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 원가는 치킨값의 15%, 닭고기 유통구조의 비밀을 찾아
사육부터 도계, 가공에 이르기까지… 육계의 이동경로 파헤치기
글. 김정현 기자
치킨 한 마리, 소박한 풍요로움이다. 회사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한 뒤 맥주 한 캔과 함께 먹는 치킨 한 마리는 그야말로 ‘신성’하다. 그래서 우리는 치킨을 ‘치느님’이라고 부른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최근 이 소박한 풍요로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만 원 가까이 치솟은 치킨 가격 때문이다. 보통 닭고기 원가는 치킨 가격의 15% 내외라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85%는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해서 치킨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파헤쳐봤다. 도대체 닭고기가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기에 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치킨의 히스토리, ‘수직계열화’
한 마리 치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기에 앞서 국내 육계산업의 대략적인 모습을 알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국내 육계산업은 ‘수직계열화’돼 있다.
1930년대에는 계란 10개와 소고기 한 근의 가격이 비슷했다. 닭값이 그만큼 비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육계(肉鷄: 식용 닭. 즉 우리가 먹는 닭을 육계라고 부른다)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닭고기 공급량도 급증했다. 물론 당시 치킨은 치금처럼 튀겨먹는 프라이드(Fried) 치킨이 아니라 전기로 굽는 ‘전기통닭’이었다.
70년대 초에는 계열화 사업체가 등장하면서 육계 전용 ‘도계(屠鷄: 닭을 잡아서 죽이는 것)처리장’이 설치됐다. 도계 과정이 현대화됨에 따라 시장에서 비위생적으로 도계되던 닭들이 위생적으로 도계되기 시작했다. 정부도 위생적인 도계 및 가공을 촉진하기 위해 법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했다.
전기통닭 세대(?)라면 알겠지만, 당시 전기통닭은 아버지 월급날을 기다렸다가 한 번씩 먹는 일종의 특식이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계열화업체가 닭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업체가 페리카나와 처갓집통닭이다. 특히 86년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릴 무렵 국제사회에서 식용 개고기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내 개고기 수요가 치킨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요 증가가 육계 계열사업체와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몸집을 불렸다. 이렇게 치킨사업이 차츰 국민 간식 사업으로 발돋움했다.
이후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가 활황을 맞았고, 동시에 치킨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또한 할인점과 대형마트 등이 들어서면서 육계산업의 유통망도 확대되었다. 이에 발맞춰 국가는 외부환경에 민감한 육계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육 농가가 닭을 안정적으로 사육할 수 있도록 육계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지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국내 육계산업에는 도계 및 가공 단계를 중심으로 하나의 기업이 통합경영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현재 국내 육계시장에서 계열화업체가 공급하는 육계의 비중은 전체의 약 94%에 이른다. 국내에 대표적인 계열화업체로는 ‘하림’이 있다.
닭고기 수요예측이 힘든 이유는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닭고기 한 마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아보자. 닭의 생산단계는 사육→도계→가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사육 과정이다.
토종닭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가 먹는 닭의 DNA에는 ‘외국 닭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들의 출처는 어디일까? 요컨대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닭을 수입해 와 이를 다시 사육(Breeding)한다. 이처럼 수입해온 닭을 업계에서는 통상 원종계(GPS: Grand Parent Stock)라 부른다. 그리고 원종계를 교배해 태어난 다음 세대의 닭이 종계(PS: Parents)이다. 종계는 산란계로서 알을 낳는다. 종계농장에서 만들어진 달걀은 부화장으로 보내진다. 부화장은 종계농장으로부터 공급받은 달걀을 부화시켜 병아리를 육계 사육농가에 공급하는데, 이 병아리가 바로 우리가 먹는 ‘육계’이다.
육계의 족보는 이처럼 복잡하다. 통상 육계는 32~34일 사육된 뒤 도축된다. 한편 육계 전 단계인 종계를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기간은 약 270일, 즉 9개월이다. 그 전 단계인 원종계 수입도 수입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총 270 정도가 걸린다. 즉 한 마리의 닭이 만들어지는 데 약 580일이 소요된다.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살아있는 닭의 수급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원종계부터 육계까지 전체적인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1년의 기간을 두고 수요예측을 해야 한다.
AI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원종계는 외부와 완전 차단되고 방역까지 철저히 이뤄지기 때문에 AI와 같은 질병은 종계 단계 이후에 노출된다. 따라서 AI로 인해 닭이 살처분되었다면, 그 살처분 대상은 대개 산란계인 종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종계가 살처분되면? 향후 6개월분 수요 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강기철 하림 이사는 “작년 11월에 발생한 AI로 닭 수요가 높은 올해 5~7월에 닭이 모자랄 것으로 예측되었다”며 “해당 여파에 대비해 종계단부터 수요예측에 들어가 부족분을 보완하면서 수급조정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수요예측 기간이 길기 때문에 육계기업은 수급조절을 위해 농가와 대개 연간(혹은 6개월) 단위의 계약을 체결한다. 육계기업은 계약을 체결한 농가에 지속적으로 사육 기술지도, 질병 및 등급 등을 관리한다. 또한 육계기업은 닭의 연간 수요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도축 계획을 세운다. 가령 닭 수요가 8%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되면, 가장 먼저 이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원종계를 수입하는 것이다.
▲ 닭고기의 유통구조
한편 육계는 약 90일(3개월) 단위로 수요예측에 이뤄진다. 앞서 말했듯 육계 사육일은 30일인데, 왜 수요예측은 3개월 단위로 하는 것일까. 수요예측 기간에 달걀이 병아리로 부화하는 기간 등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넉넉히 3개월의 수급 시스템을 가지고 이를 조정해야만 시장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도계 과정을 해체하라
사육 이후의 과정은 도계이다. 도계는 소위 ‘생닭을 해체하는 과정’을 말한다. 도계는 다시 수송 및 계류, 도계, 내장적출, 내장 및 선별의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 수송 중인 육계
우선 생닭이 흔히 말하는 ‘닭장차’에 실려 공장으로 들어온다. 이때 닭과 차량은 1차적으로 살균과정을 거친다. 공장으로 들어온 닭은 바로 도축되지 않고 ‘계류장’으로 이동한다. 계류장에서는 닭장에 실려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근육이 굳어진 닭의 상태를 이완시킨다. 계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닭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몸에 열꽃이 펴거나, 추후 피를 빼는 ‘방혈’ 과정에서 피가 다 빠지지 않아 날개 끝에 맺히기도 하는데 이 상태 그대로 도축되면 생닭에 붉은 반점이 생기게 된다.
이후부터가 본격적인 도계 과정이다. 먼저 계류 과정을 거친 생닭을 걸어(현수) 기절시킨 뒤 닭의 체내에서 8%를 차지하는 피를 빼낸다.(방혈) 피가 전부 빠지면 털을 제거하고 머리와 발 역시 제거한다. 끝으로 내장까지 적출된 닭의 내외부를 세척한다.
세척과정까지 거치면 닭의 온도는 40℃까지 급상승한다. 이 온도를 4℃까지 내리는 것을 ‘칠링’이라 하는데 이는 닭고기의 신선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칠링의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워터칠링’과 ‘에어칠링’이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도계된 닭을 물에 담가서 온도를 낮추는 워터칠링 방법을 썼다. 그러나 워터칠링 방법을 사용하면 도계된 물에 닭이 계속 담겨 있어 미생물 오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닭이 물을 먹어 일시적으로 무게가 증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에어컨 등으로 바람을 쐬어서 온도를 낮추는 에어칠링 방법이 주로 쓰인다. 에어칠링은 닭을 한 마리씩 냉각시키기 때문에 워터칠링보다 위생적이다.
도계된 닭은 냉각되고, 이후 자동 분류시스템을 통해 크기와 무게별로 분류된다. 이렇게 분류된 닭은 거래처별 주문에 맞게 포장된다. 육계업체에서 도계된 닭은 크게 대리점, 체인점, 유통점 등으로 나뉘어 수송된다. 가령 거래처가 2시 전에 주문을 완료하면 공장에서 도계 과정을 거친 닭이 당일 10시~새벽 사이에 출고된다. 새벽까지 출고돼야만 대리점이 당일 도계된 닭을 다시 소매점 등으로 수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랜차이즈의 경우 육계업체에서 출고된 닭을 받아 염지(원료육에 식염, 육색 고정제, 염지 촉진제 등의 염지제를 첨가하여 일정기간 담가 놓는 제조공정을 말한다.(식품과학기술대사전)) 과정을 거친 뒤 각 가맹점 등으로 다시 보낸다. 여기에 드는 총 리드타임은 2~3일 정도이다.
‘치킨게임’은 이제 그만!
알고 보면 치킨 한 마리 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닭이 최종 소비자에게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이처럼 복잡하다. 사실 생닭 1마리(1kg)의 가격은 1,600원선으로 알려져 있다. 치킨 가격의 10% 남짓이다. 나머지는 공급사슬 각 단계에서 더해지는 부가가치다.
피자 가격 인상에 너그러운 사람들도 치킨 가격 인상에는 유독 민감하다. 얼마 전 한 프랜차이즈 업체는 치킨 가격을 2만 원 이상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가 비난의 화살을 뒤집어썼다. 프랜차이즈 업체는 AI 파동 등으로 높아진 닭 가격으로부터 가맹점을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으나 비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한양계협회에서도 AI로 인한 닭 살처분 등이 닭 원가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밝혔다. 오히려 프랜차이즈 업체가 닭을 얼마에 납품받고 가맹점으로부터는 얼마를 가져가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랜차이즈 업체를 닭 가격 ‘뻥튀기’의 주범으로 보는 거다.
다른 한편에서는 수직계열화된 육계기업이 이 바닥의 ‘갑 중 갑’이라고 말한다. 국내 육계시장에서 94%를 차지하는 이들이 닭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모두 장악하여 그 가운데서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치킨을 두고 벌이는 게임은 그만 두었으면 한다. 흔히 말하는 치킨게임의 결과는 양 당사자가 지지만, 치킨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가격 게임의 피해자는 온전히 소비자와 가맹업주들이기 때문이다. 무릇 신성한(치느님) 것은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