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혁신 이야기②
실리콘밸리 대표 투자사 와이컴비네이터가 스타트업에게 바라는 것
브릭앤몰타르2.0, 재생에너지 확대, 지속가능한 단백질 생산, 친환경 산업재, 모빌리티...
혁신 키워드의 공통점은 하나가 아닌 모두의 '지속가능성'
글. 이종훈 롯데엑셀러레이터 투자본부장
지금껏 1,588개, 3,500명 이상의 창업자를 키워낸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엑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가 ‘혁신 기업’을 찾는 기준이 최근 새롭게 추가됐다. 그 기준들의 공통점은 ‘지속 가능성’이다. 단순히 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의 지속 가능성’이다. 단순한 개선을 넘어선 고차원적 혁신의 단초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기회의 문을 두드리는 데서 나온다. 국가와 기존 기업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스타트업들이 앞장서서 그 지속가능성을 위한 혁신 영역을 선점해야 성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이제 ‘더 빨리’, ‘더 많이’로 혁신을 이루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지난 기고(애플과 넷플릭스, 스퀘어는 왜 혁신기업이라 불릴까)에서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가 꼽은 혁신기업들이 최근 보여준 다양한 시도와 성과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가 인정하는 혁신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혁신은 단순히 생산성(Productivity)과 새로움(Newness)이 만들지 않습니다. 사회적 가치 창출과 같은 고차원의 전략적 혁신이 현 시대의 혁신을 만드는 촉매가 됩니다.
물론 패스트컴퍼니가 꼽은 혁신기업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혁신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전부 살펴봤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적어도 혁신이 다리가 달린 동물인지는 확인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번 기고를 통해서는 본격적으로 혁신의 움직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선 기고로 코끼리의 존재를 알았다면, 이제 그 코끼리가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파악하고자 합니다.
와이컴비네이터로 ‘혁신’의 단초찾기
와이컴비네이터(Y-Combinator)는 최근 10여년간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멋지게 키워왔다고 평가 받는 실리콘밸리 투자사입니다. 와이컴비네이터가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찾는 방법은 미래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와이컴비네이터가 공개한 스타트업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사업분야(Request for Startups)에 최근 새로 추가된 분야들과 그것이 중요한 이유를 함께 살펴보며 미래 사회를 위한 혁신의 방향이 더욱 선명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와이컴의 혁신① 브릭앤몰타르(Brick and Mortar) 2.0
“아마존과 경쟁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의 혁신을 찾아서
아마존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한 모든 경쟁기업들에게 거대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존으로 인해 수많은 쇼핑몰과 대형 매장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의 온라인화를 통한 아마존과 직접 경쟁도 더 이상 의미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브랜드들은 아마존과의 싸움에서 벗어나기보다 ‘소매 공간’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방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테슬라(Tesla)와 같이 온라인 판매 채널을 보완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재고를 위한 공간을 보유하지 않으면서, 소매공간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오프라인 매장 혁신은 소매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레스토랑, 유흥시설, 사무용 건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다년간 임대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 사용하는 ‘마이크로 리스(Micro less)’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코스트코(Costco)와 이케아(IKEA) 같이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입지한 큰 주차장이 있는 교외 쇼핑센터들은 자율주행 및 공유 차량 시대가 시작됨에 따라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율주행차량 보급이 확산되면 기존 물리적 공간의 활용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엄청난 수의 오프라인 매장의 문을 닫게 한 아마존은 그 자신이 무인 오프라인 매장(Amazon Go)을 열어 물리적 공간 사용에 혁신을 몰고 왔습니다.
와이컴비네이터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물리적 공간을 사용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구축하는 스타트업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무인점포 ‘아마존고’
와이컴의 혁신② 탄소제거 기술
“재생 에너지 확대, 그 이상을 바라보며”
2015년 UN 기후변화협의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은 금세기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C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재생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합니다. 대기중 탄소를 제거해야 될 필요성이 함께 제기됩니다.
그러나 탄소 제거 및 격리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현재 해결책 중 기술을 활용한 직접적인 공기 포착은 비용과 규모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는 최근 대기에서 탄소를 제거하기 위한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했지만 비용면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이에 기후 변화의 영향을 막기 위한 탄소처리 기술과 지리 공학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을 찾고 있습니다.
와이컴의 혁신③ 낙농업 혁신
“지속가능한 단백질 생산을 위하여”
전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속칭 ‘고기 좀 먹어본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주로 육류 및 유제품 생산을 위해 농장에서 동물을 키웁니다. 그 방식의 잔인함을 차치하더라도, 동물 단백질 생산만으로 향후 인류의 육류 소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우려는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육류 생산은 환경 오염이라는 반대 급부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축산업은 에너지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입니다. 육류의 유통과 운송에도 막대한 화석연료가 필요합니다. 더 효율적인 육류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항생제는 인류의 건강 시스템에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반가운 소식은 최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단백질 생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고기와 유제품과 같은 동물성 제품과 과학적으로 구별할 수 없는 식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 동물 고기를 세포에서 직접 배양하는 방식입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이 방식을 시장에 내놓는 신생기업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세계는 보다 지속 가능하고, 값이 싸며, 건강한 육류 생산으로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됩니다.
와이컴의 혁신④ 일용품 혁신
“더 깨끗한 산업재로 환경 문제 해결”
인류가 지금처럼 소비하고 생산활동을 지속한다면, 전세계 열대우림은 100년 이내에 소멸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요인을 점점 더 부족해지는 자원에 의존하는 산업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가령 팜오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식물성 기름이지만, 팜오일의 생산을 위해서는 숲의 파괴와 노동 착취가 선행됩니다. 거의 모든 일용품 생산이 지구 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때문에 와이컴비네이터는 지속 가능한 오일 합성기술, 더 깨끗한 대체재, 공급사슬 및 유통 부문을 개선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거나 숲을 가꿀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와이컴의 혁신⑤ 모빌리티 혁신
“교통과 주거를 포괄한 ‘이동’ 문제 해결”
세상의 모든 에너지 사용의 약 절반이 재화와 사람의 운송에 사용됩니다.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통근) 하는데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단순히 운송수단이 발생시키는 환경오염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렇다고 운송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비대면’이 정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21세기들어 인터넷과 온라인 환경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직접 대면’은 인간사회에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더 빠르고 먼 곳까지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이동의 어려움으로 인해 주거시설은 일부 지역에 한하여 비이성적인 수준으로 비싸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사회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이에 와이컴비네이터는 사람들이 좋은 곳에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더 쉽게 통근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그 밖에 와이컴비네이터의 최근 관심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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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키워드 ‘모두의 지속가능성’
와이컴비네이터가 찾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영역에는 혁신의 목적에 ‘현대 사회가 품고 있는 사회적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녹아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필자는 혁신 관련 수업과 특강을 통해 많은 대학원생들과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지금 인류가 탄생한 이래 역사상 처음으로 ‘더 빠르게, 더 많이’가 미덕이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에 동의하시나요?” 각자의 답변에는 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대부분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는 현재 한국경제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와이컴비네이터가 바라보는 혁신의 방향에 동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요인입니다. 지난번 패스트컴퍼니가 꼽은 세계 최고 혁신 기업들의 사례에서 확인하였듯이 우리가 현재, 그리고 미래 바라보는 혁신은 기업의 단순한 제품·프로세스 영역을 넘어 사회적·규범적·철학적 영역에서 혁신이어야 함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기술기반의 제품, 프로세스 개선은 더 이상 미래를 위한 혁신 영역이 아니라 여겨지는 것입니다. 다소 진부한 단어입니다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의미가 나만의 지속이 아님을 모든 기업의 활동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변화 리더십 그룹」의 설립자 토니 와그너가 그의 저서 ‘이노베이터의 탄생’에서 거론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이제 단순히 더 빠르고 많음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혁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CLO의 독자들이 주로 속한 물류·유통산업은 대표적으로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물류는 그 자체로 진정 사람을, 인류를, 자연계를 이롭게 하고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나요?”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 질문에 진중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앞장서서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스타트업이 개척자가 돼야
필자는 그 어려움에 대한 해답을 혁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 기업들이 쉽게 답변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라면, 스타트업이 앞서 문을 두드리기에 딱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창업기업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쉬운 일들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국가나 대기업을 포함하여 어느 누가해도 힘든 일을 스타트업이 해야 하며, 미래 우리가 기다리는 스타트업의 현재 역할이기도 합니다.
<극단적 미래예측>의 저자인 미래학자 제임스 캔턴은 미래 살아남을 기업의 조건으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현 시대의 우리가 조금은 참고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계속)
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롯데액셀러레이터의 투자본부장을 맡고 있다. 기술경영학(MOT)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벤처기업 CFO로도 활동했다. 벤처기업 투자활동과 더불어 스타트업의 혁신, 액셀러레이팅, 벤처투자에 대한 연구 및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