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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의 민낯, 적폐는 두텁고 오적도 여전하다

by 김철민 편집장

2017년 10월 13일

물류적폐

 

지난 11일, 퇴근 후 JTBC 뉴스룸을 보고 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그러했듯 필자도 꽤 ‘오래 전부터 좀 더 공정한 방송’을 보고 있었으니까. 이날 뉴스룸의 톱뉴스는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대기업에 대규모 관제 데모를 지원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이모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는 것이었다.

 

심수미 기자의 단독 기사가 후속 보도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수십억 원대 일감을 ‘경우회’에 지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우회(대한민국재향경우회)가 어떤 곳인가. 전직 경찰 모임으로서 어버이연합 등의 관제데모를 지원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이권이 걸린 사업과 관련된 집회를 열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탄을 받고 있는 곳이다.

 

궁금했다. 국정원은 어떻게 대기업에게 ‘삥을 뜯어’ 관제데모 지원에 사용할 비용을 마련했을까. 편집장이랍시고 한동안 후배들에게 기사를 미루던 필자에게 취재병이 살짝 돋았다. 설마, 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현대차’, '수의계약‘, ’경안흥업‘. 이들 몇 가지 키워드는 ‘물류’라는 키워드를 통해 하나로 엮였다.

 

녹색 검색창에 경안흥업을 쳤다. 궁금했던 기업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로 향했다. 그제야 정보가 떴다. 경안흥업은 경우회의 자회사였다. 사업목적을 살펴보니 전자기기 및 제품, 방범·교통·수사 등에 사용되는 각종 장비 물품을 제조하는 회사란다. 여기에 화물운송업, 물류시설운영업, 국제물류주선업 등 운송·물류사업까지 함께 영위하고 있었다.

물류적폐2(자료: JTBC)

 

검찰은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4월 국정원이 현대차그룹을 압박해 계열사인 현대제철로 하여금 경안흥업에 물류 일감을 몰아주도록 했고, 경우회가 이를 대가로 친정부 시위에 가담한 혐의를 포착했다고 전했다. 현재 검찰은 이모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자택과 경우회 사무실, 구모 전 경우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곧 밝힐 계획이라고 한다.

 

정치적 이슈는 차치하자. 필자는 씁쓸했다. 필자는 1999년부터 물류전문기자로 활동했다. 돌이켜보건대 과거 18년 동안, 대한민국 물류산업은 늘 ‘검은돈 놀이’의 중심에 있었다. 물류의 뒷돈은 때론 기업의 정관계 로비의 채널이 되었고, 재벌 후계구도의 돈뭉치가 되었으며, 친인척(전직 주요임원) 등 특수관계인의 연금보험 창구가 되었다.

 

그래서였던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현대차는 그룹계열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가 출자해 만들고, 국토교통부가 설립허가한 물류산업진흥재단(KLIP)을 만들어 운영중이다. 이 재단 설립의 목적은 중소 물류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역량강화 활동과 연구개발 및 학술활동 등을 지원하고,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체제를 구축하여 물류산업의 선진화를 도모하고 있단다. 응? 그런데 사실은.(재단에 대해 할말은 많으나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문제는 현대차만이 아니었다. 삼성과 LG, SK 등 10대 그룹사와 이를 둘러싼 방계회사들은 물론 중견업체들, 여기에 포스코 등 한때 국영기업 출신들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혹은 후계 구도 승계 등 여러 이유로 기업들의 말못할 속사정(?)은 '물류 뒷거래' 형태로 나타났다.   

 

검은돈의 출처는 단순했다. 수출입 물류회사(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매출 발생. 대기업 물류 자회사 설립과 2차 협력사를 통한 물량 몰아주기. 운송경력이나 입찰 자격 미달인 운송회사와 수의계약 등…. 그야말로 별의별 방법이 동원돼 검은돈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배불려진 돈의 쓰임새는 늘 높은 곳을 향했다.

 

현 정부가 적폐청산을 추진 중이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악습)을 없애겠다는 말이다. 적폐는 멀리 있지 않다. ‘물류’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물류자회사를 통한 무분별한 일감 몰아주기, 항만하역이나 물류위탁 계약을 미끼로 한 브로커 활동.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다단계 운송, 백마진(리베이트) 구조 등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변명 같지만 다시 또 반성해 본다. CLO는 신생매체였고, 기존 물류 전문 미디어와는 차별화해 좀 더 앞선 미래의 물류상과 시대를 재해석하고 물류기술벤처(물류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현실 속 ‘진짜’ 물류는 잠시 외면하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제조, 유통, IT가 융복합되는 모든 곳을 물류의 혁신이 이끌고 있다’고 줄곧 외쳐왔던 필자와 후배들의 모습이 이러한 적폐 앞에서 뜬구름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서랍 속 취재수첩을 꺼내 보았다. 회사를 옮기면서, 또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모두 버린줄 알았는데 미처 정리하지 못한 몇개가 남아있었다. 천천히 메모 내용을 정리 중이다. 3년차 미만의 어린 후배들이 물류 시장에 만연한 적폐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요약할 것이다.(다 버려버릴 것을 그랬나….)

 

오적(五賊)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악습(惡習)의 구조는 여전하다.

곧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취재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철민 편집장

Beyond me(dia), Beyond log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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