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빅4 각사 입장 따라 '사색(四色)' 아닌 '사색(死色)'
택배업계 실적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누구라도 열면 다칠 듯한 분위기다. 각 사의 정확한 실적은 내부직원 이외엔 아무도 모르며, 설령 알더라도 모른 척 하는 게 도리다.
배명순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사무국장은 “회원사에서 제출한 실적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긴 하나, 협회가 이 자료를 받는 데도 굉장한 어려움이 따랐다” 며 “거의 모든 회원사가 자료의 외부공개를 원하지 않으니 협회로서는 이를 존중해줄 수밖에 없는 입장” 이라고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 택배사 관계자는 “실적 발표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차이가 크지도 않아 순위를 놓고 경쟁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일이다. 눈에 보이는 실적보단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데 시간을 쏟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신경 쓰지 않는다면 발표 못 할 것도 없지 않으냐는 질문에 “택배업계는 아직 폐쇄적인 면이 있다”라고 답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외부로 공개되는 실적이 신경 쓰인다는 말이다. 업계의 ‘뻥튀기’ 실적 발표는 거의 관행이나 다름없다.
상장사인 대한통운과 한진마저 공시를 통해 매출액, 영업이익률 등을 발표하지만 업계에서는 물량만큼은 변질됐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해마다 택배업계 실적 기사는 ‘관련업계에 따르면’, ‘각 회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란 말로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각 회사가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실적 속 아리송한 부분을 찾았다.
▣ 실적 발표, 상장사만 손해
자타공인 업계 1위 택배사인 대한통운. 최근 발표한 3분기 택배 부문 누계 매출액은 3,013억 원. 상반기 매출액(1,959억)을 빼면 3분기 매출액은 1,054억 원이다. 대한통운의 3분기 누계 물량은 약 1억 3,400만 박스다. 상반기에 8,750만 박스, 3분기에 4,650만 박스를 소화했다. 엄청난 물량이지만 올해 목표치였던 2억 박스에 도달하려면 아직 먼 길을 가야 하는 상태다.
그래서인가? 단가를 낮추더라도 목표 물량을 달성하는 게 우선이라는 전략이 보인다. 대한통운의 박스당 단가는 2,300원~2,400원으로 알려진 업계 평균에 못 미치는 2,248원이다. 1억 박스 취급하면 2,248억 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택배 빅4 중 상반기 소화 물량이 가장 적고, 3분기까지 1억 박스 가까이 소화했다는 한진택배의 3분기 누계 매출액은 2,460억 원이다. 3분기 누계 물량은 1억 박스에 조금 못 미치나, 박스당 단가는 2,500원에 육박한다. 유일하게 업계 평균 단가 이상을 받고 있다. 덕분에 대한통운보다 천만 박스 덜 소화하고, 그만큼의 매출을 올렸다.
▣ 스스로 무덤 파는 '이중논리'
본지가 입수한 정보를 보면, CJ GLS의 3분기 누계 물량은 약 1억 2,500만 박스(SC로지스 포함)다. CJ GLS의 상반기 물량은 7,430만 박스로, 3분기에만 소화한 물량이 4,600만 박스인 셈이다. 공시 의무가 없어 매출액 발표 의무 역시 없는 CJ GLS. 박스 단가를 평균 단가 최고치인 2,400원에 대입해보니 누계 매출액은 3,000억 원.
현대택배의 3분기 누계 물량은 약 1억 1,100만 박스. 상반기 발표 물량 7,628만 박스를 제외하고, 3분기에만 3,472만 박스를 소화했다. 현대택배의 상반기 발표 매출액을 토대로 3분기 누계 매출액을 계산하면 2,664억 원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진택배의 3분기 누계 매출액은 2,460억 원, 누계 물량은 1억 박스에 조금 못 미친다.
취급 물량과 매출액을 보면 CJ GLS(추정 매출액), 현대택배, 한진택배 순이다. 하지만 똑같이 1억 박스를 취급했다고 가정하면 한진택배, 현대택배, CJ GLS 순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택배 빅4의 영업이익률이 4~5%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 최고치인 5%를 대입해 계산해본 결과 대한통운과 CJ GLS의 영업이익률이 엇비슷했다. 영업이익률만 보면 2강 2중인 셈이지만, 업계는 아직 1강 3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전체 택배사의 2009년 3분기 누계 물동량은 7억 5천만 박스다. 이 중 빅4의 취급 물량은 4억 7천만 박스에 육박, 전체 물동량의 62%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