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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물류비망록] 현대택배 ‘코스닥등록 실패’ 뒤에 숨은 비사

by 정락인

2014년 07월 15일

[연재] 정락인 기자의 물류비망록 ②
글. 탐사전문미디어 ‘정락인닷컴’ 정락인 기자(전 시사저널 사회·탐사보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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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는 참 불운하다.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몇 차례 주식 상장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올해도 연내 상장을 목적으로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청구를 제출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이젠 회사가 다른 곳에 매각될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0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현대로지스틱스(당시는 현대택배)는 연내 주식상장을 목표로 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해 6월29일에는 코스닥시장 등록을 위해 코스닥위원회에 ‘등록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사내에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리고 주식 등록을 위한 전방위 노력을 기울였다.

직원들은 둘 이상이 모이면 ‘주식’ 이야기를 화두로 꺼냈다. “코스닥에 상장만 되면 1주당 5만원은 될 것”이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을 돈으로 환산해 보는 직원들도 많았다. ‘주식 대박’의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언론에도 엄청 공을 들였다. 여론을 좋게 형성하기 위해서는 언론에 어떻게 보도되느냐가 중요하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도 회사와 주식을 평가할 때 언론보도를 참고하게 마련이다. 당시 현대택배의 홍보업무는 총무팀장 관할 하에 ‘과장급’이 담당하고 있었다. 코스닥위원회에 등록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한 후에는 자주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 두 장 짜리가 아니라 두툼하게 추가 자료까지 만들어서 첨부했다.

◈택배 1위 싸움은 왜 시작됐나


주로 택배업계 순위와 시장점유율에서 경쟁사인 대한통운과 한진택배를 앞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명실상부한 택배 1위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은 현대택배가 주는 것을 검증도 않고 그대로 받아썼다.

현대택배는 기자들을 수시로 접촉하며 관리에 들어갔다. 현대택배의 집중 관리대상은 대중적인 영향력이 있는 경제지를 포함한 종합일간지 기자들이었다. 현대택배의 노력 덕분인지 언론에는 ‘현대택배 1위’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에 유탄을 맞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취급물량과 매출액 면에서 실질적인 1위였던 대한통운의 택배담당 임원이다. 현대택배의 보도를 접한 대한통운 곽영욱 사장은 그때마다 택배담당 임원을 불러다가 “어떻게 된 거냐”며 호통을 쳤다.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의 언론사에서 같은 보도가 나오자 담당 임원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런 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사장한테 불려가 혼이 났고, 무능력한 것처럼 보여 자기 자리마저 위태해졌다.

그는 필자를 만나면 “어떻게 현대택배가 1위냐, 그쪽 말만 믿고 자료를 그대로 베껴서 보도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것만 보면 현대택배의 매스컴 전략이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만하다.

◈전문지 기자 외면한 오만함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현대택배는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전문지 기자들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한 번은 필자가 따질 겸해서 홍보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식 상장 때문에 그러는 것은 이해한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보도자료는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알았다”는 답변을 기대했는데, 그는 “이해해 달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 했다.

사실 몇 사람 추가해서 자료를 보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메일에 수신자만 입력한 후 클릭 한 번이면 된다. ‘보도자료’는 말 그대로 보도를 많이 해달라고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홍보팀 담당 과장은 그것마저 안 하겠다고 했다.

필자가 “왜?”라고 따지면서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현대택배가 아직 업계 1위가 아닌데, 왜 그렇게 보도자료를 내느냐. 독자를 기망하는 것 아니냐”며 뼈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사실 전문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리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을 터였다. 업계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택배업계 순위와 시장점유율 부풀리기가 드러날 게 뻔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가 바뀌더니 “이런 사이비 ??”하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뚜~뚜 소리가 들리는 수화기를 잡고 있다 보니 어이가 없었고, 거기다 ‘사이비’라는 말에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한동안 감정을 억누르다가 어느 순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부터 현대택배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는 물론이고,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까지 샅샅이 찾았다. 확보된 자료는 책상 한쪽에 쌓아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의문 나는 곳은 빨간색 펜으로 쭉쭉 줄을 그어가며 꼼꼼하게 챙겨봤다. 일간지들이 자료 검증 없이 보도하고 있으니 현대택배가 보내는 보도자료의 오류를 낱낱이 잡아내 역공을 펼 생각이었다.

◈거짓 보도자료의 결말


현대택배를 비롯한 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경쟁사들이 지난 1년 동안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분석했다. 이걸 1년씩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단서가 있었다. 당시 택배사들은 순위 경쟁이 치열했다. 영업을 하기 위해서도 ‘1위’ 타이틀이 절실했다. 그러다보니 경쟁적으로 취급물량과 매출액을 ‘뻥튀기’하는 게 다반사였다. 현대택배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전년도인 1999년도에 택배3사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취급실적을 보면 현대택배는 1위가 아니라 ‘3위’였다. 취급 물량은 경쟁사들 보다 약 200만개가 뒤쳐져 있었다. 매출액도 이상했다. 현대택배는 대한통운과 같은 800억원을 올렸다고 했지만 여기에는 오류가 있었다. 현대택배는 경쟁사들에 비해 가장 낮은 요율을 적용하고 있었다. 단순 계산만 해도 취급물량이 가장 적고, 택배 요율이 가장 낮은데 매출액이 대한통운과 같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대택배가 주장하는 택배시장 점유율 36%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현대택배의 주장을 뒤집을 근거는 얼마든지 있었다. 현대택배의 시장점유율 36%도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당시 국내 전체 택배시장에서 택배3사(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택배)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약 25~30% 정도였다. 이 수치대로 라면 현대택배가 택배3사의 점유율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계산이 된다.

현대택배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취급실적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됐다. 현대택배는 1999년 7월 보도자료를 통해 상반기 취급물량이 전년도에 비해 80%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에 제시한 상반기의 물량을 보면 이전에 제시한 상반기 물량 보다 오히려 28만개가 줄어들었다. 이렇듯 취급수량을 제시할 때마다 실적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처음 취급물량이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 갖고도 현대택배의 주장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등돌린 기자들과 애널리스트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영우 현대택배 사장의 언론 인터뷰 기사를 찾아내 분석에 들어갔다. 윤 사장이 그해 초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터미널 확충 등에 50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며, 주요 목표사업을 추진하여 업계 선두에 오르겠다”고 밝힌 것이 있었다. 윤 사장 스스로 현대택배가 1위가 아님을 밝힌 내용이었다.

필자는 이런 내용을 보도하기로 했다. 현대택배는 2000년 8월16일 코스닥등록 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주간사인 LG투자증권에 의해 주당 희망공모가가 당초 예상했던 4만9500원에 턱없이 부족한 6000~7000원 선에 그쳤다. 공모주 청약을 통해 주식을 분산한 뒤 코스닥시장에 등록될 예정이었다.

필자는 8월말 ‘현대택배 업계1위 주장 어불성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물류신문에 보도했다. 현대택배의 거짓말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내용이었고, 치명적인 기사였다. 물류신문에만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현대택배 코스닥 주간사인 LG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 뿐 아니라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 한테도 기사 내용을 이메일로 보냈다. 또 현대택배가 ‘택배 1위’라고 보도했던 언론사의 기자들에게도 일일이 메일을 보냈다.

필자가 쓴 기사는 모두 정확한 근거와 취재를 통해 작성한 것이었다. 때문에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그건 현대택배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더 이상 언론보도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현대택배의 보도자료도 불신의 대상이었다. 경제지나 일간지 기자들도 현대택배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실제 그 다음부터 ‘현대택배 1위’라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현대택배는 코스닥 등록에 실패했다. 그해 12월12일 LG투자증권은 현대택배와 협의해 공모를 포기한다고 금융감독원에 공식 통보했다. 물론 필자가 쓴 기사가 여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홍보담당 과장의 ‘사이비??’라는 말 한마디가 현대택배에 치명적인 기사를 쓴 것도 사실이다. 물론 필자가 쓴 기사는 전혀 하자가 없다. 현대택배가 업게 선두주자임을 내세운다면 가격안정과 시장질서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서비스경쟁으로 업계의 모범이 돼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결국 주식공모를 어렵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만약 그 당시에 현대택배가 주식 등록에 성공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현대그룹은 지금의 현대로지스틱스(현대택배)를 통해 현금유동성 확보가 가능해졌을 것이고, 또 현대로지스틱스는 회사가 다른 곳에 매각되는 상황을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동 기사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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