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콜드체인 기업이라면 반드시 가진 무기, SOP
SOP에는 무엇이 들어있으며, 그 관리와 예시는 어떻게 될까
글. 김희양 콜드체인플랫폼(CCP) 대표
전 세계 수백 명의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높은 생산성과 소통력을 가진 문화로 굉장히 유명해진 회사가 있습니다. 2014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깃랩(GitLab)이라는 오픈소스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매뉴얼 ‘깃랩 핸드북(GitLab Handbook)’은 회사 철학부터 감사 인사법까지 ‘뭐 이런 것까지 적어놨나’ 싶을 정도로 매우 촘촘하게 작성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1,000 페이지였던 깃랩 핸드북은 이제 2,000 페이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깃랩은 이 핸드북을 회사를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들의 보물창고라고 정의합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물류기업들, 특히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프리미엄 글로벌 기업들에서 근무하면서 저 역시 문서화된 매뉴얼의 엄청난 가치를 알아차렸습니다. 그 문서화된 매뉴얼을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라고 칭합니다.
SOP는 곧 기준이자 척도
SOP는 표준업무절차를 기술한 문서입니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SOP는 중요하지만,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한 핵심 자산도 바로 SOP입니다. 원조 맛집에 맛의 비법과 철학이 담긴 자기만의 레시피가 있듯,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기업도 자기만의 차별화된 서비스의 핵심 노하우와 철학을 담은 SOP는 필수입니다.
의약품은 환자의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요소입니다. 때문에 제약기업은 의약품 물류 파트너 선정에 있어, 그 서비스 품질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이때 매일의 업무에 대한 품질 기준은 곧 SOP를 통해 입증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SOP는 그 어떤 글로벌 인증서 못지않게 힘이 센 문서입니다.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 분야에서는 철저하게 검증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번지르르한 말과 프레젠테이션으로 백날 잘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문서화된 SOP가 없다면 알맹이 없는 프레젠테이션이 돼 고객의 시간만 허비하게 만들 뿐입니다. 물류 파트너와의 협업에서 SOP의 중요성을 아는 제약 분야의 고객들은 실질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명시한 SOP에 관심이 상당합니다. 회사의 내실은 SOP의 문장 하나하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 고객에 대한 이해, 업무의 전문성, 직원들의 업무 역할과 책임, 서비스 품질 수준, 품질 관리 체계, 소통 방식,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 회사의 윤리성과 책임의식은 SOP 속에 직간접적으로 담깁니다. 그렇다보니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고객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SOP가 있나요?”, “어떤 SOP가 있나요?”, “SOP 목록을 볼 수 있을까요?”, “저희 회사 프로젝트에 대한 맞춤형 SOP를 만들어서 업무에 적용해 주실 수 있나요?”
이들의 물류 파트너가 되고 싶다면, 영업 담당자는 이러한 질문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SOP를 영업 업무와는 큰 관련이 없는 문서, 즉 CS 및 오퍼레이션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들에게나 해당되는 업무 매뉴얼 정도로 여겨 잘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면, 대화의 테이블에 앉기 어려울 것입니다.
SOP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 선두 기업들은 약 200여 개 이상의 글로벌 SOP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SOP는 나라별 상황에 따라 현지에 적합하게 만드는 Local SOP와, 고객 맞춤형 Client SOP의 토대가 됩니다. SOP 개수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먹기 좋은 조각 케이크처럼 각 업무를 세분화하여 문서화해두었기 때문입니다. 큼지막한 케이크를 알아서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필요할 때 한입씩 베어 물기 좋게 잘라놓은 조각 케이크처럼요.
예를 들어 드라이버에 해당되는 SOP는 차량 청소 및 소독법, 일일 차량 점검 절차, 픽업하는 절차, 차량에 물품을 적재하는 방법, 배송하는 절차, 배송 후 POD(Proof Of Delivery, 배달증명)를 입력하는 법, 운송 중 차량 고장 또는 차량 운행을 할 수 없는 비상시 대처법, 픽업 및 배송을 위해 고객 방문 시 주차하는 법, 각 콜드체인 포장재 온도별/포장재 회사별 포장법, 드라이아이스로 포장된 물품 핸들링 하는 법, 드라이아이스 보충하는 법, 취급하는 위험물 아이템별 위험물 핸들링 하는 법, 혈액 등 생물학적 제재가 포장재 밖으로 새어 나왔을 때 대처하는 법 등 SOP가 아주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SOP는 살아있어야 한다
SOP는 누가 봐도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전문 용어나 약어는 용어의 정의를 분명히 명시해서 갓 입사한 신입도 SOP를 보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표준업무절차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상황 발생 시, 누구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연성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SOP를 통해 업무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믿게 만드는 든든함을 주는 것이 좋은 SOP입니다.
▲ 사진: quality-manufacturing.org
실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가 각 실무 담당자를 통해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본인의 상상에 의존하여 형식적으로 쓴 SOP, 그런 SOP를 상사가 오탈자 정도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검토한 후 승인한 SOP는 업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단 몇 줄만 읽어도 알아차립니다. 따라서 깐깐한 제약기업 고객은 SOP를 물류 파트너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SOP는 형식적으로, 그저 존재하는 문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살아있는 문서여야 합니다.
예전에는 필요했으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SOP가 있다면 SOP 리스트에서 삭제하여야 합니다. 변경 사항이 생겼다면 버전 관리를 통해 SOP를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새로운 업무가 생겼다면 SOP를 새로 발행해야 합니다. 어떤 변경사항이 없더라도 최소 2년에 1 번씩은 정기적으로 SOP를 재검토하여야 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프리미엄 글로벌 물류 기업들은 SOP 관리에 정말 탁월했습니다. GDP(Good Distribution Practice)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말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설령 지사가 없는 곳에서 에이전트를 이용하더라도 일관성 있게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SOP에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2022년이 되면 글로벌 100대 의약품의 절반이 온도에 민감한 바이오의약품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EU GDP 가이드라인은 의약품 운송 및 유통에 대한 SOP 구비뿐 아니라, SOP를 교육한 기록까지도 모두 문서화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SOP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SOP 항목 예시
회사마다 SOP의 양식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빼놓지 않았으면 하는 항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SOP 제목
- SOP 번호
- SOP 버전 번호
- SOP 발행일
- SOP 효력발생일
- 문서 책임자: SOP 작성자, 문서 검토자(다수 가능), 품질보증(QA)
- 해당 SOP의 목적
- 해당 SOP의 범위
- 책임
- 절차
- 관련 문서(연관된 SOP) 또는 관련 양식(Form)
- 참고자료
- 문서 히스토리(문서 버전별 변경 사항)
- 문서 배포 리스트 및 방법
SOP는 업무 절차를 담은 딱딱하고 건조한 문서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인간적인 문서여야 합니다. 단순한 절차의 나열이 아니라, 그 업무 수행에 관여하는 직원들과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떠올림과 동시에 회사 이름을 걸고서 신중하게 작성된, 섬세하고 책임감 있는 문서인 것이지요.
지금이 바로 적기(適期)
헬스케어 콜드체인 물류를 회사 서비스에 추가하고 싶으신가요? 이 유망한 물류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으신가요? 그럼 이제 SOP와 친해져야 합니다. 심지어 어떤 제약회사의 화장실에는 ‘화장실 SOP’가 붙어있을 정도로 SOP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SOP라는 말이 낯설다고, SOP가 있는지 없는지 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에 SOP가 있긴 하지만 굉장히 형식적이라 있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라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회사의 SOP를 찾아서 공부하고, 미흡한 SOP는 보완하고, 회사에 SOP가 없다면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지금이 바로 SOP를 전체적으로 재정비하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글로벌 특송기업 TNT에서 임상시험과 제약물류 서비스를 담당했고, 월드쿠리어에서는 제약(의약품)부문 영업을 담당했다. 마켄(Marken)의 첫 한국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콜드체인플랫폼 대표로 제약 콜드체인 물류와 관련된 정보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숙명여대 중어중문과 졸업, 인하대학교 국제통상물류전문대학원에서 물류경영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공급사슬 관점의 임상시험 물류 솔루션에 관한 연구’와 ‘적게 일하고 크게 어필하고 싶을 때 읽는 책’이 있다.