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6km 살인적 강행군…추석택배 체험
택배기사 100미터 달리듯?2만2357보 뛰어
비오듯 땀 흘리며 일평균 180~200개 배송
계단을 걷고 뛰기를 15.6km. 차량운행 87km. 꽉 막힌 도로와 골목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화물차에 타고 내린 횟수 130여회. 하루 16시간 동안 배달한 택배상자 총 183개.
추석을 1주 앞둔 택배기사의 하루를 측정한 수치다. 명절 때 바쁘기로 손꼽히는 직업이 택배다. 선물과 한바탕 ‘전쟁’ 중인 택배기사를 기자가 동행해봤다.
◆‘명절증후군’ 시달리는 택배기사=“이게 뭡니까? 일할 땐 결혼반지도 빼놔요. 몸에 걸리는 게 싫은데, 꼭 차야 되나…”
14일 오전 6시 30분 OO택배 분당지점. 이 회사소속 택배기사인 이OO(34)씨의 허리에 기자가 만보계를 채웠다. 택배기사가 하루에 얼마나 걸을까 궁금해서다. 이씨는 모래주머니를 찬 것 마냥 불편한 듯 만보계를 만지작거렸다. 험난한 하루를 예고했다.
7시부터 9시 30분까지. 2시간 반 동안 1t 트럭에 택배 183상자를 실었다. 한숨 돌리나 싶더니 이씨는 벌써 운전대를 잡았다. 동승한 기자에게 김밥 한 줄과 생수 한 병을 건넸다. 그리고 퉁명스런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아까 좀 그랬죠. 미안합니다(웃음). 택배기사들은 명절만 되면 예민해져요. 요즘 3~4시간 밖에 못자서 신경이 날카롭죠.” 증상은 달랐지만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건 대한민국 주부와 택배기사가 다를 게 없었다.
◆쉴틈없이 울어대는 휴대전화=차량운행에 나선 이 씨가 김밥을 물자마자 휴대전화가 울어댔다.
“네. 정자동 몇 번지요? 오후 8시 이후…. 알겠습니다.” 첫 배송 목표지였던 고객으로부터 지금 외출 중이란 연락에 순번이 뒤죽박죽됐다. “아파트면 경비실에 물건을 맡길 수 있죠. 그런데 일반집이나 다세대주택은 전화 안되면 하루에 두서너 번 허탕 칠 때가 많아요.”
최근에는 고객에게 방문 전 SMS(문자서비스)를 통해 몇 시쯤 물건이 도착할지를 미리 알려주다 보니 콜센터보다 택배기사의 전화업무가 더 늘었다.
“하루에 한 100통은 넘게 전화할 겁니다. 한 달 전화사용료도 만만치 않아요. 기본 10만원은 우습죠. 아마 통신사 우수고객 중 하나가 택배기사일겁니다.”
쉴틈없이 울어대는 휴대전화는 오후까지 계속됐다. 그 동안 갈아 낀 배터리는 2개. 이마저도 부족해 운행 내내 충전중이다. 점심이 훌쩍 넘긴 2시 30분, 김밥은 아직 그대로다.
◆'내 인생의 박카스’가 힘이 돼=주택가 배송을 마치고 상가가 밀집한 분당시내로 들어선 시간이 오후 3시. 다짜고짜 이 씨는 기자에게 면허증 유무를 확인했다. 그리고 차량 적재함에서 접이식 카트를 빼내 선물세트와 2리터 페트병 12개가 묶음으로 들어있는 생수박스 등 10여개가 넘는 짐을 실었다.
“이제부터 따라오지 말고 차 좀 지키세요. 차 빼달라고 하면 한 바퀴 도시고…” 명절 전이라 상가주변이 혼잡하다보니 주정차가 쉽지 않았다. 특히 이 기간에는 차량에 실린 선물을 노린 도난사고가 빈번하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차량을 사주경계한지 20분 만에 땀을 비오듯 흠뻑 젖은 이 씨가 돌아왔다. 그리고 물 한통을 단숨에 들이켰다. “택배를 골라 받을 순 없는 노릇이지만 성수기만큼은 생수같이 무거운 물건은 본사나 영업소가 취급을 안받았으면 좋겠어요. 부피가 적지만 20kg인 박스를 2~3개씩 싣고 내리면 다리 힘이 쫙 풀려요.”
출근은 보통 오전 6시 반. 정해진 퇴근시간은 없다. 이날 배달을 모두 마친 시간은 10시. 근처 약국서 피로회복제 한 병을 사와 건넸다. “힘든데 어떻게 버티세요?” 그러자 이 씨가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보였다. “6살 아들놈입니다. 태권도장 다니는데 제법 폼 나게 잘해요. 이놈과 아내가 내 인생의 박카스입니다.”
뒤돌아선 그의 어깨에 짐 하나를 덜어주고 싶었다. “아~ 만보계” 숫자는 정확히 2만2357보를 가리켰다.
※설명: 15.6km(보행거리) = 0.7m(보폭기준) × 22,357(보)
김철민 기자
olle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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