 된 경계를 ‘사무실’의 등장으로 본다. 사무실이 생기면서 누군가는 전화를 받고, 누군가는 배송을 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나뉘었다. 당시 접수부터 배송까지의 과정은 무척 단순했다. 먼저 거래처에서 퀵서비스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배송요청이 들어온다. 사무실에선 먼저 들어오는 주문을 장부에 수기 기재를 하고 2~3건의 주문을 모아서 메모지에 기재하여 오토바이 기사에게 건네준다. 이후 기사는 해당 주소들로 이동해 화물 픽업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서 주문을 재차 확인하고 출발한다. 배송을 모두 끝낸 기사는 다시 빈 차로 사무실에 복귀해 다음 순번을 기다린다.
이렇게 하루 몇 차례 여러 주문을 묶어서 이동하는 것을 일명 ‘탕튀기’라고 불렀다. 사무실에 따라 다르지만 나름대로 한탕에 몇 만원이라는 암묵적인 기준이 형성돼 있었다. 기사들과 사무실 모두 보다 효율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좋은 사무실은 거래처 영업을 잘해서 기사들이 쉽게 많은 탕을 뛰고 높은 일당을 만들도록 도움을 줬다. 이렇게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주문들을 실수 없이 잘 수행하면 좋은 기사라는 평을 받았다.
당연히 당시에는 ‘디지털’이 없었다. 사무실에는 전화 몇 통이 놓여있었고, 수기 장부와 메모지에 의해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많은 업체가 그렇게 운영을 했다. 그나마 삐삐가 보급되면서 사무실이 배달나간 기사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무실이 고객에게 응대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가령 거래처에서 언제 픽업이 도착하는지, 혹은 언제 물건이 도착하는지 사무실에 문의해도, 사무실은 소수 정보만을 바탕으로 유추해서 그 질문에 ‘감’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도 ‘배달 경험’이 있어야...
그 당시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무엇보다 ‘배달 경험’이 중요했다.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사무실에 머문다면 기사들 등쌀에 치여 정말이지 고생했다. 왜인가 하니 일단 차가 다니는 길과 오토바이가 다니는 길이 달랐다. 속된 말이지만 오토바이는 무법지대를 질주하기도 한다. 기사들의 근로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무실과의 충돌은 필연처럼 다가온다. 더군다나 기사들은 일반적으로 거칠다. 배송 건당 수입이 갈리는 기사들이기에 주문 배정 하나하나에 사무실과 기사 사이에 대립이 나타났다. 기사 관리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앞서 좋은 사무실은 ‘영업’을 잘하는 사무실이라 이야기를 했지만, 무엇보다 기사 관리가 안 되면 좋은 사무실이라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전단지를 잘 돌려 전화를 많이 받아도 배송기사들을 다룰 수 없다면 서비스 품질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제대로 된 정보는커녕 제시간 픽업이나 배송도 제공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퀵서비스 사무실 자체를 가족끼리 운영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남편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다가도 언제든지 픽업이나 배송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배송업무와 거래처를 동시에 관리하고 배송비를 벌 수 있었다. 지금도 이런 형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20년전 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사무실의 연대, 공유망의 탄생
퀵서비스 주문은 산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시간을 다툰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물류 효율을 만드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필자 개인의 운영 경험을 살펴봤을 때도 픽업 지연과 배송 지연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거래처 규모가 늘어나면 나아질 것 같은가.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퀵서비스 사무실은 항상 대부분의 거래처에게 미안해야만 했다. “퀵인데 왜 늦냐”는 말을 매일 들었으니까.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몇몇 사무실들의 연대가 이뤄졌다. 처음에는 특정 지역에 있는 업체들이 모여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한풀이를 하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이 조금 확장되면서 서로 처리가 안 되는 주문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인천 중구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사무실A가 인천 연수구에서 주문이 들어왔을 때 빠르게 처리할 기사가 없으니, 인천 연수구에 있는 다른 사무실B에 해당 주문을 넘기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문을 공유하는 사무실끼리 ‘친해야’ 했다. 내 거래처의 주문 정보를 다른 사무실에 넘겼는데, 그 사무실이 해당 거래처를 영업해버리면 그것만큼 당황스러울 수 없다. 그래서 서로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무실끼리만 주문을 공유했다. 하지만 ‘돈’이 걸려있는 만큼 사람 마음이 원치 않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는 왕왕 발생했다. 이때 교통정리를 해줄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현재 국내 퀵서비스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평가받는 업체인 인성데이타의 등장도 이 시기와 맥을 같이한다.
퀵서비스 1세대, 프로그램의 등장
초기 프로그램은 정말로 단순했다. 오더(주문)를 남겨놓는 기능만 있어 엑셀보다 조금 나은 형태에 불과했다. 프로그램 기능은 수기장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사무실들의 프로그램 이용률 또한 높지 않았다. 영업사업(?)내지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장님이 CD 한 장 들고 사무실을 찾아와 직접 깔아 주면서 소개 많이 해달라고 부탁했던 시기다.
그럼에도 사무실의 프로그램 전환율은 높지 않았다. 2~3명이서 전화 받는 사무실에선 여전히 수기 업무가 편하고 익숙했다. 사무실에 통상 근무하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 아저씨가 거창하게 CRT모니터를 놓아가며 프로그램을 쓰기에는 만족할 만한 수준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기사가 100명 가까이 되는 나름 큰 사무실에서도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기사들에게 오더 적은 메모지를 나눠줄 정도였으니까.
프로그램사의 피나는 노력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몇몇 퀵서비스 사무실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퀵서비스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사무실 내부에서도 업무가 나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령 전화를 받아 주문을 등록하는 사람과 기사배정을 주로 하는 상황실장의 업무가 나뉘었다. 여기에 정산 담당자까지 추가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수기 장부로 업무를 관리하기에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에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업무가 체계화되고, 분업화가 자리 잡게 됐다.
앞서 이야기한 몇몇 친한 사무실들끼리 퀵서비스 주문을 공유하던 시스템도 퀵서비스 프로그램 사용이 확산되면서 ‘공유망’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쓰이게 됐다. 기존 친한 사무실끼리를 넘어 ‘같은 프로그램’을 쓰는 사무실끼리 주문을 공유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필자는 이 정도까지를 퀵서비스의 1세대로 본다. 동네나 집단상가에서 서비스를 하던 퀵서비스 사무실이 조금씩 규모를 만들며 전산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분업화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100% 사람에 의해 업무가 이루어 졌다. 실시간 통신이 이루어지지는 않아서 정확한 데이터라는 것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현재의 퀵서비스 시장의 구조와 방향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프로그램이 만든 공급자 중심 생태계
초기 퀵서비스 프로그램 개발사들은 퀵서비스 사무실을 만족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연히 프로그램 개발사는 퀵서비스를 사용하는 개인이나 기업고객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퀵서비스 사무실의 요구에 맞춰 개발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업체는 퀵서비스 사무실을 고객으로 바라 봤다. 퀵서비스 사무실은 기사로부터 수익을 만들었다. 기사들은 효율을 위해 고객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묶음 배송을 했다. 퀵서비스이지만 규모를 만들어야 돈을 더 많이 버니 자연히 퀵서비스가 아니게 됐다.
물론 이러한 구조가 발전을 하며, 퀵서비스에도 ‘급송’ 서비스(이것도 이상하다.)가 생기는 등 변화가 생기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었다. 재차 말하지만 현재 국내 퀵서비스 시장에서는 정작 물건의 주인인 의뢰인은 구조의 맨 뒷단에 존재하고 있다. 온디맨드 배송이 각광받는 지금, 역으로 공급자의 편의를 위한 생태계가 퀵서비스업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우버, 고젝, 그랩 등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의 방향과도 다르다. 우리나라가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시스템을 10년도 전에 도입했고, 매우 잘 돼 있는 것도 맞지만 무언가 불편한 부분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퀵서비스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필자가 꼽는 가장 큰 이유는 택배와 비교해 비싼 금액에 있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는 의뢰한 배송 정보를 얻기까지 걸리는 불편함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퀵서비스 단가는 오랫동안 지속된 ‘저단가 경쟁’으로 한참 전부터 논란이 됐으니 논외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배송정보는 다르다. 정말 알기 어려운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15년 전부터 시작된 퀵서비스 프로그램업체들의 디지털화 작업으로 현재는 해외 어느 나라보다 많은 퀵서비스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근데 왜 안 될까. 필자는 그 이유를 고착화된 산업구조에서 찾는다. 이미 형성된 산업구조는 일개 사업자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 접점에서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기획해도 그걸 만들 수 없는 현실은 산업 자체를 퇴보시킨다. 앞서 언급했듯 해외에는 한국보다 서비스 완성도에서도 부족해 보이는 기업들이 유니콘 기업들로 성장했다. 로컬을 넘어 글로벌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결국 퀵서비스가 시대에 맞춰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서비스가 진화하지 않는다면 점점 고객의 선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선 국내 퀵서비스 시장은 후에 진입한 돈 많은 글로벌 업체에게 그것을 내줄 수도 있고, 아예 시장이 작아져 퇴보할 수도 있겠다. 실제 매년 10% 이상의 큰 성장 곡선을 그리는 택배와는 달리, 퀵서비스는 아직까지도 불편하고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서비스로 인식된다. 혹자는 퀵서비스 시장 자체가 정체기에 놓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애정을 가지고 오래 업을 해 온 입장에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다. 그런 와중 이 업계에도 디지털의 바람이 분다. 이제야 진정한 의미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일까. (계속)
20대 초반 무작정 용달차 한대와 전단지를 제작해 퀵서비스와 소화물 배달을 시작했다. 서울 하늘 아래 안 밟아본 도로 없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회사는 모두 들어 가봤다고 감히 생각한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고민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고객관점의 당일 도착 서비스를 고민 중인 곳이라면 오토바이타고 어디든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