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인수·합병전, 글로벌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의 목표란
글로벌 기업은 기술 & 네트워크로 영향력 강화, 한국 기업이 가야할 길?
글. 김희양 콜드체인플랫폼(CCP) 대표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 글로벌 기업들, 치열한 인수·합병전
작년 이맘 때 덴마크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지주회사 노보홀딩스(Novo Holdings)는 콜드체인 포장 솔루션 기업인 엔바이로테이너(Envirotainer) 지분의 24.9%를 인수했습니다. 엔바이로테이너는 스웨덴에 본사를 둔 액티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입니다. 액티브 콜드체인이란 냉난방 온도 조절 기능이 장착된 콜드체인 컨테이너를 말합니다. 노보홀딩스는 뜬금없이 왜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에 투자를 한 것일까요?
노보홀딩스가 밝힌 엔바이로테이너에 투자한 이유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마켓 리더십입니다. 엔바이로테이너는 액티브 콜드체인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1986년 설립 이래 혁신적인 솔루션과 일관된 서비스로 탄탄한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둘째, 콜드체인분야가 가진 매력 때문입니다. 임상 및 바이오제약 시장의 성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콜드체인 운송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콜드체인 포장재 분야가 동반 성장하고 있는데요. 이는 곧 엔바이로테이너의 강력한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셋째, 글로벌 성장 기회입니다. 작년 7월 엔바이로테이너를 인수한 영국계 글로벌 벤처 투자 및 사모펀드 기업 씬벤(Cinven)과 함께 엔바이로테이너의 기술 개발과 컨테이너 차량, 글로벌 서비스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입니다.
▲ 팔레트 1개를 적재할 수 있는 RKN e1 컨테이너(좌), US팔레트 4개 또는 EU팔레트 5개를 적재할 수 있는 RAP e2 컨테이너(우) (출처: Envirotainer AB)
사실 글로벌 포장재 기업 간 인수합병은 이미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바 있습니다. 과거부터 임상 및 상업용 의약품, 임상시험 검체 운송에 필수적인 콜드체인 포장재의 시장 성장 가능성을 미리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인수합병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포장재 기업 간 인수합병
① 소노코 써모세이프(Sonoco ThermoSafe)
다양한 소비재 및 산업용 포장재 기업으로 1899년에 설립된 소노코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입니다.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란 EPS(Expanded Polystyrene) 또는 VIP(Vaccum Insulated Panel) 박스에 젤팩 또는 PCM을 냉매제로 사용하여 온도를 조절하는 콜드체인 포장재를 말합니다. 소노코는 1946년에 설립된 써모세이프(ThermoSafe)를 2011년에 인수합병하며 소노코 써모세이프라는 브랜드로 재탄생합니다.
이후 소노코 써모세이프는 다시금 2016년 9월, 액티브 콜드체인 컨테이너를 제조하는 AAR 콜드체인 솔루션 어셋(AAR Cold Chain Solution Assets)을 인수하며 제약분야를 위한 패시브 및 액티브 콜드체인 라인을 모두 갖춥니다. AAR 콜드체인 솔루션 어셋 인수 몇 주 후, 끝내 영국의 대표적인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으로 1976년에 설립된 라미나 메디카(Laminar Medica)까지 인수하며 전 세계 콜드체인 포장재 시장을 노리며 세력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 일회용 콜드체인 포장재(좌), 팔레트 1개를 적재할 수 있는 액티브 콜드체인 포장재 PharmPort 360(우)
② 소프트박스 시스템즈(Softbox Systems)
소프트박스 시스템즈는 1995년 영국에서 시작된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입니다.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기업들 사이에서는 사실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헬스케어분야 투자기업인 그레이트 포인트 파트너스(Great Point Partners)의 자금 및 인수 합병 지원이 있었습니다. 2014년 그레이트 포인트 파트너스의 투자를 받은 소프트박스 시스템즈는 몇 년 후 본격적인 인수합병 작전에 나섭니다.
2017년 스페인에 본사를 둔 템팩(Tempack)이라는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을 인수하고, 2018년에는 실버스킨(SilverSkin)이라는 콜드체인 커버로 유명한 영국계 글로벌 기업 TP3 글로벌(TP3 Global)을 인수합니다. TP3 글로벌의 미국 및 아시아 네트워크와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한 소프트박스는 새로운 브랜드 소프트박스 실버스킨 써멀 커버(Softbox SilverSkin Thermal Covers)를 만듭니다. 또 브라질에 본사를 둔 콜드 테크 시스템즈(Cold Tech Systems)를 인수하며 라틴 아메리카까지 공략하는 전략입니다. 포장재 렌탈 프로그램 뿐 아니라 환경보호를 위한 그린 리사이클링 서비스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 재사용 콜드체인 포장재(좌), 콜드체인 팔레트 커버 실버스킨(우)
③ 펠리칸 바이오써멀(Pelican BioThermal)
고성능 보호 케이스, 여행용 수하물 케이스 및 백팩, 고급 휴대용 손전등 분야의 미국계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1976년 설립된 펠리칸 프로덕츠(Pelican Products)는 2012년 8월 펠리칸 바이오파마(Pelican BioPharma)라는 부서를 신설하고, 140시간 동안 냉장(+2℃ to +8℃)을 유지할 수 있는 두 가지 사이즈(Medium, Large)의 포장재를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2013년 1월, 펠리칸은 2004년 설립된 미국계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 미네소타 써멀 사이언스(Minnesota Thermal Science)를 인수합니다. 미네소타 써멀 사이언스는 가벼운 VIP박스와 PCM으로 온도 성능은 매우 뛰어나면서 가벼운 무게로, 비용 효율성이 높음과 동시에 재사용까지 가능한 크레도(Credo) 박스로 업계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이어 2014년에는 영국계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인 쿨로지스틱스(Cool Logistics)도 인수합니다. 2000년에 설립된 쿨 로지스틱스는 영국 뿐 아니라 인도, 싱가포르, 호주 등 아시아에 지사를 두고 있어 다른 어떤 포장재 기업보다 아시아 네트워크가 강하고, 헬스케어 물류 선두기업인 월드쿠리어(World Courier)에 월드쿠리어 로고가 박힌 포장재를 납품하며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수합병으로 펠리칸 바이오파마는 펠리칸 바이오써말이라는 브랜드가 되었고, 각 회사들의 강점을 살린 일회용 및 재사용 콜드체인 포장재, 팔레트 사이즈 재사용 포장재 렌탈 서비스 프로그램 등 혁신적인 솔루션을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 일회용 콜드체인 포장재(좌)와 재사용 콜드체인 포장재(우)
▲ 렌탈 서비스용 재사용 콜드체인 포장재(출처: 펠리칸 바이오써멀)
한국의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의 현실
한국에서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으나,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 분야는 아직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에서의 가능성을 보고 꿋꿋이 한국의 콜드체인 포장재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2006년에 설립된 탭스 인터네셔널(TAPS International), 2008년 설립된 에프엠에스코리아(FMS Korea)가 대표적입니다.
글로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이 제약 산업을 주 타깃으로 콜드체인 포장 솔루션을 연구하며 제조 및 개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은 여전히 식품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자체 개발 콜드체인 포장재로 WHO 백신 납품용 포장재를 비롯하여 몇몇 제약 기업들과 거래를 하는 등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나, 아직 문턱 높은 글로벌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 기업들의 콜드체인 포장재 파트너의 기준에는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한편 글로벌 포장재 기업의 한국 세일즈를 담당하는 파트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의약품 개발 연구사업과 관련된 분석, 생동, 임상 서비스 기관인 바이오코아(BioCore)도 2013년에 콜드체인 포장재 사업에 뛰어듭니다. 영국에서 1998년에 설립된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및 위험물 포장재 전문 기업인 인텔시우스(Intelsius)의 한국 세일즈 파트너가 된 것입니다. 2014년 FMS Korea는 1975년 미국에서 시작된 패시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 인마크 패키징(Inmark Packaging)의 한국 세일즈 파트너가 됩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아시아 네트워크를 보유한, 2000년에 설립된 패시브 콜드체인 기업 에어리스 다이나믹스(Aeris Dynamics)는 2014년 한국에 에어리스 코리아(Aeris Korea)라는 합작기업을 세우고, 포장과 물류를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사 포장재를 이용하는 특송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픽업 서비스라는 부가가치를 더한 것입니다. 특송 기업 입장에서는 콜드체인 포장재를 컨디셔닝해야 하는 번거로움, 드라이버에게 포장법을 일일이 교육해 직접 포장하게 하는 어려움, 포장으로 인한 소요시간 지연 등의 문제를 줄일 수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요. 물론 이는 에어리스 다이나믹스 포장재를 이용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콜드체인을 요구하는 검체 픽업에 해당되는 아웃소싱 서비스입니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포장재 업체들의 픽업 및 포장 대행 물류서비스라는 새로운 영역의 서비스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인마크 패키징의 한국 세일즈 파트너인 FMS Korea도 이 서비스 대열에 합류했으며, 작년 9월 설립된 한울 TL&TS도 자체 개발 콜드체인 포장재 외 물류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비스는 포장재가 아닌 저렴한 물류비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국내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이 픽업이라는 물류 서비스로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 보다는, 그들의 본질인 콜드체인 포장재 기술력을 바탕으로 R&D 및 제조에 집중할 때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수확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한국 시장에서 국내 기업끼리 서로 경쟁하는 사이, 글로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은 한국 고객들을 대상으로 직접 영업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제약시장이 미국, 그리고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처럼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 및 관련 포장재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가는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의 인수 합병 현황과 기술 트렌드를 살펴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온도에 민감한 의약품 시장의 성장이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의 성장으로 이어지듯,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의 성장은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와 동반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의 한국 세일즈 파트너로서 만족하거나, 포장 이외의 물류 서비스, 가격 등으로 승부를 보려고 해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우선 중국이나 인도처럼 한국도 그들의 현지 생산기지가 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선도 기업들의 최신 기술을 직접 배울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에게 지나치게 야심찬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 고단수 전략을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헬스케어 콜드체인 포장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고, 선견지명을 통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업들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콜드체인 포장재 기업들도 글로벌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글로벌 특송기업 TNT에서 임상시험과 제약물류 서비스를 담당했고, 월드쿠리어에서는 제약(의약품)부문 영업을 담당했다. 마켄(Marken)의 첫 한국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콜드체인플랫폼 대표로 제약 콜드체인 물류와 관련된 정보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숙명여대 중어중문과 졸업, 인하대학교 국제통상물류전문대학원에서 물류경영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공급사슬 관점의 임상시험 물류 솔루션에 관한 연구’와 ‘적게 일하고 크게 어필하고 싶을 때 읽는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