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의 역사,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를 통해 점치는 '한반도 물류'
진정한 한반도 물류의 실현? 인프라 구축 및 북한의 대미관계가 핵심
글. 신승윤 기자
Idea Brief
반세기에 가까운 남북경협의 역사 가운데, 최근 기존과 다른 변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북한이 적극적 개혁개방 의지를 보임과 동시에, 시장경제 도입과 관련된 제도개편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육로와 항로를 연결하고, 나아가 중국‧러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고차원적 남북경협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남북이 하나 된 ‘한반도 물류’를 성사시키기 위해 먼저 북한의 경제관리 체계 개편현황을 살펴본다. 그리고 실질적인 ‘물류 효율’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도로, 철도, 항만 등 물류 인프라 현황을 분석해본다. 나아가 한반도 물류로 나아가기 위한 북한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47년, 남북경협의 역사
남한과 북한과의 경제협력, 남북경협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단 이후 1960년대까지 거의 이뤄지지 못한 남북한 간 협력은 1971년 8월 12일 남북적십자회담 제의를 시발점으로 47년 역사의 첫 발을 딛는다. 이후 1972년부터 73년까지 총 3차에 걸친 남북조절위원회의를 통해 경제인 및 물자 교류 제의가 이뤄졌다.
본격적인 남북 교류와 경제협력의 시작은 1980년대부터였다. 1984년 9월 북측이 남측에 수해물자를 지원하면서, 그해 11월부터 약 1년 동안 총 5차에 걸친 남북경제회담이 진행됐다. 이와 더불어 1980년대 후반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냉전 해체라는 격변 가운데 남북은 대결이 아닌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1988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발표를 시작으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 남북교류협력법, 남북협력기금법 등 관련 법령이 차례로 제정된다. 제도로서 경협의 초석을 닦은 남북한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와서 1995년 대북 식량지원 15만 톤, 1998년 금강산 관광을 거쳐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을 얻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북 식량차관을 실시하고, 경의선‧동해선 철도가 연결됐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선 2003년 6월에는 개성공단 착공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핵실험으로 협력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인해 발표된 5.24 조치로 남북 교역이 중단되는 등 경협의 상당부분이 축소됐다. 2016년 북한의 계속되는 핵‧미사일 도발로 개성공단까지 전면 가동 중단되면서 협력은 제재 방향으로 돌아섰다.
▲ 2003년 개성공단 착공식(출처: 연합취재단)
비록 소극적이긴 하나 남북 간 교류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7년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 남북경기가 평양에서 열리고,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방한하는 등 문화적 교류와 순수 인도적 지원 사업은 지속됐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관계는 새로운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남북경협 논의 또한 다시 한 번 물망에 오른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교역액은 1989년 1천 9백만 달러에서 2015년 27억 1천 4백만 달러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한 2016년도에는 남북교역액 3억 3천 3백만 달러로 1/8 수준의 감소를 보였다. 다시금 남북경협이 본격화 된다면 기존 교역액 회복은 물론, 더 큰 경제적 효과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이 지금과 같은 개혁의지를 꾸준히 유지한다면 말이다.
북한 ‘시장’에 눈뜨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개혁개방 의지는 확고하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전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동월 28일 ‘경제관리 개선방안 마련’을 곧바로 지시한다. “경제문제, 먹는 문제만 해결하면 부러울 것 없다.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같은 경제관리 체계 개편의 배경에는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과 더불어 현실과 제도간의 괴리가 심화됨에 있었다. 북한 내부의 시장화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지만 공식 경제관리제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가와 기업 간의 갈등은 물론, 북한 정부가 주민들에게 국가공급을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장 활동을 통제한다면 주민들의 생활 자체가 붕괴될 수 있었다.
이에 김 위원장은 2012년 초 경제관리제도 개선안 마련을 위한 TFT인 내각 상무조를 구성해 본격적인 체계 개편에 돌입한다. 주 내용은 기업의 생산 계획 작성권, 가격 제정권과 판매권, 재정관리권, 조직관리 및 고용권, 설비투자권, 무역권 등으로 국가와 기업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한 것이다. 이는 북한 정부가 시장경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이를 체제에 제도적으로 이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북한의 경제관리체계 개편 과정(자료출처: 2018 남북경협 컨퍼런스 / 산업연구원(KIET) 이석기 선임연구원)
이 같은 북한의 체계 개편이 남북경협에 의미하는 바, 시장경제 원칙에 의해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기존 경협은 남북한 기업이 직접 접촉할 수 없었으며, 북한 기업은 오직 생산만 하는 구조였다. 양측 기업의 직접 무역이나 임가공, 투자 사업 또한 불가능했다. 그러나 향후 남북경협은 여타 국가와의 경제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인프라로 보는 ‘한반도 물류’의 가능성
남북경협 이슈와 관련해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서울-평양 고속도로 등 한반도 육로 연결, 철도를 통한 중국 및 러시아 대륙 진출, 자유로운 지하자원 및 물자 이송이 가능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축 등이다. 결국 ‘물류’다. 허나 국토와 항로가 다시금 연결되는 것과 이것이 즉각 물류의 효율성을 가져 올지에 대한 여부는 별개다. 북한이 가진 물류 인프라를 살펴봐야 그 경제적 효용을 점쳐볼 수 있다.
▲ 3대 경제벨트를 육로와 항로로 잇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출처: 통일부)
1) 도로 : 열악한 인프라 개편부터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북한의 도로 총연장은 2만 6,176km이며 이중 고속도로는 774km다. 이는 한국과 비교해 각각 24.1%, 17.4%에 불과한 수준이다. 또한 고속도로를 제외한 북한의 도로 포장률은 10% 미만이며, 간선도로 대부분이 왕복 2차선 이하다. 이 같은 도로 인프라로 인해 북한 도로의 화물수송 분담률은 7% 내외로, 주로 철도역과 주변지역간의 연결 또는 단거리 운송 등 제한적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열악한 도로 인프라는 북한의 지형적 특성이 주된 원인이다. 북부는 고산지대로 이뤄져 있고, 중앙부에는 낭림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동서 양안을 따라 도로망이 집중돼 있다. 또한 대부분의 도로가 협소하고, 기울기가 심하며, 비포장이기 때문에 차량 운행이 매우 어렵다. 다만 총 6개의 고속도로 노선 중 평양-남포(44km), 평양-개성(171km), 평양-향산(146km) 등 3개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며, 나머지는 콘크리트 포장이다.
2) 철도 : 현실성 있는 협력의 중추
북한은 철도가 육상수송의 중심이고, 도로수송과 해운수송이 이를 보조하는 ‘주철종도(主鐵從道)’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화물수송의 90%를 철도수송이 차지하며, 여객수송 또한 62%에 달하는 등 철도의 전체 수송 분담율은 86%다. 2016년 기준 북한의 철도 총 연장은 5,226km이며, 이중 전철화 비율은 79.8%로 한국의 68.3%에 비해 높다. 이는 디젤 기관보다 전기기관차의 마력이 높아 경사가 심한 북한 산악지형 운행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경의선, 동해선 등 남북간 철도 연결 및 협력 시도가 꾸준한 이유는 이처럼 북한이 철도 인프라를 확보하고,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국제철도망을 확보해 둔 상태다. 중국과 신의주-단동(丹東), 만포-집안(集安), 남양-도문(圖們) 세 구간이 철교로 연결돼 있으며, 러시아와는 나진-하산(Хасан)간 혼합궤도로 연결돼 있다. 철도를 통한 대륙진출은 실제 가능성 있는 계획이다.
다만, 북한 철도의 충분한 개보수 및 남북간 적극적 협력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북한 철도의 98%는 단선(철도에서 각 방향의 교통을 하나의 선로로 처리하는 것)이며, 70% 이상이 일제강점기에 건설돼 시설노후화가 심각하다. 그 외 교량, 터널, 궤도 부식, 자갈 보강 등 다양한 운행조건과 관련해 사전 검사 및 보수 작업이 필요하다.
열차 운행에 있어 남북의 궤간(두 철로 사이의 간격)은 1435mm 표준궤로 일치하며,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전력시스템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남한의 경우 교류 2만 5천 볼트를 사용하는 반면 북한은 직류 3천 볼트를 사용한다. 열차 신호시스템 또한 한국은 ATP(Auto Train Protection) 등을 사용하나 북한은 연동폐색식을 사용하는 등 운영방식의 차이가 있다.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전력시스템의 경우 국내 지하철이 그러하듯, 변환 기술 개발을 통해 빠르게 해결 가능하다. 신호시스템 또한 합의가 가능하다”며 “그 외 철도마다의 구간인증면허 발급 등 교육 및 자격 제도 일치 또한 필수적”이라 설명했다.
다만, 남·북·중과 다른 러시아(시베리아횡단철도, TSR)의 궤간 차이로 인한 부가적인 인프라 구축은 숙제로 거론된다. 같은 관계자는 “러시아처럼 궤간이 다른 국가는 환적‧환승 운행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 외 궤차교환, 북합궤, 반응형 열차 등 기술적용이 필요하다. 경제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라 말했다.
3) 항만 : 명확한 한계, 복합운송의 접점으로
북한의 항만은 무역항 8개, 원양수산기지항 5개, 어항 30여개로 구성돼 있다. 그 중 무역항은 남포, 해주, 청진, 흥남, 나진, 송림, 원산, 선봉에 있다. 동해안에 위치한 청진항, 나진항, 원산항 등은 수심이 깊어 선박 접안여건이 양호하다. 허나 서해안은 얕은 수심과 심한 조수간만차로 인해 조건이 불리하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하역능력은 2015년 기준 4,156만톤 정도로 한국 하역능력(11억 4,092만 톤)의 4%에 불과하다.
2000년대 항만시설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2006년 남포항 컨테이너 부두공사, 2008년 청진항 방파제 개건공사 등을 진행했다. 2012년에는 단천항을 무역항으로 개보수해 주변 지하자원을 수출하는데 용하는 등 하역능력 향상에 힘쓰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 한계가 뚜렷해 최근 재개된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 교두보 역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한반도 물류’가 가능하려면
사실 남북경협의 본격화와 한반도 물류로의 발전은 아직까지 먼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은 다시금 비핵화 실천에 있어 미온적이며, 베트남 개혁개방 모델을 예시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정체돼 있다. 이는 결국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완화될 수 없음을 의미하며, 남북간 투자 및 경협 또한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해외원조와 외국인직접투자 없이는 기존의 1차원적 남북경협밖에 될 수 없으며, 물류 인프라 구축 또한 불가능하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IMF 회원국이 돼 국제금융기구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자국의 각종 경제사회 통계를 제출하고, 국제금융기구 실무진들이 북한 경제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경제통계시스템 구축, 인력 훈련 등의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허나 IMF 가입을 위해서는 미국의 반대의사를 철회하는 과정이 필수다. 결국 남북경협과 한반도 물류는 오롯이 향후 북한의 대미관계 태도에 달려있다는 전망에 힘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