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얄궃은 물류업계
얼마 전 경기도 이천시에 소재한 W사 물류센터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화마는 총 4개 창고 중 2개 동을 순식간에 전소시켰다. 다행히 직원들이 퇴근한 새벽 시간에 일어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지난해 1월과 12월, 그리고 올해 11월, 2년 새 3차례 연이은 화재는 물류?창고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2년간 총 46명 사망, 10명 부상 등 물류센터 화재에 따른 인명과 재산 피해규모도 문제지만 모든 사고가 예고된 인재(人災)라는 점에서다.
전기누전 등 정확한 발화 원인은 현재 조사 중에 있다. 그러나 지난해 2차례 화재에 이어 이번 역시 대형사고의 원인은 ‘샌드위치패널’ 때문이었다.
지난해 사고 이후, 소방당국이 이천 지역을 비롯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를 대상으로 긴급 점검에 나섰지만, 예방노력은 거기까지였다.
새로 짓는 창고의 경우 건축소재와 방화 규정을 엄격히 한다지만, 이미 지어진 창고의 경우 사용자가 화재에 주의해줄 것을 강조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
이렇다 보니 안전불감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소방시설에 대한 보강노력도 멈춰선 게 현실이다.
당국에서 관련 소방법을 개정해 창고시설물을 불연성소재로 대체하자는 일부 움직임이 있었지만 변화는 없었다.
물론, 수익성이 바닥을 치고 있는 물류?창고업체들의 입장에서 당장 급하지도 않은 안전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매우 힘든 선택일 것이다.
“언젠가 잊혀지겠지”, “설마, 우리 회사에 불이”, “단속만 피하자”.
업계 대부분의 반응이 이런 식이기에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안전불감증’은 또 한번 도마 위에 오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화재보다 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이 몇 일전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그날 오전부터, W사 물류센터 주변에는 창고영업 관계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처참하게 타버린 현장을 지켜보며 스스로 경각심을 세우고, 피해업체 종사자들의 생사여부와 안전을 걱정하는듯한 분위기인 것 같았다.
취재기자는 W사 화재복구에 시일이 걸리겠다 걱정이 되면서도 바쁜 시간에도 달려와준 동종업계 관계자들의 따듯한 관심과 격려 덕택에 큰 힘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기자의 착각이었다.
우연찮게 엿들은 이들의 대화 내용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W사 창고입주 업체 어디야?”, “U사, H사 물류담당자 연락처 알아봐라.”, “대체 창고 필요할 텐데, 평당 임대료 얼마야? 우리 쪽으로 유도해.”
영업이 ‘총성 없는 전쟁’이고, 경쟁사 입장에선 물량유치를 위한 당연한 전략이 아니겠냐 싶으면서도 기자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W사는 화재 당일 오후, 인근에 위치한 몇몇 기업의 임시창고를 빌렸고, 현재 화주들의 물류운영 정상화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이들의 자구노력을 비웃으며 물량 빼앗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는 W사 직원이 버젓이 함께 있었고,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불 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물론, 동종업계 일부의 이야기이겠지만,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왠지 씁쓸하다.
화재 보다 정말 더 무서운 건 창고업계의 이기적 양심과 도덕적 해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