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 물류에서 관리 업무와 현장 업무는 어떻게 분리되나
현장 인력 ‘레벨화’로 고용문제 해결하고 작업자에 동기부여
글. 양거봉 미팩토리 물류팀장
산은 인간에게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정상을 갈구했지만 산은 번번이 그 바람을 수포로 돌려놓았다. 눈보라가 치는 고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내 이뤄지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히말라야 인근의 고산족으로 인해 상황은 달라졌다. 그곳의 지리와 환경을 가장 잘 아는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등반대와 발걸음을 맞추며 더 높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기상에 맞춰 시기적절하게 정상 공격조를 리드함으로써 고산 정복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우리는 그들을 ‘셰르파(Sherpa)’라 부른다.
1953년, 마침내 에드먼드 힐러리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역사적인 순간에도 그의 곁에는 텐징 노르게이를 비롯한 셰르파들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셰르파의 중요한 역할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등정의 영광은 대개 원정대에게 집중된다. 셰르파는 얼마 되지 않는 보수를 손에 쥐고 또 다시 생계를 위해 다른 산을 오른다.
뜬금없이 등반가와 셰르파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필자가 생각하기에 물류현장에서 관리자와 작업자의 관계가 꼭 등반가와 셰르파의 관계 같기 때문이다.
관리자와 현장작업자, 등반가와 셰르파
대부분 커머스 초기의 물류는 소량의 출고건을 택배로 발송하는 작은 업무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는 물류에서 관리자와 작업자의 구분이랄 것도 없다. 커머스의 인지도는 부족하고, 판매량도 저조한 탓에 물류의 업무비중은 낮고, 따라서 몇 명의 소수 인력이 입출고를 비롯한 발주업무와 보조업무를 모두 처리한다. 다만 포장업무가 집중되는 시간에는 타 부서 직원들이 물류 업무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후 커머스가 성장기에 들어서고 마케팅과 프로모션 등 판매촉진을 위한 투자가 증가하면 자연히 물류의 규모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물류 업무의 성격도 변화하게 된다. 기존 인력이나 파트타임으로 지원을 오는 타 부서 인력만으로는 출고량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이에 따라 물류에 필요한 인력과 업무 시간 또한 증가한다. 이 시기에는 입고와 재고 업무도 점차 체계화된다. 따라서 커머스는 프로세스를 재정비하고, 물류 전담 인력을 고용해 각각의 인원에게 고정적인 역할을 맡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업무가 많은 시간을 요구하거나 복잡하지는 않아서, 일정 시간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포장작업 등에서는 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제품의 성격이 다양해지고 SKU가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면, 그때부터는 직원이 더 이상 포장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이는 단지 출고 규모가 늘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의 서비스가 성장하고 고객의 기대치가 상승함에 따라 출고 외적인 여러 부분에서 신경 써야 할 업무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단계에 이르면, 물류에서 관리 업무와 현장 작업이 분리된다. 물론 이 시기에도 현장작업과 출고는 중요한 일이나, 물류직원의 핵심 업무는 물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대량의 제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되며, 이로 인해 직원이 현장에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물류직원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출고가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현장업무 전반을 현장 작업자에게 이관한다.
물류현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다. 다만 물류 관리와 효율성 제고라는 본질적인 일을 하는 이들과 그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반복 작업과 단순 업무를 도맡아 해주는 이들 사이에 분업이 생겨날 뿐이다. 이들은 정확히 협력관계에 놓여있다. 즉, 둘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의 업무에 큰 지장을 끼치게 된다. 필자에게는 이 둘의 관계가 등반가와 셰르파처럼 보인다. 셰르파 없이 정상에 오르는 등반가는 없다. 마찬가지로 현장 작업자는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물류 효율성을 높이고 나아가 팀이 발전하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한낱 짐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도, 안타깝게도 현장 작업자에 대한 처우나 그들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가령 급여를 지불하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해야 할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비용절감을 위해 그들을 언젠가 해고해야 하는 ‘낭비요인’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이들이 구하기 쉬운 단순 인력이라고 여기는 그릇된 시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정말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고했다가 금방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경우에 따라 장기적 필요보다는 일시적인 필요에 의해 인력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커머스 물류현장은 장기적인 작업 인력을 필요로 하며 늘 인력 수급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구하기 쉬운 단순 인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상생해야 할 존재이다.
이들을 통제하고 대우할 때 관리적 편의만을 절대적인 잣대로 삼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숙련도’이다. 단순 포장작업을 하더라도 숙련도가 중요하다. 이 숙련도가 생산성과 정확성에 직결된다. 그리고 숙련도라는 것은 곧 그들이 회사의 발전을 함께 이룩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객관적인 가치를 산정할 수는 없더라도)분명한 것은 그들이 회사나 팀이 보유하고 있는 소중한 역량 자산이자 가치라는 것이다. 숙련자와 비숙련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속도와 효율성의 차이는 그들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시스템이 절대로 완벽하게 인력을 대체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숙련된 이들이 시스템을 사용할 때 그 시스템이 지니는 효용과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시스템이란 하나의 업무에 하나의 답을 내리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제거하며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시스템에도 맹점이 있다. 작업자가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그렇게 축적한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하며 스스로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시스템의 맹점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성장하는 작업자, 인력난 해결의 실마리
그렇다면 현장 작업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우해야 좋을까. 보통 고용자는 현장에서 포장업무 등의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작업자를 ‘비용‘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인격이다. 그들 역시 스스로의 발전을 갈구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인정받아 조직 내에서 상장하기를 원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 정도 근무기간이 길어지고 숙련도가 높아지면 굳이 추가 급여를 받지 않더라도, 자신보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동료를 가르치고 리드하며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주변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분명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장의 작업자 내에서도 숙련도에 따라 위계가 생기고 질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용자는 이를 보지 못한다.(혹은 못 본 척 지나친다.) 그들에게 적절한 직책을 부여하거나 보상을 제공해 현장의 안정성을 끌어올리려고 하기보다는 굳이 먼 곳에서 새로운 관리자를 찾느라 바쁘다.
필자는 군대에서의 ‘병-부사관 전환제도’처럼 물류현장의 내부 인력을 레벨화하고 그들 간 급여를 차별화함으로써 ‘숙련도 있는 중간 관리직 채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장 작업자의 등급을 4개월 단위로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등급은 D부터 A까지 순서대로 있다. A등급에 오르려면 하나의 고정된 업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업무 흐름을 익히고 돌발상황에 대응한 경험이 있어야 하며 근속 기간은 적어도 1년이 필요하다. 만약 파트타이머라고 할지라도 A등급에 올랐다면 그는 마땅히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이 경우, 고용자는 중간 관리자를 추가 채용하는 대신 A등급의 직원에게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맡기고 급여를 조정하는 한편, 보다 채용이 쉬운 D등급의 단기 현장인력을 충원함으로써 인력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방안은 내부 고용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열의를 지닌 작업자에게 더 큰 동기부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류현장에는 물류를 전공하지 않았거나 물류에 관한 지식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도 물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다. 물류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어떤 물류 전공자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앞서 필자가 제안한 방안은 이런 이들에게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물류현장에 만연한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가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파트타이머로 들어와 계약직으로서 중간 관리자를 거치고 끝내 정직원으로 전환된 사례가 있었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불리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노력해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만들어냈다.
인생의 선배이자, 정상까지의 동반자로
지금까지 물류업무에서 관리자와 현장 작업자가 어떻게 분리되었는지, 현장 작업자에 대한 처우나 시선은 어떠한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여전히 현장 작업자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그들이 받는 시급만큼이나 박하다. 그러나 필자에게 현장 작업자들은 시간에 대한 삯을 받는 단순 인력이 아니다. 그들은 필자가 처음 물류현장에 뛰어들었을 때 필자에게 많은 조언을 건네주던 선배였고, 필자가 상사에게 혼날까봐 자신의 바쁜 시간을 쪼개 일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이었으며, 필자가 바쁘고 힘들 때마다 자신의 근무시간이 끝났음에도 필자의 곁을 지켜주던 동료이자 친구들이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도 필자는 여전히 그들과 밥을 먹고 안부를 묻는다. 결국 그들도 우리 곁에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로부터 산은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혹은 시련과 역경을 넘어 결국에 쟁취하는 대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정상을 바라보며 산을 오르고 있다. 저마다의 길은 모두 다르고, 각자가 처한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산의 정점에 다다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좋은 동반자를 두었다는 것이다.
물류의 발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현장에서 일한다는 것, 좋은 동반자를 만나 그들과 함께 그런 현장을 더 좋게 바꿔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필자에게 주어진 행운이다. 급여의 높고 낮음이나 업무의 경중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대신 현장의 작업자를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인생의 선배로 바라보자.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분명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우리 앞에 닥칠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배달의민족과 미팩토리, 두 곳의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물류업무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과 MD 등 다양한 부서와 물류팀 간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겪고, 또 해결해나가면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물류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