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위 흉기 화물차...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졸음운전' 원인 지목
한국 당국 규제는 유명무실, 허술한 관리 지적
로그북과 자동로그장치를 통한 운행기록관리하는 미국, 철저한 규제를 해법으로
글. 신준혁 기자
국내 화물운송기사의 ‘노동 환경’이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화물운송기사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3,684시간이다. 한국 상용 노동자의 노동시간(연평균 2,113시간)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1,766시간)과 비교했을 때 국내 화물운송기사의 노동시간은 이미 과도한 수준을 넘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6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업용 차량의 사고 중 37.5%는 ‘화물차’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물차 운전자의 사상자 숫자 또한 2,424명으로 승용차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치다.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의 원인으로는 화물운송기사의 ‘졸음운전’이 지목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7년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화물운송기사의 22.3%가 수면장애를 겪는 것으로 진단됐다.
화물차는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자료: 도로교통공단, 2016년 기준)
다단계 단가구조, 더 많은 노동 강제
노동계에 따르면 화물운송기사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이유로 다단계 수주로 인한 ‘저단가 운임’이 꼽힌다. 점점 낮아지는 단가로 인해 화물운송기사는 생계를 위해 더 많은 운행을 반강제 받는다는 설명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국내 화물운송시장은 화주가 관세사, 포워더, 운송사 등 1차, 2차 벤더로 화물을 넘기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발생해 화물운송기사가 받는 최종운임이 낮아지는 다단계 구조”라며 “최저 입찰을 강요하는 하청 구조로 경쟁이 과열되니 운전자는 휴식을 가질 시간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과거에는 탕바리(업계 은어로 건당(한 탕에) 급여를 받고 일한다는 뜻)로 의왕-부산 간 경부선 구간을 (한 달)12번 왕복했는데, 지금은 23번씩 한다. 하루 12시간 씩 매일 운전하는 셈”이라며 “하역할 때 휴식한다고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니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유명무실한 법규, 허술한 관리 지적
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래전부터 관련법을 정비해왔지만, 실상 효력은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평가다.
일례로 정부는 지난 2011년 운행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1톤 이상 화물차량에 운행기록장치(타코미터) 부착을 의무화하는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당시 운수업체와 노조의 반발로 정작 타코미터를 불법차량 단속이나 처벌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반쪽’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지난해 개정된 교통안전법으로 운행기록장치에 저장된 운행 기록으로 과속과 휴식시간을 지키지 않은 운전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단속이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관리는 여전히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운행시간 데이터를 뽑아 정부에 보고해야 하지만 고령인 운전자가 많고 운행 시간이 불규칙해 데이터 수집 자체가 쉽지 않다”며 “정부에서 보조해 타코미터를 모든 화물차에 부착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직접 겪은) 단속 사례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화물운송기사는 휴식을 위해) 미터계를 확인하고 4시간마다 자발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라 덧붙였다.
美트럭커, ‘철저한 규제’ 해법으로
미국 현지 화물운송기사(Trucker)에 따르면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화물운송업은 3D업종으로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미국 트럭커는 회사가 정한 체계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고 미국 교통부로부터 운전 시간과 휴식시간을 철저하게 관리 받는다는 평가다.
미국 자동차운송안전국(FMCSA)은 노동시간법규(Hours of Service regulations)를 통해 장거리 화물/여객 운전자의 안정과 휴식을 보장하고 있다. 법규에는 ‘미국 내 모든 상업용 차량’의 휴식시간이 명시돼 있다. 미국 화물운송기사의 최대 운행시간은 11시간으로, 이후 최소 10시간 이상 숙면 등 휴식을 취해야 한다.
비교적 최근 제정된 법 중 ‘30분 법(30-Minute Break Enforcement Policy)’도 있다. 운전자는 운전을 시작하고 8시간 내에 반드시 30분 이상의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70시간 법(70-Hour Limit)’에 의해 운전자는 주당 70시간 이상의 운전을 할 수 없으며 8일 연속으로 일을 할 수 없다.
2016년 개정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따르면 사업용 화물차 운전자는 천재지변, 교통사고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시간 연속운전 후 최소 30분의 휴게시간을 가져야하며 이를 위반한 운송사업자는 사업 일부정지 및 최대 18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화물운송기사의 운행시간 파악은 화물운송기사가 가지고 있는 로그북(Log Book)과 차량 자동로그장치(ELD)를 통해 가능하다. 로그북이란 상업용 차량 운전자가 운전 시간을 표시하는 메모장이다. 주정부는 과적을 막기 위해 고속도로에 구간별로 설치된 화물 정거장(Weight Station)에서 로그북을 확인한다. 주 법규에 따르면 조사관은 언제 어디서든지 트럭을 세우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벌금은 $150에서 $1,000까지 다양하며 트럭커가 로그북을 조작한 경우 해고 또는 징역에 처할 수 있다.
▲ 트럭커의 운행시간을 기록하는 로그북(Log Book)
트럭회사와 운전자를 모두 관리하는 체계도 있다. CSA2010(Comprehensive Safety Analysis 2010)은 미 자동차운송안전국에서 트럭커와 화물운송업체의 정보를 수집하여 안전도(Safety Rate)를 평가한다. 트럭이나 버스의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화물운송업체와 운전기사의 모든 사고기록과 위반사항이 기록되고 이에 따라 안전도가 기록된다.
미국에서 트럭커로 일하고 있는 한인 A씨는 “CSA2010이 시행돼 (로그)기록이 나쁜 트럭운전자와 트럭회사를 규제하게 됐고, 반면에 기록이 좋은 운전자는 그만큼 더 좋아졌다”며 “안전운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트럭 관리를 철저하게 하여 좋은 기록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 트럭킹 비지니스에서 생존하는 비결”이라 전했다.
여전히 사각지대인 한국
미국의 트럭커나 한국 화물기사 모두 장시간 운전과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고된 직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미국이 트럭커를 위한 운전시간, 휴식시간이나 임금구조를 관리하는 데 반해 한국은 여전히 관련법이나 규칙, 그것을 관리하는 후속조치가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국내 대형 운송사들의 협의체인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가 협상을 통해 운송료 인상을 갱신해왔지만, 화주가 실제 지불하는 운송비는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갔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화물연대의 요구에 따라 타리프(Tariff, 정가운임표)가 만들어졌지만, 실제 현장의 운송료 책정은 기준의 4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주간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됐지만 화물업계는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긴 어렵다. 사실상 ‘무한노동’이 가능하도록 했던 ‘특례업종’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육상운송업은 그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화물운송업은 대부분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이 화물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