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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이 간다] 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상)

by 김정현 기자

2016년 12월 11일

- 동대문 도매시장의 꽃 '사입삼촌', 그들의 역할은

- 초저녁부터 아침 7시까지, 김기자의 삼촌 체험

- 주문장 정리부터 물류업체 인계까지, 삼촌의 하루

동대문 사입삼촌

해가 저물고 동대문 거리의 상점들이 하나둘 폐점 준비를 할 무렵. 동대문 도매시장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늦은 9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부터 신당역 근방까지 쭉 늘어져 있는 동대문 도매시장 건물 사이에 하나둘 인파가 몰린다. 10시가 넘어가자 도매시장은 그새 수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기자가 취재를 목적으로 동대문 ‘새벽’ 도매시장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3번째. 유난히 기자의 발걸음이 설렜다. 이날은 '사입삼촌'과 하루 일과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체험전에 알아두기

 

사입삼촌은 무슨 일을 할까. 동대문 도매시장에는 물건을 파는 ‘도매상’과 물건을 구매하는 ‘소매상’ 외에도 이들을 지원하는 지게꾼, 퀵서비스 업체, 택배사, 사입삼촌과 같은 물류인들이 존재한다. 이중 사입삼촌은 동대문 도매시장 사이를 대봉(주문상품이 들어있는 커다란 봉지)을 둘러업고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하루에만 수천명이 방문하는 동대문 사입업자와 건물안 촘촘하게 즐비한 도매상을 지키는 언니들 사이에서 구매, 픽업, 물류업체 연결을 대행하는 것이 사입삼촌의 역할이다.

 

쇼핑몰 담당자들은 보통 밤 10시부터 12시 사이 물건을 살펴보고 자정 12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사입삼촌에게 주문장을 넘긴다. 그러면 사입삼촌은 매장을 돌면서 물건을 수거해 장끼(영수증)를 넣고 한 봉지로 합포장한다. 포장된 대봉은 쇼핑몰 담당자와 사전 합의를 통해 지정된 매장앞이나 공중전화박스 뒤편 등 특정 장소에 모아 둔다. 이후 삼촌은 화물차나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부르고 화물을 인계한다.

 

쇼핑몰을 대신해 사입삼촌이 운반하는 상품은 크게 '도매상에 전달할 물건'과 '수거해야할 물건'으로 나뉜다. 쇼핑몰들이 정리한 고객 주문 리스트를 사입 삼촌에게 전달하면 사입삼촌은 쇼핑몰 사입담당자가 동대문에 나가기 전에 먼저 도매상에 해당 리스트를 전달한다. 도매상은 전달받은 주문장을 보고 대봉에 장끼를 넣어서 포장한다. 이렇게 포장된 물건들 역시 사입삼촌들이 픽업한다. 

 

물론 사입 삼촌이 도매상에 전달한 쇼핑몰 주문건 중 제품 하자가 발견되거나, 오배송된 상품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샘플 촬영이 끝난 상품들을 다시 도매상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입삼촌은 이러한 쇼핑물 반품건, 샘플 반품건, 불량 물건을 모아 다시 도매상에 반납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야말로 동대문 생태계의 작은 물류를 모두 담당하는 '꽃'이다.

 

사입삼촌 따라가기

 

늦은 9시, 성동공업고등학교 앞에서 사입삼촌 김동규 씨를 만났다. 그는 5년간 동대문 도매시장을 누빈 베테랑이며 현재 2명의 다른 사입삼촌과 함께 협업하고 있다. 물량이 많은 쇼핑몰의 경우 여러 삼촌이 함께 물건을 가져오고, 화물운송과 퀵서비스 비용 역시 공동 부담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도매매장에서 수거해온 물건을 집하하는 장소도 공동 이용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입삼촌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김씨는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며 오늘 처리해야 할 주문건이라고 알려줬다. 오늘 물량은 적은 축에 속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다행히 물량이 적은 날이지만 그래도 힘들텐데, 따라올 수 있겠어요?”

 

그는 출발하기 전 힘들어서 쫓아오지 못하겠으면 꼭 말하라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으며 도매상에 전달해야 할 반납 물건을 손수레에, 앞으로 멘 가방에는 주문장을 넣고 제일평화시장으로 향했다.(기자는 손수레를 끌기 시작한 지 한 시간만에 그의 걱정을 이해했다.)

 

주문장에는 김씨가 오늘 돌아야 할 도매상 상점 번호가 적혀있었다. 원래는 호수를 보고 매장을 찾아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베테랑인 김씨는 매장 간판, 이름도 보지 않고 수십개 매장에서 상품을 픽업했다. 이제 매장앞에 놓인 봉지만 봐도 어느 쇼핑몰의 것인지 알기 때문에 헷갈릴 일이 없다는 설명이다. 

동대문 사입삼촌 도매시장

사진= 물량이 적은 날이라고 했던 그 날. 기자가 받은 하루 처리할 주문 뭉치.

 

그들만의 체계

 

한 건물을 빠르게 돌고 나오자 어느덧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속을 헤치고 우리는 서평화 건물로 이동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니 세 번째 집 이모가 김씨에게 “A꺼 물건 없어, 일밤~”이라 짧게 말을 남긴다. 일밤? 일요일 밤에 상품이 준비된다는 뜻이다. 사입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겐 자칫 생소한 용어이다. 김씨가 들고 있던 주문장에 무언가 빠르게 체크한다. 오늘 받지못한 물건을 표시한 것이다. 신속히 다음 매장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입삼촌들은 자신만의 용어를 만들어 간략하게 필요한 것을 표기한다.

 

다음 매장으로 이동했다. 매장 삼촌은 김씨를 보더니 “8032162죠? 담주 화밤이예요”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동대문 상품들은 여러 가지 사이즈, 색상으로 생산된다. 이렇게 생산된 상품은 '약어'를 통해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아이보리색상의 블라우스는 ‘아이BL’과 같이 상품명과 색상을 구별한다.

 

그런데 과거 사입경험과 몇 차례 동대문 체험으로 어느 정도 용어에 익숙해진 기자에게도 8032162라는 숫자는 생소했다. 상품을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말이다. 김씨는 이에 대해 "청바지같이 상품 자체로 어떤 상품인지 한눈에 구별하기 힘든 상품의 경우 품번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띠링띠링”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보통 함께 일하는 사입삼촌들은 모바일 메신저(주로 카카오톡)로 소통한다. 때문에 이렇게 전화가 울리면 그것은 곧 급한 건이라는 신호다.

 

내용은 이러했다. 거래하는 한 쇼핑몰 대표가 오늘 현장 시장조사를 나와 몇몇 물건을 골라 놓았기 때문에, 이 물건을 찾아 오늘 당일배송 처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씨는 사전에 들어온 주문장 외에도,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 쇼핑몰 담당자들이 보고 골라둔 신상들을 당일 수거해서 새벽에 발송했다. (중간중간 주문이 들어오는 물량도 상당하다.) 

동대문도매시장, 사입삼촌

사진= 당일 쇼핑몰에서 들어온 주문건들을 합쳐서 포장한 모습

 

그리고 협업

 

“야 오늘 J사 샘플건 있어. 가져가야지~”

 

한 매장을 바삐 지나치자 또 다른 매장 언니가 그를 불러세운다. 쇼핑몰에서 촬영을 위해 주문한 샘플건이다. 도매상 언니는 "동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사입삼촌 얼굴만 봐도 어느 쇼핑몰을 담당하는지 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가끔 삼촌이 주문건을 놓쳐도 도매상이 그것을 챙겨주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다음 매장으로 이동중 김씨가 협업하고 있는 선배 사입삼촌으로부터 또 한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가 들렸던 매장이 아직 상품을 포장해두지 못했기 때문에 대신 받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삼촌들은 먼저 지나친 다른 삼촌이 수거하지 못한 상품을 다른 사입삼촌이 대신 들려 수거하기도 한다. 

 

김씨는 "머리띠 하나 때문에 다시 몇천 보를 걸어야 한다"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미 들어온 주문건이라 할 수 없이 찾으러 가야 한다"며 바삐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매장 한 층을 도는 사이 그새 대봉 하나가 꽉 찼다. 옷이 담긴 봉지라고 우습게 보면 오산이다. 한 대봉당 기본적으로 20kg는 넘어간다. 이 때문인지 삼촌들은 대충 매장 중간, 혹은 에스컬레이터 근처 기둥에 물건을 던져놓고 물건을 수거하러 간다.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동대문 도매시장 건물 안팎으로 쌓여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건물안 통로에도 커다란 대봉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쌓아놓는 데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기자의 의문에 김씨는 "아직까지 누군가 고의로 물건을 가져간 경우는 없었다"고 답했다. 물론 베테랑 사입삼촌들도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끔 서로의 물건을 착각해 잘못 가져가는 경우는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봉투에 써있는 업체명, 물건들을 보면 어느 사입삼촌의 물건인지 서로가 알기 때문에 해당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 잘못 가져간 물건을 전해준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첨단 IT기술이 넘쳐나는 세상에 어찌보면 어설퍼 보이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동대문 삼촌들의 모습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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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봉을 들쳐업고 좁은 매장 사이를 바삐 지나가는 김씨의 모습

 

<연재> 김정현이 간다

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상)

체험 동대문 사입삼촌의 현장(하)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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